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실 천국 같은
오가와 이토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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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가와 이토'의 책은 처음 접했다. 그녀는 '츠바키 문구점'이나 '달팽이 식당' 등으로 이미 꽤 명성을 얻은 일본 작가다. 그녀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특유의 책 표지 분위기와 제목만으로도 문체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소설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지만 에세이에 사용된 문체로 생각해보면 '아기자기'하고, 둥글둥글한 글을 쓰지 않을까 예상한다. 일본 서점을 가 본 적은 없다. 다만, 가지고 있는 일본 책들은 대게 '핸드북' 사이즈가 많다. 한국에서 출간된 책 중에서 '원서'를 소장하고 싶어서 구매하면 대부분 핸드북 사이즈가 와서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 알고 지낸 일본 친구가 보내 준 책도 핸드북 사이즈였다. 친구에게 묻자. 일본의 책은 사이즈가 작고 가벼운 편이라고 한다. 일본 뿐만 아니라, 오세아니아나 유럽의 책들도 가볍고 크기가 작은 책들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책이 유난히 화려하고 무겁다. 책이 무겁기 때문에 쉽게 들고 다니기 어렵다.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보기에 편리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독자에게 선택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두 국가 모두 독서량은 많지 않으나, 한국은 놀랄만큼 적다. 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국가는 인도로 일주일에 10시간 42분을 책 읽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반면, 일본과 한국은 각각 4시간, 3시간만 책을 읽는다. 주당 1시간이라면 별차이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1년이면 52시간, 10년이면 520시간이 넘는 시간이다. 결코 그 시간이 적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 이유는 아마도 '만화'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가볍게 종이책을 다루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에 대해 친근함을 갖고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오가와 이토'의 '두둥실 천국같은'은 1월 8일로 시작해 12월 29일로 끝나는 작가의 일기장이다. 유럽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며 겪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 나 역시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나며 언어를 공부했다. '어학연수'는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어학연수' 시간에는 '언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문화를 배운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당연히 도구를 이용해서 다양한 소통을 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이성이라면 또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결국은 '사람'을 대하는 공부다. 어학연수 기간에 '한국인'들은 대게 어학원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각종 문법책과 영어 단어책, 독해 문제집을 사서 오랜 시간을 앉아 있다가 왔다. '연수'라는 말 자체가 '갈고 닦다'라는 의미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다르게 사용해보고 부딪치기를 반복해야 한다. '파티'를 하고 '여행'을 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배운 언어를 많이 써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학'보다는 '어학연수' 쪽이 더 문화적으로 배우는 부분이 많기도 하다. 실제로 현지 어학원을 가게 되면, 현지인이라고는 선생님 한 분 있는 강의실에 각각의 여러 나라 학생들이 모여 앉아 떠든다. '요르단, 브라질, 스페인, 일본, 중국, 아르헨티나, 인도'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과 한참을 떠들고 여행을 다니면서 제3국을 공부한다. 아마 이런 행위는 글짓는 '작가'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가 될 것이다.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를 소개로 책은 시작된다. 얻어 맞는 입장에서도 글은 어둡지 않다. '그냥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라는 느낌으로 넘어간다. 역시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 생각이 곧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보지 않으면, 그런 것은 없다. 가볍게 쓰여진 글 때문에 '가장폭력'의 상처가 무겁지 않게 왔다 지나갔다. 책에는 참 재밌는 내용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반달가슴곰'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녹화해 두었던 반달가슴곰에 대한 프로그램을 봤다. 이 역시 일기로 기록했다. 암컷 반달가슴곰은 굴에서 겨울잠을 자면서 새끼를 낳는데, 초봄이 되면 새끼와 어미곰이 굴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어미곰은 새끼곰과 함께 놀아주고 젖도 먹인다. 어미곰이 새끼곰과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암컷은 발정하지 않는다. 고로 수컷 반달곰은 암컷과 교미하기 위해 '새끼곰'을 죽여버린단다. 그녀가 본 방송에서 암컷 곰은 2년 연속으로 새끼곰을 잃었다. 숫컷 반달가슴곰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 영상을 보며 그녀는 '인간 사회'와 내용을 연결한다. 사실 반달곰의 습성이 어떠한지 고민해 본 적은 없다. 발정난 수컷의 성욕이 아이를 살해할 만큼 위협적인가.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건데, 당연히 이는 '인간 세계'와 다르다. 그러나 어쨌건 인간 사회에서도 이처럼 야만적인 사건은 종종 일어나곤 한다. 형태야 어찌됐건, '성체'의 부모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식을 버리는 행위는 종종 있다. 이유야 어찌됐건, 조선 후기에 '영조'라는 왕도 자신의 자식을 죽이지 않았던가. 글을 짓는 사람들은 분명하게 어떤 인풋이라도 다각도로 생각해보는 것 같다. 어쨌거나 책은 특별할 것 없는, 일과를 아기자기하고 잔잔하게 기록한다. 마치 책의 제목처럼 두둥실 가벼운 문체가 일관적이다. 읽는 동안도 가벼운 문체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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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꾼 기록 생활 - 삶의 무게와 불안을 덜어주는 스프레드시트 정리법
신미경 지음 / 뜻밖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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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린더 쪼개기'라고 있다. '네이버 캘린더'나 '구글 캘린더'를 보면, 좌측에 '내 캘린더'라고 표기된 부분이 있다. 이것을 여러개로 쪼개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다. 대게 하나의 캘린더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다. 나의 경우에는 총 10개의 캘린더로 쪼갠다. 캘린더 하단에 '+' 모양의 버튼을 누르고 캘린더를 하나씩 추가하면 된다. 캘린더는 색깔별로 나눠져 있다. 색깔별로 '개인일정', '자기계발', '육아&가족', '집필&강연', '농원', '학원' 등 여러개로 나눠 쓴다. 각자의 달력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다. 가령, '파란색'은 '집필&강연', '노란색'은 '육아&가족'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색깔을 부여함으로써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캘린더에서 부여된 색깔은 오프라인에서도 사용한다. 수기 다이어리를 쓰거나, 서류를 정리할 때, 파일철 색깔이나 스티커 색깔, 펜의 색깔로 일정의 성격을 분류한다. 일정은 동사를 먼저 쓴다. '시청에서 강연하기'라고 기록하지 않고 '[강연] 시청'처럼 쓴다. 취해야 할 행동과 동작을 먼저 씀으로써,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주로 '주간캘린더'를 자주본다. 일정은 크게 '주간' 단위로 기록하는데, 일단 그 주에 해야 할 모든 업무를 대충 요일마다 넣어둔다. 날짜와 상관없는 없는 업무들은 모두 '월요일'에 몰아둔다. 이렇게 주간 일정을 모두 몰아 넣으면 대략 '한가한 날'과 '바쁜 날'이 보인다. 이때, 월요일에 몰려진 업무를 마우스로 '드래그'하여 하나씩 평평하게 배분한다. 배분된 일정은 적절한 시간에 기록한다. 여기서 캘린더를 저장할 때, 쪼개진 캘린더 중 어느 부분으로 들어가야 하는지를 설정해야 한다. 배분하다보면 '주간' 혹은 '월간' 혹은 '연간' 반복하는 일정이 자동 설정되는데, 특별하게 '자동설정'된 일정이라면 그 중요한 일정에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간에는 '유동적으로 날짜를 변경할 수 있으나 결코 다음 주로 할일을 넘기지 않는 것'이다.

일주일을 살다보면 일정에 넣지 않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미 지나간 일들이라도 모두 기록한다. 이 기록은 쉽게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다. 스캐줄 관리는 '수기'로 하진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검색'이 힘들다. 가령 작년에 세금신고한 내력을 살펴보고 싶다면, 온라인으로는 쉽게 검색을 이용하면 된다. 다만 수기로 기록하게 되면, 하나씩 찾아봐야 한다. 온라인 검색은 매년 얼마 정도의 세금을 냈는지, 언제 냈는지 등을 한 눈에 살필 수도 있고 그것을 데이터화 해서 그래프로 활용할 수 도 있다. 캘린더에 저장한 내용은 태블릿와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에 자동 연동 된다. 설정에 따라, 10분이나 30분 혹은 전날에 알람이 뜬다. 알람이 뜨면, 상사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충실하게 '동작'만 취하면 된다. 고로 '최초 스캐줄 기입'은 가장 이성적인 시간에 모두 끝내 놓는다. 가장 이성적인 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하두면, 나머지 한주는 '선택'에 대한 부담없이 동작만 취하면 그만이다. 빈번하진 않지만, 극단적인 경우에는 '예약문자기능'도 동시에 사용한다. 가령 보내야만 하는 문자를 미리 예약문자로 설정해 두고 발송해 두면, 필수적으로 상대에게 원하는 시간에 문자가 발송된다. 특히, '육아'에 관한 내용이 그렇다. 업무 중에는 업무에 집중해야 하기에, '유치원 선생님께 보낼 문자'의 경우에 미리 설정한 시간에 보내놓고 업무에 충실한다. 이런 업무를 미리 해 놓으면, 상대 쪽에서 답장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온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과 수입에 대해서도 스캐줄에 기록한다. 자동 이체 형식으로 어차피 빠져 나갈 지출을 '스캐줄'에 기록함으로써, '저도 모르게 나가는 지출'에 대해 적당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것은 '스캐줄'에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자기관리법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신명기 28장 7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들이 한길로 너를 치기 위해 들어왔으나, 일곱길로 도망가리라."

이것은 '집중'과 '분산'에 대해 알게 해준다. 한길로 들어오고 일곱길로 나간다는 것은 '줄줄 세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일곱길로 들어왔다가 한길로 나간다는 것은 '집중'과 '힘'을 이야기 한다. 수입은 일곱 길로 열어두고 지출은 한길로 내어 놓는다. 이것은 병목현상을 만들어낸다. 나는 수입은 다변화하고 지출은 '롯데그룹' 내에서만 한다는 철칙을 갖는다. 받는 쪽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노예'가 된다. 한명에게 급여를 받는다면, 그에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높아진 의존도 많큼 주체성을 빼앗긴다. 1000만원을 주는 한사람에게 충성할 것이 아니라 10만원을 주는 100명을 소유하는 편이 좋다. 그래야 상대에 대한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1000명에거 1만원씩 구매하는 고객이 되는 것 보다, 한명에게 1000만원을 구매하는 큰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로 부터 주도권을 가져 올 수 있다. 오랜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기록을 한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출 내역을 살피고 수익 내역을 살피다보면 자신이 보지 못하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기 시작하면 정리가 가능하다. 정리가 가능하면 그것을 토대로 주도권 경쟁을 해 볼 여지가 생긴다. 시간 관리 뿐만 아니라, 건강관리, 마음관리 등을 적당히 가시적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조절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은 몹시 큰 힘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저자 신미경 작가의 관리법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모든 것을 스프레드시트로 관리하진 못한다. 다만, 신미경 작가가 노하우를 보면 혀가 내둘러진다. 자기계발서의 좋은 점은 남의 노하우를 배워다가, 내 삶에 녹여 놓는 것이다. 그녀의 여러 노하우를 내 것으로 잘 녹여, 나의 노하우와 잘 버무릴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느슨해진 관리에 대한 다짐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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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 시대 -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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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 중년의 여교수는 말했다. 해외에서 경제학을 들을 때 이야기다. 경제는 커다란 사이클을 반복한다고 했다. 호황, 후퇴, 침체, 회복이 번갈아 간다고 했다. 다만 회복 단계에 급격하게 압축 성장하는 시기가 온다고 했다.그것을 경제학 용어로 '퀀텀점프'라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본주의 확대는 '성장'을 전제로 한다. 즉 사이클을 돌지만,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길 전제로 한다고 했다. 그것이 일종에 '수레바퀴'를 닮았다. 수레바퀴는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같은 곳을 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경제'를 벗어나 '철학'으로 갔을 때, 수레바퀴는 '윤회'를 닮았다. '경제'가 '철학'을 닮은 것은 둘 다 자연을 모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연을 닮은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산과 골은 번가르지만 확장한다. 우주 어디를 봐도 비슷하다. '탄생'과 '소멸' 사이에 호황, 후퇴, 침체, 회복이 있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윤회'하지만, 그 턱에 걸려 넘어지면 '소멸'한다. 작은 사이클은 거기서 끝난다. 더 큰 사이클은 다시 '탄생'으로 이어진다. 2차원 그래프로 경제 그래프를 보면 재밌다. x축과 y축에 시간과 규모가 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해 왔다. 시공간을 기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다. 3, 4차원의 시공간을 평면에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가 천장 위에 붙어 있는 '파리'의 위치 계산하는 걸로, 인간은 시공간을 평면 위에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좌표평면이라는 개념이 들어선 것이다. 경제 사이클은 좌표 평면 위에서 위 아래를 그리며 나아간다. 다만, 그 관념은 16세기 수학자의 아이디어로 시작했을 뿐, 경제의 본질은 그것과 닮지 않았다. 경제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다. 마치 수축과 팽창을 하며 성장하는 것이 '심장'을 닮았고 '별'을 닮았다. 굳이 말하자면 위 아래로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부피'가 커져 간다.

조형의 기본 요소는 '점, 선, 면, 형'으로 이뤄졌다. 굳이 따지자면 경제는 '선'으로 표현된다. 다만 실제 그것은 '형'을 닮았다. 수축과 팽창을 번가르며 성장하는 것은 인간의 호흡을 닮았다. 종이 위에 죽은 어떤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닮았다. 지나온 흔적이 기록되는 것을 보면 나이테를 닮았다. 그 또한 생명을 닮았지만 여름과 겨울의 순환처럼 자연을 닮기도 했고, '보름달'과 '삭'이 번가르는 것 처럼 천문학을 닮았다. 경제 뿐만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 미국을 세운 사람들은 대중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파벌과 이익집단의 경쟁을 일으킨다고 봤다. 대중정치가 쉽게 폭민정치로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뭐든 탄생을 했다면, 성장하고 후퇴를 했다가 침체하기 마련이다. 와중 회복의 단계를 슬기롭게 넘기면 그것은 '퀀텀점프'한다. '소멸'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회복' 단계의 역할은 어느 주제에서나 필연적이다. 폭민정치가 소수의 침묵과 소외를 불러 일으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 정치는 선출을 통해 국정을 운영을 한다. 선거인단 혹은 권리장전과 같은 안정장치도 심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 독립선언문이나, 권리장전, 헌법에 '민주주의'라는 키워드가 언급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그 어디에도 '민주주의'는 언급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소멸'로 이어지듯, 민주주의 또한 영원 불멸이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도 '민주주의'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것은 '저주' 처럼 들릴지만, 사실 모든 것은 그렇다. 영원한 일방향 성장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지난 1세기 우리를 성장시켜 왔던 주요 키워드 하나를 손꼽아 보면 '테일러주의'다. '테일러주의'는 철강회사에서 노동자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관리법이다. 노동자의 작업 범위와 동선, 움직임 등을 표준화하여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로써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테일러주의의 성공으로 미국은 '철강', '석유', '자동차' 산업을 기반으로 폭발적은 공급력을 갖게 됐다. 그것이 현대 우리 자본주의의 기반이다. 공급력을 해소시키기 위해 자본은 '광고'와 '마케팅'을 지독하게 성장시켰다. 턱 끝까지 차 있는 음식을 목구멍 깊숙히 더 밀어 넣고 이미 풍족한 옷을 마음에 들지 않게 했다. 불만족하게 하는 방법의 연구는 20세기 활발해 졌다. 포화된 육체를 넘어서 현대는 '영상'과 '정보'를 머릿속으로 꾸역꾸역 채워 넣는다. 육체가 포화에 이르자, 마케팅과 광고는 '정신'을 공략했다.

광고와 마케팅은 언제나 대중을 '불만스러운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이 더 불만족하고 더 탐욕스러우며, 더 혼란스러워야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 새롭고 좋은 것을 구매했다. 소량품종 대량생산의 대명사인 포드가 자동차 업계 1인자로 있던 시기, 2인자 였던 '제너럴 모터스(GM)'은 새 광고 전략을 통해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그들은 "어떤 고객이든 자신이 원하는 색상의 자동차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라고 선전했다. 고객의 불만을 갈망으로 바꾼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산업은 이처럼 '표준화'하고 '획일화'하며,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나아갔다. 인간은 더 비인간적이며 '욕망'과 '번뇌'에 쉽게 휩쌓이는 피로도를 쌓았다. '산업' 또한 자연을 닮았다. 무한대 확장은 불가능하다. 극도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시기는 언젠가 저문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지금이야말로 '육체'와 '정신'이 모두 포화상태까지 와있다고 봤다. 경기 순환곡선처럼 이제 중요한 것은 '회복력 시대'를 어떻게 넘어서냐는 것이다. 탄생 후, 호황, 후퇴, 침체의 사이클을 넘고 '회복'의 단계에서 '퀀텀점프'를 하지 못하면 만물은 '소멸'로 이어진다. 그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우주적 규칙'이다. 에너지 낭비, 극단적인 효율성 강조, 지나친 표준화가 경제, 정치 뿐만 아니라, 적게는 개인의 자아, 크게는 자연까지 위협한다. 이제 올바른 회복력 시대를 분기점으로 우리가 새로운 도약을 할지 혹은 소멸의 단계로 접어들지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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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먼시 버턴힐 지음, 김재용 옮김 / 윌북아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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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 품격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심결에 보는 '틱톡 영상'처럼 클래식도 취향 중 하나일 뿐이며 이런 취향들은 다른 취향과 공존할 수 있다. 특별하게 품격있는 삶을 연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차려준 당신의 다양한 밥상에 한가지 반찬 하나를 더 곁들여 보자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 주는 특별한 점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의 매력을 찾지 못지 못한 이들에게 클래식을 들을 때 내가 각별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이 있는지 나눠보고자 한다. 우리의 감각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미각,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등이 그렇다. 이를 오감이라고 부른다. 오감은 모두 인간에게 중요한 감각이지만 이 감각은 모두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기 힘들다. 촉각은 압력감각과 온도 감각을 통해 외부의 자극을 감지하는 감각이다. 이는 통증을 인식하여 외부로부터 보호 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접촉을 통해 이뤄지는 감각이므로 예술의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힘들다. 미각과 후각 또한 몹시 중요한 감각중 하나다. 다만, 이는 교육에 의해 길들여지기 쉬운 감각에 속한다. 쉽게 말해서, 어린시절 싫어하는 맛과 향이라도 문화와 교육에 따라 자주 접하면 길들여지는 순수성이 크지 않은 감각일 수 있다. 또한 시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는다. 무한한 맛과 향은 없으며 이것이 주는 감동의 지속은 길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각'과 '청각'이다. 시각과 청각을 담당하는 감각기관은 '눈'과 '귀'다. 이는 전혀 다른 감각기관 같지만 그렇지 않다. 청각과 시각 모두가 '떨림'을 감지하는 감각 기관이다. 이 두 기관은 모두 주파수를 인식하는 기관인데, 귀는 16GHz~16kHz까지, 눈은 384THz~789THz의 영역을 감지한다. 이 모두 '떨림'을 감지하는 기관이다. 이 두 감각기관의 장점은 '원거리 감지'라는 특장점이 있다. 예술은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되는 과정에서 '원거리 감각기관'의 손을 들어준다.

'원거리 감각기관'은 전파력이 높다. 직접 손바닥 위에 메모를 해주는 행위보다 전파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 처럼 말이다. 미술과 음악의 확산이 '음식'과 '향', '의복'보다 빠른 것은 그런 영향에 있다. 시각은 청각보다 더 미세한 파동을 감지한다. 다만, 청각과 시각 중 더 빠르게 전달되는 것은 시각이다. 청각보다 88만배나 빠르다. 다만 특정 환경에서의 원거리 전달력은 '소리'가 압도적이다. 어두운 환경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시각'보다 '청각'이 압도적이다. 인간사회에서 문화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전파되기에는 '음악'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또한 시각과 청각은 인간의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뇌는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뇌파 활동을 보여주는데 이또한 떨림 혹은 파동이다. 클래식은 보편적인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자극한다. 즉,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의 어느 지역 사람이 듣더라도 언어를 초월한 감동을 줄 수 있다. 인간의 기본적 속성은 '구분'하고 '정의'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가 '언어'다. 만약 한 남자가 운명의 상대를 만난 순간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을 했다고 해보자. 다시, 한 여성이 다른 남성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라고 표현 했다고 해보자. 이 두가지 경우, 각각 인물마다 느낀 감정은 모두 다르다. 다만 그것을 '사랑에 빠졌다'라는 말로 정의함으로 그 감정의 곁가지를 모두 쳐낸다. 이처럼 일반화할 수 없는 '감정의 형태'를 언어로써 일반화하는 것을 '언표한다'라고 한다. 인간은 '언표'를 함으로써 대략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나, 그 감정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노자는 '도가도 비상도'라고 표현했다. '가사'는 미묘한 감정의 떨림을 깍뚝썰기 하듯 '또각 또각' 난도질한다. 각자 다르게 느낄 감정에 재단된 감정을 집어 넣는다. 고로 사용하는 언어마다, 성별마다, 나이마다 모두 다르게 느끼게 한다.

클래식은 '인간 보편적 감성'을 온전히 느끼도록 해준다. 언어의 간섭없이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느끼도롭 돕는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의 선율은 아름답고 마음이 편해진다. 18세기 오스트리아 국적의 인물이 표현한 감정의 선율을 21세기 대한민국의 내가 들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언어장벽'도, '세대차이'도 없다. 사람은 모든 감정과 상황을 언어로써 표현할 수 있다고 자만할 수 있으나, 인간의 감정은 원래 규정지어질 수 없는 다양한 복합체다. 그것은 선처럼 이어져 있고 어둠과 빛처럼 그라데이션되어 있으며 무드링처럼 언제 변하는지 모르게 변해간다. 모호함 투성이다. 그것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 '클래식'이다. 시대별로 나눠 보자면 바로크 시대에 헨델과 비발디, 바흐 등은 질서와 안정을 노래했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조화와 통일을 노래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등의 작품이 그렇다. 바그너, 쇼팽 등의 낭만주의 시대에는 자유로움을 노래한다. 특정적인 감정을 인위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닌, 감상자가 주체성을 갖고 해석할 여지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이는 '독서'와 어느 부분이 일맥한다. 흔히 '영상매체'를 접한 이들보다 '독서'를 즐기는 이들이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이유를 '능동적인 해석'에서 찾는다. 영상매체는 시청자의 해석이 개입할 여지를 현저히 줄어들게 만든다. 다만 독서는 그 폭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능동적으로 해석한다. 가사가 있는 노래와 없는 노래 또한 비슷하다. 강제적으로 가사를 넣고 듣는 이에게 수동적인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음율을 통해 환경을 부여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능동적인 해석의 여지를 충분히 열어 두는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누군가는 슬픔을, 누군가는 감동을, 누군가는 기쁨을 느낄지 모른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자. 이제 감동하세요'라는 설명서는 지극히 인위적이다. 인간의 취향에는 언제나 독서와 클래식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틱톡과 유튜브, 힙합과 발라드도 각자 그 역할을 충분히 한다. 다만 시공간이 차려 놓은 다양한 즐길거리에 한 번 더 관심을 갖는 것도 삶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지 않을까 싶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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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 - 온전한 ‘나’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기
전진소녀 이아진 지음 / 앤페이지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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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 쇼츠' 에서 건축현장, 나무 자르는 기계를 봤다. '제재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영상이었다. 흔히 공사 현장에서 자주 보이는 물건이다. 영상 속 인물은 제재기에 대해 설명을 했다. 얼치기 흉내가 아닌, 전문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 인물의 다른 영상을 찾아갔다. 인물은 애띈 소녀다. 그녀의 영상을 몇 차례 살폈다. 영상은 대게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사용하는 용어 중 적잖게 '영어'가 들렸다. 발음을 듣고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다른 영상도 찾아봤다. 그녀는 '호주'에서 유학을 했고 나이는 스무살이라고 했다. 하단에 있는 구독 버튼을 눌렀다.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던 순간이었다. 얼마 뒤, 유튜브 쇼츠에서 다시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가 들렸다. 'J.J의 1분 레시피'로 오프닝을 시작하는 영상이었다. 익숙한 배경이 보였다. 영상 속 배경은 내가 매일 보는 곳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어디서 봤는지 잊고 지냈다. 다시 그녀의 채널을 들어가니, 이미 봤던 영상들이 있었다. 다시 찬찬히 영상을 봤다. 건축에 대한 영상이 '유튜브 컨셉'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느낀 것은 숙연함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그 다음에는 숙연함, 마지막에는 존경심이 들었다. '제주'라는 공간과 '오세아니아 유학'이라는 공통점. 그것은 삶의 모습을 더 달라보이게 했다. 나이가 차오를 때마다 무섭게 굳어가는 내 표정에 비해, 영상속 인물은 일상이 즐겁다는 듯 싱글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팔로우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과 찍은 사진이 많았다. 인생의 종류가 다양하다지만, 어떤 선택들이 쌓이면 이처럼 다채로워지는 인생이 될지 인간적인 호기심이 들었다.

뉴질랜드에서 소매 창고 일할 때였다. 어차피 더러워지는 일에 아침마다 편하고 저렴한 옷을 입고 출근 할 때였다. 그 시기, 비슷한 일을 하는 20대 백인 여성을 보게 됐다. 그녀는 깔끔한 정장 치마를 입고 힐을 신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커다란 트럭에서 자신의 몸집만한 상자를 꺼내 들고 내려와서는 자신들의 물건을 매장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진열하던 그녀는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진열된 상품에 대한 재고를 파악한 뒤, 나에게 서명을 받으러 왔다. '옷'은 '허세'나 비효율이 아닌 '품격'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옷'은 그렇다. 영화에서 보는 '첩보원'들은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과도한 액션을 취한다. 그 모습을 보고 '비효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하기 편한 복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직장인들은 츄리닝에 티셔츠를 입고 다녀야 한다. 농사를 짓거나 건설현장에 있는 이들은 어쩐지 싸구려 작업복을 입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다만, '전진소녀 이아진' 님의 영상에서 의복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은 비효율이 아닌, 직업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뉴질랜드에서 상품을 정열하던 20대의 백인 여성의 모습은 지금도 다시 떠올리면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는 사람의 의복을 보고 사람들은 그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다. 고로 진짜 그 직업을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예우도 다르길 바란다. 그런 인식을 다르게 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철학'은 순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고민의 농도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있다. 먼저 경험해 보니 어떻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먼저 한 경험이 자랑처럼 느껴진다. 다만 철학은 순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고민의 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에 유연하게 알게 된 일을 지인에게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지인은 처음하는 경험에 이것 저것 질문을 많이 했다. 잘 알지 못하는 지인에게 먼저 알고 있다는 우월감이 묻은 조언을 해 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했던 고민보다 더 깊은 고민을 했던 지인은 그 분야에 '전문가' 수준으로 성장해 있었다. 오랫만에 만난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았다. 더이상 나의 조언이 주제를 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먼저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 더 깊이 있는 철학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에 있어서 가장 철학적인 고민을 한 이는 먼저 고민을 해봤던 이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의 농도가 깊었던 이들이다. 과거 농업 중심 세계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은 모두 같은 일을 했다. 아들이 하는 고민은 아버지가 먼저 경험했던 고민들이었고, 아버지의 고민 또한 할아버지가 먼저 했던 고민들이었다. 세대가 같은 고민을 할 때, 고민의 농도는 순서가 중요했다. 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세대가 달라졌다. 세대를 넘나드는 위와 아래의 고민만큼이나 좌우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던 시기가 지나갔다. 이제는 세대는 물론 같은 세대에서도 살아가는 방식이 각자 달라졌다.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대로 살아가는 정답지가 사라진 세상에서 가장 농도 깊은 고민은 가장 최근까지 그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고민의 농도는 깊고 최신이다.

학교와 사회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녀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났지만 배움은 그치지 않았다. 학교는 가르침을 먼저 주고 시험을 치지만, 사회는 시험 먼저 치르고 가르침을 준다. 배움에 순서가 중요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배움을 멈춘다. 배움에는 순서가 없다. 학교 시험은 틀린 문제에 대한 해결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사회에서는 그 해결법도 배우도록 도와준다. 그녀가 얼마 전, 중학교 검정고시, 고등학교 검정교시를 치루고 수능시험도 치뤘음을 알고 있다. 또한 꿈에 그리던 건축학과에 진학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언제나 싱글거리는 그녀의 뒷편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좌절이 있었는지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철학이 깊이가 분명 남다르다는 사실은 나이를 넘어 존경하게 만든다. 벌써 6만명이 구독하는 채널이지만, 앞으로 30만, 50만 이상으로 크게 성장할 채널 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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