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춘의 일기를 쓰다
나태주 시와그림, 김예원 글 / 시공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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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이별하고 행복하고 슬펐던 모든 시간에 시(詩)가 있었다.”

나태주 시인에게 시는 세상에 띄우는 연애편지였다. 그렇게 시인은 40년 넘게 답장이 오지 않는 편지를 써 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시인의 시로 인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 있다는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시가 길이 되고, 시가 동무가 되고, 시가 삶이 된 한 청춘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 책에는 시험과 취업, 사랑과 이별에 힘겨울 때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기운을 얻었던 한 청춘이 5년 동안 써 내려간 기록이 담겨 있다.

시로 인해 매 순간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된 성장과 깨달음의 여정에 나태주 시인은 자신의 시와 그림으로 응원해 주었다.

50년의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시와 문학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인연이 만들어 간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시인 나태주가 쓴 시에 김예원 씨가 글을 더해 펴냈다.

소개글을 대충 봤을 때도, 책이 도착하기 전까지도 김예원 씨가 시와 글을 모두 쓴 것으로 알았다.

읽다가 비로서 나태주 시인의 시에 김예원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첨가해 만든 책인 줄 알게 됐다.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져 놀라웠다. 시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각주를 달듯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김예원 씨는 시와 자신을 한몸으로 그렇게 살아온 것이었다. 행복한 순간만이 아니라 이별하고 슬픔마저도 시처럼 김예원 씨는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태주 시인의 시가 젊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사랑하던 내가 겪지 못한 경험 같은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먼저였는지, 김예원 씨의 삶이 먼저였는지 헛갈리는 독자는 이 책을 매우 열심히 잘 읽은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연애편지의 대상은 여학생에서 세상으로 바뀌었다.

연애편지 쓰기가 시 쓰기의 시작이었고, 시 쓰기는 또 연애편지 쓰기의 대신이었다.

하지만 시인의 연애편지는 세상에 쉽게 전달되지 않았고, 답장 또한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2015년, 당시 스물한 살 대학생이었던 김예원은 학교 도서관에서 새벽 4시까지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1층 로비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시집을 집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나태주라는 모르는 시인의 시집이었다.

지쳐 있었던 탓일까,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과 작은 것의 가치를 노래하는 시편들이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

우울했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잡혔다.

이후 김예원은 나태주 시인의 팬이 되었다. 40년 전에 펴낸 시집까지 찾아서 읽었다.(여기까지는 나와 비슷했다) 시가 그의 일상이 되었다.

슬플 때, 우울할 때 시인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일기를 쓰면서 시인의 시를 옮겨 적었다.

그러던 중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시인에게 편지를 썼다.

나태주 시인이 세상에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 50년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도착한 답장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맑다.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쉽게 다가가서 선명하게 박힌다.

젊은 세대가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힘들 때 읽으면 위로가 되고, 기쁠 때 읽으면 삶에 감사하게 된다. 김예원에게도 그랬다.

대학에 입학하고 조금씩 현실의 모서리가 눈에 띄기 시작할 무렵 나태주 시인의 시를 만났다.

삶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 가던 그때 시인의 시는 용기를 주고 위로가 되었다.

시를 좋아하게 되자, 생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깨달음의 파편들을 모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시 한 편이 그 옆에 나란히 놓였다. 70대 노시인의 시와 20대 청춘의 에세이가 어우러진 이 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또한 이 책엔 90년대생의 절망과 희망, 고민과 방황, 행복과 사랑의 이야기가 짙게 배어 있어 나태주의 시와 함께 큰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켜준다.



고등학교 1학년 열여섯 살 때, 나는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겨 그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연애편지 쓰기가 시 쓰기의 시작이었고, 시 쓰기는 또 연애편지 쓰기의 대신이었던 셈이다.

- 「책머리에 _ 한 강물이 되어 흘러라」중에서

나태주 시인을 공주에서 처음 뵈었던 날, 시인과 잠깐 동안 함께하면서 나는 시인의 애정 어리고 소박한 시들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 「첫 만남」중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살기보다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맛있는 걸 먹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게 참 별것 아닌 것 같다.

- 「죽음 앞에서」중에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 때 결혼을 했다.

나보고 지금 한 가정을 이루라고 하면 엄두도 못 낼 일인데, 엄마는 이 나이에 한 가정을 이루어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그러면서 포기하고 산 일이 참 많았겠지. 엄마에게 옷 한 벌 선물해 드려야겠다.

- 「소녀」중에서


왕따를 당하던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고는 울기도 했고 엄마가 그립다는 한 아이는 과외 시간 전에 아토피 연고를 준비해놓았다가 내가 올 때마다 연고를 발라 달라며 등을 까고 엎드리기도 했다.

우울증에 걸려 손목을 긋고 자해하던 학생의 학부모님께서는 학생이 나에게만 속이야기를 한다며

아예 공부는 필요 없으니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하셨다.

자칭 일진이던 한 아이는 가출했다고 했는데 나와 과외를 하는 시간에만 집에 와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가출했다.

아이들은 정말 단지 자신을 이해해주고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 「공감을 위한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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