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의 비극 - 시그마 북스 012 시그마 북스 12
엘러리 퀸 지음 / 시공사 / 1994년 12월
평점 :
절판


엘러리 퀸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다. 소설 속의 탐정과 똑같은 양의 단서를 독자에게 제공하며, '자-어떠냐, 알아맞춰보시지'라고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다는 추리작가. 기존의 추리소설들은 독자와 소설 속 탐정(해결사) 간의 메울 수 없는 격차-사건해결의 단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엘러리 퀸이라는 2인 1조의 혼성작가콤비는 과감히 그 형식을 깼다는 것이다.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에만 익숙해있던 내게 엘러리 퀸은 도전이었고 탐험이었다. 그 첫 발걸음을 내민 것이 바로 유명한 Y의 비극이다. XYZ시리즈 중에서 가장 극찬을 받는 Y.

1막, 2막, 3막의 세 막으로 나뉜 살인극은, 그러나 1막을 채 다 읽기도 전에 나를 당황케 했다. 왜냐...범인이 그 사람 말곤 아무도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막이 끝날 때, 소설 속 탐정 드루리 레인은 말한다. '기가 막히게도,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단서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그 말대로다.

단서1: 장님에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루이자 캠피언이 한밤중에 손을 뻗어 범인의 볼을 만졌다. 그 범인의 볼은 아주 매끈하고 부드러웠으며 범인에겐 바닐라 향이 풍겼다.
단서2: 살인의 흉기가 된 독극물과 주사기는 잠겨진 실험실에 있었고, 그 실험실로 범인은 벽난로를 통해 드나들었다. (여자라기보단 남자일 가능성이 커짐)
단서3: 실험실 독극물 선반 앞에는 세 발 의자가 옮겨져 있었다. 먼지가 잔뜩 쌓인 바닥이라 그 옮김이 극명하다.

이 단서들에, 이 집안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광기와 교활함이라는 저주받을 피가 흐른다는 점을 첨가시켜보자. 그렇다면 범인은 간단하게 떠오른다. 너무도 단순하기에, 그러니까 어떤 고정관념도 없이 그냥 보면, 범인은 너무 뻔하다. '설마 그럴리가!'라는 편견과 선입견만 없다면 지극히 간단명료한 것이다. 1막에서 이미 범인을 알아챈 탓에 김이 빠졌지만, 드루리 레인이라는 독특한 탐정의 매력과 섬 경감의 완고하면서도 교과서적 수사의 어우러짐, 해터 집안 사람들의 기묘한 면면과 살인의 동기가 밝혀지는 과정이 흥미로웠기에 끝까지 독파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소설에서 현실로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드루리 레인이라는 탐정의 매력이라기보단 소설의 무대인 <해터집안>을 통해 느낀 염증과 공포 때문이었다. 뉴욕의 유명한 대부호 해터집안은, 늙은 괴짜 여걸 엘리스 해터로터 그 자식들 및 손자들 심지어는 며느리와 고용인에 이르기까지 정상들이 아니다. 읽어보면 딱 공감하게 되는 '미치광이 해터'라는 별칭, 그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미친 모자장수(hatter)에서 따 온 것이다. 차이는 앨리스에서처럼 재미있는 광기가 아니라 꺼려지는 광기라는 것. 범인이 누군지 초반에 알아챈다 해도, 이 책은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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