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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1 (양장) - 심장을 적출하는 나가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평점 :
명지휘자가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자리에 착석한 청객에게 순간 자신이 음악당 안에 있음을 망각하게 한다. 선율을 따라 어느샌가 혼이 빠져서는 '어디'라고 정의내릴 수 없는 다른 차원에서 노닐게 된다. 이영도님의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읽고 나는 같은 경험을 했다.
황금가지라는 출판사의 위명답게 썩 훌륭하게 제본된 책을 기대를 품고 펼쳐들었다. '주막'이라는 뜻밖의 단어가 '펍'대신 등장한 에필로그의 순간부터, 나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 몰입해버렸다. 이젠 거의 정석화되다시피한 '펍'이니 '주점'은, 판타지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모험이나 여행 중 거치는 휴식공간이다. 그런데 <어사 박문수>나 <장희빈>같은 tv사극도 아닌데 '주막'이 등장한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과연 뒤로 갈수록 하나 둘 드러내는 '도깨비', '중', '니름', '닢(동전 단위)'같은 한국 특유의 요소라니!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해낸 이영도님께 박수를 보낸다. '별 것 아니잖아' 할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그건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지 않을까.
인간/도깨비/레콘/나가 라는 4대종족도 새롭다. 인간/엘프/드래곤/드워프, 더 나아가면 +하프엘프/요정(페어리)/마족/신족의 종족구성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얼마나 신선한가! 특히 도깨비라는 종족의 씨름과 장난을 좋아하는 전통적 유쾌함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른다. 일본의 '뿔 달린 무서운 귀신'이 식민시대를 거치며 우리네 '도깨비'의 이미지를 대신한 현 상황에서, 본래적 의미로 부활한 도깨비를 보기란 무척 즐겁다. 3m신장의 강대한 레콘이라던가 꼭 뱀같은 이미지의 나가 역시 굉자히 흥미를 자극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 어째 도깨비에게 끌려버렸다. 뭐어- 실상 이야기의 중심 축은 '나가'와 '인간'에게 맞춰져 있는 듯하지만, 어떻게 보는지는 개인의 자유 아니겠는가.
아무튼 '심장 적출'이라는 방법으로 반불사를 영위하는 나가 종족과 '셋이서 하나를 상대'해야 하는 인간, 도깨비, 레콘 종족이 얽혀서 상상치도 못했던 초흥미진진한 판타지 세계를 경험했다. 사건도 캐릭터도 뭐하나 예상가능한-일명 뻔한- 것이 없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며 하나하나 알아가는 기쁨이 더욱 커진다. 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지만 너무도 즐겁다. <눈물을 마시는 새>가 드래곤 라자 못잖게 한국판타지계에 새로운 도약을 제공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