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다카다 아키 엮음, 이진아 옮김 / 베가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그 속에서 코로나는 어떻게 움직였고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나. 2019년 이전의 질서가 끝났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여길지 모른다. 다만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미래는 '뉴노멀의 시대' 즉, 새로운 표준이 자리잡는 시대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양말'을 신지 않고 남의 집 방바닥을 누비는 것과 같다. 마스크는 '의약품'이 아니라 '의류'로 자리했다.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디자인과 색을 고르고 바지 치수를 파악하듯 마스크 사이즈를 알아야 한다. 14세기 유럽에는 흑사병이 유행했다. 당시 영국 귀족들은 재채기 할 때, 꺼내 쓸 수 있게 왼쪽 가슴 호주머니에 천이나 면 등 가벼운 원단을 넣고 다녔는데 이 '행커치프'는 현재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없던 문화가 생기고 그것이 '노멀'로 자리를 잡는 새로운 '뉴노멀 시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매일 그날의 날씨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코로나 감염자 및 사망자 통계'는 조간 신문처럼 전국민에게 문자 배송된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거나 하루를 시작하는 간단한 인사처럼 '확진자 통계'는 '숫자' 이상의 문화로 자리잡는다. '오는 날씨 좋네요' 처럼 '오늘도 확진자 많네요'가 일상 인사처럼 굳어지는 시대. '밥 먹었어?'나 '좋은 아침'처럼 우리의 인사도 점차 뉴노멀로 변해간다. 과인 연결은 이 문화적 변화와 확산을 빠르게 한다. 사람과 바이러스의 연결, 국가와 국가의 연결, 타인과의 연결 등 복잡하게 다중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의 연결 고리를 통로 삼아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염 확산' 뿐만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확산'을 일으킨다.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문제'는 '흑과 백'의 문제였다. 물론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도 없지 않으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흑인에 대한 차별을 떠올린다. 다만 팬데믹에 의해 등장한 새로운 차별 문제가 생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원지로 꼽히는 '중국인' 즉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그렇다. 유럽 내에서도 남유럽인들에 대한 차별도 발생한다. 코로나는 백인들이 대규모 사탕수수 밭을 가꾸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사고 팔며 그들에게 가졌던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처럼 새로운 역사적 고정관념을 생성하며 인종차별을 만든다. 대체적으로 '마르쿠스 가브리엘'이라는 독일 철학자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케인즈주의자로 보여진다. 문제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고민해보는 '철학자'의 시선은 좋았으나, 개인적으로 찾아보기에 논리적 모순이 적지 않았다. 다양한 관점이 들어나 좋았으나 대소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강하게 묻어 있는 책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여지의 주장이 다소있다. 생각이 다른 저자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 또한 '독서'가 가진 매력이자 장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고 나의 생각과 비교해가며 상대의 논리를 바라보고 자신의 논리와 비교해 보기에 얇지만 찬찬히 사색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게중에는 공감되며 또다른 인사이트를 불러 일으키는 대목도 있다. 바로 '통계'에 관한 이야기다. 코로나 초기가 지난 이후, 코로나 확진자 추이 통계를 보여주는 일을 불편하게 여겼다. 마치 스포츠 시즌 성과를 비교하듯 국가 순위를 따져가며 누가 더 방어에 선방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정치적 의도를 제외하고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매체는 꾸준하게 감염자와 사망자 그래프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위축시켰다. 코로나가 어떤 병인지 파악되기 전, 그 치사율이 극도로 부풀려 예측됐을 때, 사람들은 그 병에 대해 위기 의식을 가졌다. 그것을 경계하고 살폈다. 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다. 코로나 사망자수는 예상보다 적다. 코로나 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것은 물론 좋다. 그것이 국가의 존폐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안일지도 모른다. 책에는 관련 내용이 없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을 봤을 때 관점을 달리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률'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보고 받아야 할 것은 코로나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아니라 '출산자수'와 '자살자수'다. 코로나는 사실 '연결된 세계'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다. 심각한 유사 상황에 개인과 국가, 세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지 팬데믹 사태를 통해 시뮬레이션 했다. 국가 비상사태에 국가는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법을 신속하게 제정하며 민관이 공동으로 움직여 다수의 안전에 힘썼다. 이 이후 사회는 당연히 코로나를 통해 배웠던 경험을 실제로 사용해야 한다. 국가와 국가, 타인과의 연결이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지를 전세계가 경험한 이때, 정치는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신들의 실수를 반성하고 복기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철학을 거침없이 쏟아 부었지만 실제 내 주장과 부딪치는 부분은 상당했다. 공감되는 부분도 분명했다. 다만 비슷한 사람의 생각만 편집적으로 받아드리는 것 또한 '민주주의의 역행'과 같다. 아마 책을 읽고 누군가는 무릎을 치며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다. 경제, 정치, 문화 등 여러면에서 젊은 독일 철학자와 생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 - 선사 시대에서 우주 시대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인류 인싸이드 과학 2
프랑수아 봉 지음, 오로르 칼리아스 그림, 김수진 옮김 / 풀빛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처음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인류를 3인칭으로 바라보며 진행한 하던 전개가 몹시 흥미로웠다. 거기에는 문명의 발전 수준으로 인류를 구분하지 않았다. '원시인', '고대인', '중세인'이 아닌 '사피엔스'라는 통일된 명칭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당시 서술 방식이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600쪽이 넘는 분량을 단숨에 절반을 읽고 아꼈다가 다음 날 읽었을 정도다. 그 뒤로 '사피엔스'는 원서로 읽고 전자책도 원서와 국문 두 가지로 가지고 다녔다.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지구에는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과 에렉투스 등 적어도 6종의 인간 종이 살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에렉투스에서 분기된 종인데 현생 인류는 '사피엔스 종'으로 인간 종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종이다. 우리가 인종이라고 부르는 흑인, 백인, 황인은 모두 이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 네안데르탈인은 갑자기 3만 년 전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사피엔스와 5,000년이나 공생했다. 이들이 사라진 이들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들은 사피엔스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증거도 없고 도구 개발이나 그밖에 기술적인 차이도 거의 없다. 현재 유럽인들의 DNA에 그들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데 대략 1~4%의 DNA가 숨겨져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피엔스와 이종교배를 통해 사피엔스 종에 흡수됐다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들이 우리 DNA와 혼합된 건 초기부터 였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이동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사피엔스는 엄청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이동했다. 이 이동의 역사 얼마나 대단한지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로 넘어가 번창하기 시작한 걸 보면 '생명력의 왕'이라는 바퀴벌레와 우리가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종이란 개와 늑대처럼 약간은 다르지만 유전자 교환이 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근연종이란 다른 종이라 유전자 교환이 불가능하지만 계통분류학으로 볼 때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에렉투스로부터 분기했다. 이 둘은 최초 아종이었으나 점차 근연종으로 떨어져 나아간다. 최초에는 이종교배를 통해 아이를 낳았겠지만 점차 근연종으로 후손이 불임이 되는 다른 종으로 나눠진다.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우리 양극화된 두 계층이 심화되면 이처럼 다른 종으로 현생인류도 분화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피엔스의 과거를 보면 역시나 미래를 볼 수 있다. 활자로만 바라본 인간은 이처럼 수십 만년을 훑을 수 있고 독자로 하여금 광활하게 열린 가능성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게도 한다. 사피엔스의 역사적 특징을 볼 때, 이들은 지독한 역마살을 갖고 태어났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분화하고 이동한다. 선사시대뿐만 아니라 중세에도 인간은 광활한 바다로 굳이 뻗어 나갔다. 지금은 더 광활한 우주로 뻗어 나간다. 이처럼 이동하고자 하는 사피엔스의 특징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알게 했고 그로 인해 네안데르탈인이 적응하지 못한 극한의 환경에도 적응하며 살아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인지 혁명'이다. 인간은 '인지 혁명'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을 가졌다. '국가', '종교', '경제' 등 현생 인류들을 떠받들고 있는 것들은 이 인지 혁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혀 연관 없는 '타인'과 유대관계를 갖게 할 수 있던 인지 혁명으로 인해 '문명'은 커다란 확장을 시작한다.

인간의 혁명 중에는 '인지 혁명' 그뿐만 아니라 '농업혁명'도 있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사기'라고 규정한다. 실제로 인간은 작물생산을 시작하면서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전염병이 확산됐으며 인구가 증가한 반면 개인은 빈곤해졌다. 단일 작물을 생산하면서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기도 하고 기후변화에 취약하기도 했다. 대게 안정적인 정착과 동물의 가축화로 풍요로운 발전을 했을 거라는 시각을 벗어난 것은 당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쨌건 실제로 인간은 단일 작물을 재배하고 남은 여분으로 가축을 기르며 효율적인 경제를 가졌지만 분뇨처리가 미숙하여 전염병을 만들기도 했다. 인간을 위협하던 가장 위험한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전염병'이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사피엔스' 즉 슬기로운 사람으로 분류했다. 이런 자신감은 현대 달로 인간을 보내고 화성 탐사를 하는 오늘에 와서 관용된다. 다만 전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낭떠러지를 알면서도 오늘날 역사상 최대의 탄소 배출을 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를 '슬기롭다'라고 끝까지 부를 수 있기 위해선 미래를 대하는 시선에 조금 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도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임에도 불구하고 장대한 분량 덕분에 청소년들이 쉽게 접하기 어렵다.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는 이를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고 '도서'보다 '잡지'와 같은 구성을 지닌 도서다. 일러스트가 풍부한 이 도서를 통해 먼저 우리에 대해 짧은 개념을 잡고 나면 다음 우리를 바라보는 역사에 더 깊은 통찰을 청소년들이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금의 흑역사 - 두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 농담 같은 세금 이야기
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지음, 홍석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 JTBC에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가 가상화폐를 두고 논쟁을 벌인 적 있다. 유시민 작가는 가상화폐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재승 교수는 잡초는 뽑고 거름은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비트코인'이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도 아니다. 주목해야 한 부분은 '행정 하는 입장'에서의 '탈 중앙화'가 어떻게 보이는지다. 2,500년 전 수메르 점토판에는 세금 영수증이 기록됐다. 최초의 문명부터 지금까지 '중앙집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이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사피엔스가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후 '중앙집권'은 필수불가결했다. 인간은 정착하면서 '사유재산'을 쌓기 시작하고 재산이 쌓이면 반대로 '도적'이 생겼다. 대게 농경민족들은 '전쟁'을 통해 노예와 농토를 확장했다. 전쟁은 국가의 농토를 확장하고 노동력을 확보하는 가장 진보하기 수월한 방식이었다. 반대로 타민족으로부터 그것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생겼다. 분산된 힘을 중앙으로 모으면 역시 통제하기 쉽다. 따뜻한 햇볕이 볼록렌즈를 통해 모이면 두꺼운 나무에 불도 붙일 수 있듯, 모인 힘들은 '치안유지'나 '국토방위' 등에 사용됐다. 외교에도 유리하게 작용됐다. 1930년대 미국으로 대공황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던 '뉴딜정책'이 대표적이 예다. 무제한적 경제적 자유주의가 통제력을 잃고 빠르게 무너져 내릴 때, 뉴딜정책은 자유주의를 수정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기업과 노동자를 살리는 정책을 통해 은행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고 생산과 소비도 제어할 수 있었다. 개인의 경제 활동에 대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중앙 집권은 간섭하지 않는 자유방임주의는 분명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으나 19세기 시장은 제국주의를 맞이하고 20세기 대공황을 바라보며 수정자본주의로 나아갔다.

세금은 중앙에 권력을 모아주는 도구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금은 권력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보호'의 명분으로 뜯어가던 '약탈'이 '세금'이라는 그럴싸한 명칭으로 변형되며 역사는 '내려는 자'와 '덜 내려는 자'의 눈치게임으로 흘러갔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의 명세서에 기재된 '세금'을 없는 돈으로 치부한다. 원천징수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이 없는 현재지만, 이 역사를 조금 살펴보면 재밌다. 영국의 헨리 8세는 1512년 신분 계급에 따라 세금을 차별 부과하기로 했다.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대상자 중에는 각기 다른 신분과 계급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에게 세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재밌는 아이디어가 하나 나온다. 그것은 이랬다. 주인이 먼저 하인들의 세금을 납부한 뒤에 나중에 하인들에게 지급할 임금에서 세금만큼의 차액을 제외하고 지급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신용하기 어려운 하인들이 아닌 신뢰할 만한 출처로부터 돈을 받아내고 이후 그들이 하인에게 차감된 급여를 지급하는 맥락은 오늘날의 '원천징수'가 된다. 이런 원천징수는 '부가가치세'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물품을 구매할 때, 국가에 직접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이 일괄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이 또한 신뢰할 만한 곳으로부터 안전하게 거둬드린다는 원천징수의 좋은 예다. 이처럼 받으려는 자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세금을 거둬드릴지 고민한다. 반면 내지 않으려는 쪽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이야기는 극단적인 '설'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흥미롭다. 1997년 잔 루이즈 칼망(Jeanne Louise Clament)이라는 여인이 프랑스 아를에서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다른 글에서도 적었던 적이 있는 내용인데, 다만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는 2018년 두 연구원이 그녀의 지나치게 많은 나이에 의심을 한 것이다. 연구원들은 1934년부터 '잔 할머니'는 '잔 할머니'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1934년부터는 '잔 할머니'의 딸이 할머니의 행세를 했다는 주장을 했다.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사망신고를 늦게 한다는 주장이다.

세금은 소득이나 사람에 납부한다. 어떤 집의 창문이 9개라면 8개인 집보다 집이 크다는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디어로 유럽에서는 '창문세'라는 것을 도입한다. 창문이 몇 개가 있는지 세금 징수원이 외부에서 세면 그에 따른 세금이 납부되는 방식이다. 이 일은 유럽의 건물양식에도 변화를 끼친다. 사람들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벽돌로 창문을 막아버리기도 하고 건물 구조를 바꾸기도 했다. 창문세는 과표 등급이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 경계선에 있는 이들은 등급을 맞추기 위해 아래 등급으로 창문 개수로 맞췄다. 이로 인해 창문이 9개인 집의 수가 창문 8개의 집이나 10개인 집보다 4배나 급증하는 일이 일어난다. '자파 케이크'가 출시됐을 때도 그렇다. 자파 케이크를 케이크로 볼 때, 1991년 당시 세법에 따라 부가가치세는 0원이 적용받는다. 다만 이 제품을 초콜릿 묻은 비스킷으로 보면 표준 부가가치세는 17.5%가 부과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조세 법원은 이 과자의 크기와 성분, 질감, 포장, 마케팅을 조사했다. 심지어 이들은 소비자들이 이 과자를 손으로 먹는지 포크로 먹는지까지 파악해야 했다. 결국 영국 조세 법원은 이 과자를 '케이크'로 규정했다. 간혹 우리는 '선과 악' 혹은 '도덕'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철저하게 정치에 사용한다. 1861년 4월 미국 북부와 남부는 섬터 요새에서 철저하게 대치 중이었다. 이들은 이 섬터 요새를 포기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 요새가 관세를 징수하는 주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노예를 해방한 인물로 평가되는 '링컨'은 그렇게 연간 5000만 달러의 세수입을 포기할 수 없어 전쟁을 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마이클 패러데이가 자기장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에 관료들이 이 실험의 결과를 어디에 사용하냐고 비꼬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훗날 여러분은 이것에다 세금을 매길 수 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 전기세는 세수 확보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세금에 대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치열한 눈치게임은 큰 흐름에서 역사가 됐다. 책은 매우 두껍지만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나중에 반드시 재독해 볼 생각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 천재들은 어떻게 말을 할까 - 정재승, 김영하, 유시민, 손석희의 수사법
정재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IBM의 왓슨 회장은 '좋은 디자인이 곧 좋은 사업'이라고 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디자인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자동차는 90%, 속옷은 95%, 문구류는 99%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품질'이 아니라 '디자인'에 목숨을 거는데는 이유가 있다. 대게 품질이 평준화 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가격과 품질이라면 사람들은 디자인에 열광한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의 배우자나 연인을 선택할 때, 그들의 지적 능력이나 신체 능력보다 '외모'를 중시한다. 이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책 한 권 읽고 나가 것보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나가는 편이 더 결정적이다. 꾸며진다는 것은 본질보다 중요치 않다. 그러나 본질로 들어가기 위해선 말끔히 꾸며져야만 한다. 그것은 필연적이다. 본질로 가는 관문이다.

"나는 시간을 탕진했고 이제 시간이 나를 탕진한다."

17세기 셰익스피어가 했던 단순 교차법 문장은 입에 척하고 달라 붙는다. 운울감을 형성한다. 시간의 중요성을 알리는 말은 많고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말은 다시 한 번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듣는다. 잔소리나 명언을 포함해서 그렇다. 누구도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더 곱씹고 되뇌도록 하는 것은 바로 수사법이다. 입에 척하고 달라붙는 말은 발음과 기교에서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순서를 교차한 수사법은 운율감을 형성한다. '각운'은 내용을 곱씹기 전에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한다. 언어에서 '수사법'이란 화장법과 같으며 아무리 '마음'이 중요하지만 마음은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없다. '외모'를 가꾸지 않으면 이성에게 선택받기 어렵다.

문법이나 기교는 '계산'에 의해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이것들은 '즉각적'이다. 유학 시기, '한국어 과외'를 진행했던 적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를 만나면 큰 코 다친다.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공부해 갔다. 상대가 나에게 들이 밀었던 문법책은 '혼돈'이었다. '밥을 먹다'라는 단순한 표현에는 '식사하세요', '진지 잡수세요', '밥 드세요' 등 많은 표현이 있었다. 문법책에는 한국어의 특징이 적혀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대화 상대의 출생년도를 따져 자신과 나이 차이에 맞게 명사를 사용한다. 또한 상황과 대상에 맞게 술어를 선택해야 한다. 종류도 꽤 복잡하다. 얼마의 나이 차이가 나는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당시 내가 받은 질문은 '정말 상대의 나이를 따지고 말을 하냐'는 것이다. 나이 차이가 애매하거나 또래 혹은 동안, 노안이라면 어떻게 대응하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화 상대에 맞게 언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즉각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화법은 수많은 반복에 따른 트레이닝의 결과다. 문법책은 한국인들이 왜 한국어를 그렇게 사용하는지 적혀 있다. 읽어본다면 분명 고개가 끄덕여지겠지만 나는 말 할 때 문법을 염두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알고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언어의 수사법도 마찬가지다. 책 한 권을 읽었다고 읽었던 수사법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수사법이 사용된 문장을 자주 접하고 스스로 그것을 차용하길 반복하면서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재승, 김영하, 유시민, 손석희 등, 우리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달변가들은 말을 잘하는 것을 둘째치고 '글'을 잘쓴다. 글을 잘 쓰는 것을 셋째로쳐도 '읽기'를 잘한다. 예전 가수를 준비하던 이를 만났던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노래를 잘하는 비결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대부분의 아웃풋은 상당한 인풋을 기반으로 한다. 책을 읽다보면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는 멋진 수사법들이 등장한다. 가령 '확률이 적다'라는 말을 할 때가 그렇다.

'원숭이가 타자기를 무자기로 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써 낼 확률과 같다.' 혹은 '고물 야적장에 토네이도가 불어서 우연히 보잉 747이 조립되어 나올 확률과 같다.'라는 표현이 그렇다. 단순히 '확률이 적다.'라고 말하면 크게 와닿지 않을 표현을 유머러스한 표현법을 이용하면 듣는이를 덜 지루하게 하고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수사법은 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기교다. 한국인의 특성상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정서를 좋아한다. 고로 한국인들은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편이다. 다만 단연코 말하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추측일 뿐이다. 기막힌 표현을 창조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천재들은 '창조'가 아니라 '모방'에 뛰어났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기가막힌 표현법은 스스로 머리속에서 짜맞춰 나온다기 보다 다양한 생각을 읽어서 나올 확률이 높다. 고로 수사법에 대한 해결책을 굳이 말하자면, '다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재영 작가님의 '언어 천재들은 어떻게 말을 할까'에서는 다양한 수사법과 예시가 표현된다. 책은 수사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 모여진 하나 하나의 명언들은 정말 가슴 속으로 콕 하고 박힌다. 역시 잘 꾸며진 언어는 한 문장 단위로도 너무 기가 막히게 눈에 띄고 마음에 꽂힌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문장 단위로 감탄이 나온다. 문장력이 아니라 통찰력 때문이다. 1934년 출생 하신 이어령 선생은 붙일것도 많은 인물이다. 정의하기는 더 어려운 인물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수필가이자 정치인, 언론인, 문화평론가이자 교육자다. 통찰력이란 다방면의 개념을 두루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모가 한 눈에 훤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다른 이들이 분류해 놓은 지식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철학으로 잘 융합해야 가능하다. '너 어디로 가니'라는 제목은 정체성을 묻는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질문은 꼬리를 물고 들어가면 철학을 만난다. 이어령 선생의 글은 스치듯 지나가는 역사의 꼬리를 잡는다. 물고 늘어진다. 거기서 이어령 선생의 철학을 만날 수 있다. 1934년 생의 문학가는 대한민국과 세계의 역사를 제대로 관통한다. 이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 중 행운이다. 국민학교 시절 1941년 태평양전쟁을 포함한 2차 세계대전을 지켜봤다. 1950년 한국 전쟁을 경험한다. 1980년 대 군사독재와 90년대 국가부도 사태를 바라본다. 직접 쌓은 데이터는 이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많이 배운 젊은 천재가 흉내내기 어려운 문학으로 남았다. 다른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처럼 책은 '꼬부랑 할머니'로 시작한다.

"옛날 옛적에 말이다..."

로 시작하는 옛날 이야기로 들린다. 지금과 같이 오락시설이 많지 않은 시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화롯불'을 피워놓고 해주시는 이야기가 최고의 오락이었다. 그 시절 어린 손주들은 '화롯불'을 사이에 두고 어른들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시간이 흘러 젊은 이들의 오락거리는 늘어났고 '어른들의 이야기'는 시시하고 지루함의 대상이 됐다. '이어령 선생'은 '너 어디에 가는 줄은 알고 있니?'라는 신선한 질문으로 화려한 디지털 그래픽에 꽂혀 있는 젊은 이들의 시선을 잡아 당긴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천자문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천자문은 4자 1구로 총 250구로 이루어졌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외우는 서당의 아이들 사이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외우면 될 일을 이어령 할아버지는 '왜 하늘이 검고 땅은 누런지' 의문을 제시했다. 1846년 11월, 제주에 있던 추사 김정희는 대정현의 향교에서 질문하지 않는 아이들을 마주한다.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아이들을 보며 김정희는 학당 현편을 써준다. 그것이 바로 '의문당(疑問堂)'이다. "얘들아, 의심이 나면 질문 좀 해다오'하는 대문호의 바람이다. 질문하지 않는 젊은 아이들을 보며 교육의 방향이 일방적이어선 안된다는 사실을 본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300년이 흐른 뒤, 젊은 이들에게 말한다. "의심이 난다면 질문좀 해보라. 너 어디로 가니?"

이야기는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했으나 꼬리를 물고 질문한다. 그것에 답을 찾아보고 찾은 답에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이런 식으로 지식이 들어갈 호기심의 구멍을 숭숭 뚫어 놓은 뒤, 명쾌하게 하나씩 채워 나간다. 그가 경험했던 여러가지 경험 중에서 '책보'와 '란도셀'의 이야기가 있다. '란도셀'이란 사실 이름도 생소한 단어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책가방'과 닮았다. 가난과 뒤떨어진 문명의 상징이라고 여기던 '책보'에는 엄청난 철학이 있었다. 이 철학은 매우 단순하지만 단 한번도 고민해 보지 않는 일이다. 추사 김정희와 이어령 선생이 던졌던 질문처럼 나도 질문하지 않는 젊은 세대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얼마 전, 각이 잘 잡혀 있는 책가방을 구매했다. 책가방은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아도 각이 잘 잡혀 있었다. 이어령 선생은 여기서부터 문제를 삼았다. 책 보는 큰 물건을 담을 때는 담은 모양에 맞게 크기와 모양이 형성된다. 물건을 풀어 헤치면 보자기는 3차원 입체 모형에서 2차원 평면이 된다. 이것은 곱게 접어 부피를 줄일 수 있다. 종이 한 장을 담아도 꽉찬 모양이 줄어드는 법 없는 '가방'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여기서 '융통성'이라고 봤다. 일본과 서양에서 사용하는 '란도셀'은 이미 정형화 된 규격을 갖고 내용물과 상관없이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은 분명 다른 이들에 비해 융통성이 있다는 것 만큼은 맞다고 본다. 짚신 또한 책보와 닮았다. 짚신은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상관없이 신을 수 있으며 정확한 신발 치수를 알지 않아도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이다. 이것이 우리를 담고 있는 문화가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이다. 정체성이란 작은 하나로 시작하여 여러가지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하는 이 책에서 일본과 한국의 비교는 자주 나온다. 일본의 문자와 한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의 일본과 한국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의 문자는 한자를 가지고 왔다. 일본인들은 복잡한 한자를 단순화하여 개조하여 보급한다. 영어 단어에는 Kaizen(카이젠)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은 '개선'을 나타내는 일본어 '가이젠(改善)'에서 유래했다. 일본인들의 특징은 '개선'에 있다. 생산과 상품에 대한 전반에 대해 이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일본인들을 발전한다. 일본어가 한자와 닮았으나 표음문자이면서 그 획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은 일본인들이 가진 장점에 있다. 반면 우리 한글은 전반적으로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개선'이 아닌 '혁신'을 말한다. 혁신이랑 아이디어의 원친이 외부, 내부 상관없이 완전히 새롭게 도입하는 방식이다. 완전히 뒤집어 엎고 다시 시작하는 이런 사고 방식은 '한글'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 여기서 '우리가 옳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급변하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대에 일본의 산업은 지금도 '개선'에 촛점을 맞추며 더딘 성장에 어려워한다. 반면 우리는 기존의 것들을 버려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갈아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정체성 마저 잃어버리기도 한다. 식민지 시대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고 이미 혁신을 위해 버려 버린 것들 중에서도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젊은 시대를 바라보며, 이어령 선생은 다시 묻는다. '너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니?'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