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산책 - 이탈리아 문학가와 함께 걷는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가와시마 히데아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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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화유적인문서나 에세이를 읽을 때, 특히 여행 관련 에세이 등은 예외없이 화려한 컬러 사진과 짧은 글이 우선 떠오른다.

잔해만 남았을지라도 당시의 화려함이나 웅장함 등을 자랑하는 건축물일 경우 예외없이 사진과 느낌, 그리고 미사여구를 사용해 문장 등을 채운다.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는 그것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도 <로마 산책>이라는 책 제목부터가 그렇지만 매우 여유로운 느낌의 산책에 어울리는 사진이나 삽화 등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책을 펼쳐든 순간 실망과 함께 자칫 독서 의욕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저자의 집필 의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후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힌 "시각은 무사상적이며 기억에 남기 어렵다"는 문장을 대하면서부터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 형제의 전설의 시대부터 현대까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영원의 도시’ 로마.

평생 이탈리아 문학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로마에 머물던 경험과 풍부한 지식, 교양을 담아 우리를 생생한 로마의 거리로 안내한다.

저자와 함께 분수의 물소리를 따라 곳곳의 유적을 찾아가고 포석이 깔린 거리와 광장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로마의 끝없는 매력의 원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드디어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로마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 로마 거리 곳곳을 산책하는 그의 발걸음은 선명한 사진이나 영상 없이도 우리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로마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거리마다 담긴 흥미롭고 오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든든한 로마 여행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로마는 경이와 매혹이 가득한 도시이다. 세부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리기 전에 켜켜이 쌓인 시대 전체를 바라보자.

붐비는 거리를 뒤로하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윽고 태고에는 신역(神域)이었던 캄피돌리오 언덕에 서면 소용돌이치며 지나가는 고대와 근대의 바람이 뼛속 깊이 느껴질 것이다. < p.10 >

캄파냐 로마나의 풍경 속을 지나온 여행자가 밀비오 다리를 건널 때면, 전투에 패배하고 끝내 강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막센티우스 황제의 고사(312년)가 떠오를 것이다. 그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밀비오 다리를 건넌 여행자들은 일직선으로 뻗은 플라미니아 가도(지금의 플라미니아 거리)를 통해 성문(지금의 포폴로 성문)에 닿는다.

로랭, 푸생, 괴테, 스탕달, 안데르센 등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영원의 도시’로 입성했다. < p.54 >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성벽은 약 2,000년에 걸쳐 로마의 역사를 수호하는 중대한 구실을 했다.

과연 요즘 시대에 성벽만큼 보수적인 건축물도 없을 것이다.

피로 얼룩진 전쟁의 무대였던 성벽이 마치 흘러간 세월의 증인이라도 되는 양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성벽만이 아니다. 성벽 안쪽의 거리와 광장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로마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되살아나는 역사의 기억과 함께 포석 사이에 스며 있는 피의 흔적을 떠올린다. < p.105 >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궁금한 부분부터 읽어도 문제없는 구성이다.

그런데 저자의 머리말에서 밝힘과 달리 그렇게 아름다운 로마를 그리면서도 정작 로마의 사진은 흑백이라는 점이 못내 아쉽다. 매체에서 보였던 이미지 때문인지 몰라도, 순례길 하면 스페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순례길은 여러곳을 차례로 방문하거나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길을 뜻한다.

로마에도 순례길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한데 저자는 순례자들의 입장과는 달리, 로마에 살 곳을 정해서 인지, 순례길이라기보단 성당을 중심으로 한 오벨리스크에 대해 더 깊은 설명을 한다.

순례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위해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순례자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데, 이는 오벨리스크의 높이가 기단을 포함해 36.5m로 하늘을 찌를 듯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교황 식스투스 5세가 재위하는 기간 이 오벨리스크는 4개가 더 세워진다. 그리고 현재 로마에는 그보다 많은 14개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당시의 역사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글은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렴풋한 상상력을 더하게 한다. 읽으면서 줄곳 드는 생각이지만, 책을 사진없이 읽기란 어려울 듯하다.

로마에 한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이 아니고선 글로써 로마의 풍경을 상상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로마의 풍경에 매료된 사람들의 일부가 로마를 찾게 되는데, 이는 영화속의 풍경이나 잡지, 도서, 사진 등등에 영향을 받아서일 것 같다.

로마를 그리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대부분은 사진과 함께 로마를 그린다.그래서인지 몰라도 책의 구성에서 사진이 더 많이 할애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아마도 로마를 그리는 이 책이 더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작가의 로마 사랑은 건축물과 환경에 있는 것 같다. 책의 대부분이 역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역사에서 꾸준하게 건축물을 설명하고 있다.

지도를 보면서도 작가의 글을 읽고 로마의 거리와 언덕, 로마의 도시를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애가 되는 부분이었다. 로마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전술한 대로 이 책은 로마를 그리지만, 로마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지루하고 집중하기 힘들다는 느낌을 주기도 할 것이다.

저자가 머릿말에서 밝히듯, 부담을 느낄만큼 전문적인 내용들이 서문에 많이 확인되기 때문이다.(그래서 분명, 로마 중급자라면 재미있게 읽힐 것이다)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선뜻 그곳을 찾아갈수 없을 때 이 책을 읽어봐도 무방하지만, 로마의 역사를 어느정도 알고 있거나 로마의 거리를 밟아본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힐 책이었다.(여행서는 역시 색감이 화려한 사진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저자 가와시마 히데아키는 1933년 일본 도쿄 출생. 1959년 도쿄외국어대학 이탈리아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전임강사, 조교수를 거쳐 1960년대 후반에 로마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 후 도쿄외국어대학 교수, 명예교수로 지내다 2018년 별세했다.

저서로는 『서사시의 정신』, 『이탈리아를 둘러싼 여상』, 『웅가레티』, 『세계의 역사와 문화 이탈리아』(감수), 『이탈리아 ? 유대인의 풍경』, 『돌아오는 여름날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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