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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앤 -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ㅣ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6
버지 윌슨 지음, 애니메이션 <안녕, 앤> 원화 그림, 나선숙 옮김 / 더모던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 앤>은 <앤> 시리즈의 원작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작품이 아님에도
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캐나다 정부와 루시 M 몽고메리 협회의
공식 인정을 받은 책입니다.
<빨강 머리 앤>의 속편으로 '앤 셜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달라는 의뢰에
앤의 팬들과 무려 학계에서 연구하기까지 하는 그 '앤' 의 세계관의 기대와 요구를
먼저 걱정할 수 밖에 없었던 <안녕, 앤: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의 작가
버지 윌슨의 마음이 무척 이해가 됩니다.
작가 자신도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책이 출간되고, 25개 이상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캐나다 훈장도 수상한 3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인정받고 유명한 작가인데도
'앤'에 대한 전 세계인의 사랑과 버지 윌슨 자신의 애정이
오히려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의 고단함과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아름답고 탄탄한(!) 상상의 세계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버텨내는
앤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인지에 대해 궁금한 독자들에게
큰 선물같은 이 책을 내주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남자 아이가 아니어서 파양의 위기를 맞았던 11살의 앤.
그린 게이블의 초록색 지붕으로 오기 전까지, 더 작고 어렸던 앤에게는
어떤 시간이 존재했었을까요?
버지 윌슨은 원작에서 조금 언급되었던 앤의 어린 시절에 대해
원작자와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조각조각의 단서를 모으고,
심지어 앤이 살던 시기의 패션, 운송 수단, 발명품, 의학적 믿음, 종교적 풍습까지
다양한 영역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완벽한 이음새로
프리퀄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앤이 꿈에 그리던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마릴라와 매슈를 만나기 전의
앤의 시간과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멋지게 구현해냅니다.
엄마와 아빠 없이, 이곳 저곳을 전전해가며 살아온 앤의 어린 시절은
사실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다뤄졌었답니다.
그래서 이 책은 TV 애니메이션의 원작 일러스트레이션이
스토리의 중요 부분마다 담겨 있는 동화책같이 구성되어 있는
'더 모던 감성클래식 시리즈'의 여섯번째 책입니다. ^^
역시 앤 덕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기획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읽을 수록 마음 한 켠이 아파왔습니다.


부모에게는 기적처럼 오고, '아빠가 아이를 낳는다'고 사람들이 얘기할 정도로
소중했던 아이가 열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노란집에서 홀로 남게 되는 시작부터
'희망하는 버릇'이 있다고 말하는 빼빼 마른 빨강 머리의 어린이로,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커야할 나이에 홀로 세상의 차가움을 견뎌야 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아리게 다가왔습니다.


앤의 삶에 등장하고 함께 머물다 떠나가는 사람들의 면면도
다들 어딘가는 부족하고 서글픈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도
이 책은 마냥 귀엽고 엉뚱한 이야기를 상상해내며 못말리는 수다를 떨어대는
즐거움과 재미가 넘치는 책은 아닙니다.
아마, 어린 시절에 이 책을 만났다면 우울한 마음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만
어른이 되어 읽는 마음은 앤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들의 면면에
아동의 권리와 인권, 그리고 여성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신분이나 재산 여부를 떠나서 (물론 돈이 있으면 조금 낫겠지만)
자신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꾸려가기가 어려웠을 그 시대에,
천애고아 여자아이가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겁니다.
앤이 조금 덜 불행해질 수 있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일손을 돕는 노동력쯤으로 여기는 사람들.
결코 용서가 안되는, 나이만 먹었지 자기밖에 모르는 흉악하고 못된
아동학대,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시절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씁쓸한 마음을 들게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도 못 가고, 힘든 일일수록 떠맡아 하는 앤은
어쩌면 생존본능으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뛰어난 상상력, 긍정적인 마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포용력,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내어 꼭 이루고마는 의지력을 동원해서
자신에게 따스함의 조각들을 건네주는 사람들과 힘든 시기를 버텨냅니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ㅠ 이렇게나 많은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지ㅠㅠ
(무려 624쪽이나 되는 앤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뭉클하기도 하고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버티며 책을 읽게 됩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앤을 좋아하는 이유는 각각 다르겠지만
모두가 앤을 사랑하는 공통적인 까닭은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이 어떻든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잃지 않는
앤의 초능력 때문이 아닐까요?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앤의 일생에서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온한 곳에서
행복을 맛보게 되는 순간이 늘어나는 것을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켜보게 됩니다.
앤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분명히 훌륭한 선물이 될
<안녕, 앤: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