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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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느 매거진에서 (아마도 채널예스였던가)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이 사람 괜찮네, 싶어 구매했다. 청소년 소설처럼 깜찍한 표지인데, 내용도 깜찍하다. 


첫 소설 '웨딩드레스 44'는 웹소설 시대에 맞네, 깜찍하다, 싶었고 두번째 소설 '효진'은 흔한 느낌 있었고 살짝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 정도면 역시 귀여운 범주에 넣어줄 수 있었다. 흥미가 돋기 시작한 건 세번째 소설 '알다시피, 은열' 부터였다. '은열'이라는 역사 속 인물을 조사하는 역사학과 대학원생의 글로벌한 동아시아 연합 밴드의 활동 내용이었는데, 꽤 괜찮았다. 경계를 가볍게 넘어다니는 젊고 발랄한 애들 이야기가 보기 좋았고 질척해지지도 암울해지지도 않는 마무리가 산뜻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 하나를 뽑으라면 네 번째 소설 '보늬'겠다. 언니 보늬의 돌연사 이후 돌연사.net을 만들고, 언니철머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우주의 별처럼 인터넷 공간에 띄워놓는 작업을 하게 된 동생 보윤과 그들의 친구 규진, 매지의 이야기다. 인물들에 대한 이상화가 없었고, 역시 위에 적은 질척함과 암울함 대신 솔직함과 발랄함이 과장되지 않게 칠해져 있어 매력적이었다. '개인적 비극을 딛고 일어난 젊은이들이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멋진 작업을 해냈'으며 '뿌리 깊은 착취의 구조를 점선으로나마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이고, '요새 젊은이들은 그저 무기력하다는 윗세대의 오해를 풀 때가 되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좋은 소설이었다.(보라색은 작중에서 돌연사.net을 취재한 기자의 기사를 인용) 이것은 작가가 인물의 입을 빌어 '개떡같이 말했지만 찰떡같이 받아' 해석한 독자-나의 평과도 일치한다.


장르문학 작가 출신임을 입증하는 듯한 '옥상에서 만나요', '영원히 77사이즈'나 '해피 쿠키 이어'도 나쁘지 않았고 역사학도 출신임을 반영하는 듯한 '이마와 모래'도 좋았다. 이 모든 게 다 프레임인 건 알지만, 어쨌거나 한국작가와 한국소설의 저변이 어둡고 칙칙하고 희망도 대안도 의지도 없는 구질구질의 경계를 허물고 범위를 넓혀가는 걸 보는 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짧고 가벼운 터치로 씌어진 문장들, 인물이 직접 말하는 것 같은 구어체의 활용은 문학이 생동하는 일상의 영역 깊숙이 들어왔음을, 또 인터넷과 sns 세대의 세상 안에 확고히 맞물리게 되었음을 느끼게 했다. 꾸미지 않은 단순한 말들 속에 오늘의 사회와 인간들에 대한 응시와 고민이 무겁지 않게, 하지만 분명히 진지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이 같은 '옥상에서 만나요'의 성취는 오늘의 한국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같다. 참신한 소재도 좋고 인물들의 굽히지 않는 꿋꿋함과 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도 든든하다. 앞으로 주목할만 한 작가가 한 명 늘었다 싶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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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늘 뭐 먹지? 12 오늘밤은♪꼬치구이 (체험판) 오늘 뭐 먹지? (체험판) 12
후쿠마루 야스코 외18명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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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체험판이라지만... 각 에피소드의 첫 장들만 보여주고 끊어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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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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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는 사랑스럽지만 내용은 사랑스럽지 않은 책, 듀나의 '민트의 세계'를 읽었다. 배스킨라빈스 민트 초콜릿 칩 같은 달콤하고 향기로운 소설을 기대한다면 책의 시작부터 '덕트 안에서 불타버린 여고생의 시체'에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여고생은 얼굴도 몸통도 불타 알아볼 수 없지만 오른손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어 쉽게 신원을 알 수 있는 사람이다. 하긴 오른손이 불타 없어졌다고 해도 신체의 DNA 정보만 있으면 쉽게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이 시대는 2050년이기 때문이다.

2050년은 어떤 시대인가. 초능력자들의 세상이다. 초능력자라는 말이 더 이상 사용되지조차 않을 만큼 초능력자들이 흔해진 시대이다. 2026년 전주에서 최초의 '배터리 인간'이 등장한 후로, 인간의 내부에 감춰져 있던 갖가지 초능력들이 '배터리'의 힘을 받아 깨어난다. 초능력의 종류는 다양하다. 타인의 정신과 접속해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정신감응자, 물건을 움직이는 염동력자, 하늘을 나는 비행능력자 등 여러 종류가 있고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능력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복합능력자'가 되기도 한다. 많은 인간들이 선천적으로 초능력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건 우물 없는 두레박 같은 것, 배터리 없는 전자기기처럼 아무 쓸모도 없이 그저 내재되어 있는 장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능력자'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배터리 인간'이 태어나고 와이파이처럼 존재만으로도 주위에 에너지를 주는 이 배터리들 때문에 세상은 깨어난 초능력자들이 가득한 곳이 된다. 당연히,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에 LK 그룹을 위시한 거대 기업들은 초능력과 배터리를 연구하며 능력자들을 특수 학교에 넣어 체계적, 전문적으로 교육시켜 나라의 심장부를 거머쥐려 한다. 이것이 2050년의 세상이다.

 책의 뒷편에는 '전 인류가 초능력을 갖게 된 2049년' 이라는 배명훈 작가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2050년이라고 쓰는 것은, 이 책은 두 개의 시간축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것을 작가가 교묘히 감추고 있기 때문에 - 감췄다기 보다는 그냥 말을 하지 않은 거지만, 작품의 후반부에서 독자는 지금껏 하나의 시간 위에 굴러가는 두 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두 개의 다른 시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둘 다 2049년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의 2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능력자-배터리 연합 팩(무리)인 민트 갱과 그들이 일으키는 LK 대전투가 2049년 10월 25~26일간의 이야기이며, 불타버린 시체의 신원이 LK 특수학교를 탈출한 복합능력자 소녀 류수현임을 알게 된 형사 한상우가 미스테리 속으로 빠져 '나는 누구이고 이 사건은 무엇인가' 의 질문 속을 헤매게 되는 이야기는 그로부터 약 1년 후의 이야기임을, 독자는 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알게 된다. 나만 그런가? 나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일찌감치 눈치 챘을지도.

 이렇게 미리 적어놓으면 스포일링이 아닌가 하겠지만, 이 이야기의 재미라는 게 '두 개의 시간축을 놓고 전개되는 것이었다!' 가 전부가 아니므로, 쓰는 데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듀나는 좋은 SF 소설이 갖춰야 할 두 가지 조건, 첫째 '시간'을 염두에 둘 것과, 둘째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 둘 모두를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후자에 있기 때문이다. 즉 '민트의 세계'는 그야말로 정교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2018년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서울과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배경 삼아 그것을 눈에 잡힐 듯 사실적으로 활용하는데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인간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2049~2050년의 신인간이며 이들이 펼쳐 보이는 활동들은 지금의 우리가 감히 꿈꿀 수 없는 적극적 환타지다. 이 두 가지의 부조화스러운 충돌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도리어 독자를 매혹시킨다. 익숙한 공간을 완전히 뒤흔드는 새로운 인간상의 출현. 그로 인해 붕괴되는 '익숙함'의 느낌. 내 눈앞에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펼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명한 세계' 에 대한 의심은 이 사랑스러운 책 '민트의 세계'로 인해 촉발된 '새로운 세계'이다.  

 분량이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2050년 서울은 코스모폴리탄들의 대도시이므로 당연히 전세계의 다양한 국적, 다양한 인물들이 뒤섞여 있다) 많은 지명과 가공의 사건명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 독자를 어지럽게 하지만, 그 어지러움 마저도 새로운 세계에서 타는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으로 느껴진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 초능력을 갖춘 신인간이라고 해도 그들의 나약한 정신 세계는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억의 형태를 가진 마약'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몽마' - 인간의 미련과 집착적 회상의 표상물 같은 이 괴물이 자라나 '유령'이 되고 결국 사회의 주요 인간형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렇고, 제멋대로 조작하고 기워붙인 정보-기억들이 또한 스스로 '유령'이 되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사실 2049년의 초능력자들도 2018년의 우리와 별다를 바 없기도 하니까. 당신의 롤러 코스터는 그다지 낯선 것만은 아닐 것이다.




-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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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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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호, 얼루어 매거진 창간 15주년 기념호에서 치프 에디터 FAZIN LEE 는 이 시대의 테마를 ‘YOUNG & RICH’로 선언했다. ‘지금의 우리가 가장 원하는 건 뭘까. 젊음, 부, 강력한 영향력! 이 시대가 칭송하는 이 세 가지 덕목을 갖춘 사람과 브랜드.’ 2018년의 미덕은 성실, 용기, 겸손 같은 것들이 아니라 젊음, 부, 영향력이며, 이 세 가지를 갖춘 신흥 강자들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고 말이다.


‘김사과가 약쟁이들을 그린 것인가, 혹은 김사과 자신이 약쟁이가 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약빨고’ 쓴 듯한 신작소설 ‘N.E.W.’를 읽었다.  불륜 소설이며 세태 소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젊은이가 오직 몸뚱이 하나와 타고난 매력만을 무기삼아 거대한 부와 권력의 세계로 달려가 부딪히는 이야기. 화려하고 공허한 언변으로 가득차 흡사 약에 취한 정신병자의 헛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소설이지만 그 구조는 의외로 교과서적이다. ‘N.E.W.’는 작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발자크 류의 프랑스 근대소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고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의 교과서라는 ‘고리오 영감’의 패러디가 아닌가 싶었으니 말이다. 1800년대 프랑스의 라스티냑은 시골에서 올라온 잘생기고 야심만만한 법대생이었고, 2010년대 대한민국의 이하나는 고졸 출신의 유튜브 BJ다. 그녀가 입주를 허락받은 메종드레브는 라스티냑이 살던 파리 하숙집의 더욱 진화된 형태다.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젊은이들을 엄선하여 입주시키는 이곳은 야심의 둥지라 할 수 있다.

일단 이 둥지에 입주를 허락받은 이하나는, 메종드레브라는 성 바깥의 허름한 식당에서 만두와 칼국수를 파는 ‘마녀’ 성공자를 오른팔로 두고, 충실한 '기사'인 이우진을 왼팔로 두고 즐겁게 살아가다, 거대한 성채의 주인, 정지용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만남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산물이며 이하나의 의지는 어디에도 없다. 이 관계는 정지용에 의해 선택된 것이고 이하나는 완벽한 비주체 - 개나 미술품처럼 주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된 오브제에 불과하다. 정지용이 우연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못 눌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화살을 거듭 날려 수천 발의 화살 중 하나가 우연히 과녁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게 만들겠다는 최영주의 다짐을 무색하게 만들 듯, 거짓말 같은 우연으로, 우연과 무지와 오해 속에서 오직 그런 방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1)의 산물로, 이하나와 정지용은 만나고 운명은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동시에 기이한 꿈 같은 시간으로 천천히 패닉에 빠져들었다.’2)


한국의 뉘싱겐 부인, 하지만 뉘싱겐 부인보다 몇 배 더 덩치가 키워진, 젊음, 부, 영향력의 세 가지 덕목을 한몸으로 실현하고 있는 신흥 강자 정지용은 누구인가. 그는 오손그룹의 후계자이며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의 눈길 속에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정대철은 오손그룹의 회장이며, 막대한 부를 쌓은 ‘제분업자’ 고리오 영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인물 역시 2010년대 버전으로 변주되어 있다. 그는 ‘몰락하지 않았다’. 정대철은 메종드레브의 초소형 원룸에서 하나뿐인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죽어가지 않는다. 그는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부로 영향력을 가졌으며, 그만의 화려한 언변과 신비주의로 영향력을 종신적인 것으로 굳혔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선언한다. “이따금 내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곤충이거나, 신이거나.” “아버지, 저희를 위해 죽어주시면 안 되나요?” 라고 정지용-뉘싱겐 부인이 묻자 정대철-고리오 영감은 대꾸한다. “ 넌 꿈, 희망, 야망 같은 관념을 이해 못 하는 것 아니냐?” 고. 3) 아버지는 ‘죽어주어야’ 하는 인간이 아니고, ‘죽여야’ 하는 인간이다. 정지용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최영주는 이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정지용은 어리석었지만, 최영주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물이라는 그의 직관만은 옳았다.) 그녀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자신 있게 환상을 깨부수고 나간 자는 현실의 광기에 의해 으스러질 뿐이며, 망상은 유일한 구원이라’4) 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페이크 다큐를 찍는다. 정대철의 하나 뿐인 손자를 구덩이에 던져 죽이는 환상을 만들어 정대철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우리를 위해 죽어달라.’ 고 강변하던 아들 정지용의 ‘말’ 보다 강한 것은 갓난아기를 던져 죽이는 ‘만들어진 이미지’, ‘거짓된(페이크) 현실 기록 (다큐멘터리)’ 였고 이 방식으로 최영주는 마침내 부친 살해에 성공한다. 2010년의 성공한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신적 지위를 포기하려 들지 않았지만 결국 친-자식이 아닌 새로운NEW-자식의 ‘만들어진 현실-환상’ 속에 죽음을 맞는다.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것이다. 최영주는 이 ‘보여짐’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정지용은 ‘보여짐’ 을 그냥 자기 삶으로 생각할 뿐 ‘연출’은 하지 못한다. 이하나는 ‘보여지고’ 싶어하고 ‘연출’도 하지만 그녀는 이류일 뿐이다. 이하나의 삶 자체가 이류이기 때문에 그녀는 아무리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도 ‘타고난 촌티’를 어쩌지 못하고 그녀의 모든 이미지는 수백 개의 프릴 장식처럼 과잉의 것이 된다. 최영주는 ‘어쨌든 예쁘고 좋아 보이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삶’5) 속에 자신을 세련되게 연출할 줄 아는 일류이다. 답답함과 허무함 속에서 속절없이 늙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혀6) 살아가는 현대인- 그들의 권태와 무력감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젊음과 부와 영향력의 세련된 연출이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자신의 부와 젊음을 ‘전시’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영향력을 획득하는 21세기 SNS 인플루언서는 바로 정대철 회장이 그토록 강변하는 새시대의 젊은이-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초상이다.7) 심지어 최영주는 자신의 슬픔까지 ‘전시’하는 것으로 쿤데라가 말한 키치의 절정에 오른다.8)


이들은 이해되지 않는다. ‘보여지고’ ‘연출되지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진정한 매력을 획득한다. 다 이해되는 것, 알 수 있는 것, 빤한 것, 속이 보이는 것에는 어떤 매력도 없다.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 내가 와 있는 이 장소는 과연 실재하는 곳인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9) 싶은 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21세기의 신흥 귀족들은 바로 그 ‘알 수 없음’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것이 바로 오손그룹 일가를 향한 그 많은 루머와 선망의 원인인 것이다. ‘저 알 수 없음! 저 유령적인 것! 갖고 싶다! 전부! 전부 다!’ 정대철이 쏟아내는 정신나간 주문 같은 말들과 정지용의 난데없음, 최영주의 제멋대로성, 은미라의 미스터리한 죽음까지도, 모두, 모두, 모두! 이 생태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 성공자는 조언한다.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 그저 꽉 물어. 절대 놓지 마.”10) 그렇다, 주인의 도덕을 노예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노예는 보복할 수 없다. 다만 지배되고, 다만 복종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뜯어먹은 주인의 관대함과 다정함 앞에 마침내 중얼거리는 것이다.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줘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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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사과, ‘N.E.W.’, 문학과지성사, 2018, p.213~214

2) 위와 같은 책, p.20

3) 위와 같은 책, p.262~264

4) 위와 같은 책, p.213

5) 위와 같은 책, p.43

6) 위와 같은 책, p.43

7)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은 8월 마지막주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주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8) 눈물을 전시한 후 카메라가 클로즈업하는 최영주의 모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사비나의 멜론모를 떠올리게 한다.

9) 위와 같은 책, p.20

10) 위와 같은 책, p.119

11) 위와 같은 책,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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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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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독서모임에서는 이동식 박사의 '현대인과 노이로제'를 읽었고, 각자 노이로제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Y씨는 '과거지향'을 꼽았다. H씨는 동의하며 '사람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고 덧붙였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하며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면 최소 현재지향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탰다. 좋게 말해 과거지향이지, 과거에 얽매이고 과거를 반추하는데 소모되는 삶이다. 돌이킬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과거에 사로잡혀 그것만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며 후회와 수치심, 죄책감에 빠져드는 것. 이게 바로 노이로제가 된다.


케케묵은 과거사의 잘 꾸며진 전시, 쓰는 사람만 예쁘다고 생각하지 보는 사람으로서는 흔하고 지루할 뿐인 낭만성의 반복이라고 생각하며 앞부분의 세 소설을 읽다가 네 번째 소설 '모래로 지은 집'의 첫장을 읽고는 거의 불쾌감에 가까운 '어이없음'을 느꼈다. '99년 천리안 동호회에서 만나...' 아니,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소설로 응답하라 시리즈를 찍고 있는 건가?


'복고는 반동이다'는 나의 주된 신념이며 따라서 과거를 돌아보고 찬탄하고 감격하는 글, 그림, 영화, 드라마, 뭐든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가 배경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과거에 무언가 있다고 말하는 것, 중요한 것-아름다운 것-빛나는 것-때묻지 않은 것-순수하고 깨끗한 것은 모두 과거에 있다고 말하고 상정하는 모든 텍스트는 좋아하지 않는다. Y씨의 말대로 그것은 과거지향적이며, 인간의 삶을 현재에서 유리시키고 미래에서 멀어지게 하며, 과거라는 림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動에 反하는 反動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과거에 그 모든 것은 있지도 않다.


이 소설집은 바로 그 거대한 반동의 집결체이며, 심각한 노이로제의 서사다. 이 소설집의 여섯 작품은 모두 삼십 대에 이른 화자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빛나는' (이라고 쓰고 착각하지 말라고 덧붙이고 싶은) 시절을 '돌아보는', Look back in Regret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현재가 없다. 그들은 과거만을 말하고, 반추하고, 복기한다. 과거는 아름답고 순수하였지만 그 시절 나는 철이 없었고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뭔가 큰 잘못을 했고 그 잘못의 대가로 나는 현재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고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들은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최소한 현재조차 이야기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것들, 과거의 복기와 과거의 부활일 뿐이다. 림보에 빠진 자들. 노이로제의 완성이다.


없던 경향이 생긴 게 아니고 전작 '쇼코의 미소'에서 희미하게 냄새를 풍겼던 것이 본격화된 것이다. 뭔가 찜찜하고 답답하다고 느꼈던 것의 정체를 이제 확인하게 된 것 뿐. 이 책은 전작에 비해 명백한 '퇴행' 이며 이것은 한국소설의 '퇴행'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우리 시대의 '퇴행' 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같은 드라마가 대유행을 하고 과거를 반추하는 '이불킥'의 서사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은 무엇의 징후인가.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는 시대의 우울과 노이로제. 힘든 현실에 맞서 싸우기 보다는 좋았던 옛날을 굳건한 환상으로 만들어 그에 고착되어 버리는 회피적, 퇴행적 방어기제의 완성.



 



이 분야에서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책을 인용으로써 소개한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 로 시작되는 대부분의 자기 진술은 가족 로망스의 전형적인 틀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기 진술은 지금의 내가 비록 초라하고 보잘것없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확증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이야기 만들기의 구조이다. 즉 좋았던 옛날의 자신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현재의 부족한 나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보완하면서,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가려는 이야기 구조는 기본적으로 가족 로망스의 구도이다. (중략)

직장과 가정 등 지금의 자신을 구성하는 준거점들이 자신을 강력하고 안정된 존재로 만들어주기보다 자신을 소외시키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무기력감과 자괴감 때문에 군대라는 상상적 아버지가 항상적으로 불려들여진다. 한국 남자들에게 현실의 무기력한 자신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군대'라는 상상적 아버지는 군대 시절 이야기라는 회고담의 형식 속에서 끝없이 강조되고 신성화되는 것이다.

(중략)

즉 첫사랑의 여인은 지금의 타락하고 '망가진' 나가 아니라 '원래의' 순수한 나를 되찾아줄 수 있는 '진짜 부모'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순수한 여인의 초상이 (남성들에게) 원래의 나를 만들어줄 수 있는 '상상적 아버지'로 기능하게 된다. 현실의 ''를 부정하고 과거의 순수한 나를 찾아가는 이 영화의 구도는 마치 왜곡된 한국 근대사를 재기술하고 현재의 우리들에게 반성적인 인식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것은 '순수'에 대한 강박관념과 허구적으로 만들어지는 순수(상상적 아버지)에 대한 찬가이다. (중략) 전형적인 나르시시즘적 고착을 투영하는 것이다.

- 권명아,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세상, 2000, p.141~142





또 하나, 최근 읽었던 신문 기사 하나를 링크로 단다. 시대의 병적 징후를 읽을 수 있었던 기사.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70216169800017&mob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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