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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평점 :
공간을 공유하면 꽤 사소한 부분에서 부딪칠 때가 있다. 오죽하면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면 반드시 싸우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을까. 표면적으로 볼 때, 문제가 아니던 일들이 공유된 공간을 사용하면서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실제 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양발 벗는 방법이나, 치약 짜는 방법 같은 사소한 문제로 싸움이 된다.
탕비실은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갈등을 볼 수 있다. 모두 작지만 그럴뜻한 이해관계가 있다. 이런 충돌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나타난다.
과거 해외에서 일할 때, 회사에서 집을 제공해 준 적이 있었다. 창업 초기라 사장, 부사장과 함께 거주했다. 당시 주급은 과도한 편이었다. 돈을 벌어도 쓸 곳이 없어 돈이 모였다. '뉴질랜드'는 '휘태커스'라는 초콜릿이 유명하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이었는데 주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구매가 그 초콜릿을사는 것이었다.
당시는 초콜릿 중독 상태였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주급을 받으면 '카운트다운'이라는 대형마트로 가서 진열대의 모든 초콜릿을 사왔다. 건강 문제가 없다면 매끼니를 휘태커스 초콜릿으로 바꿔 먹고 싶었다. 실제로 초콜릿은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조각씩 먹었다. 오죽하면 직원들이 내가 지나갈 때마다 초콜릿 향이 난다고 할 정도였다.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이유로 매주 초콜릿을 사면 집 중앙에 위치한 부엌 테이블 위에 초콜릿을 한가득 쌓아 놓았다. 이유는 함께 사는 '사장'과 '부사장'을 위한 배려였다. 혼자 먹는 것보다 나눠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나이는 스물 세살이었다. 사장과 부사장은 각각 스물 셋, 스물 넷의 어린 나이였다. 고로 그들 또한 그 초콜릿을 좋아할 것은 분명하다고 여겼다.
한참 시간이 흘렀고 언젠가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그때 '초콜릿'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에는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는데, 내가 배려한답시고 매주 올려 놓던 초콜릿을 상대는 처리해야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호의다. 고양이를 키우다보면 간혹 고양이가 애정표현으로 '쥐 한마리'를 잡아 온다고 한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최고의 애정표현이란다. 당시 나와 거주하던 이들은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매주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초콜릿은 다시보면 고양이의 쥐와 같은 꼴이었다. 그들은 치워도 치워도 계속 올라오는 초콜릿을 처리하기 급급했다. 당시 그 초콜릿은 굉장히 고가였는데, 상대는 이를 방에 쌓아 놓고 때로는 직원들에게 선물 주거나 먹다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때부터 깨달은 바는, 누구나 좋아한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은 너무나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탕비실은 '커피 마시거나 간단한 끼니을 해결하는 공용 공간이다. 수 만년 전 사냥이라는 협업을 통해 모인 다수의 공동체처럼 '먹이'라는 접점을 위해 모인 다양한 이해관계의 사냥꾼과 같다. 고로 모두가 공동의 목적을 향해 서있는 듯하면서 '동상이몽'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평범한 공간은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이 부딪치는 갈등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다섯명이 지목된다. 그들은 리얼리티 쇼 '탕비실'이라는 기이한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다. 출연진들은 각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누군가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섯의 캐릭터는 꽤 흔한 유형이다. 공용 얼음 틀에 커피나 콜라를 얼리는 사람, 인기 있는 커피믹스만 몽땅 가져가는 사람, 전자레인지에 코드를 뽑고 충전을 하는 사람, 씻지 않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사람,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물통 옆에 쌓아 놓는 사람.
얼핏 듣기에 정말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유형들이다. 다만 그들의 내면을 보면 나의 '초콜릿'처럼 각자 자신만의 논리와 이유가 존재한다. 어떤 경우는 다른 이들을 위한 희생인 경우도 있다. 즉 '선행'이라는 것도 상대에 대한 공감능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악행'이 되기도 한다. 고로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히어로'이면서 누군가에게 '빌런'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