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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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판타지와 권력이라는 독이 만났다. 권력이라는 가장 무서우면서 매력적인 유혹을 떨쳐낼 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볼까? 우리나라에서 찾아본다면, 아마 정치계 인사들이 아닐까? 가장 권력을 향해 빠르게 돌진하는 이들을 빼고 누구를 논할 수 있을까.

권력은 언제나 자신들을 표현할 때 이렇게 이야기 하곤 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나는 정당합니다. 다른 이와 틀립니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너의 이야기는 잘 들어 보았다. 너는 정당하다는데 지금의 상황은 과연 정당한가.”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권력에게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상상해 보았다. 결국엔 같은 말일 것이거나 아니면 소위 안티로 찍히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권력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유토피아 건설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세시대의 교황의 권력이 막강하였던 것도, 왕의 권력을 막강하게 하려는 것도 정치나 종교를 통해 자신의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느님을 이용하고 이름을 팔아먹었던 시대가 아마 중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를 팔아 돈을 받은 유다처럼 말이다.

그리고 왕 또한 인간인지라 다른 이에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것을 종합하여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왕의 절대 권력은 사람들을 벌벌 기게 만들었으니 콧대는 하늘을 찌르고 생각도 오만해지기 쉬우니까.

천주교를 믿는 나에게 권력자를 묻는다면 하느님일 것이다.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여러 가지를 겪을 수 있고 마음을 기대고 뜻대로 써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어쩌면 권력이라는 건 사람을 롤러코스터에 태울 수 있는 놀이동산 직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구의 역사의 한 부분을 판타지화 하여 권력의 음울함과 무서움을 보여주는 이 책.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도 글자에서 내뿜는 음산한 기운은 이 책을 더욱 열심히 읽게 하는 매력인 것 같다.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나만의 아이러니. ‘권력이란 무엇인가. 결국 탐욕만을 추구하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탐욕스러움, 광기를 보여주는 권력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약함이나 불안 등은 결국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책을 읽기 전에 종교에 대한 생각은 배제해 주길 바란다. 편파적으로 읽다보면 재미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고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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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나의 기도 - 삶이 빛이 되는 작은 기원들
마더 데레사 지음, 강윤영 옮김 / 청아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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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만약 여성의 모습으로 오신다면 딱 이러한 모습, 성녀 데레사의 모습이 아닐까.

근시안적 시각만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경마장의 경주마와 같이 앞만 보며 달리는 우리에게 성녀 데레사는 옆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시는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어떠한 마음으로 병자, 가난한 이, 아이들에게 임하셨는지, 함께 계시어 달라 하시고 도구로 써달라는 그녀의 기도와 예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 그녀는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을까?’, ‘성녀 데레사, 그녀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 과연 우리는 그녀와 같이 살 수 있을까?’ 참 여려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여러 신분의 사람들, 동물들, 천사들과 여러 기도문들까지. 이제까지 나는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해 보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을 예뻐라 하면서도 정작 기도는 해주지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언제나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잔소리와 다치지 않는 것에 신경을 썼는데 정작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지 못하였다. 어느 때엔 힘들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온갖 짜증을 부리던 나는 대체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인 기도도 못하던 나이다. 성녀 데레사처림 살 수는 없을지라도 그녀처럼 기도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음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이 있었다. 그것은 묵주를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었다. 주님을 다시는 만지지 못할 것 같은, 1초라도 더 느끼겠다는 듯 그녀의 손을 묵주를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신랑’에 비유하였다. 그래서일까? 신혼부부가 손을 꼭 잡고 다니듯 묵주를 꼭 쥐고 있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금도 신랑의 손을 꼭 잡고 계신지 여쭙고 싶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다. 그것은 세상은 그녀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어떠한 것이기에 빈민에 대해, 장애인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그리 돕고 개선하려, 빈민들이 임종 때에도 자리를 지키려 하였을까? 평등하다라는 그 말에 무언가 숨은 뜻, 더 깊은 생각이 들어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성녀 데레사만큼 나이를 먹으면 알 수 있을까? 그녀의 생각을 추측해 보기 위해선 모든 것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그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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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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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니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이야기들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빈곤 국가에서 팔아치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아이들을, 여자들을 노예로 전락 시키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 정부와 경찰. 대체 이들은 어째서 나라의 돈을 받는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떳떳한가.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70년대나 80년대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누나나 동생들이 아들의 하비나 집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 취직해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여자들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논리는 여성과 여자아이들로 태어난 것은 죄라는 논리이다. 그래서 집안의 생계를 여자들이 이어서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남아시아에서 매춘이나 노예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체 이러한 것은 어느 누가 정한 것이란 말인가. 어느 종교가 이러한 기준을 만들어낸 것일까. 종교의 기본은 “사람들을 사랑하라”아닌가? 자신보다 약하고 아는 것이 없다하여 이렇게 하다니. 신들이 이렇게 하라고 하였단 말인가. 이렇게 되기까지 막지 못하고 수수방관한 국가의 책임이 1순위이다. 대체 이렇게 될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한 것일까. 비난하지 않으려고 해도 비난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정말 읽으면서도 충격적이었고, 이러한 일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낮에 자신의 애인을 때려도 잡혀가지 않는 남자와 이를 방관하는 경찰. 종교라는 미명 하에 강자의 논리를 펼치고 있는 동남아시아. 읽으면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그런 사람들과 같은 지구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 어느 때는 소름끼친다. 그런 사람들도 사람이라 밥 먹고, 잠자는 게 정말 신기하다. 나 같으면 꿈에 나타날까 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대단한 강심장들.

개그콘서트에서 <두 분 토론>이라는 코너가 있다. 여성과 남성의 시각차, 외모, 기타 등등의 생각들을 개그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 코너에서 개그맨 박 영진이 잘하는 말 “나 때는”, “뭐어?”. “어디서 그런 소릴 하고 있어, 건방지게!”라는 말이다. 이것을 동남아시아 남자들에게 해줘야 할 말인 것 같다. “어디서 건방지게! 나 때는 그렇게 하면 잡혀가고 합의 안 돼서 구속 됐어!” 하고 말이다.

여자들에게 잘 하여라, 결국 남자들은 여자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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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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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를 접하는 두 번째 작품,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처음 읽고 다음에 읽을 때 느낀 건 기욤 뮈소 아저씨는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이전에 읽었던 <그 후에>처럼 말이다. 자신이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주제가 가장 어려운 주제가 아닐지 모른다. 가장 어려운 것이 아마 주위의 것을 깨닫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30년 전, 후를 왔다 갔다 하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을 돕고 있다.

사회복지 과목 중 인간행동과 사회 환경, 줄여서 인행사라는 과목이 있다. 거기에서 노인이 되었을 때 자아를 초월한다는 과제가 있다. 그것처럼 아마 자신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족장이 준 알약은 그것을 돕는 촉매제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나에 미치는 게 좋은 삶일까? 아니면 순탄한 삶이 후회하지 않는 삶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 쯤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에 미치는 게 좋은 삶일지, 순탄한 삶이 좋은 삶일지 말이다. 어느 때는 너무 밋밋해서 싫고, 어느 때는 너무 힘든 거 같아서 말이다.

적당히 있는 게 좋다는 것도 있지만 나는 순탄히 사는 게 좋다. 해 당하지 않고, 범죄와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삶 말이다. 하지만 인생살이는 정말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제 이만큼 살았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이다. 놓치고 사는 건 내가 신경을 못 쓴 거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신경 쓸 수 있는 건 할 수 있으면서 말이다. 앞으로 나는 범죄와 멀리,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일에 열정을 쏟으면서 말이다. 밋밋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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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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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같은 인간 생활의 고단함. 아슬아슬한 서로의 관계, 인간이길 포기한 듯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 석탄 사업이 호황을 누리다 쇠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따라가는 책. 그런데 오대양 살인사건이라는 건 실제 이야기를 모르니 와 닿지를 않는다. 지금은 불편한 진실을 알고 싶지 않다.

옛날 사건을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머리에 남아 ‘왜?’라는 의문이 시도 때도 없이 드는 나의 뇌세포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력이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거칠 것 없이 커진다. 그 커진 덩어리는 책을 왜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툭하면 어디선가 욕이 나오고 사람들의 본능에만 충실한 인간들만 깔아놓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게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어느 때엔 욕이 없으면 글을 못 쓰나 할 정도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거북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읽다가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거나 제 글을 보고 있는 독자 여러분. 한 가지 물어보아도 될까요? 왜 한국 소설은 욕이 많을까요? 누가 보면 우리나라는 욕이 제 2의 한국어인 줄 알 것 같다. 딴지를 거는 것 같아 보이지만 독자 여러분은 그리 느끼지 않으신가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욕이 튀어나와 읽다보면 화가 납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지도 않고 덮어버리는 건 작가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써주셨는데 말이다. ‘인내가 녹아있는 한 권의 책을 다 읽어주지 못하는 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서도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왜?’라는 의문이 나를 따라온 것이다. 나의 뇌세포는 다시 공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세상을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우울한 이 세상과 공장에 얽혀 있는 자신을 한탄하면서 말이다. 한 가지 이야기 드리고 싶은 건 제발 책에서 욕 좀 그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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