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장점은 융의 사상에 대해 현대적 관점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단무의식의 기원에 대한 융의 설명을 향한 비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진화의 매커니즘에 관해 두 가지 견해가 갈린다(p. 29)는 식이다. 이런 부분은 처음 융을 접하는 이들에겐 무엇이 현재까지 정리된 개념인 지 파악하기 용이할 것이다.
특히, 생각과 감정은 생리학적 기능에 영향을 줌을 밝히며, 정신신체의학의 기본 체계를 세운 점(p.60), 융의 정신역학 개념 중 동량의 원리(p.68)와 엔트로피의 원리(p.74)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여 이해하기 좋다. 융은 퇴행이 유익(p.84)할 수도 있다고 하며, 영웅의 태고 유형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점은 나에게 새롭다. 내 공부가 부족해서였는지, 공부한 책에서 없었는지는 정확하진 않다. 다시 한 번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지도 교수님께서 안식년 때 연락오셔서 갑작스레 정리했던 만다라(p.98)에 대한 내용도 있다. 기분이 새롭다. 과거로 돌아간 듯한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융의 교육적 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교육자들에게 여러 번 아동기와 청년기의 정신발달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p.103)"했던 부분은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비단, 초, 중등교원에게만 해당되는 문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교수들의 수업 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분석하는 내용을 곁에서 본 적이 있다. 학문적 지식은 깊이가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과의 소통은 엉망이라는 것이 교육학을 전공했던 나의 생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교육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달랐다. 교육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100%는 아니지만, 사범대학 혹은 교직 이수자가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학생들과의 소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분들은 교육학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또한, 한 번쯤은 실시해봤을 성격 유형 검사(MBTI)의 모티브 격인 여덟 가지 유형에 대해서도 쉽게 작성해두었다(p.131). 검사를 통해 사람을 일반화시키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 때마다 이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너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 하는데,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달라."
융 또한, 인간의 유형을 8종으로 단순히 나눈 것은 아니다. 그의 유형학은 개인의 차이를 표현하기 위한 체계임을 잊지 말자.
오랜 시간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다. 함께 한 지 5년이 가까이 되는 아내에 대해서도 나는 잘 모른다. 지레 짐작하며 행동이 일어난 상황을 유츄하기도 하지만, 틀릴 때도 많다. 아내 역시도 나에 대해 잘 안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검사는 보조 수단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융에 따르면 정신 분석의 궁극적 목표는 정신 종합이다(p. 17). 즉, 자기실현의 달성이라는 것이다. 융이 이야기하는 외향적 사고형, 내항적 사고형, 외향적 감정형, 내향적 감정형, 외향적 감각형, 내향적 감각형, 외향적 직관형, 내향적 직관형(p. 131)이 있지만, 자기답게 해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융은 역사의 어떤 시기에는 특정한 성격 유형이 다른 성격 유형보다 호감을 얻을 때가 있다(p. 140)고 주장했다.
프로이트 식의 억압이냐, 융 식의 개성화를 통합하여 균형과 조화를 이루느냐(p.159).
프로이트 식의 소원 성취냐, 융 식의 만족하지 못하는 원인이냐(p. 161).
어쩌면, 내가 이렇게 있는 것도 프로이드, 융 등의 많은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당시 두 갈래로 심리학이 발전했다. 한 쪽은 실험실에서 자란 심리학이었고, 다른 한 쪽은 정신과 의사의 진료에서 자란 심리학인 셈이다. 최근 들어 두 심리학은 하나의 심리학으로 통합되었다(p.170). 융은 의사였으며 실천적 심리요법가(p.172)였다.
그의 생각의 유연성을 보인 문구도 있다. 심리학적 이론은 매우 번거롭다. (중략)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보조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p.173). 융이 표준이 되는 치료법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심리상담가에 종사하는 동안 8만 개 이상의 꿈을 해석한 융(p. 165)을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알 거 같다. 아니, 조금이나마 알 거 같다는 표현도 과한 거 같다. 언젠가 무의식에 대한 부분으로 한 편의 논문 아이디어가 떠올라 심리학과 종교를 탐독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이해한다고 하며 읽었는데, 지금 무슨 내용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 편의 꿈 처럼.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심리 치료법의 첫 번째 목적은 환자에게 보장이 없는 행복한 상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 인내를 갖도록 돕는 데 있다(p. 178).
p.s 심리학 전공자라면 전공 서적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접하면 좋을 듯 하다. 용어 하나 하나를 자세하게 풀이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