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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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와 '기욤뮈소'를 좋아한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글이 쉽고 빨리 읽힌다. 두께에 비해 빨리 넘어가는 탓에 긴장감과 몰입감은 한층 더해진다.

다들 '독서'에 입문하게 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의 경우는 '추리소설'이다. '책'이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은 '추리소설'을 접하고 완전히 달라졌다. 게임이나 TV, 영화에 몰입하듯 소설에 잔뜩 몰입하고 보면 다른 매체와는 아주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 한번의 몰입의 경험은 몹시 중요하다. 고로 지금도 나는 '책'에 가깝지 않은 이들에게 '추리소설'을 추천하곤 한다. 너무 어렵거나 쉽다면 책에 대한 흥미가 다시 사라질지 모른다. 고로 여기에 꽤 적절한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와 '기욤뮈소'라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남부다. 이탈리아에 30억 유로 상속녀가 요트에서 공격 당하고 사망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자, 어떤 이야기인지 읽어 볼까'

소설을 집어들고 너무 빠른 급전개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꽤 캐릭터 형성을 하고 살인이 벌어져야 하지 않나. 그러나 '미로속아이'는 일단 사건이 벌어지고 점차 흐렸던 안개를 헤쳐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해당 사건이 벌어지고 1년이 지나 남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 근거가 황당하게도 1년 전 살해 도구다.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책을 읽고 있는 독자와 의심을 받고 있는 소설속 용의자도 같은 생각을 한다. 이를 추리해 나가는 경찰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살해 도구를 1년이나 지나서 그것도 너무 허술하게...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역시 '반전'이다. 반전 없이 스릴을 만들어내는 스릴러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의 추리 소설은 '반전'을 가지고 있다. 작가가 숨겨놓은 단서를 찾고자 끊임없이 의심해가며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소설은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러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초리소설을 읽기 전에는 완전한 준비를 하는 편이다. 대체로 한자리에서 읽어야하고 스마트폰이나 스마트기기는 모두 꺼둔다. 가장 좋아하는 음료를 미리 준비해 놓고 화장실도 먼저 다녀온다.

그만큼 추리소설에 진심인 편이다.

특히 잠들기 전에 읽으면 어쩐지 몰입감은 극에 달한다. 사실 자기 전에는 잘 읽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유는 자기 전에 '추리소설'을 펴면 대체로 거의 밤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런 소설은 '속도감'과 '몰입감'이 생명인데 나의 경우는 책을 읽다가 자고나면 머리가 정화가 되는 느낌이 들어 다시 몰입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다.

소설의 특성상 '스포'가 될 법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몹시 아쉽다. 다만 분명히 실패하지 않는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두고 싶다.

개인적으로 꽤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는 '책' 번역과 '구성'이다. 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활자나 옮겨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책은 말대로 추리소설 답다. 단순히 활자가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그림과 설명이 충분히 들어가고 지도나 그밖에 다양한 단서들도 있다.

그 심경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말투, 필요시 변형된 폰트와 글자 크기, 친절하고 딱맞는 '번역', 거기에 들어가는 페이지마다 짧게 소개되는 명언들까지.

'밝은세상' 출판사의 에디터들과 번역가가 꽤 소설에 진심이구나,가 절로 느껴진다.

하나 둘,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가 과연 범인일까. 그것을 추리해 가는 과정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와 그 속을 엿보는 묘한 기분까지.

예기치못한 일정 때문에 잠시 쉬어 읽었다는 것을 빼면 딱! 앉은 자리에서 두 호흡에 모두 읽어 버린 책이다. 아마 이 글을 다 쓰고나서 다시 첫페이지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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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기원 - 우리의 뇌 그리고 AI를 만든 다섯 번의 혁신
맥스 베넷 지음, 김성훈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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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을 생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좌우대칭동물과 방사대칭동물이다. 말그대로다. 앞뒤가 없이 중심축을 따라 약쪽으로 비슷한 신체가 바열되어 있는 동물이 방사대칭동물이다. 또한 입, 뇌, 눈과 귀와 같이 주요 감각기관이 앞부분에 몰려 있고 배설 기관이 뒷부분에 있는 것이 좌우대칭동물이다.

우리 인간과 같이 대부분의 동물은 좌우대칭동물이지만 산호나 말미잘, 해파리와 같은 동물은 방사대칭동물이 된다. 이 둘은 크게 6억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가 5억 5천만년 전 살았던 단일 공통조상에 의해 분리되어 나왔다. 오늘날 방사대칭동물은 전체 동물의 1%, 좌우대칭동물은 천제 동물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진화가 이렇게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방사대칭동물에게는 구멍이 하나가 있다. 이들은 먹이를 입으로 먹고 다시 먹었던 입으로 배설을 한다. 반면 좌우대칭동물은 입으로 먹이를 밀어넣고 엉덩이로 배설을 밀어낸다. 즉 방사대칭에서좌우 대칭으로 변한 이유는 먹이를 탐색하며 이동하기 위해서는 먹이의 위치를 감지해낼 수 있는 감각기관이 앞쪽에 존재해야 한다. 즉 좌우 대칭은 운동방향을 단순화 하여 기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인간이 개발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학은 이런 생물학적인 장점을 따르고 있다. 자동차, 비행기, 배, 잠수함 등 인간이 만든 모든 탐색용 기계의 구조는 앞과 뒤가 존재하며 조종을 통해 탐색하고 이동하기 위해서 그렇다.

공학자들이 모두 이런 진화의 매커니즘을 모방하고 기계를 만들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로봇'을 만들어낼 때, 시작과 동시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어내는 것은 논리에 적절치 않다.

수 억년의 생물 진화가 가졌던 다양한 실행착오가 어떤 의미에서 '공학'의 오답노트인 셈이다. 초기 좌우대칭동물은 '시각'을 이용하여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앞을 보지 못했는데 고로 그냥 무작위로 돌아다니다가 부딪치며 길을 찾아다녔다. 이들은 먹이를 향해 직선으로 나가지 않고 원을 그리며 다가간다. 이들이 먹이를 찾는 방법은 '시각'이 아니라 '후각'이나 '촉각'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후각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냄새가 짙어지면 앞으로 나아간다.

2. 냄새가 옅어지면 방향을 바꾼다.

이와 같은 매커니즘은 '조종'의 혁신이었다. 1990년 브록스는 아이로봇이라는 로봇회사를 공동창업했다. 2002년 이 회사는 진공청소기 '룸바'를 출시 했는데, '룸바'는 집안을 스스로 탐색하고 다니며 청소하는 로봇청소기였다. 이 최초의 로봇청소기는 '좌우대칭동물'을 닮았다. 이들은 무작위로 이동을 하다가 벽에 부딪친다거나 충전 스테이션에 가까워 진다는 정도의 감각만 존재했다.

로봇은 무작위로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부딪치면 피하고 충전이 부족하면 충전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이들의 센서는 대체로 앞부분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동을 위해 감각기관이 앞으로 향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후각'과 '촉각'을 이용하여 먹이를 발견하고 이동해 나가는 것이 초기 선충의 이동방식을 많이 닮았다. 냄새의 농도가 짙어지면 먹이가 가까워진다. 즉 선충은 먹이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신경 세포를 머리 방향에 배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감각기관은 여럿으로 구분되어야 했다. 첫째, 방향 전환을 위해 체계, 자극을 감지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하는 체계, 내적 상태를 바탕으로 운동 능력을 조절하는 체계, 입력 신호를 종합하여 단일 결정할 수 있는 체계.

이렇게 초기 좌우 대칭동물은 '뇌'라는 '세포집단'을 머리에 배치하게 됐고 이것을 통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고 '방전'과 '충전'의 상태를 구별하는 '최초의 '감정'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감정은 여러 화학물질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것들은 '신경전달물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신경전달물질은 최초의 선충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발견하여 '먹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했다.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은 '도파민'이 있다. '도파민'은 흔히 '쾌락의 화학물질'이라 불려지지만 그렇지 않다. 도파민은 '좋아함'이 아니라 '원함'에 반응한다. 즉 쾌락 신호가 아니라 앞으로 느낄 쾌락이 예상될 때 나오는 신호다.

도파민은 먹이가 가까이 있지만 먹지 못할 때 분비한다. 즉 우리의 뇌가 도파민 중독 상태에 빠지는 이유도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느낄 쾌락에 대한 '원함' 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파민은 '먹이'에 대한 갈구를 높인다.

또한 '선충'은 세상을 돌아다니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한다. 또한 일부 스트레스 반응이 생겼을 때, 자신의 신체를 회복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렇게 생물은 일전 스트레스 반응에 대해 '완화'와 '회복'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이 '세로토닌'과 '도파민'이다. 이 둘은 부정적 감정에 대해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외부적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인간도 역시 회복력을 위해 최대한의 식사량과 최소한의 운동량을 갖고자 한다. 이렇게 스트레스는 인간에게 폭식을 유도시킨다. 이렇게 세로토닌은 포만감과 안정감을 준다. 이런 세로토닌이 지나치게 분비되면 이후 '무감각'한 상태에 빠진다. 더이상 탈출할수 없는 스트레스 요인에서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비결이다. 이후 동물은 더이상 스트레스 요인에 도 좋은 먹이, 짝짓기 대상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 상태'에 빠진다.

이런 생물이 진화과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첫째는 바로 '학습'이다. 로봇청소기는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다만 생물은 여럿의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진화를 해왔다. 둘째는 패턴 인식이다. 생물은 냄새분자의 배열을 통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해 내야 한다. 분자배열에 대한 패턴을 인식함으로써 '포식자'와 '먹이'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 인공지능은 대체로 '알고리즘'이나 '딥러닝'을 통해 이 초기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여진다. 인간의 지능을 넘어 AI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뇌가 생각을 위해 존재한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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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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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청소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 '김완 작가'는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그의 직업은 자살한 사람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일이다. 매 38분마다 한 명씩 자살로 목숨을 잃는 나라에서 '특수 청소'에 대해 큰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는 것이 꽤 이상할 정도다. '김완 작가'의 책에는 특수청소를 하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꽤 인상 깊은 이야기라면 자기 죽음에 드는 가격을 알아보기 위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기가 죽고나면 그 청소 비용이 대략 얼마가 드는지 알고자 했던 사람의 인생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을까.

김완 작가에 따르면 비슷한 문의는 적지 않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떠났다. 아이러니이다.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포기하며 죽음에 책임을 지는 모습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선택하는 다수에게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밀려 있는 전기요금이라던지, 기타 독촉장이 그렇다.

법원의 어떤 독촉은 채무자의 사망을 확인하고 상속자를 찾는다. 이런 이유로 자살하는 이들의 주변인 심지어 가족마저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상속포기를 하고 나면 법은 독촉 절차 중지에 들어간다.

모든 이들이 외면할 때, 최후까지 그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이들이 '채권자'라는 사실은 꽤 씁쓸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나.

스탈린은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우리는 매순간 일어나는 비극에 대해 무관심하다. 단순히 그것은 '통계'와 '숫자'라고 여긴다.

죽음에 대해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있는가. '죽음'이라는 사건은 개인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떤 개인이라도 '죽음'은 '전지구적 종말'과 같은 끝을 말하며 그가 구축했던 모든 세계와 과거, 현재, 미래가 무너지는 일이다. 이런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살까.

산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언급 자체를 불경한 일로 여긴다. 독특하게도 대한민국에는 매1분 30초마다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많은 죽음은 꽤 우리와 격리되어 결국 남의 일이다. 그 비극이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모든 죽음의 서사가 안타깝다.

수필은 쓰여진지 꽤 오래된 듯하다. 어째서 이 책을 지금에와서 읽게 됐는지 아이러니하다. 글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진다.

'이완 작가'는 자신의 직업을 두고, 타인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의 직업은 '철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죽음'을 떼어 낼 수 없다. 그가 바라보는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철학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기도 하다. 죽은 이들이 남기곤 흔적은 '지독한 악취'와 '기름', 혈흔'처럼 현실적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매스컴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아름답게만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구보다 '삶'에 직결되어 있어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고 읽게 됐다. 문장이 얼마나 좋은지 직업이 '글쓰는 사람'인가. 했더니, 실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직업에 대한 철학적 깊이도 간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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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로 대학 가다 - 세계적 명문대에 진학한 남매와 제자들의 확실한 성공 비결
이미영 지음 / 학지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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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시절 '교수'가 '한 아시아 국가'의 예를 들었다.

'어떤 아시아 국가'는 아이들이 무려 밤 9시까지 강제적으로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오류와 하나의 진실이 있었는데, 첫번째 오류는 그것의 이름이 '강제 학습'이 아니라 '자율 학습'이라는 사실이고, 두 번째 오류는 학습 종료 시간이 11시였다는 점이다. 하나의 진실이라면 그 나라가 '어떤 아시아 국가, 즉 대한민국'이겠다.

기억에 오류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야간 자율 학습은 굉장히 자유로웠다. 학교 입장에서 그랬다. 학교는 자율적으로 아이들의 학습을 강제했다. 당시 야자를 쉬기 위해선, '사유서' 같은 것이 필요했다. '병원'이나 '학원 등록'이 아니면 특별히 제외되는 경우는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아침 일곱 시에는 교실 스피커에서 '영어듣기'가 흘러 나왔다. 아이들은 0교시, 1교시, 2교시부터 시작했다. 점심을 학교에서 먹고 놀랍게도 저녁도 학교에서 먹었다. 방학에는 점심을 사먹어야 했는데, 밖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을 먹거나 자장면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저녁 7시에는 아이들이 모두 모여 TV시청을한다. EBS 시청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 이뤄졌다. 선생님은 그 시간에 TV를 보지 않고 자습을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것이 끝나면 1차 야간자율이 9시, 2차 야간자율이 11시에 끝났다.

벌써 20년이나 지난 이야기라 기억이 왜곡 됐을 수도 있다.

방학이 되면 한 주가 지나고 아이들 모두가 다시 교실로 모여 있었다. 학교는 방학 보충을 했는데 보통 5시에 끝났다. 당시 토요일은 놀랍게도 휴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강의실에서 '어느 아시아 국가'의 이야기가 전설 속 '용'처럼 그려졌다.

유학시절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네에서 꽤 유명한 '여학교'였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문대를 보내는 학교였다. 그 놀라운 성취보다 놀라운 것은 내가 그 학교를 청소하던 시간이 오후 3시 30분이었다는 점이다.

청소를 하러 학교에가면 선생님은 교무실에 앉아 있었지만, 학생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금 일찍 도착하면 하교하는 학생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 학교의 하교시간은 3시 15분이다.

인기 학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학창시절 Fail만 면해도 이름있는 대학을 진학할 수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으로 편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걸 보면 어떤 의미에서 '회의감'이든다. 해외에서 오래 살았던 교포는 모두가 열심히 살아서 그저 그런 대학교에 입학하고 그냥 회사원이 된다고 말했다. 모두가 입시의 패배감을 갖고 있고 그 열등감 속에서도 일부의 동경을 찾아내는 분위기라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학력'은 꼬리표와 같다. 'ㅇㅇ 대학 출신'이라는 간판만 내밀어도 상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내려진다. 대략 수능에서는 몇점을 받았을 것이고, 학창시절 반에서는 몇등 정도 했을 것이고, 대략 수업 시간의 태도는 어땠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그림이 완성된다. 때로는 그것으로 사람의 신뢰도를 평가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에 IB 교육을 하고 있는 이미영 작가와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됐다. 아주 간접적이지만 꽤 접점이 있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차로 15분거리에 '표선고등학교'가 있었고 '표선고등학교'는 IB교육을 하고고 있다. 이 학교가 IB교육을 처음 하던 초기에 일부 학생들을 지도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인연도 뿐 아니라 IB교육은 돌이켜 보건데 내가 받은 교육과 커리큘럼이 거의 같다. 또 싱가포르라면 내가 '제주 감귤 수출'을 했던 곳이다.

'바이어'를 만나 '페어프라이스' 본사에서 '회의'를 진행했고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 혹은 기타 비즈니스를 위해 몇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이미영 작가'와 내적 친밀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그 뿐만 아니다. '책'이라는 접점도 있다. 작가 본래 한국에서 '입시 국어'를 가르쳤던 경력이 있다고 한다. 자신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독서'의 중요성을 꽤 강조한다. 이런 저런 면을 볼 때, 내적 친밀감은 더 높아졌다.

실제 어떤 교육이던 독서가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정을 이야기 하자면 인류역사서 만큼의 분량이 될만한 이유로 나는 10년간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실적인 문제에 꽤 정신없이 살다보니 겪었던 교육과 철학이 꽤 '한국적'으로 바뀌었다는 인지를 했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을 '아, 그렇지', '그랬었지', '그게 맞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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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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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공유하면 꽤 사소한 부분에서 부딪칠 때가 있다. 오죽하면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면 반드시 싸우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을까. 표면적으로 볼 때, 문제가 아니던 일들이 공유된 공간을 사용하면서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실제 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양발 벗는 방법이나, 치약 짜는 방법 같은 사소한 문제로 싸움이 된다.

탕비실은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갈등을 볼 수 있다. 모두 작지만 그럴뜻한 이해관계가 있다. 이런 충돌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나타난다.

과거 해외에서 일할 때, 회사에서 집을 제공해 준 적이 있었다. 창업 초기라 사장, 부사장과 함께 거주했다. 당시 주급은 과도한 편이었다. 돈을 벌어도 쓸 곳이 없어 돈이 모였다. '뉴질랜드'는 '휘태커스'라는 초콜릿이 유명하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이었는데 주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구매가 그 초콜릿을사는 것이었다.

당시는 초콜릿 중독 상태였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주급을 받으면 '카운트다운'이라는 대형마트로 가서 진열대의 모든 초콜릿을 사왔다. 건강 문제가 없다면 매끼니를 휘태커스 초콜릿으로 바꿔 먹고 싶었다. 실제로 초콜릿은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조각씩 먹었다. 오죽하면 직원들이 내가 지나갈 때마다 초콜릿 향이 난다고 할 정도였다.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이유로 매주 초콜릿을 사면 집 중앙에 위치한 부엌 테이블 위에 초콜릿을 한가득 쌓아 놓았다. 이유는 함께 사는 '사장'과 '부사장'을 위한 배려였다. 혼자 먹는 것보다 나눠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나이는 스물 세살이었다. 사장과 부사장은 각각 스물 셋, 스물 넷의 어린 나이였다. 고로 그들 또한 그 초콜릿을 좋아할 것은 분명하다고 여겼다.

한참 시간이 흘렀고 언젠가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그때 '초콜릿'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에는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는데, 내가 배려한답시고 매주 올려 놓던 초콜릿을 상대는 처리해야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호의다. 고양이를 키우다보면 간혹 고양이가 애정표현으로 '쥐 한마리'를 잡아 온다고 한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최고의 애정표현이란다. 당시 나와 거주하던 이들은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매주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초콜릿은 다시보면 고양이의 쥐와 같은 꼴이었다. 그들은 치워도 치워도 계속 올라오는 초콜릿을 처리하기 급급했다. 당시 그 초콜릿은 굉장히 고가였는데, 상대는 이를 방에 쌓아 놓고 때로는 직원들에게 선물 주거나 먹다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때부터 깨달은 바는, 누구나 좋아한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은 너무나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탕비실은 '커피 마시거나 간단한 끼니을 해결하는 공용 공간이다. 수 만년 전 사냥이라는 협업을 통해 모인 다수의 공동체처럼 '먹이'라는 접점을 위해 모인 다양한 이해관계의 사냥꾼과 같다. 고로 모두가 공동의 목적을 향해 서있는 듯하면서 '동상이몽'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평범한 공간은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이 부딪치는 갈등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다섯명이 지목된다. 그들은 리얼리티 쇼 '탕비실'이라는 기이한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다. 출연진들은 각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누군가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섯의 캐릭터는 꽤 흔한 유형이다. 공용 얼음 틀에 커피나 콜라를 얼리는 사람, 인기 있는 커피믹스만 몽땅 가져가는 사람, 전자레인지에 코드를 뽑고 충전을 하는 사람, 씻지 않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사람,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물통 옆에 쌓아 놓는 사람.

얼핏 듣기에 정말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유형들이다. 다만 그들의 내면을 보면 나의 '초콜릿'처럼 각자 자신만의 논리와 이유가 존재한다. 어떤 경우는 다른 이들을 위한 희생인 경우도 있다. 즉 '선행'이라는 것도 상대에 대한 공감능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악행'이 되기도 한다. 고로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히어로'이면서 누군가에게 '빌런'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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