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편, 세상에서 가장 짧은 명작 읽기 1 하루 한 편, 세상에서 가장 짧은 명작 읽기 1
송정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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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나란히 걸을 친구를 이렇게 쉽게 만나도 될까? 싶은 책을 만났다.

<하루 한 편, 세상에서 가장 짧은 명작 읽기>. ^^


띠지에 소개된 책은 4권이지만 띠지를 조심스레 벗기면 

표지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책 제목만 40권 가량 된다.

이 책의 페이지는 300여 페이지. 

폰트가 특별히 작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편안한 미색의 종이에 또렷하게 박혀 있는 평범한 크기의 폰트와 

옹졸하지 않은 편집이 눈을 시원하게 만든다.


이 책은 종이로만든 명작 스트리밍 서비스같다.

차례는 마치 독자의 취향껏 모아봤어요~ 하듯 비슷한 주제의 명작들을 골라 

아래와 같이 4개의 장으로 묶어두었다.




그 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내키는 작품을 고르면 된다.

혹은 마음에 드는 작품과 비슷한 다음 작품이 연관검색어처럼 따라나오는 기분이다.

책의 뒤표지에서 '잠들기 전 10분 독서로 완벽 마스터하는 세계고전문학"이라는

카피를 썼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잠들기 전' '10분 독서'는 맞고, '완벽' '마스터'는 -당연하게도- 틀리다.


이 책은 키워드로 독자를 유혹하고,

작가의 삶을 먼저 풀어두어 독자로 하여금 예상하도록 유도하고,

명작 비하인드를 바로 이어붙여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읽지 않을 것이냐고 

부드럽지만 매우 강력한 힘으로 독자를 잡아 끈다.

그리고 정작 명작을 소개하는 것은 4~5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딱-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몽실몽실 올라올 때

호기심에 불을 붙여 기어코 예매 버튼을 클릭하게 만드는 

30초짜리 영화 예고편처럼, 딱- 끊어버린다.

이미 이 명작의 맛을 본(!) 저자 송정림의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감상평과 함께!



정말 제대로 된 영업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아침에 읽는다면 소개된 작품의 디테일이 궁금하다가

곧 일상의 쏟아지는 업무에 생각이 그저 흘러가버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루의 이런저런 고단함과 잡념의 찌꺼기가 잔뜩 묻은 뇌가

인간의 희노애락을 우아하고도 처절하게 담은 명작을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것 같지만

정작 그 속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유명 작품의 모습 중 

'치임 포인트'를 정확하게 치고 빠지는 저자의 영업력이 빛을 발한다.

게다가 '밤'과 만나면.. 그 효과는 은은하게 지속된다.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하고, 왜 이런 감상평을 남겼는지 알고 싶어진다.

'명작'이라는 무겁고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호칭에 눌리고

학창시절 의무감과 입시-_-로 꾸역꾸역 줄거리만 파악해두었던

정말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책들을 기어코 장바구니에 담고 

심지어 결재까지 누르게도 될 수 있다. 


아니면 책장에 꽂혀 책등만 내내 보던 책이 침대 옆 협탁에 올라와 있을 수도 있고.^^


명작의 플래터를 맛보고 싶다면 더없이 알찬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호기심에 약한 편이라면 주의요망(!)한 책이 될 테고.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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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앤 가디너 퍼킨스 지음, 김진원 옮김 / 항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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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곤란하다.

예전보다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의 폭은 넓어지고 있다.

물론 알고리즘으로 인한 확증 편향적 정보 습득 및 의견 공유로

편협을 넘어 몰이해와 혐오로 끝맺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또 여성학이야?" 하고 지겨워할 수도 있겠지만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며 '여자'라는 키워드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소위 '질서'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모래 위에 위태롭게 쌓인 벽인지,

일단 그 벽에 구멍과 틈이 생기면 그 뒤의 세상이 완전히 다른 신세계가 되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1969년 여름에 미국의 한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에게 집중해서, 

철옹성처럼 보이는 관습과 체제라는 벽이 시원하게 허물어지고

그것이 곧 지평을 넓히며 다른 영역의 자유와 번영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무려 268년 동안,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던 예일대.

남성 지도자를 매해 1000명씩 사회로 배출하는 자랑스러운 명문대.

물론, 예일대 뿐만 아니라 1968년 당시 명문대학들은 

(미국 대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전통의 명문대학들!)

'자매대학'을 세워 여학생을 '가까이' 두었지만  

결코 남학생이 다니는 교정에 여학생을 받지 않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이들 마음속에 '남학생만 받는' 교육은 곧 '일류'교육이란 의미였다"

-에듀케이셔널 레코드 인용 p.25


예일-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도 사학은 여전히 남/녀가 분리된 학교이고,

공립의 대부분의 학교가 공학이 되기 전까지는

사춘기의 여성과 남성을 한 공간 안에(그것이 학교라도) 공존하게 한다는 것은

효율성도 떨어지며 (근거가 무엇일까, 비교대상이 없었는데)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역시, 각 성별이 다른 별에 거주하는 것도 아니면서)

무엇보다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어 성별을 가른 학교들이 당연한 듯 존재했다.



변화에는 반발과 갈등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것은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았기에 일단은 경계를 받는다.

미국 전역에 걸쳐, 크고 작은 도시나 소위 깡시골에서 온

사회적, 경제적, 인종적 특성이 모두 다르지만 유일한 공통점 '똑똑함'으로

남성들의 예일대를 모두의 예일대로 만든 여학생들이

동물원의 동물처럼 구경거리가 되거나, 

교묘한 형태의 (여학생 당사자가 만들기도 했던) 억압과 이미지에 갖히거나

'최초'라는 타이틀에서 부여된 책임감과 압박감으로 허덕이는 모습들을 

책의 곳곳에서 만날 때마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



-너희에게 할당된 몫은 여기에 있어.

-너희는 이런 일을 훨씬 더 잘하지.

-너희는 저런 경우에서 보호받아야 할 귀한 존재야. (그러니 하지 마.)


너희에 누구를 넣어도 기회와 경험을 한정짓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여성이어서, 남성이어서, 00지역 출신이어서, 0인종이어서, 

00 구역에 살아서, 신체적/정신적으로 '완벽'하지 않아서, 

나이가 어려서 혹은 많아서, 경력이 없어서 혹은 많아서... 

각종 이유를 대면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해놓은 덕분에(!)

사회적, 산업적으로 특정 영역의 가치가 매겨지고 그것이 계층적 사다리를 만드는 일.


현대에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부당함을 마침내 깨닫고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인종차별과 성차별, 억압과 탄압에 맞서 연구하고 연대하고 목소리를 낸 

앞선 세대의 선구자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오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순식간에 세상으로 퍼지는 

첨단의 끝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기존의 질서와 달라지는 그 순간에, 

어떤 판단을 해야 뒤쳐지지 않을까- 의 수준에서 벗어나

어떤 관점을 가져야 자신의 세계관을 파괴가 아닌 발전으로 넓힐 수 있을까-

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만든 책이었다.


인문학과 사회학이 별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역사적인 흐름을 놓지 않으며.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불의함을 세심하게 깨닫고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앎을 실천하는 일이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학적 견해/지식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포기하는 용기있는 사람과 

공동체와 개인을 위해 비전을 가지고 추구하는 드리머들이 

비록 시작은 완벽하지 못한 미약한 움직임이더라도 

끝내 변화를 일구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예일은여자가필요해  #사회학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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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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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육중함이 느껴지는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라는 부제에 걸맞게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의 역사를 

현대의 '지성'이라는 카테고리에 이름을 올렸을 법한 

인물과 그들의 대표 저작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살펴본 책이다.



1919년 4월 11일에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을 선포하였으나

역사를 배운 사람은 다들 알 듯, 지난 100년의 역사는 사이다 없는 고구마처럼

좋게 말하면 다이내믹, 느낌 그대로 얘기하자면 파란만장한 100년을 보냈다는 것이

페이지를 넘기며 새삼스레 아프게 다가온다.


K-문화, K-드라마, K-방역까지 K-가 붙는 브랜딩을 이루기까지 

윗세대가 살아온 세상과 시대를 저자 김호기의 정리로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독립운동가, 종교와 철학, 문학 (시, 소설, 평론), 역사, 정치가,

법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 여성과 환경, 자연과학을 비롯해

밖에서 본 대한민국까지, 그야말로 모든 영역을 총 망라해서

각 영역을 대표하는 인물을 고르고 

한 꼭지당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구성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저자의 수고로움 덕분에 무려 100년의 시간 동안

숨가쁘게 변화하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각 영역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종단과 횡단하며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60명 지성인의 기억과 사상을 작품을 통해 소개하고 

저자의 해박한 지식으로 의미를 짚어주는 매 꼭지를 읽으면 

작품으로만 만나 저변에 깔린 사회를 짐작만 했던 독자로서  

갖고 있는지도 몰랐던 갈증과 모호함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어떤 사유와 담론, 그것을 정리하고

이른바 '시대정신'을 문자화한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 존재감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자연스럽게 이념, 주의, 이데올로기로 세상이 갈라져 싸울 때 

묵묵히 나라를 짊어지고 버텨내면서 그 파편을 고스란히 삶에 새긴

보통의 사람들에게 더 눈이 가게 된다.


시대정신을 새기는 사람이 지성인과 지식인이지만

그것을 역사로 살아내고 만들어가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주인인 우리 모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 떠올려 생각하고 의미를 찾고 기억해야한다.


파도처럼 큰 목소리로 떠드는 그 순간의 소리에 휩쓸릴 수도 있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않고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는 몽돌처럼,

지나갔고 만들어지고 앞으로 생길 역사를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고

기억하게 될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의 반성(?)같은 이야기처럼, 

지성인 60인의 범주가 주로 인문학, 

그 중에서도 지난 현대사를 생각해보면 철학이나 종교, 문학에 속해있지만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물들로 구성되어있어

과학 분야에서 돌아본 우리나라의 100년도 보고 싶은 궁금증과 아쉬움이 든다.


미래를 말하는데 과학이 빠질 수는 없지!- 하며

이 책의 '다음편'을 바라게 되는 이유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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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 푸른숲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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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았을 때, 괜히 반가웠다.

금지된 결투를 벌인 대가로 42일동안 가택연금형을 받았던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쓴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재밌게 읽었던 터이다.


'금지'를 어기고 '결투'까지 벌인 피가 끓고 가만 있지 못하는 그가,

42일동안 집 안에서 머물면서 자기 방에 있는 물건, 자신의 공간들을

다시, 새롭게 보며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느끼게 된 것들을 적은 책이어서

그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문득 내 방에 있는 물건들을 

평소와는 다른 기분으로 한번 스윽- 훑어보기도 했더랬다.


작가 안바다님은 그와 조금은 비슷한 이유로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을 썼다.

시작은 삐끗-거려 흥이 깨어진 여행이다.

즐겁고 설렌 마음으로 향한 공항길. 

저녁 6시에 이륙해야하는 비행기는 무려 날개에 이상이 있다는 램프의 

-알고보니 오작동!!!- 불빛으로 지상에 묶여 있다.

그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로 떠나야 하는 승객들도 하릴없이 묶여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안전을 위한 매뉴얼을 당연히 지키는 것 뿐이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간단한 일이던가.

도착해서의 일정, 숙소, 그리고 언제가 되어야 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막막함.

이 모든 것이 짜증으로 변하기에 충분한 6시간이 지나서야

비행기는 출발했고, 몇몇 승객들은 탑승거부를 선언하고 집으로 갔다.


저자는 그 승객들을 보며 자신의 여행을 돌아보았고,

집으로 '가고'싶다는 욕구, 집에 있는 물건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기분을 떠올리며 사물에 대한 태도를 세상에 대한 태도로

확장시키는 책의 출발점이자 목적지를 잡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젠장;- 일어날 수 있는 짜증나는 상황에서

이렇게 결이 다른 생각을 하고 마침내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는 작가 안바다는

-역시나- 문학을 가르치고 밤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독일 철학, 카프카에 관심이 많고

모국어 문장으로 표현하는 감각과 감정과 사유를 연구했고

미술, 음악, 사진, 영화 등 여러 예술 장르에 대한 즐거움과 가치로움을 아는

게다가 문장이 주는 '맛'을 알고 시도하는 작가의 매력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집을 출발하고 나설 때 그저 잠시 머물거나 통과할 뿐인 현관이나

귀찮을 때면 그저 물건을 턱턱 얹어 놓는 곳인 '의자'와도 같은 사물과 공간이

섬세한 감정과 일상의 포착으로 길어 올려지고

어떤 부분은 닮고, 또 어떤 부분은 생경할 경험과 기억으로 다듬어져 소개되면

갑갑하게 갇혀 있다고 생각했던 방과 집이 아주 잠깐,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곧, 좀 치워야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이.....ㅎ)



집이나 가구 뿐 아니라, 갓 구운 빵에까지 머무는 눈길과 감성은

작가가 왜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는지 능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글만 읽었는데도 (솔직하게 말해서 사진은.. 음... 좀..... 친밀감이 느껴진다.)

사진 속의 빵이 반죽이었다가 오븐 속에서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숨고르는 시간을 거쳐 손으로 하나하나 쓱-쓱 썰려 바구니에 담겨졌는지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기분이 들고 냄새가 떠오른다.


잠시 멈춤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돈을 주거나 남을 시켜 쉽게 누릴 수 있는 간접성의 것들에 

애써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들이고 난 뒤 느끼는 유일함과 경험의 뿌듯함.

글과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순간의 감정을 붙들어 기억으로 남기고픈 마음이

'여행'이란 언제나 떠나고 어디에나 도착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라는

<파랑새> 책과 같이 -사골처럼- 두고두고 반복되는 '익숙함의 재발견'이

페이지 터너로 기능한다. ^^


요즘 유행하는 방송에서 '랜선 집들이'를 하듯,

집을 여행하느라 보여주는 공간의 사진들을 통해

작가의 일상과 취향, 감각을 살펴보는 재미도, 물론, 있다. ^^

 


작가는 작가구나. 

싶었던 문장이었다.


한번도 냉장고에 대해, 그리고 냉장고 속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적이 없다.

모든 것들에게 감정과 생각을 부여하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확실히 더 포근하고 말랑하고 그래서 여릴 것 같다.


집콕.

어느새 조금씩 적응한 것 같은 팬데믹의 시대.

그리고 가을 바람의 서늘함이 겨울의 도래를 예고하는 요즈음.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며 여행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곳으로 여행을 먼저 다녀온 감성 넘치는 여행자의 이야기도 읽기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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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아름다운 옆길 - 천경의 니체 읽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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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철학은 그 자체로 심오한 학문(혹은 구할 수 없는 답을 얻으려는 도전)이고

따라서 철학자들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활 속에서 가끔씩, 문득,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무슨 의미?" 를 생각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굳이, 오래도록 사유하기를 결심한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철학자들은 학자의 본분에 따라, 자신이 발견한 철학의 조각을 

그렇게 -당분간- 결론이 내려진 이유와 근거와 논리를 붙여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마치, 모호하게 생겼다 사라지는 연기를 손에 가두고

옆동네에 가서 '이것 봐! 내가 발견한 거야' 하고 펼치는 사람들 같다.


전달받는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목격한 그대로를 함께 본다는 것은 어렵지만, 

운이 좋다면, 그리고 충분한 시간과 상상력, 이해력을 발휘한다면

손에 남은 온기와 연기의 냄새 등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짐작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은 학문.

그것이 철학같다.


니체는 매력적이다.

니체의 일갈은 처음에는 상당히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같은 화끈함 뒤로

그 말들을 곱씹으며 느껴지고 파악되는 심원을 발견하면

호들갑을 마구마구 떨고 싶게 된다.

"와- 대박!, 이거가 원래는 이런 뜻이였단 거, 알았어?" 하고.

그런 호들갑의 시기가 지나면 "잠깐만, 과연 그게 그런 거였나?" 라며

스스로 발견했다 생각한 것에 회의가 생기며 

짐작할 수 없고, 시시각각 색이 바뀌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숨을 막히게도 하지만, 언제고 다시 뛰어들어가고픈 도전의식을 부른다.


같은 글귀를 읽고도 개인적 경험과 사유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처럼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은 작정하고 전공자들의 해석과 동떨어진

창조적 오독은 하지 않되, 자신만의 색깔과 느낌으로 니체를 표현하고자 쓴 책이다.

그래서인지, 서문부터 작가의 색과 열정이 뚜렷하게 표현된다.

철학책의 시작이 이토록 유쾌할 지는 몰랐고, 그래서 색달랐다.


책 제목이 괜히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이 아니다.

니체를 다루고 있지만, 니체라는 큰 대로로 접근할 수 있는

자기의 발자국으로 낸 사잇길, 새로운 길, 길이 없어진 길을 

일상 생활에서 누구나 겪었음직한 에피소드와 엮어서 즐겁고 씩씩하게 걷는다.



생각지도 않게 마주하게 되는 재미난 생각과 발견들이

익숙한 요즘의 드라마, 고전, 책, 다른 사상 및 종교 및

철학자이자 자연인으로서의 니체의 삶과 같은 연결고리를 만나

우리 곁을 도도히 흘러가고 있는 철학의 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잘 지낼 때는 사실 철학의 필요를 느끼기 어렵다.

잘 지낸다는 것의 정의는 각자 다르겠지만, 

지금 내가 마주한 사람, 상황, 현실이 불만스럽고 고통스럽지 않으면

굳이 어려운 사유를 애써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풍요를 누리다가 문득 '이게 과연 삶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배부른 소리나 다른 어려움이 없는 팔자 편한 사람들의 생각놀이가 아니다.

애써 내 마음을 달래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생각까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지라, 아예 끊어내지 못한다면 

자의든 타의든 함께 얽혀 고통 속으로 빠지기도 한다.


특히 그 관계가 애정, 관심, 사랑을 바탕으로한 것이라면 

누구든 지쳐 떨어지거나, 남의 리듬을 따라가게 되거나 

궁극적으로 서로 호흡을 맞추어 편안해지기까지 

끝낼 수 없이 함께 추어야 하는 춤이 되어버리고야마는 것이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 이라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주문이지만,

인간은 의미가 중요하며, 목적과 무조건을 자유롭게 넘나들기 바라는

복잡하고도 섬세한 존재라는 것을 책을 읽을수록 느끼게 된다.



책 중간중간에 인용되는 니체의 말과 그의 책들은

과연, 완독을 목표로 도전하기에는 어려운 아우라를 마구 풍긴다.^^

이 책의 저자 천경같은, 유쾌한 '니체 읽기' 안내자의 설명과 더불어 

순한 맛에서 매운 맛까지 부담스럽지 않게 야금야금 맛보기에 좋았다.

철학과 니체에 대해, '들어본 맛'에서 '아는 맛'으로 바꿔주는 책이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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