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속에 1
강경옥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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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를 처음 보고 몇 주일이나 후유증에 시달렸었다. 시이라젠느와 레디온, 그리고 아르만과 아시알르의 환영에 사로잡혀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달까. 북두칠성에 얽힌 아름다운 옛 이야기가 울려퍼지는 별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시작되었다가 종래는 다시 밤하늘 가득한 별빛과 함께 끝나는 이 이야기.

처음 신혜가 천문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웃을 때만해도, 나는 앞으로 그 천진한 보통 여고생인 신혜에게 닥칠 거대한 운명을 짐작조차 못했다. 다시 그 북두칠성이 빛나는 지구의 밤하늘을 보게 될 때까지 그녀가 겪을, 그 모든 가혹하고 슬프고 그리고 아름다운 일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초능력자 사라와 레디온을 만나서, 사라와는 친구가 되고 그리고 레디온에겐 연정을 느끼게 된 신혜. 그러나 이 사람들과의 조우로 신혜는 시이라젠느라는 출생에 얽힌 운명을 반강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먼 외계행성 카피온의 왕위계승 1위후보인 제 1왕녀 시이라젠느의 그것을 말이다.

평범한 소시민에서 여왕이 될 처지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러나 그것이 야심만만한 소녀가 아닌 여느 여고생에게 과연 기쁜 일일까? 이제까지의 내 가족, 내 친구, 내 고향을 모두 버리고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금의환향'이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은 처지가 나아져도 아는 사람들과 장소에서 그것을 누리고 싶어하는 법이다.

사랑했던 레디온에 의해 지구의 모든 것과 결별하게 된 시이라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한 것이었을까? 갑작스레 차갑고 무뚝뚝하게 돌변한 시이라의 모습이 얼마나 가슴저리던지..신혜시절의 하냥 밝고 온화한 그녀의 모습은 간 데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레디온에 대해 여전히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증오하고 화낼 수밖에 없는 시이라와 그런 그녀를 말없이 보필할 수 없는 레디온 두 사람의 엇갈린 사랑이 너무도 슬펐다.

여왕의 자리를 두고 친자매인 아시알르와 싸워야 했을 때도 그렇고, 신이 시이라에게 선택하게 한 카피온과 지구 두 행성의 미래도 그렇고 시이라젠느 개인에게 주어진 시련은 너무도 크다.

왜 여왕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밖엔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왜 신은 나에게 카피온인이 침략할 수 있는 지구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걸까? 나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가. 레디온은 아시알르를 사랑하고, 아르만은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것은...

신이 존재하는 곳, 카피온. 그리고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자 여왕. 그 여왕의 운명을 짊어진 자 시이라젠느가 카피온, 카라디온 및 지구를 배경으로 펼치는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들의 장. 그것이 별빛속에다.

시이라젠느의 감정, 사랑, 그리고 강인한 의지와 선택이 밤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배경으로 기억 속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별빛속에란 제목은 정말이지 내용과 맞아떨어지는 최고의 제목이다. 저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볼 때마다 나는 별빛속에의 수많은 사람들의 일이 생각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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