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를 착취해 행복할 수 있나요?


 

그 누구도 해고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서, 정규직이 앞장서 비정규직과 이주 노동자의 고용을 지켜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왜 ‘함께 사는 삶’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걸까.
 

[101호] 2009년 08월 17일 (월) 13:56:07 고동우 기자 intereds@sisain.co.kr
 
평택 공장을 점거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진압 작전이 한창이던 지난 8월5일 오후, 전북 군산에 위치한 타타대우상용차 노동자들은 노조 사무실에 삼삼오오 모여 그곳의 ‘현장 중계’ 영상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자와 인터뷰 약속을 했던 김근규 부지회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대다수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긴급히 평택으로 향한 상태였다.

“우리라고 자유롭겠습니까? 저 자리에 우리가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모니터 화면을 골똘히 응시하던 한 노조원에게 “타타대우는 안전한 거냐?”라고 불쑥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럴 것이다. 이번 쌍용자동차 사태는 정규직도 결코 예외일 수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철밥통’에 ‘이기주의’의 대명사처럼 묘사되던 대공장 정규직도 저 지경인데, 이제 누가 자신은 해고와 구조조정의 안전지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문수이융홍 현장대표(맨 왼쪽)를 비롯한 한국보그워너씨에스 소속 한국 노동자와 필리핀 노동자들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함께 살자’는 외침은 더욱 공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쌍용차만 봐도 그렇다. 기업주와 노동자, 정리해고자와 비정리해고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 공장과 저 공장, 그리고 이 노조와 저 노조…. 이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의미 있는 몸부림이 있었던가? 혹여 있었더라도 최종 결과는 모두가 본 그대로였다.

‘시류를 거스르는’ 타타대우의 선택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의 사례에 눈길이 쏠린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덤프트럭, 트랙터 등 상용차를 생산하는 그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장주의 질서에 반하는 ‘시류를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 비정규직 320명 전체를 노조에 가입시킨 것(2008년 8월)도 모자라(?), 가동률이 70%까지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약 10%에 해당하는 42명을 지난 5월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곳곳에서 비정규직들이 소리소문 없이 잘려나가고, 정규직들도 휘청대는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우관 지회 사무장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를 내세운 회사 측의 공세와 ‘쌍용차처럼 진짜 어려움이 닥치면 어쩔 거냐’고 걱정하는 정규직 조합원들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노조의 방침에 공감했다. 염려하는 사람들에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부터 먹고 소극적으로 가지 말자. 그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한데 힘을 모으면 회사도 어쩔 수가 없다. 물량이 늘어날 때까지 정규직화를 미루자고 했지만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타타대우가 비정규직의 일부를 정규직화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비정규직 비중이 지나치게 늘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판단 아래 노조는 매해 회사 측에 일정 비율의 정규직화를 요구해왔고, 상당 부분 관철했다. 그러니까 타타대우 노조는 일찍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눈을 뜬 셈이다. 전 사무장은 대개의 다른 공장과 달리 이것이 가능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소외를 겪어본 자가 소외된 사람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라는 점을 꼽았다.


   

ⓒ타타대우노조 제공타타대우 노조는 모든 행사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구분 없이 치른다. 위는 지난 6월 열린 족구대회.
“지난 2000년 대우그룹 부도 이후 상용차 노동자들은, 인도 자본인 타타모터스가 인수하기 전까지 일감이 없어서 창원 등 전국 곳곳의 GM대우자동차 공장에서 수년 동안 파견 근무를 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말만 정규직이지, 아무래도 해당 공장의 정규직과는 처지가 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이주 노동자들과 어울리는 일이 더 많았다. 그때 느꼈던 것들이 비정규직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먼저 현장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었다. ‘일상의 차별부터 없애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노조의 의식적인 노력도 중요했지만, 조합원들이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모두 헛수고가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3년 만에 올해 정규직이 된 김관식씨(30)는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다른 회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명찰, 작업복에서부터 다르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업무적으로도 차별이 없었고, 회식·행사·체육대회 모두 같이 했다. 임금과 복지가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현장에서는 내가 비정규직임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전문수경주 용강공단의 발레오만도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이다. 경비(왼쪽)와 식당 노동자(오른쪽) 또한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 정규직화 등 타타대우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노조는 올해 초 물량이 줄었을 때도 ‘비정규직부터 휴무를 진행하자. 정규직은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 회사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규직·비정규직이 동등하게 휴무를 실시하도록 했다. 한번 원칙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난 7월15일 경남 창원공단의 한 작은 공장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의 바탕이 된 것도 모두의 꾸준한 노력이었다. 중장비 쿨링시스템인 팬을 생산하는 한국보그워너씨에스의 한국인 노동자 12명은 전면 파업까지 벌여가며 필리핀에서 온 이주 노동자 3명의 고용을 지켜냈다. 이 역시 평소 생산 현장과 일상에서 서로 차별 없이, 마음을 터놓고 지내온 덕분이었다.

해고될 위기에 놓였다가 노사 합의를 통해 앞으로 3년 동안 고용을 보장받게 된 알비 씨(34)는 인터뷰 내내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친구가 많은데 나 같은 행운아는 없는 것 같다. 한국 노동자들이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지켜주고, 노조 가입(지난 1월)까지 시켜주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우리 공장의 한국 노동자들은 매우 친절하며, 늘 형제처럼 대한다. 일하는 과정에서도 차별하지 않는다.”

이익성 노조 현장위원은 “규모가 작다보니 인간적으로 어울릴 일이 많았고, 노조도 인권 교육뿐만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위해 한 조합원을 영어학원에 보내는 등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라고 설명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구체적인 불만 사항부터 개인적인 고민까지 나눌 수 있게 됨은 물론이었다. 수년간 노력한 끝에 이제 한국 노동자들은 “회사가 ‘이주 노동자 임금을 줄이면 너희들 임금이 올라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회유해도 ‘친구를 착취해 내 잇속을 챙길 수는 없다’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라고 한다.

누구나 놀랄 만한 ‘함께 사는’ 사례를 만들어낸 노조의 간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노동운동의 원칙이나 논리 이전에 ‘인간적인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
지난 4월 해고 직전까지 간 울산 현대자동차 2공장 비정규직 60여 명의 고용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연대해 지켜냈을 때, 이상수 2공장 비정규직노조 대표도 ‘승리의 비결’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먼저 비정규직들이 최선을 다했다. 공장에서 정규직들에게 ‘형님, 우리 못 나갑니더’라고 말하며 연대를 호소했다. 술도 먹으면서 계속 호소했다. 그 후 조금씩 정규직들의 마음이 열렸고, 그들이 대의원이나 현장 조직 관계자들에게 ‘비정규직들 어떻게 되는 거냐?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의원과 현장 조직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문수한국보그워너씨에스 생산 현장(위)에서는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간의 차별이 없다.
물질적 안정 넘어 ‘삶의 전환’까지

8월10일 오후 1시 경주 용강공단의 자동차부품 업체인 발레오만도 정문 경비실 안. 지난 4월 노조 도움으로 ‘외주화’의 위기에서 벗어난 경비·청소 노동자들이 당시 상황과 관련한 담소를 나눈다. 정문 경비인 이덕기씨(55)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큰일날 뻔했지. 외주화되면 고용도 불안해지고, 급여도 줄어드는 건데. 경영이 좀 어려워지니까 바로 우리부터 쫓아내려 하더라고. 그래서 노조 가입을 신청했지.”

노조는 외주화를 막는 것을 넘어 경비 노동자 14명의 조합원 가입까지 받아들였다. 대다수 기업이 외환위기 이후 경비나 청소, 식당 업무를 외주화·비정규직화한 것과 달리 발레오만도는 노조의 강력한 의지로 직영·정규직 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조합원이기도 했다.

청소 업무를 하는 이동식씨(52)는 좀 더 구체적인 걱정을 했다. “난 애를 늦게 낳아서 큰애가 고1이고, 둘째가 중2거든. 지금부터 정년(60세)까지 일해도 교육비가 빠듯해. 근데 외주화되면 1~2년도 보장 못 받는 거 아니야? 잘리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데, 나이 50이 넘어 뭘 새로 할 수 있겠어?”

함께 있던 노조 정연재 부지회장은 노동자들이 심리적·물질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주요 배경 중 하나로 사외감사 추천제도 등 노조가 적극적으로 회사 경영에 개입하는 점을 꼽았다. “회사 측은 만날 ‘어렵다’ ‘위기다’라고 하는데 우리는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추천한 사외감사를 통해 정확한 경영 상태를 파악한 후에 대응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고용 보장이나 정규직화 등은 단순히 현재 삶의 방어를 넘어, 전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삶의 전환’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또 다른 경비원인 손호문씨(55)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합원이 아닐 때는 아무래도 회사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조합 가입도 쉽지 않았다. 회유와 압력이 심했으면 아마 잘 안 됐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입을 하니 회사의 태도도 달라지고, 할 말은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업장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4년 정규직으로 전환된 타타대우의 정광진씨(30)는 “별 기대 없이 ‘돈이나 벌자’ 하는 생각으로 입사했는데, 2년여 만에 운 좋게 정규직이 된 후 이곳에 정을 붙이며 눌러앉게 되었고 이제는 노조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한다. 인터뷰 도중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여전히 비정규직인 동료들에 대한 걱정까지 털어놓기도 했다.

“아직 비정규직 전체를 정규직화하고 있지 못하다. 일부만 정규직화하는 일종의 ‘발탁 채용’인 셈인데, 이게 부작용이 적지 않다. 정규직을 만들어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상사나 관리직한테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별 문제 제기를 못하는 것이다. 분명히 같은 조합원이지만 찍힐까봐 노조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다. 모두 한꺼번에 정규직이 되면 좋지만 불가능한 일이고 그저 답답할 뿐이다.”

여전히 비정규직인 동료들

그게 해결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남아 있는 차별 구조를 견디지 못하는 것, 작은 부작용이더라도 불평등을 온전시키는 것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 그것은, ‘정규직’ ‘조합원’보다 ‘모두 함께’를 중심에 둔 노동운동가들이 보여준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한국보그워너씨에스 노조는 현재 있는 이주 노동자뿐만 아니라 앞으로 들어올 이주 노동자도 노조 가입과 고용이 보장될 수 있도록 투쟁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임금 동결과 파업까지 해가며 비정규직 14명의 정규직화를 이루어낸 경주 인지컨트롤스의 정동원 지회장은 비정규직이 단 한 명도 없는 공장을 꿈꾼다. 이상수 현대자동차 2공장 비정규직노조 대표는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 없어 대량 해고의 위협에 놓인 다른 공장 비정규직들의 처지에 대한 걱정을 토로한다.

끝으로 한 가지. 위에서 언급된 노조들이 거둔 주목할 만한 성과가 가능했던 요인 중에는, 이들한테만 있는 ‘특수 조건’ 역시 적지 않은 구실을 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발레오만도나 타타대우의 경우, 오래전부터 채용 과정에서 직원의 추천을 받아 친인척을 비롯한 지인들의 입사를 상당수 허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입사 초기부터 서로 ‘형’ ‘동생’ 할 만큼 인간 관계가 끈끈해질 수밖에 없다. 발레오만도 정연재 부지회장은 “노조의 운동적 원칙도 있지만 지역적 조건이나 인간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형제처럼 지내던 사람이 비정규직이 되거나 잘릴 판인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라고 말한다.

연령대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타타대우나 한국보그워너씨에스, 인지컨트롤스를 보면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이 30대를 넘지 않을 정도로 꽤 젊은 편이었다. 타타대우 노조 전우관 사무장의 말마따나 “40대, 50대가 중심이었다면 고용 불안 때문에 연대감이 약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젊었다. 인지컨트롤스 정동원 지회장도 “노조의 주축인 남자들의 평균연령이 35세 정도인데, 아무래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좀 덜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또 다른 ‘연대’를 위해


이는 이들 노조의 사례가 조금(또는 매우) ‘예외적’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사례가 비정규직과 이주 노동자 문제 해결의 ‘근본 대안’으로 여겨지거나 똑같이 못한다고 특정 노조를 비난하는 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찬가지로 이들 노조에도 언젠가 극복하기 힘든 크나큰 시련이 닥칠 수 있다. 만일 경영상 위기로 부도가 나거나 해외 자본이 갑자기 철수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조는 경우에 따라 지금과 다른 방향의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배신자’라는 낙인? ‘너희들도 결국 똑같잖아’라는 비아냥? ‘자본주의 사회에서 날고 기어봤자지’라는 패배감의 공유?
아닐 것이다. 비판 이전에 먼저 표현해야 할 것은 ‘미안함’이어야 한다. 당신들이 적극적인 희생과 양보, 아름다운 연대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그 귀중한 성과를 함께 지켜내지 못한, 그런 근본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 말이다. 그래야 거기서부터 또 다른 ‘연대’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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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절판


그냥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갈 수 있다면. 그러면 마음도 더 편하게 어디론가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왜 이렇게 많은 걸 쌓아두고 살고 있는 걸까. 악기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다른 곳으로 가서 살게 되면 지금처럼 많은 짐을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냥 또 쉽게 떠날 수 있게 지내야겠습니다. 그러면 이런저런 결정을 내리는 데 더 자유롭지 않을까요. (윤석)-122쪽

이곳에 10년, 20년을 산 것도 아니고, 고국에서 쫓겨나듯 오거나 고국이 싫어서 망명을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여태까지 해보지 않은 공부를 좀 더 해보겠다고 자진해서 온 길이었는데...
그러다가 굳이 중심에 있는 이유 하나를 끌어내보았는데, 그동안 그리 짧지만은 않았던 20대 말과 30대 초반의 외국생활 동안 저의 내부에 끊임없이 쌓여온 어떤 내상이 이젠 역으로 서서히 저를 무너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가진단을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시 한 대목처럼 키 큰 서양 사람들을 당해내려고 '목을 너무 길게 빼'면서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윤석)-164-165쪽

이제는 준비가 잘 되었으니 귀국을 하기로 마음먹고 고국의 모교를 방문했으며, 모교 부총장님과 의료원장님의 분에 넘치는 환영과 제안을 받았지요. 그러나 한 가지 목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고국을 떠나기 직전 군인사법 94조인가, 군인이 정치에 관여했다는 죄목으로 정보부에 끌려가 혼이 단단히 났을 때, 그때 절대로 다시 고국에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던 그들과의 무서운 약속이었지요. 그러나 실제로 짐을 싸고 돌아갈 준비를 하던 내 다리를 잡은 것은 한국일보 기자였던 내 남동생이 정보부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고 고국을 떠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문리대 학생 시절부터 신문밖에 모르던 내 동생이 7.4공동성명 때문에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 젖먹이를 데리고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동생 가족의 보호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부양가족이 많아졌고 그 후에는 이런 것이 내 운명이겠거니 하면서 귀국을 완전히 포기하고 '바람의 말'이니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같은 시를 혼자 울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종기)-168쪽

시월 중순부터 다음 해 4월 말 정도까지는 플로리다의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이 시기 때문에 이곳 사는 사람은 여름의 살인적 더위를 참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 청명이고 바삭하게 따뜻한 날씨입니다. (마종기)-176쪽

왜 시를 공부하다 못해 전공까지해야 하는 건지 역시 알 수가 없네요. 외람되지만 그런 시각들은 결국 제도권 시인들의 아집, 폐쇄성, 과도한 아카데미즘이 아닐까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시를 전공하고 등단하지만, 시에 목이 마를 때마다 서점에서 새로운 시들을 갈급하듯 찾아보지만 몇 편 읽기도 전에 한숨 쉬며 시집을 닫는 횟수가 더 많은 저로서는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시를 읽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요. (윤석)-215쪽

저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음악도 마음껏 하고, 고국의 음식도 마음껏 먹고, 우리나라 말로 말하고 싸우고 울고 웃으며 살기 위해 돌아갑니다. 지금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고 슬픈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껏 멀리서 듣고 보아온 소식들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저는 너무 바쁘고 또 멀리에만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 소식들 한가운데에서 부대끼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어쩌면 거리에서, 투표함 앞에서, 식당에서, 술집에서, 집 안에서, 운동장 안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겠지요. (윤석)-216쪽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려 하지 않는 자들은 정치든 경제든 교육이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죄악입니다. 세대가 지나 아이들이 죗값을 치를 것이고 우리나라에는 허약하고 온통 '경쟁'의 망령과 '힘'만을 쫓아가는, 문화는 실종된 나라가 되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때 음악은, 시는, 과학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모자란 재주로 이런 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밖에 없지요. 12년간 공학자로 살아왔지만, 공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도, 위로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남은 하나, 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럽의 생활에서 비판적으로 그러나 깊게 깨달은 것은 '지금'의 중요성입니다. 왜, 영어로도 현재를 'present'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주어진 선물. 이 순간순간의 기쁨, 행복, 즐거움을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놓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앞만 보고 인내하고 달려가라는 프로그래밍만 되어 있지, 왜 지금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사람들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경쟁과 천박한 자본주의가 극복되지 않다면.. (윤석)-222-223쪽

언젠가 윤석군이 음악 때문에 따로 공부는 안 하겠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나도 그 근거를 이해합니다. 왜냐면 나도 시 쓰는 공부를 따로 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오래해 오고 있으니까요. 요즈음의 좋다는 시를 보면 좀 껄끄러운 공부의 흔적이 많이 보이곤 하지요. 공연히 시의 모양새를 위해 단어를 못 알아듣게 뒤틀어버리기도 하고 어려운 퍼즐을 만들기도 하지요. 상징과 알레고리를 곳곳에 지뢰같이 묻어 놓고 의미가 깊은 시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마종기)-226쪽

우리가 예술가로 성숙해 간다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자유로워진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온전한 자유를 알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 자유 사고에서만 우리는 예술의 진정한 힘을 보고 느끼고 또 즐기는 것이라 믿습니다. 아기자기한 퍼즐도 상징도 자유혼의 오체투지가 없이는 우리를 흔들고 신음하게 하는 살아있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나는 믿고 삽니다. (마종기)-226쪽

내가 가톨릭이어서인지, 아니면 멀리 살아서인지 서울의 한 일간신문이 집요하게 내게 추모시를 쓰라고 독촉을 했지요. 헌데 나는 그 부탁을 거절 했어요. 그 이유는 물론 내가 실력이 없어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자격이 없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지요. 물론 내가 고국에 있던 60년대 초에는 옳지 못한 권위주의에 대항하다가 쇠고랑도 차고 포승에도 묶이고 두들겨 맞기도 했지만 중앙정보부의 지시가 징역 2년형이라는 귀띔을 받고 아무 소리 안 하고 외국에 나가 살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리고 그것을 수십 년 지켰어요. 그러니 내가 민주화라는 말 앞에 무슨 자격이 있겠어요. 추기경님은 당신을 스스로 '바보'라 칭하시고 '고맙습니다.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지요. 그런 '바보'앞에서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마종기)-231쪽

당분간 외국에 나가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려니까 우습기도 하지만, 한동안은 영화도 외국영화는 보고 싶지 않은 정도지요. 여행도 외국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요. 유럽에 있으면서 미국하고는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아요. 기본적인 모든 것, 집밖에 나가서 부딪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지요. 미처 인식을 못하다가 어느 순간에 보니 항상 긴장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익숙한 말, 냄새, 바람에 푹 빠져서 지내고 싶을 따름이예요. (루시드폴)-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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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위한 조시
- 외국에서 변을 당한 훈에게

1. 입관식
어릴 때는 고등학교까지 같은 이불을 덮고
대학에 가서는 작은 아랫방을 나누어 쓰고
장가든 다음에는 외국에까지 나를 따라와
여기 같은 동네 바로 뒷길에 살던
내 동생 졸지에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하느님.

동생이고 친구고 내 의지처였습니다.
싸움 한번도, 목소리 한번도 높이지 않은
들풀처럼 싱글거리며 착하게 살던 내 단짝,
하느님, 당신밖에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눈물이 자꾸 납니다.
관을 덮고 나면 내일 하늘이 열리고
내일 지나면 이 땅에서 지워질 이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귀염둥이 내 자식이라고 받아주세요.

2.고잉 홈
고잉 홈
(너 몰랐지? 여기서는 관에다가
고잉 홈이라는 말을 많이 새겨넣는구나.)
네가 누울 관을 고르면서
줄줄이 늘어선 관을 공연히 어루만지면서
자꾸 읽게 된다. 고잉 홈.
그래, 너도 결국 집에 가는 거구나.

태평양 너머의 고향이든
저 높은 그 위의 고향이든
잘 가라, 아무 말 안 해도
나는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안다.

고잉 홈.
잘 있어, 형.
나는 집에 돌아가는 거래
너무 보고 싶어하지 마, 형.
네 쓸쓸하게 빈 목소리,
여기저기서 기막히게 들린다.

3.영화[아버지의 이름으로]
오랜만에 같이 본 영화가 끝난 뒤
너는 술까지 한잔 사면서 내 건강 걱정해주고
(자식을 끝까지 믿은 아버지는 감옥에서 눈감고)
좋아했던 영화는 어디서 아직 상영중인데-

아버지의 이름으로 너는 평생을 마감하고
아버지의이름으로 너를 보내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슬픔을 참아내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 너를 다시 만날 것 믿는다.

4.비 오는 나라
하루종일 봄비가 의심하는 세상을 적신다.
사람이야 언제 어디서고 죽게 마련이지만
외국의 봄날 흐리게 허물어진
동생이 저녁까지 봄비 되어 울고 있다.

비는 내려서 땅에 스며들고
스며서 땅 사이로 사라지는 침묵.
해직당한 고국을 그리워하던
적막 강산이 눈물 사이로 보인다.
온몸이 젖어서 두 눈을 크게 뜨는 너.
(혹은, 나.)

비는 왜 이렇게 소리치며 밤새 오는지.
빗소리 듣다가 풋잠 잠시 들고
또 언뜻 잠 깨어 다시 듣는 빗소리
집 밖의 사방에는 벌써 수상한 미명.
춥다.
너도 춥지?

5. 맑은 날의 얼굴
그만한 고통도 경험해보지 않고
어떻게 하늘나라를 기웃거릴 수 있겠냐구?
그만한 절망도 경험해보지 않고, 누구에게
영원히 살게 해달라 청할 수 있겠냐구?
벼랑 끝에 서 있는 무섭고 외로운 시간 없이
어떻게 사랑의 진정을 알아낼 수 있겠냐구?
말이나 글로는 갈 수 없는 먼 길의 끝의 평화,
네 간절하고 가난한 믿음이 우리를 울린다.

오늘은 날씨가 밝고 따뜻하다.
하늘을 보니 네 얼굴이 넓게 떠있다.
웃고 있는 얼굴이 몇 개로 보인다.
너같이 착하고 맑은 하늘에
네 얼굴 자꾸 넓게 번진다.
눈부신 천 개의 색깔, 네 얼굴에 번진다.

6. 있는 것이 안 보이는
네가 잠들고 싶은 곳은 너무 멀어서
외국 땅에 너를 묻고 이를 물지만
땅이야 뭐 다를 리가 없겠지
질소와 탄소와 뭐 그런 것들-
그러나 어째서 너가 땅만이겠느냐.
너는 죽고 나는 아직 살아 있다지만
너는 웃고 있겠지, 나를 놀리면서
형, 사실은 네가 죽고 내가 산 거야.
그렇지, 그렇게 유리창같이 환하게
너는 그쪽에서, 나는 이쪽에서
산 것과 죽은 것이 서로 보이는구나.
없는 것이 보이는 무지개같이
있는 것이 안 보이는 네 혼백같이-

7. 뱃길
혼자 물가에 왔다.
추운 동네의 깊은 물은
통곡같이 밀려가고 밀려오면서
파도 높이 흰 목숨을 패대기친다.
아무리 기다려도 끝내지 않는
못다 끝낸 네 몸짓 알아듣는다.
네 눈자위 점점 젖어오고
내 살은 천천히 언다.
상처투성이의 내 목숨이지만
너 가는 뱃길에 동무 되어주랴?
지국총, 지국총,
주름살투성이의 내 목숨이지만
너 가는 뱃길에 흥이 되어주랴?
지국총, 지국총,
요단 강인지, 천년 전의 한강인지
깊고 긴 강 건너에 눈을 주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네가 떠난 길.

8. 혹시 미시령에
동규형 시집 미시령인가 하는 것 좀 빌려줘,
너랑 마지막 나눈 말이 이 전화였구나.
나도 모르는 곳, 너와 내 말이 끝난 곳,
강원도 어디 바람 많은 곳인 모양이던데.

요즈음 네 무덤가에서 슴슴한 바람을 만나면
내가 몇 번을 잊어버리고 빌려주지 못한 미시령,
혹시 그곳에 네가 혼자 찾아간 것은 아닐까.
내년쯤 일시 귀국을 하면 꼭 찾아가봐야지,
네가 혹시 그 바람 속에 섞여살고 있을는지,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바람만 만나게 되면
흔들리는 그거라도 옷자락에 묻혀와야지,
그 바람 털어낼 때마다 네 말이 들리겠지,
내 시를 그렇게 좋아해준, 너는 그러겠지,
형, 나도 잘 알아듣게, 쉽고 좋은 시 많이 써,
이제 너는 죽고 나는 네 죽음을 시쓰고 있구나.
세상 사는 일이 도무지 어처구니없구나.
시를 쓴다는 일이 이렇게도 하염없구나.

9. 조화
아직 비석도 세우지 못한 네 무덤
꽂아놓은 조화는 아름답구나.
큰비 온 다음날도, 불볕의 며칠도
조화는 쓰러지지 않고 웃고 있구나.
무심한 모습이 죽지 않아서 좋구나.
향기를 남기지 않아서 좋구나.

나는 이제 살아 있는 꽃을 보면
가슴 아파진다.
며칠이면 시들어 떨어질 꽃의 눈매
그 눈매 깨끗하고 싱싱할수록
가슴 아파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아프다.

10. 청량리 꿈
책방에 들렀더니 네가 책을 읽고 있더구나. 뒤돌아
서서 책만 열심히 읽기에 긴가민가 너를 불렀더니 태
연스럽게 고개를 들더구나. 여전히 건강한 얼굴로 나
를 반기더구나. 반가웠다, 정말.

나는 급한 마음에 우선 물었지. 너 지금 도대체 어
디에 살고 있는 거냐? 청량리! 청량리? 그래도 네 식
구들한테는 소식을 알려야지. 아무도 네가 이렇게 살
아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단다. 청량리?

형, 나도 알아. 그렇지만 이제 나한테 미국 이야기
는 하지 마.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을 거야. 편
지도 안 쓰고 전화도 안 할 거야. 형이 그냥 잘살고
있더라고만 전해줘. 그래, 그래. 그렇게 전하구말구.
그래, 청량리면 어떻고 어디면 어떠냐.

문득 잠이 깨고 아쉬운 마음 몸을 저리게 하지만,
그래도 행복해 보이던 너를 보았으니 좋구나. 잘살아
라, 어디서든-한새벽의 한정 없는 눈물은 내가 몰
래 닦으마. 잘살아라, 어디서든-늪 깊은 내 낙담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마.

11. 남은 풍경
새 한 마리 작은 나뭇가지에 앉았습니다.
나뭇가지 작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새가 날아가보린 후에도 나뭇가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떨고 있습니다.
나뭇가지 혼자 흐느껴 우는 것 같습니다.
남아 있는 풍경이 혼자서 어두워집니다.


이슬의 눈  (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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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 100문 100답』
영남노동운동연구소, 1995

산별노조란?

산별노조(산업별노조)는 노동조합 가입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기업, 업종, 지역, 산업 등 일체의 제한을 뛰어 넘어 전국적 수준에서 가능한 한 최대 규모의 단일조직을 추구하는 노동조합입니다. (p9)

- 산별노조에는 현재 취업중인 노동자, 취업대기중인 예비노동자, 실업중인 노동자가 모두 가입할 수 있으며 자연히 하청노동자, 임시직노동자, 외국인노동자들도 모두 가입대상이 됩니다. 나아가 사무직/생산직의 구분, 직종과 업종의 구분도 없게 됩니다. 모든 노동자가 전국적 단일 조직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p10)
 
- 보통의 경우 산별노조는 금속, 섬유, 화학 등의 커다란 산업구분의 단위에 따라서 조직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직 원칙은 아니고 노동운동의 역사 및 주체적 조건, 그리고 자본주의의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노동자 구성의 변화 등 외부환경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실용적으로 구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조직 범위는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으며, 특정의 업종이나 산업의 경계를 넘어선 조직화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컨대 금속노조라고 해도 반드시 금속산업 분야 노동자만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이나 업종의 노동자들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금속과 화학을 하나로 묶어 전국적인 '금속 및 화학산별노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산별노조는 '산업분류표'에 따라 조직되는 노조가 아닙니다). (p10)

- 따라서 산별노조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특징은 기업별, 성별, 고용상태별, 직업별, 업종별, 지역별, 산업별의 모든 차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노동운동 조직의 독자적인 자주적 판단에 의해 가능한 한 최대 다수의 노동자들을 단일한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나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p11)

산별노조의 장점은?

- 산별노조의 가장 큰 장점은 노동자를 가장 큰 규모로 결집시킴으로써 노동력시장에서 큰 공급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산별노조는 이를 기반으로 고용조건과 임금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나아가서는 다양한 형태의 경영참가권을 확보하여 노동생활의 민주화, 인간화까지도 추구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체의 조직력과 동원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전체 사회를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로 개조해갈 가능성을 크게 가진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p27)

산별노조의 단점은?

- 산별노조에도 물론 한계와 단점은 있습니다. 우선 조직의 관료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현장의 평조합원 노동자들의 참여의식이 약해지고 현장활동이 소홀해지면 소위 '현장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산별노조로서도 100% 완전한 공급교섭력을 장악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p29)

- 산별노조의 공급교섭력의 한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최근 자본의 통합규모는 점차 확대되어 산업간 연계, 국제적 자본이동과 연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즉, 자본의 교섭력은 이미 산업과 국경을 넘어서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초국적기업의 문제, 국경을 넘어 선 자본이동, 공장이전과 노동력 수입의 문제 등). 따라서 노동의 경우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광범위한 조직형태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제기됩니다. 예컨대 이미 산별노조가 건설되어 있는 서유럽의 몇몇 나라들에서는 이제 산업구분선을 넘어서서 전국적인 단일노조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 유럽노조'와 같은 국제적 노동조합조직의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단계에까지 도달한 산별노조는 없으며, 따라서 자본의 맹렬한 팽창 과정에 비교해볼 때, 산별노조는 아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p30-31)

산별노조 체제에서는 유니온샵 제도는 불가능합니까?

- 유니온샵 제도는 기업에 고용됨과 동시에 자동으로 노동조합원이 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노조를 탈퇴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해고되게 되는 제도로서 일종의 강제조합원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산별노조는 원칙적으로 이런 제도를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가입의 제한이 없다는 것은 동시에 가입하지 않을 자유도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같이 '자유계약'의 정신을 강조하는 법률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유니온 샵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 ...노동조합의 조직 강화는 단순히 가입율을 높이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1기업 1노조주의의 기업별노조 체제에서 유니온샵 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면 생각이 다른 노동자들이 강제로 한 조직에 소속되게 되어 항상적인 조직갈등과 조직분규의 원인이 됩니다. 노동조합의 조직강화는 '설득과 실천의 대중적 원칙'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자발적인 참여의 의욕을 이끌어내고, 노조의 실천을 통해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경우 가입율의 높고 낮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제될때에는 가입율이 높은 것이 낫지요. (p64-65)

노조임원이나 상근자의 임금은 누가 지급합니까

- 상급단체 상근자의 임금은 당연히 노조 재정에서 지급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노조의 자주성을 위해서도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노동조합은 원래 특정 기업, 사용자의 조직이 아니라 그와는 전혀 무관한 노동자들의 조직입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사용자의 고용인이 아니라 노동조합(노동자)의 고용인이므로 그들의 생계도 노조에서 책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 그러나 비상근 간부의 경우에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만큼에 대해서는 기업이 임금을 주고, 나머지 부분은 노조에서 보전해주는 형식이 됩니다. 또한 노조파견자들의 임금과 활동비는 사용자나 정부 재정에 의해 지불됩니다. (p71-72)

스웨덴노조의 노동정책

-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은 50년대 말부터 20여년간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는데 그 결과 스웨덴 노동자들은 산업간 임금격차가 6%에 불과한 고도의 균등임금 체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함께 추진되었습니다. 산업간 이윤격차, 성장산업과 사양산업의 격차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 하에서는 경영이 불가능하여 파산하거나 폐업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는데, 그 때문에 발생하는 실업노동자들을 재교육하여 새로운 성장산업 분야의 기업들로 재배치하는 정책을 쓴 것입니다. 이 정책 때문에 예컨대 스웨덴 조선산업은 6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완전히 폐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p77)

- 스웨덴의 ‘노동의 인간화’ 프로젝트는 컴퓨터 기술의 도입에 따른 노동과정의 변화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것이 노동을 비인간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적 노동조건을 오히려 촉진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 생산체제는 무엇인지 찾으려는 방대한 연구계획이었습니다. (p77)

미국 산별노조의 관료화

- 미국의 경우 서구와 같은 산별체제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자생적 파업(와일드캣 스트라이크)이 상당히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미국의 관료화된 상급노조 지도부들은 이런 자생적 파업행위를 중앙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하여 그들 스스로가 이런 현장파업 지도부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 왔습니다. 미국 자동차노조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그들은 사용자와 계속 양보교섭을 하고 이에 항의하여 현장에서 자생적 파업이 일어나면 그 지도부들을 노조 스스로 징계하고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던 것입니다. 산별노조든 아니든 이런 일은 어용화되고 관료화된 노동조합에서는 항상 발생합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런 일은 많지요. 95년 봄 현대자동차 양봉수씨의 분신사건은 이 점을 잘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p97)

사용자들은 어떤 형태로 교섭팀을 구성하고 협상에 응합니까?

- 사용자들은 산별노조에 대응하기 위한 자기 조직화를 서두르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산별노조는 단일 사업장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대각선교섭을 조직하면 됩니다. 이것은 사용자들로서는 견딜 수가 없으므로 당연히 그들도 산별노조 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물론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강력한 압력이 가해져야 합니다. 예컨대 스웨덴 산별노조는 산별체제로 전환한 이후 무려 8년여에 걸친 파업투쟁을 조직하여 사용자들로 하여금 자체 단체를 구성하여 산별교섭에 임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p98)

▶사용자들이 산별노조의 교섭제의에 응하지 않거나 기업별로 교섭하자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 교섭기피의 부당노동행위가 됩니다. 법적으로도 제재를 받을 수 있고, 단체협약 위반으로 제소될 수 있습니다. (서구에는 ‘노동법원’이 존재)

- 문제의 핵심은 역시 사용자와 노동조합간의 ‘힘관계’입니다. 예컨대 미국과 동일한 상황에 있었던 캐나다 노조의 경우, 군대 투입에까지 이르는 강력한 현장 파업투쟁을 조직화하여 80년대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한 경험이 있습니다. 서구의 경우도 법이 잘 되어 있다거나 노사간에 협조적 관계가 만들어져 있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강력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가진 노조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지요. (p99-100)

교섭의 유형은?

- 기업별교섭 : 기업별노조 체제에서의 교섭. 단위기업 노조와 사용자간의 교섭
- 집단교섭 : 복수의 기업별노조 대표자들과 사용자들이 함께 하는 교섭. 교섭 단위는 지역별, 업종별 등으로 진행.
- 공동교섭 : 상급단체에서 파견된 교섭위원과 단위사업장의 교섭위원이 공동교섭단을 구성하여 사용자들과 함께 교섭을 벌이는 방식.
- 대각선교섭 : 상급조직의 교섭위원과 단위 사업장 교섭위원이 교섭단을 구성하여 해당 사용자와 벌이는 교섭.
- 중앙교섭 : 노조 상급단체와 사용자 단체간에 상층에서 진행되는 교섭. (p101)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산별차원의 임금협상에 기초하여 이를 보완하는 협상을 할수있나요?

- 산별차원의 임금협상은 최저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이기 때문에 각 단위사업장에서는 이를 기초로 하여 더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한 협상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 독일의 경우 이 보완협상은 노조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는 종업원들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노동자평의회에서 제기하고 회사측과 협상을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평의회는 협상할 권한은 있으나 파업 등 단체행동권은 없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파업을 할 수는 없지요. (p108)

산별연맹과 산별노조의 차이

- ‘산별연맹’과 ‘산별노조’는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이 다릅니다. 산별연맹은 조직대상인 구성원이 단위노조라는 개별 노동단체인데 반해 산별노조는 그 조직대상인 구성원이 단위노조가 아니라 개별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연맹에의 가입은 노조 단위로 하지만 산별 ‘노조’에의 가입은 개별조합원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p122-123)

어용 산별노조

-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국회의원의 1/3이 현역 군장성들로 자동으로 구성됩니다. 마찬가지로 산별노조 형태를 취하고 있는 노동조합 상급 간부의 1/3은 전현직 군장교들입니다. 또 다른 1/3은 경영자, 기업주가 겸직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3은 어용노조 간부들입니다....노동자들은 노조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노조는 그저 노동통제 조직일 뿐입니다. (p144-145)

- 멕시코의 산별노조는 60년 동안 장기집권 중인 여당 ‘제도개혁당(PRI)'의 강력한 동반자입니다. 대기업, 다국적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만 가입할 수 있게 합니다. 이 노동자들에게만 임금 인상 효과가 주어집니다. 사회보장제도도 이들만 누립니다. 수많은 중소사업장, 영세사업장, 임시노동자, 농업노동자 등은 노조 조직 밖에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가입할 수 있지만 기존 조합원들의 배타적 기득권 보호를 위해 실제로는 가입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노조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입니다. 임금도 노동자 평균 임금의 3배 정도가 됩니다. 노조 간부의 대부분은 제도혁명당 당원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시 노동조합은 자동으로 집권당 후보자 100명의 추천권을 가집니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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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대통령이 된건 우리들의 탐욕때문입니다.
부동산투기좀 그만하세요.
공기와 물 없이 돈벌수 있나요.   
...
여러분 즐기고 있나요?
사람들이 점점 즐기는걸 두려워해요. 왜 그런거죠? 무엇을 위해 그런거죠?
즐기면서, 우리 천천히 갑시다.

김반장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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