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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영화 ㅣ 말들의 흐름 2
금정연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평점 :
오래된 영화팬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영화들. "중경삼림", "동사서독", "아비정전", "화양연화" 등등. 왕가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촬영에 들어가기로 유명하다. 계속되는 시나리오의 수정으로 출연한 배우들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 못하는 그의 영화는 촬영기간보다 더 긴 편집기간을 거쳐서 탄생하였다. 필름 하나하나를 잘라 붙여야했던 편집 방식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때그때 느낌에 따라 변하는 내용과 촬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놓고 이러한 방식으로 이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글이었기에 주로 읽어왔던 소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인 것은 확실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영화와 담배에 대해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해놓았다가 주루룩 연결해놓은 듯한 느낌! 바로 그 느낌처럼 단락단락이 숫자가 매겨진 작은 조각들로 되어있었다. 각각의 조각들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그 조각들 사이의 관계와 조각들의 전체적인 배치가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 새로운 조각들을 쓰면 그때까지 쓴 조각들을 새롭게 배치하여 완성되었다고 한다. 늘어놓고 다듬고 빼고 더하고..
이 내용을 읽으면서 지난 몇달동안 작성한 서평들이 생각났다. 좋은 책들을 읽고 나만의 생각을 적어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과연 책의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여 나만의 이야기로 풀어놓았었을까? 처음과 끝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졌을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나열해보고 다듬고 빼고 더하면서 작성했던 서평들이었지만 부족함이 많아보인다. 좁은 시선으로 바라본 짧은 경험과 성찰을 어설프게 나열해놓은 건 아니었을지 반성하게 된다. 나를 위한 기록이자 생각의 정리로 쓴 글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렵기도 하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생각이 존재함을 알기에..
저자도 이야기한다. 남에 글에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업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글에 대한 평가는 견디지 못한다고.. 예전에 지옥은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광화문의 겨울 새벽같은 모습”일거라고 썼다는데, 다시 생각하니 지옥은 “그 광화문에 가득한 그 사람들이 저자 자신이 쓴 글을 염불처럼 외우고 있는 모습”일거란다. 생각해보니 정말 무서운 지옥이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영화도 한동안 보지않는 저자의 이 책은 다행히도 염불처럼 외우지는 못할 듯 하다. 잡학다식한 그의 이야기가 관련없는 듯 하면서도 연결고리를 가지고 재미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픽션인 영화와 언제나 다음 담배를 부른다는 담배에 대한 이야기. 낯선 전개였지만 어렵지않게 그의 수다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 글은 출판사 지원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