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10년 끊어보니까
김우태 지음 / 마음세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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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쓰기 전, '무협지'나 '만화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TV가 만화책과 무협지에 이어, '바보 생산'의 원흉이 됐지만, TV 또한 얼마 후 그 자리를 스마트폰에 넘겨 주었다. 그렇다면 만화책, 무협지, TV, 스마트폰은 정말 '바보'를 만드는 '원흉'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컨텐츠'가 '바보'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중독성'이다. 중독이란 무엇일까.

중독성은 '의존성'과 연관되어 있다. 어떤 것에 의존성이 강해지는 것을 말한다. 즉, 그 행동이나 약물, 대상에 의존하여 그것이 없으면 안 될 것 처럼, 삶이나 심리의 일부분이 소모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존성은 대체로 '쾌락'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쾌'라는 감정을 좋아한다. '쾌'는 일종의 흥분 상태다. 이런 '쾌'를 얻기 위해 보상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즉각적인 보상'이다. 우리의 뇌파에는 '감마파'가 있다. 감마파는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뇌가 발산하는 파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감마파는 쾌와 불쾌 두 상태에 모두 발생을 한다. '쾌'와 '불쾌'에 대해, 우리 뇌가 같은 반응을 하는 것이다. '행복'은 정의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행'의 반대다. 즉 어떤 반응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은 '쾌'에서 오지 않는다. 쾌는 불쾌와 같은 자극을 주기 때무이다. 엄밀히 말하면 '행복'은 잔잔하고 안정적인 상태다. 비교적 잔잔한 파동을 형성하는 '알파파'가 굳이 따지면 행복에 가깝다.

쾌와 불쾌의 파동은 어떻게 만드나. 긴장감이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이야기에 더 큰 자극을 받는다. 우리는 고통을 싫어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고통과 쾌락은 뇌에게 같은 형태를 갖고 있다. 고로 우리는 고통을 좋아한다. 우리는 좋은 것만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것을 보고 싶어하기도 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커다란 상자 속에 손을 넣어 속에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해보자. 상자 속은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보자. 그러다 '따끔'거리는 통증을 갖게 된다. 이 통증을 일으킨 대상이 분명 좋은 것일리는 없다. 다만 우리는 반드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한다. 그 불쾌한 것을 반드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호기심은 '무지'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밝음'보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어둠이 가져다주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카드 게임에서 나에게 무슨 패가 왔는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보는 것도 그것이 주는 불확실성이 우리 뇌에 감마파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불확실한 것에 '긴장'하고 '불쾌'를 느낀다. 다시 말하면, 그 불쾌의 감정은 쾌와 맥락을 같이 한다. 고로 그것은 싫으면서 좋은 감정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을 확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에 호기심을 갖고 호기심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위험한 곳일수록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살피는 것 처럼 우리는 반드시 사방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 헤매게 된다. 이처럼 어둡고 불확실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의 뉴스다. 뉴스 부정적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신문을 읽는 것은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불확실성을 확대한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난생 처음 가는 '아마존 정글'보다 자신의 방에서 훨씬 더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불확실성'이 최소화 됐기 때문이다. 다만 뉴스의 경우는 다르다. 뉴스는 수익 구조는 대체로 광고에 의존한다. '언론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클릭률'이나 '구독률'은 직접적으로 영업이익에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더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는 기사를 쓸 수 밖에 없다. 언론은 대체로 공공을 다루지만 공공기관은 아니다. 공공을 위해 일하지도 않고, 공공을 위해 이익을 내는 집단도 아니다. 언론사는 주식회다다. 조선일보를 예로들어보자. 조선일보의 2019년 매출액은 2991억원이다. 여기에 영업이익이 301억원이다. 이 회사는 방상훈 대표이사가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즉 언론사의 주인은 '개인'이며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 실제 4대 재벌광고의 3분의 1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광고한다. 8개의 신문 중 4대 재벌 광고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2014년 기준으로 한겨례 신문이었지만 그 비율도 25.1%나 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년 신문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일간 신문 매출액의 63.7%가 광고 수입이다. 구독료를 통한 수익은 전체의 15.7%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언론의 주요 고객은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며, 주인 또한 '공공'이 아니라 '개인'이다.

마케팅은 쉽게 말해 '전략'이다. 전략이란 상대의 취약점을 파고 드는 '전쟁'에서 사용하는 일이다. 다시말해 마케팅은 분석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판매이익을 올리는 일이다. 이 일은 과거에는 지면으로 있다가, 공중파로 옮겨졌고 이후에는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고로 온라인은 완전한 '마케터들의 전쟁터'다. 사슴과 토끼가 가득한 사냥터에 능력있는 마케터가 사냥꾼으로 등장하여 마구자비로 사냥한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관료적이다. 관료주의는 체계를 갖추고 규모를 키울수록 인간성이나 도덕성이 결여된다. 그것이 시스템의 비인간화다. 이런 시스템의 비인간화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악의 평범성'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주장한 개념이다. 이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홀로코스트 실무 책임자를 공개 재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주관한 인물이다. 고로 매우 사악하고 악마같아야 한다. 다만 그는 꽤 친절한 사람이었고 그저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이로 인해 '한나 아렌트'는 선한 사람들도 악의를 품지 않고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TV나 온라인은 우리를 긴장의 속으로 집어 넣고 판단성을 흐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악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스템은 그것을 그렇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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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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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그 이름에서 주는 호기심이 일었다. '박물관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일까.' 그렇지 않았다.

미제 종결된 사건의 증거품과 서류를 보관하는 곳.

그곳이 붉은 박물관이다.

붉은 박물관은 작가가 영국의 범죄 박물관인 '검은 박물관(Black Museum)에서 모티브 얻었다. 이는 앞서 말한데로 미제 사건의 자료를 수집하는 범죄자료관이다. 이곳에서 미제 사건으로 남은 여러 사건을 주인공이 추리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7살 쌍둥이 아이와 함께 산다. 유치원은 보내지 않는다. 오전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아이들이 학원을 가면 비로소 일을 한다. 이런 생활 패턴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유일한 취미 생활인 독서를 시작한다.

다만,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긴글을 읽는데 무리가 있다.

"아빠, 이거 꺼내줘."

"아빠, 나 봐봐"

"아빠, 이게 뭐야?"

장편 소설을 읽으면 한참을 읽다가, '내가 뭘 읽고 있나'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소설을 읽더라도 단편을 선호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깨지는 집중력 때문이다. 원래 장편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장편을 읽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면 '쨍그랑' 소리, 한참을 노래 부르고 침대와 소파를 뛰어다닌다. 한참을 웃는 소리와 소꿉놀이가 이어지다가, 찰라의 순간 누가, 누구에게 베개를 집어 던진다. 다시 누군가가 울고 있고, 누군가가 씩씩거리고 있다.

이런 서사가 한 시간에도 몇 번이나 벌어진다. 고로 소설보다 다이나믹한 삶이 소설의 집중을 방해할 때도 있다.

때마침 읽게 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붉은 박물관'이라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하나로 엮었다. 즉 완전히 파편적인 사건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추리하고 접근하는 인물이 동일인이다. 고로 하나의 큰 흐름에서 여러 사건을 접할 수 있다. 흐름이 살짝 끊겨도 금방 몰입할 수 있다. 소설 각각이 개별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소설은 전반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디고 하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수사1과 형사인 데라다 사토시는 현장에 기밀 서류를 두고 오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후, 증거물을 라벨링 작업하는 '붉은 박물관'으로 좌천된다. 거기에는 '사에코'라는 관장이 존재한다. 소설은 다양한 사건이 다양한 가능성으로 보여진다. 그러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범인과 등장인물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생각치 못한 전개가 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추리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 마치 끙끙 앓던 문제가 속시원하게 풀리는 것 처럼 해소된다.

그닥 가리는 것은 없지만, 도서 구매 성향을 보면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명확한 정답이 없는 삶에서 추리소설은 '정답'을 내놓는다. 거기서 주는 희열은 물론 현실에 없는 '공상'같은 것이겠지만, 그 희열을 소설은 대신 가져다 준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사건이 시원하게 풀려 버리며 모든 매듭이 매끄럽게 사라진다. 어차피 소설은 분명 현실과 같을 수 없다. 가상의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닌가. 고로 머리가 복잡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을 때는 작가가 써내려간 서술대로 의식을 맡기며 정답으로 흘러가게 한다. 쉽게 읽히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독특한 소재의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나와 같이 주의 집중을 길게 하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추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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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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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성공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장치들이 있다.

첫째, 남아공의 위험한 환경에서 태어날 것.

둘째, 아버지의 학대와 학교 폭력을 겪을 것.

셋째, 하는 일마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할 것.

이 필연적인 장치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장애물'에 가깝다. 그는 이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첫째,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이민할 것, 둘째, 학교 아버지와 거리를 둘 것. 셋째, 타인의 신경에 무신경 할 것.

이는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전기산업', 즉 현재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성공 비결과 닮았다. 일본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

둘째,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남들보다 학력이 부족한 것

셋째, 몸이 병약한 것.

이처럼 다수가 실패의 원인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때로는 누군가의 성공 비결이 되기도 한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거금을 투자한 자신의 '유조선'이 오일쇼크로 인해 항구에 정박하여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오일쇼크라는 세계적인 어려움에 '정주영' 회장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는 자신의 유조선을 개조하여 수송무역선으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송무역선은 현대의 해상 운송업을 시작하게 했다. 이것이 현대 상사의 시초다. 그것을 조금 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다. 전화위복은 그 언어만큼의 무게가 삶에 다가오지 않는다. 원래 기회란 위기와 함께 오는 것이다. 우리는 수 천 만원짜리 다이아몬드를 검정 비닐봉지에 담고 다니지 않는다. 최소한 그것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선 그에 맞는 포장을 한다. 황금은 금고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황금은 마을 회관 앞 평상 위에 놓여 있으면 안된다. 모두가 그것을 탐하고 있기에, 그것에 적당한 독극물을 묻혀 놓는다. 그것이 위기와 기회의 관계다.

일론 머스크는 다중 국적자다. 그의 국적은 이렇다. 첫째, 남아공, 둘째, 캐나다, 셋째, 미국

그의 삶을 보건데 이 국적 또한 이 남자가 성공하는데 꽤 큰 역할을 한다.

첫째,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론 머스크는 '남아공 출신'이다. 실제 그의 어린 시절은 '폭력'과 '무질서'의 경험을 쌓는다. 이런 경험은 무자비할 정도로 목표를 몰아 부치는 추진력이 된다.

둘째, 그의 어머니는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일론이 아메리카로 이민을 가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셋째, 미국. 일론 스스로가 가진 역량이 엄청난 것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일론의 삶을 보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국'이다. 일론이 '스페이스 엑스'나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내는데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배경이 엄청나다. 물론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잡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역시나 현대까지 사업가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임을 틀림 없다.

자, 앞서 말한 국가들는 어떤 누군가에게는 성공하지 못할 명분일 수 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인자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하게 하는 인자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실제 그 인자의 탓이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몫이다. 다시 말해, 칼은 의사에게 가면 사람을 살리지만, 살인마에게 가면 사람을 죽인다. 그것은 칼의 역할이 아니다. 사용자의 역할이다.

일론의 삶을 보면 이미 지나간 과거를 이미 들여다 본 사람처럼 움직인다. 마치 인터넷이 세상에 등장할 것 처럼 준비하고, 전기차와 우주산업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아마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의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듯 하다. 누구에게나 '결과편향'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합리화하길 좋아한다. 이 합리화는 좋은 쪽으로 작동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누군가는 행동하지 않을 이유라고 여기고, 누군가에게는 행동할 이유라고 여긴다.

일론은 일단 자신의 신념을 밀어 붙이고 그 명분을 합리화 할 다양한 이유를 찾아 붙인다. 그 확신인 오아시스를 찾아 다니는 열망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이 한 일에 강한 확신을 불러 일으키는 자세가 어떤 인자도 좋은 게 사용되리라 생각하는 사고 방식을 닮았다. 일론 머스크의 삶은 어떤 영화보다 흥미롭고 재밌다. 그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며, 그의 삶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 흘러가는 지금의 이 시대가 그의 일생과 함께 다음 세대에 어떻게 비춰질지를 생각해본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삶도 분명, 닮은 방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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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방에 아무나 들이지 마라 - 불편한 사람들을 끊어내는 문단속의 기술
스튜어트 에머리 외 지음, 신봉아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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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 따르면 개인의 행동은 사회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들러는 개인 행동이 주변과 상호 작용하며 만들어진다고 봤다. 즉, 개인은 타인과의 관계, 가족 구조,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다. 즉 주변을 보면 스스로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주변 인물의 평균이다. 다시말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주변이 어떤 인물로 채워져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 주변이라는 것은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 거리를 말한다. 즉 나의 머릿속에 채워져 있는 인물, 그 인물들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시간이 흐른다고 기억이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신경생물학자 제프리 존슨에 따르면 사람은 특정 기억을 떠올리지 못해도, 뇌는 그 기억을 간직한다. 기억은 삭제되지 않고 해체되어 무의식의 일부로 녹아 들어가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억은 정확한 형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소화기관에 들어간 음식이 음식물 형태로 보관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기억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어 소화된다. 즉, 기억은 기억이 되기도 하고 감정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무의식에 쌓여 있으면 그것은 또다른 행동을 만들어낸다. 그 또다른 행동은 다시 비슷한 상황과 사람을 불러 들인다. 비슷한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만든다. 즉 다시 말해 우리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누군가에 대해 파악해 내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 환경 속에 갇히고 만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기억은 들어오는 '문'이 하나이고 나가는 '문'이 없는 방과 닮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들어오는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의 역할과 이미 안으로 들어온 이를 관리하는 관리자의 역할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들어온 기억은 반드시 소화된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삼킨 음식이 반드시 소화되는 것과 닮았다. 그것은 반드시 소화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몸속에 들어와 소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우리가 정한다. 어떤 누군가는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도 늘씬하고, 어떤 누군가는 아무리 건강한 음식을 먹어도 건강하지 않다. 이는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관리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누군가는 꾸준한 운동을 통해 들어온 음식을 소화한다. 다시 누군가는 그것을 소비하지 않고 축적하여 내장지방으로 변환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음식'을 탓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미 들어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가 중요하다.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좋은 것으로 가득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된다. 갑자기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튀어나온 정치인을 알게 되기도 하고 인터넷 방송인을 알게 되기도 한다.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강사, 친구 등도 나의 방에 느닺없이 들어온다. 문지기가 그것을 막아낼 여력이 없을 정도다. 이미 받아들여진 그를 우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호모 사피엔스 수십 만 년 전, 겪었던 환경 변화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십 만 년 전, 사피엔스는 말 그래도 자연환경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그들은 기후가 어떻게 변화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 이는 지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생겨난 배경과 닮았다. 강수량에 따라, 인간의 거주환경은 바귀었다. 강수량이 많을수록 지붕의 처마가 길게 나왔다. 강설량이 높을수록 눈이 쌓이지 않도록 지붕은 뽀족하게 높게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어떤 지역은 물이 풍부하여 벼농사를 짓고, 어떤 지역은 물이 부족하여 낙농업에 유리했다. 어떤 지역은 물이 아주 부족했기 때문에 물을 하루에 20리터나 먹는 '돼지'를 먹지 못하게 했고, 어떤 지역은 물이 아주 풍족했기 때문에, 수확량이 늘어서 운반을 도와줄 '소'를 먹지 못하게 했다. 환경은 문화를 만들었다. 이 문화는 다시 '사회'가 됐다. 이제 인간은 '자연환경'이 아니라 '사회환경'에 따르 영향을 받는다. 인간과 환경은 서로 '장군'하면 '멍군'하고 서로 그 변화와 변화를 주고 받는다. 이 과정에서 어떤 누군가는 조금 더 성공과 성장에 유리하게 바뀌고, 어떤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 '총균쇠'를 보면 인간 문명은 '지리적 위치'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애초에 환경에 따른 변화가 인간 문명 발전 속도를 다르게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환경'의 변화도 인간을 크게 다르게 한다. 우리 주변을 어떤 인간으로 채워나가야 하는가.

앞서 말한대로, 우리는 우리 주변인의 평균이다. 이 평균은 '물리적 위치'의 영향보다는 '심리적 위치'의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나의 아파트 옆 동의 누군가가 아니라, 전화상으로 연락하고 있는 누군가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러다면 어떻게 우리의 사회적 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나의 주변인물을 확장 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채팅이나 커뮤니티도 괜찮다. 다만 주변 인물을 확장시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검증'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검증하고 확인이 필요하다. 어떤 인물이던 그는 한번 들어오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증된 누군가를 신중하게 초대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독서'를 해야 한다. 거기에서 검증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며, 그의 심리를 가장 공감할 수 있다. 고로 최근 읽은 책의 저자가 나의 주변이 된다. 고로 최근 읽은 책은 나의 평균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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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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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소수는 다수를 움직일 방법을 고민했다. 어떻게 더 쉽고 효과적으로 다수를 움직일 것인가. 그것은 고대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고심했다. 소수가 다수를 다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도구는 '언어'다. 개중 '문자'이다. '문자'는 소수가 작성하고 '다수'가 이용한다. 말하는 이는 소수고 듣는 이는 다수다. 이런 비대칭은 소수의에 권력의 집중을 만든다. 집중된 권력은 다수를 위한 듯 소수를 위해 작동한다. '대화'는 대면을 원칙으로 한다.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쌍방으로 의견을 주고 받는다. 다만 문자는 다르다. 문자는 말하는 소수와 듣는 다수가 존재한다. 소통은 없다. 그런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책을 읽기보다는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정치적인 주장을 직접적으로 펼치지는 않았다. 다만, 시민의 정치 참여 결정을 독려했다. 그의 토론 방식은 당대 민주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검토하는데 사용했으나 그의 철학 자체가 민주주의 사상과 관련 깊다. 반면 플라톤은 아니다. 플라톤은 '독서'와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결국 이것은 그의 이상향인 '엘레트주의'와 닮았다. 고로 '글'을 다룬다는 것은 '소수'가 권력을 가지고 '다수'를 이끌어간다는 것을 닮았다. 문자는 곧 '권력'을 상징한다.

조선 초기, 대왕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 백성들의 계몽을 두려워 했던, 사대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은 문자가 어려워 소수에게 그 권력이 집중되기를 바랬다. 조선과 같이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일수록, 권력의 집중은 필수적이다. 당시 시기에 따르면 한글은 권력의 분산을 의미하며 그것은 소수의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다루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조지 오웰의 '1984'에는 '신어'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그 비중은 적지 않다. '신어'는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대체가능한 어휘만을 남긴다. 그것은 우민화를 닮았다. 사람은 어휘만큼 생각할 수 있다. 표현 방법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으로 사상까지 지배할 수 있다. 사용 언어를 제어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사상을 제어하는 일과 닮았다.

독재국가는 대체로 '우민화 정책'을 최우선한다. 이는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비판적 사고를 못하는 다수는 다루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양날의 검이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 언어를 제어하면 정치는 '역사'를 만들어내거나 조작할 수 있다. 생각을 움직일 수도 있다. 실제 역사란 '기록'에 의존한다. 과거부터 '역사'는 굉장히 정치적으로 활용됐다. 기본적인 역사를 아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통합된 하나의 역사를 필수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사는 대외적으로 적을 만들어 내부를 결집 시키는 매우 좋은 수단이다. 또한 내부적인 결집의 명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전혀 상관 없는 이들과 유대감을 갖는다. 다수가 하나처럼 결집하면 다루기 쉽다. 대체로 독재 정권은 역사, 언어, 정치선전을 통해 대중을 상대했다.

현재 창원시 정도의 인구 밖에 되지 않던 포르투칼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하여 패권국으로 거듭났다. 역사에서 소수가 다수를 장악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던 시절도 따지고보면 '여진'과 '몽골'의 지배 시기다. 이들 지배층의 인구는 기껏 해봐야 100만이 되지 않는다. 1616년 부터 1912년까지 3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구 50만에 불과한 여진은 1억 5천명의 한족을 통치했다. 한족은 1115년에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우고 청이 멸할 때까지인 737년 간, 248년을 제외하면 585년 동안 이민족 통치를 받는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이 역사적 현상은 고대, 중세, 근대, 심지어 현대에서도 있다. 고로 인간의 기술은 단순히 땅을 달리고 하늘 위를 날아가는 곳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다수를 다루는 방법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대표적인 기술이라면 '선동'과 '세뇌'를 들 수 있다. 선동과 세뇌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사고 방식을 앗아간다. 전세계 인구의 0.2%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대인은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3% 배출했다. 특히 노벨경제학상의 65%가 유대인이다. 심지어 미국 아이비리그 교수의 30%도 유대인이며, 미국 대법관의 30% 또한 유대인이다. 이처럼 유대인이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게 된 이유에는 '문자'를 다루는 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유대인은 꽤 종교적인 민족이다. 그들은 아주 오랜 시절부터 율법과 성경 교육을 중요시 했다. '조지프 헨릭'의 저서 '위어드'에 따르면 고대부터 중세까지 유대인의 문맹률은 매우 낮았다. 이유는 그들의 교육 체계 때문이다. 유대 사회는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이유는 성경의 구약에 대한 교육이 이유가 됐다. 유대인은 종교적인 이유로 문자를 다뤘다. 비록 그것의 목적이 신앙심 강화와 윤리 규범을 정립하는 목적일 지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문맹률을 낮추는데 크게 기어했다. 그들은 율법 교육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글과 알파벳 습득을 하도록 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교육을 받는다. 그들의 등장인물과 다양한 서사가 있는 '성경 구약'은 그들의 문해력을 크게 향상 시켰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은 과거부터 다루기 힘든 민족이었다. 그들은 통제에서 항상 벗어나길 원했다. 이런 모습은 나쁘게 보기에는 '통제불능'이지만 좋게 보기에 따라 '주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국민이 우둔하면 통제하기 쉽다. 통제하기 쉽다는 것은 이용하기 쉽다는 의미다. 그래야 소수가 그들을 다루기 수월하다. 과거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은 북한과 더불어 대표적인 독재국가였다. 당시 절대 권력자였던 '니야조프'는 국민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남학생을 일찍부터 징집하여 군대 인구를 늘렸다. 그 연령은 꽤 낮아져서 고등학교 2학년 부터 징병이 시작됐다. 이것은 교육의 기회를 앗아간다. 이어 그는 박사와 유학생을 추방하고 도서관과 학교를 폐쇄시켰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은 '통치'의 기본이다. 신문 기사나 뉴스 기사를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했고, 더 쉽고 빠르고 간단한 표어로 사람들은 선동하고 세뇌해야 했다.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 내부 결집을 이용해야 했고 그런 이유로 외부에 적을 만들었다. 외부의 적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는 때로는 외부의 적과 싸우기 위해서도 있지만,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결집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고 정치 행동을 하게 되면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다면 깨달아보자. 지배를 당할 것인가. 혹은 지배를 할 것인가. 설령 지배하지 않더라도 '자유'는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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