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권법 - 길고양이들의 숨막히는 격투와 수련의 명장면들!
악센트 지음, 홍미화 옮김 / 윌스타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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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마치 고양이들의 화보집 같았다. 현란하고 유연한 몸짓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찍은 사람의 소감이나, 이야기가 없이 그저 고양이,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애묘인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책을 보면서 어릴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첫째는 밤에 번쩍번쩍 하는 눈빛이 무서웠다. 둘째는 아기 고양이의 울음 소리에 제법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있으면 있는대로 뛰었고, 없으면 없는대로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거나 보이면 놀라 피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건 강아지같이 먼저 다가오는 걸 좋아했었다.

그런 내가 나이가 들어가니 이 녀석들에게 ‘측은함’이라는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강아지보다 더 홀대당하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거 같았다. 문화적으로도 더 열등하고 나쁜 동물로 취급당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면 퍽 눈에 띄어 자주 보곤 하였다. 고양이들에 관한 책도 보고, ‘고양이들을 위한 봉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여러 곳을 검색했었다. 하지만 아직 정기적 봉사를 나가는 곳은 없다. 그저 마음만 있을 뿐.

고양이들의 솜뭉치 펀치를 보며 다시 한 번 책을 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들, 정말 괜찮은 걸까?’ 인간의 무한한 오지랖일 수도 있다. 바깥 생활이 녹록치 않음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즐거운 몸짓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는 고양이 자신만 알 것이다. 그런데 인간인 내가 보기엔 녹록치 않은 바깥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이만큼 강하고, 힘이 세다!’라는 걸 보여줘 건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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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콜린 피셔
애슐리 에드워드 밀러.잭 스텐츠 지음, 이주희 옮김 / 시공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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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어느 학교에서도 반입해선 안 되는 물건이 있다. 학교는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과 학생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보호의 기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도 사람이 모여 지내는 곳인지라 그리 안전한 곳이라 할 수 없다. 학교라는 곳도 인간이 모여 지내는 곳, 나의 안전은 내가 지켜야 한다. 그저 삐그덕대며최소한의 안전 속에서 지내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콜린 피셔는 아스퍼거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다행인 건 음울한 학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넘치는 관심과 관찰력을 파란 노트에 적으며 적절히 조절해 지내고 있었다. 그 또한 삐그덕대는 안전에 균형을 맞추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그 균형이 깨져버리는, 정확히는 빼앗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는 꾸역꾸역 잘 집어삼키고 맞추어 나갔다. 부모님도 아는 눈치이지만 그저 무던한 아들의 모습에 할 말은 많지만 꾸욱 삼켜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이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학교 안에서 총이 나왔다. 서두에서 반입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등장한 것이다. ‘이건 누가 들여온 걸까?’ 콜린의 균형도 무너지며 그의 넘치는 관찰력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처음 읽을 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책을 읽으며 학교라는 소재는 곧, 청소년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좋다고 생각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소재이니까. 게다가 학교를 대상으로 한 소설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이 재미있던 건,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단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세우면 꼭 뭔가를 극복해 나가는 게 많았다. 쉬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불쌍한 사람 취급이라는 게 한 편의 의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자신이 조사도 하고, 생각도 하고, 다른 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의 빈도가 더욱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장애는 느껴지지 않았다. ,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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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쓰는 법 - 내가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느낀 것의 가치를 전하는 비평의 기본기
가와사키 쇼헤이 지음, 박숙경 옮김 / 유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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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도 댓글 한 번 남긴 적 없었다. ‘내가 리뷰를?’ ‘안 써도 그만이지 뭐.’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러면서 물건을 고를 때 댓글을 보게 된다. 하지만, 뭔가 정확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나 또한 이렇게 정보를 주지 못할 바엔 안 적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정보를 제공하는 거 아닌가? 상상을 제공하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 남을 설득하기 위해 제공하기도 하고. 숙제로 교수님이 원하는 내용을 제공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꽤나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글을 썼었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한 적은 별로 없었다. 몇 번 글을 쓰는 법을 찾아보긴 했었지만,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다른 글과 비교를 해 보여주긴 하지만, 나에게 맞는 정보는 아니었다. 거기다 나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책은 분리수거장에 그대로 직행했었다. 그렇게 갖다 버리기를 몇 번,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내가 빠진 부분이라 느낀 곳을 채워주었다. 거기에 직설적으로 이야기 해주니 이해하기가 더욱 쉬웠다. 난 꽤 단순한 사람이었나 보다. 줄을 치면서 열심히 읽은 책이었다. 글을 쓰는 건 정확성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위에 말한대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자료가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자료를 어찌 정리하는가도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감동시키고, 공감을 얻어낸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항상 느끼고 있지만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 까다로운 작업에 이 책의 도움을 받아 잘 해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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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 -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종활 일기
하시다 스가코 지음, 김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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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과 탄생. 당연한 이치이고,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이라 불리며 더욱 알차고 촘촘히 살아야 한다, 낭비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과정만 생각할 뿐 그 이후를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입에 담아본 적이 있던가?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농담을 사람들과 주고받는다. 이런 농담은 영정사진 같은 기분이 든다. 영정사진을 준비하면 오래 산다는 속설의 한 면을 듣는 거 같은 기분. 그러나 진짜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는 외면한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 죽음으로 다른 이의 인생에 돌을 던질 것이다. 이 돌을 던지기 전 준비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모두 꺼리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보다보니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거 같았다.

가장 와 닿았던 말은 기운이 있을 때 주변, 신변을 정리하란 말이었다. 사람도, 물건도 모두 기운이 있을 때 차곡차곡 정리해야 한다는 것. 나이가 들면 힘들고 나의 역사가 없어져 망설여질 것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그래서 집을 한 번 휘- 살펴보았다. 정말로 치워야 할 게 많았다. 우선 책들, 모아놓은 영화나 드라마, 선물로 받거나 필요하다 샀는데 안 쓰는 것들까지 천지였다. ‘, 정리해야겠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내가 현재의 집에 살고 있다면?’, 두번째는 요양원에 있다면?’이었다. 공통적으로는 남은 유품을 정리해주는 사람들에게 술 한 잔 사먹으라 돈을 남겨놓는 것이다. 지구상에 남은 나의 흔적을 정리해주고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니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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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쉴 틈 없는 회사의 시간과 숨 돌릴 나만의 시간 사이에서
박인경 지음 / 빌리버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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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울에 놀러 갔을 때는 신기했었다. 그 때에는 모든 것이 커보였고, 마냥 재밌었다. 그 때의 나는 나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됐기에 서울은 즐거운 곳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나의 입에 풀칠을 해야 하는 때가 되었을 때 서울이 새롭게 보였다. 학교 갈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어릴 때 이벤트성으로 재밌게 탔던 지하철이 이제는 매일 쓰는 발이 되었고, 지각에 대한 마음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다.

거기다 사람관계는 학교보다 더욱 세밀해지고 독해졌다. 야자 대신 야근을 하며 시계를 하염없이 째려본다. 부대끼는 하루를 이렇게 살아낸다. 우리나라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왜 이리 슬픈 생각만 들까? 과연 난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간다. 삐그덕대지만 그래도 여차저차 돌아가는 서울을 보며 신기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이 마음을 공감할만한 일도, 글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이 책 저자의 마음에 나 또한 나도 그래라는 말이 많이 떠올랐다. 어줍잖은 힐링은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냈을 뿐이다. 그 덤덤함 속에서 직장인들의 공감을 살만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만이 아닌, 전국의 직장인들이 같은 마음을 담고 있는 거 같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직장인들은 고민하고 죽을 것 같지만 버티고 있었다. 나의 부모님도 그 부모님도, 그 위의 부모님도 말이다. 형태, 시간은 다를지라도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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