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 술, 한국의 맛 - 알고 마시면 인생이 즐겁다
이현주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술의 역사는 오래됐고, 인류와 함께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

독자 역시 술을 고교 졸업 때부터 배웠고 이후 수십 년 마셨다.

한때는 너무 마셔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술의 극히 일부만 마셨을 뿐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술에 관한 책을 우연히 읽은 후에야 술의 종류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술의 종류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다 마시지 않았더라도 '음주 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마시고 즐겁고, 마신 후 얼마간 몸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술에 관한 책도 수만 가지, 어쩌면 수십만 가지가 될 터이니 어차피 다 마셔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이 책이 크게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우리 전통주에 대한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우리 술이 이렇게 다양하고, 만드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책에 따르면 한국 역사 속에는 우리 술의 근간이 흔들릴뻔한 시기가 있었다.

먼 옛날 조선시대에 시행되었던 금주령, 1909년 일본에 의한 주세법의 제정, 1960년대 식량부족을 극복하고자 시행된 양곡관리법과 밀주 단속의 시기. 한국 술의 뿌리를 위협하는 여러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우리의 술들이 있고,

그 계보를 잇기 위해 굳건히 전통주 시장을 지키는 양조장들과 새로이 술독에 뛰어드는 젊은 양조인들이 있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 새로운 물살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재 한국의 전통주 시장.

너무 많아서 혹은 너무 몰라서 무엇을 먼저 맛볼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면

전통주 읽어주는 여자 이현주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첫발을 내딛어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몰랐던 어느 술독 속에는 술 익는 향기가 향긋하게 퍼지고 있다.

추운 겨울날 포장마차에 앉아 마시는 소주 한잔, 더운 여름날 땀 흘리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빗소리 들으며 먹는 파전에 막걸리 한 병.

이렇듯 술이란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마시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매력을 보여준다.


《한잔 술, 한국의 맛》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주부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 양조장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전통주들을 소개하며 술에 담긴 가치를 전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설립한 [전통주 갤러리]의 초대 관장, 전통주 소믈리에 이현주는 그간 보고 듣고 마시고 느낀 증류주, 약주, 탁주 등 다양한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가득 담았다.

전통주의 맛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도록, 취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자 역할을 자처한다.

그녀가 들려주는 우리 술 이야기들을 잠잠히 따라가다 보면 술 한잔이 간절해진다.

알고 마시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전통주 이야기, 한국의 다채로운 술맛을 경험해볼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조옥화 명인의 안동소주와는 어떤 음식이 잘 어울릴까?

원래 술과 음식은 한 밥상 위에서 자란 동무이기에 그 지역의 음식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안동 지역은 자반고등어 산지로 유명하다.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적당히 제거한 뒤에 석쇠에 얹어 노릇하게 구워낸 간고등어는 안동소주에 딱 어울리는 안줏거리이다.

짭짜름한 소금기가 소주의 단맛을 잡아끌어내 45도나 되는 술이 달짝지근하게 느껴진다. 서울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찜닭의 원조도 안동이다.

적당히 달고 간이 배어 부들거리는 닭고기 살점과 곁들여진 감자며 당면 한 젓가락도 이 유서 깊은 술의 안주로 그만이다. <본문 P. 58~59> 〈민속주 안동소주 | 싱글몰트 좋아하세요?〉 중에서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작고한 김정일 위원이 ‘문배주는 대동강 일대의 주암산 샘물로 빚어야 제맛’이라고 했다던가?

지금 평양에서는 이 술을 찾아볼 수 없지만 대신 대동강 일대의 주암산 샘물과 물맛이 많이 닮았다는 경기도 김포의 석회암 암반수로 문배주를 빚는다. <P 64~65> 〈문배주 |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요〉 중에서

오늘날 전통주 시장의 수면 아래는 몹시 분주하고 국내외에서 전통주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문화강국의 대열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담긴 우리만의 술 또한 세계화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나 의전의 만찬주에는 전통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해외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들에서도 한국의 전통주가 심심치 않게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주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그 술맛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술에 얽힌 배경과 이야기들일 것이다.

술 한잔은 우리의 모든 감각을 만족시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술병을 여는 경쾌한 소리와 작은 술잔에 쪼르르 술이 채워지는 소리, 혀끝에서 느끼는 맛과 한 모금 삼키면 코를 타고 올라오는 깊은 향, 속에서부터 채워지는 뜨끈한 온기. 그리고 여기에 잔잔히 곁들일 수 있는 전통주 이야기 한 점이면 다른 안주가 필요치 않을 듯도 하다.


시대가 변하면 입맛도 취향도 변한다.

지금은 산뜻한 산미가 나는 술이 많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 당시에는 전통 누룩을 사용하여 만든 약주의 대부분이 묵직하고 중후한 맛을 가진 술들이 많아, 화이트 와인의 산뜻한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한국 약주가 단맛 위주라 지루하며 균형미가 부족하다 토로하곤 했다.

술에 있어 산미는 악센트와도 같아서 지나치면 산만하고 부족하면 심심하다.

임효진 대표의 걱정과 달리 가볍고 새콤한 맛을 가진 이 술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먼저 이름이 나서 ‘봄바람처럼 산들산들한 술’로 인기를 얻었다. <P. 225> 〈맑은바당 | 산듸야, 상큼함을 책임져〉 중에서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온라인상에서의 주류 판매는 금지돼 있다.

하지만 전통주 시장의 활성화를 위하여 정부는 2017년부터 전통주에 한하여 온라인 판매를 허가했다.

이러한 배경을 뒷받침으로 전통주에 대한 접근성과 관심이 높아지며 전통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먹는 아포카토처럼, 붉은빛이 영롱한 감홍로를 바닐라나 호두 아이스크림에 끼얹어 만든 디저트, 안동소주나 문배술 같이 높은 도수의 증류주를 베이스로 하여 제조한 칵테일 등 다양한 전통주들이 새로운 시대와 세계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다.

이는 전통의 명맥은 고수하되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내외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전통주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술독에서 고요히 익어가며 세상에 나올 때를 기다리는 술의 시간과 술을 빚어내는 고된 과정을 안다면 어찌 술을 쉽게 삼킬 수 있을까.

술 한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혹은 술 한잔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마시고 취하는 것만이 술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전통주 소믈리에 이현주는 술이란 오직 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라 말한다.

술잔을 거쳐 간 수많은 손길들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게 되는 순간, 매혹적인 전통주의 술 길에서 헤어 나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술에 대한 교육이 당연시되고 술을 대하는 인식이 변화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겁고 건강하게 우리의 전통주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