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력 시대 -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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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 중년의 여교수는 말했다. 해외에서 경제학을 들을 때 이야기다. 경제는 커다란 사이클을 반복한다고 했다. 호황, 후퇴, 침체, 회복이 번갈아 간다고 했다. 다만 회복 단계에 급격하게 압축 성장하는 시기가 온다고 했다.그것을 경제학 용어로 '퀀텀점프'라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본주의 확대는 '성장'을 전제로 한다. 즉 사이클을 돌지만,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길 전제로 한다고 했다. 그것이 일종에 '수레바퀴'를 닮았다. 수레바퀴는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같은 곳을 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경제'를 벗어나 '철학'으로 갔을 때, 수레바퀴는 '윤회'를 닮았다. '경제'가 '철학'을 닮은 것은 둘 다 자연을 모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연을 닮은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산과 골은 번가르지만 확장한다. 우주 어디를 봐도 비슷하다. '탄생'과 '소멸' 사이에 호황, 후퇴, 침체, 회복이 있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윤회'하지만, 그 턱에 걸려 넘어지면 '소멸'한다. 작은 사이클은 거기서 끝난다. 더 큰 사이클은 다시 '탄생'으로 이어진다. 2차원 그래프로 경제 그래프를 보면 재밌다. x축과 y축에 시간과 규모가 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해 왔다. 시공간을 기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다. 3, 4차원의 시공간을 평면에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가 천장 위에 붙어 있는 '파리'의 위치 계산하는 걸로, 인간은 시공간을 평면 위에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좌표평면이라는 개념이 들어선 것이다. 경제 사이클은 좌표 평면 위에서 위 아래를 그리며 나아간다. 다만, 그 관념은 16세기 수학자의 아이디어로 시작했을 뿐, 경제의 본질은 그것과 닮지 않았다. 경제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다. 마치 수축과 팽창을 하며 성장하는 것이 '심장'을 닮았고 '별'을 닮았다. 굳이 말하자면 위 아래로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부피'가 커져 간다.

조형의 기본 요소는 '점, 선, 면, 형'으로 이뤄졌다. 굳이 따지자면 경제는 '선'으로 표현된다. 다만 실제 그것은 '형'을 닮았다. 수축과 팽창을 번가르며 성장하는 것은 인간의 호흡을 닮았다. 종이 위에 죽은 어떤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닮았다. 지나온 흔적이 기록되는 것을 보면 나이테를 닮았다. 그 또한 생명을 닮았지만 여름과 겨울의 순환처럼 자연을 닮기도 했고, '보름달'과 '삭'이 번가르는 것 처럼 천문학을 닮았다. 경제 뿐만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 미국을 세운 사람들은 대중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파벌과 이익집단의 경쟁을 일으킨다고 봤다. 대중정치가 쉽게 폭민정치로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뭐든 탄생을 했다면, 성장하고 후퇴를 했다가 침체하기 마련이다. 와중 회복의 단계를 슬기롭게 넘기면 그것은 '퀀텀점프'한다. '소멸'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회복' 단계의 역할은 어느 주제에서나 필연적이다. 폭민정치가 소수의 침묵과 소외를 불러 일으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 정치는 선출을 통해 국정을 운영을 한다. 선거인단 혹은 권리장전과 같은 안정장치도 심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 독립선언문이나, 권리장전, 헌법에 '민주주의'라는 키워드가 언급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그 어디에도 '민주주의'는 언급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소멸'로 이어지듯, 민주주의 또한 영원 불멸이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도 '민주주의'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것은 '저주' 처럼 들릴지만, 사실 모든 것은 그렇다. 영원한 일방향 성장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지난 1세기 우리를 성장시켜 왔던 주요 키워드 하나를 손꼽아 보면 '테일러주의'다. '테일러주의'는 철강회사에서 노동자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관리법이다. 노동자의 작업 범위와 동선, 움직임 등을 표준화하여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로써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테일러주의의 성공으로 미국은 '철강', '석유', '자동차' 산업을 기반으로 폭발적은 공급력을 갖게 됐다. 그것이 현대 우리 자본주의의 기반이다. 공급력을 해소시키기 위해 자본은 '광고'와 '마케팅'을 지독하게 성장시켰다. 턱 끝까지 차 있는 음식을 목구멍 깊숙히 더 밀어 넣고 이미 풍족한 옷을 마음에 들지 않게 했다. 불만족하게 하는 방법의 연구는 20세기 활발해 졌다. 포화된 육체를 넘어서 현대는 '영상'과 '정보'를 머릿속으로 꾸역꾸역 채워 넣는다. 육체가 포화에 이르자, 마케팅과 광고는 '정신'을 공략했다.

광고와 마케팅은 언제나 대중을 '불만스러운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이 더 불만족하고 더 탐욕스러우며, 더 혼란스러워야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 새롭고 좋은 것을 구매했다. 소량품종 대량생산의 대명사인 포드가 자동차 업계 1인자로 있던 시기, 2인자 였던 '제너럴 모터스(GM)'은 새 광고 전략을 통해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그들은 "어떤 고객이든 자신이 원하는 색상의 자동차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라고 선전했다. 고객의 불만을 갈망으로 바꾼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산업은 이처럼 '표준화'하고 '획일화'하며,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나아갔다. 인간은 더 비인간적이며 '욕망'과 '번뇌'에 쉽게 휩쌓이는 피로도를 쌓았다. '산업' 또한 자연을 닮았다. 무한대 확장은 불가능하다. 극도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시기는 언젠가 저문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지금이야말로 '육체'와 '정신'이 모두 포화상태까지 와있다고 봤다. 경기 순환곡선처럼 이제 중요한 것은 '회복력 시대'를 어떻게 넘어서냐는 것이다. 탄생 후, 호황, 후퇴, 침체의 사이클을 넘고 '회복'의 단계에서 '퀀텀점프'를 하지 못하면 만물은 '소멸'로 이어진다. 그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우주적 규칙'이다. 에너지 낭비, 극단적인 효율성 강조, 지나친 표준화가 경제, 정치 뿐만 아니라, 적게는 개인의 자아, 크게는 자연까지 위협한다. 이제 올바른 회복력 시대를 분기점으로 우리가 새로운 도약을 할지 혹은 소멸의 단계로 접어들지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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