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 100문 100답』
영남노동운동연구소, 1995
▶산별노조란?
산별노조(산업별노조)는 노동조합 가입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기업, 업종, 지역, 산업 등 일체의 제한을 뛰어 넘어 전국적 수준에서 가능한 한 최대 규모의 단일조직을 추구하는 노동조합입니다. (p9)
- 산별노조에는 현재 취업중인 노동자, 취업대기중인 예비노동자, 실업중인 노동자가 모두 가입할 수 있으며 자연히 하청노동자, 임시직노동자, 외국인노동자들도 모두 가입대상이 됩니다. 나아가 사무직/생산직의 구분, 직종과 업종의 구분도 없게 됩니다. 모든 노동자가 전국적 단일 조직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p10)
- 보통의 경우 산별노조는 금속, 섬유, 화학 등의 커다란 산업구분의 단위에 따라서 조직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직 원칙은 아니고 노동운동의 역사 및 주체적 조건, 그리고 자본주의의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노동자 구성의 변화 등 외부환경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실용적으로 구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조직 범위는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으며, 특정의 업종이나 산업의 경계를 넘어선 조직화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컨대 금속노조라고 해도 반드시 금속산업 분야 노동자만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이나 업종의 노동자들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금속과 화학을 하나로 묶어 전국적인 '금속 및 화학산별노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산별노조는 '산업분류표'에 따라 조직되는 노조가 아닙니다). (p10)
- 따라서 산별노조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특징은 기업별, 성별, 고용상태별, 직업별, 업종별, 지역별, 산업별의 모든 차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노동운동 조직의 독자적인 자주적 판단에 의해 가능한 한 최대 다수의 노동자들을 단일한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나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p11)
▶산별노조의 장점은?
- 산별노조의 가장 큰 장점은 노동자를 가장 큰 규모로 결집시킴으로써 노동력시장에서 큰 공급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산별노조는 이를 기반으로 고용조건과 임금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나아가서는 다양한 형태의 경영참가권을 확보하여 노동생활의 민주화, 인간화까지도 추구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체의 조직력과 동원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전체 사회를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로 개조해갈 가능성을 크게 가진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p27)
▶산별노조의 단점은?
- 산별노조에도 물론 한계와 단점은 있습니다. 우선 조직의 관료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현장의 평조합원 노동자들의 참여의식이 약해지고 현장활동이 소홀해지면 소위 '현장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산별노조로서도 100% 완전한 공급교섭력을 장악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p29)
- 산별노조의 공급교섭력의 한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최근 자본의 통합규모는 점차 확대되어 산업간 연계, 국제적 자본이동과 연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즉, 자본의 교섭력은 이미 산업과 국경을 넘어서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초국적기업의 문제, 국경을 넘어 선 자본이동, 공장이전과 노동력 수입의 문제 등). 따라서 노동의 경우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광범위한 조직형태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제기됩니다. 예컨대 이미 산별노조가 건설되어 있는 서유럽의 몇몇 나라들에서는 이제 산업구분선을 넘어서서 전국적인 단일노조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 유럽노조'와 같은 국제적 노동조합조직의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단계에까지 도달한 산별노조는 없으며, 따라서 자본의 맹렬한 팽창 과정에 비교해볼 때, 산별노조는 아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p30-31)
▶산별노조 체제에서는 유니온샵 제도는 불가능합니까?
- 유니온샵 제도는 기업에 고용됨과 동시에 자동으로 노동조합원이 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노조를 탈퇴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해고되게 되는 제도로서 일종의 강제조합원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산별노조는 원칙적으로 이런 제도를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가입의 제한이 없다는 것은 동시에 가입하지 않을 자유도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같이 '자유계약'의 정신을 강조하는 법률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유니온 샵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 ...노동조합의 조직 강화는 단순히 가입율을 높이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1기업 1노조주의의 기업별노조 체제에서 유니온샵 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면 생각이 다른 노동자들이 강제로 한 조직에 소속되게 되어 항상적인 조직갈등과 조직분규의 원인이 됩니다. 노동조합의 조직강화는 '설득과 실천의 대중적 원칙'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자발적인 참여의 의욕을 이끌어내고, 노조의 실천을 통해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경우 가입율의 높고 낮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제될때에는 가입율이 높은 것이 낫지요. (p64-65)
▶노조임원이나 상근자의 임금은 누가 지급합니까
- 상급단체 상근자의 임금은 당연히 노조 재정에서 지급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노조의 자주성을 위해서도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노동조합은 원래 특정 기업, 사용자의 조직이 아니라 그와는 전혀 무관한 노동자들의 조직입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사용자의 고용인이 아니라 노동조합(노동자)의 고용인이므로 그들의 생계도 노조에서 책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 그러나 비상근 간부의 경우에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만큼에 대해서는 기업이 임금을 주고, 나머지 부분은 노조에서 보전해주는 형식이 됩니다. 또한 노조파견자들의 임금과 활동비는 사용자나 정부 재정에 의해 지불됩니다. (p71-72)
▶스웨덴노조의 노동정책
-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은 50년대 말부터 20여년간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는데 그 결과 스웨덴 노동자들은 산업간 임금격차가 6%에 불과한 고도의 균등임금 체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함께 추진되었습니다. 산업간 이윤격차, 성장산업과 사양산업의 격차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 하에서는 경영이 불가능하여 파산하거나 폐업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는데, 그 때문에 발생하는 실업노동자들을 재교육하여 새로운 성장산업 분야의 기업들로 재배치하는 정책을 쓴 것입니다. 이 정책 때문에 예컨대 스웨덴 조선산업은 6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완전히 폐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p77)
- 스웨덴의 ‘노동의 인간화’ 프로젝트는 컴퓨터 기술의 도입에 따른 노동과정의 변화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것이 노동을 비인간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적 노동조건을 오히려 촉진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 생산체제는 무엇인지 찾으려는 방대한 연구계획이었습니다. (p77)
▶미국 산별노조의 관료화
- 미국의 경우 서구와 같은 산별체제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자생적 파업(와일드캣 스트라이크)이 상당히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미국의 관료화된 상급노조 지도부들은 이런 자생적 파업행위를 중앙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하여 그들 스스로가 이런 현장파업 지도부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 왔습니다. 미국 자동차노조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그들은 사용자와 계속 양보교섭을 하고 이에 항의하여 현장에서 자생적 파업이 일어나면 그 지도부들을 노조 스스로 징계하고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던 것입니다. 산별노조든 아니든 이런 일은 어용화되고 관료화된 노동조합에서는 항상 발생합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런 일은 많지요. 95년 봄 현대자동차 양봉수씨의 분신사건은 이 점을 잘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p97)
▶사용자들은 어떤 형태로 교섭팀을 구성하고 협상에 응합니까?
- 사용자들은 산별노조에 대응하기 위한 자기 조직화를 서두르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산별노조는 단일 사업장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대각선교섭을 조직하면 됩니다. 이것은 사용자들로서는 견딜 수가 없으므로 당연히 그들도 산별노조 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물론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강력한 압력이 가해져야 합니다. 예컨대 스웨덴 산별노조는 산별체제로 전환한 이후 무려 8년여에 걸친 파업투쟁을 조직하여 사용자들로 하여금 자체 단체를 구성하여 산별교섭에 임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p98)
▶사용자들이 산별노조의 교섭제의에 응하지 않거나 기업별로 교섭하자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 교섭기피의 부당노동행위가 됩니다. 법적으로도 제재를 받을 수 있고, 단체협약 위반으로 제소될 수 있습니다. (서구에는 ‘노동법원’이 존재)
- 문제의 핵심은 역시 사용자와 노동조합간의 ‘힘관계’입니다. 예컨대 미국과 동일한 상황에 있었던 캐나다 노조의 경우, 군대 투입에까지 이르는 강력한 현장 파업투쟁을 조직화하여 80년대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한 경험이 있습니다. 서구의 경우도 법이 잘 되어 있다거나 노사간에 협조적 관계가 만들어져 있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강력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가진 노조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지요. (p99-100)
▶교섭의 유형은?
- 기업별교섭 : 기업별노조 체제에서의 교섭. 단위기업 노조와 사용자간의 교섭
- 집단교섭 : 복수의 기업별노조 대표자들과 사용자들이 함께 하는 교섭. 교섭 단위는 지역별, 업종별 등으로 진행.
- 공동교섭 : 상급단체에서 파견된 교섭위원과 단위사업장의 교섭위원이 공동교섭단을 구성하여 사용자들과 함께 교섭을 벌이는 방식.
- 대각선교섭 : 상급조직의 교섭위원과 단위 사업장 교섭위원이 교섭단을 구성하여 해당 사용자와 벌이는 교섭.
- 중앙교섭 : 노조 상급단체와 사용자 단체간에 상층에서 진행되는 교섭. (p101)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산별차원의 임금협상에 기초하여 이를 보완하는 협상을 할수있나요?
- 산별차원의 임금협상은 최저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이기 때문에 각 단위사업장에서는 이를 기초로 하여 더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한 협상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 독일의 경우 이 보완협상은 노조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는 종업원들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노동자평의회에서 제기하고 회사측과 협상을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평의회는 협상할 권한은 있으나 파업 등 단체행동권은 없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파업을 할 수는 없지요. (p108)
▶산별연맹과 산별노조의 차이
- ‘산별연맹’과 ‘산별노조’는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이 다릅니다. 산별연맹은 조직대상인 구성원이 단위노조라는 개별 노동단체인데 반해 산별노조는 그 조직대상인 구성원이 단위노조가 아니라 개별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연맹에의 가입은 노조 단위로 하지만 산별 ‘노조’에의 가입은 개별조합원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p122-123)
▶어용 산별노조
-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국회의원의 1/3이 현역 군장성들로 자동으로 구성됩니다. 마찬가지로 산별노조 형태를 취하고 있는 노동조합 상급 간부의 1/3은 전현직 군장교들입니다. 또 다른 1/3은 경영자, 기업주가 겸직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3은 어용노조 간부들입니다....노동자들은 노조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노조는 그저 노동통제 조직일 뿐입니다. (p144-145)
- 멕시코의 산별노조는 60년 동안 장기집권 중인 여당 ‘제도개혁당(PRI)'의 강력한 동반자입니다. 대기업, 다국적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만 가입할 수 있게 합니다. 이 노동자들에게만 임금 인상 효과가 주어집니다. 사회보장제도도 이들만 누립니다. 수많은 중소사업장, 영세사업장, 임시노동자, 농업노동자 등은 노조 조직 밖에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가입할 수 있지만 기존 조합원들의 배타적 기득권 보호를 위해 실제로는 가입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노조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입니다. 임금도 노동자 평균 임금의 3배 정도가 됩니다. 노조 간부의 대부분은 제도혁명당 당원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시 노동조합은 자동으로 집권당 후보자 100명의 추천권을 가집니다.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