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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
고은.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고은 시인의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보았다.
해마다 9월 말, 10월 초가 되면 시인 본인은 숨고 싶어도 기어코 끌려나와
이제는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냐며 여론의 중심에서 보글보글 끓다가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다시 스스슥- 구름 속에 숨는 달 같은 느낌의 시인.
그 고은 시인과 계간 <아시아>의 김형수씨가 대담을 한 것을 엮어 놓은 책 <고은 깊은 곳>은
시로만 접해왔던 고은 시인이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걸어온 시력 58년의 중요한 순간순간들을독자들에게 선보여, 새삼 이 시인의 깊은 공력을 절감하게 한다.
일례로 고은은 어떤 시인입니까? 라는 질문을 본인에게 돌린다면 어떻게 답변하겠냐는 말에
살아가는 동안 갑자기 문이 콱 닫혀버리는 듯한 질문 몇 개를 받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네.
너는 누구냐는 이 터무니없고 또한 궁극적인 질문도 그런 폭력의 질문일 것이네.
나무 잎새한테 물어보게. 길을 가로지르는 개미행렬 끝의 한 개미에게 물어보게.
초승달에게 물어보게.
물어보는 자와 그 질문의 대상이 함께 바보가 되고 말 것이네.
그러므로 이런 삼라만상에의 질문이 불가능한 것과는 달리
오직 인간만이 기괴하게도 시시콜콜 질문을 하기 까지 진화했는지 모르겠네.
와우.....
작은 체구의 시인 안에 거대한 우주가 있는 느낌.
저 우주를 속에 품고 그것을 언어로 정갈하게 골라 내밀어 주는 시인의 공력이
차마 깊이과 진함을 헤아릴 수도 없게 만드는 고은 시인의 답변이 멋졌다.
한문과 일본어와 한글을 동시에 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세대를 살았던 고은 시인이
조선왕조 시기처럼 청소년이 긴 머리를 땋아 늘어뜨리고 다니는 고향의 어린 시절과
늙은 훈장이 아침부터 반주에 취해 있었던 재 넘어 서당에서 글 공부를 하던 때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조선어 수업이 없어지고 일본어 수업 일색으로만 공부하던 때
10대가 되어서야 모국어를 돌려받는 시인으로서의 삶도 드라마같지만
청춘의 시절에 전쟁, 독재, 민주화운동 등 격변하는 대한민국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오롯이 겪어내고 삶을 혐오하는 태도를 갖게 되며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 것,
폐인으로 자기모멸에 빠지고 사람들의 일상을 경멸하며 죽음 그 자체에 침잠하며 미화한 것을
담백하게 얘기하는 시인의 모습은 모든 것을 다 겪고 더 이상 이념이나 사상, 규정지음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한 느낌마저 들었다.
시는 모국어의 천부적 행복 속에서 살아 있는 것 이상으로 시는 다들 세상의 언어로 재생할 꿈을 가지고 있는 순례의 운명을 막지 못하네. 내 시도 그렇다네. 여러 나라에서 내 시를 받아들이는 그이들의 공감에 내 진실이 다가가는 것이 내 존재 이유이기도 하네.
p.190
감히,내가 어디에선가 끊거나, 띄어쓰면 그 의미가 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마저 들게 하는
고은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 사람에 대한 이해. 존재에 대한 그의 깨달음을,
<고은 깊은 곳>을 읽을 때마다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감상/이해가 남았다.
앞으로도, 때마다 이 책을 꺼내 읽으면서 어떤 깨달음이 구름을 슬쩍 지나치는 달빛처럼 다가올 지가 궁금해지는 "말의 춤"과 "상상력과 아포리즘"의 향연.
책을 펼치면 그와 함께 우주도 펼쳐지는 것 같은 <고은 깊은 곳>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