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나이가 들어도 몸의 시간은 젊게
정희원 지음, 이상운 낭독 / 더퀘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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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사람은 2만 5천회 호흡한다. 호흡은 '횡격막'의 수축과 이완으로 이루어진다. 횡격막은 근육이다. 고로 근력 운동으로 발달할 수 있다. 하루 평균 2만 5천 회 반복은 분명 모양을 형성하는데 충분하다. 사람의 몸은 서로 상호 작용한다. 가령 가슴과 복근만 단련하면 앞뒤에서 당기는 힘의 차이가 발생한다. 고로 몸이 앞으로 굽는다. 안쪽 근육만 사용하면 안팍의 당기는 힘의 차이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관절이 상하거나 뼈가 휘어지고 쉽게 부러진다. 반복적인 활동은 근육의 모양을 성형한다. 근육은 안팍, 앞뒤의 차이가 발생하며 당기는 쪽은 더 강하게 당긴다. 호흡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분명 근력 운동이다. 심지어 2만 5천회나 가까운 반복 운동을 한다. 횡격막 운동을 통해 호흡을 할 때, 자세가 흐트러지면 횡격막은 제대로 수축하거나 이완하지 못한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못하니 코로 숨을 들여 마시지 못하고 입으로 호흡한다. 입으로 호흡하면 면역체계는 약해진다. 비강을 통한 호흡은 공기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게 하지만 구강 호흡은 이런 기능이 없다. 유해물질을 걸러내지 못한다. 구강 호흡은 비강 호흡에 비해 산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는데, 그 차이가 대략 20%나 된다. 산소가 적절히 공급되지 못하면 기억력과 판단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코로 호흡하는 일은 '후각'에 영향을 끼친다. 냄새를 담당하는 뇌의 부위는 편도체다. 편도체 옆에는 '해마'라는 기억 담당 부위가 있는데 이것은 기억력과 연관되어 있다. 구강 호흡은 입속 압력의 균형을 깨뜨린다. 장기적으로 치아와 아래턱을 변형시킨다. 입이 말라 건조해지고 충치와 구강질환이 생긴다. 부족한 산소는 집중력을 떨어뜨려 주의가 산만해지고 성격 또한 예민하게 바뀐다. 학창시절에 비염이 있는 경우에 학업 성취도가 크게 떨어지고 성적 하락의 원인이 된다. 성인이 된 뒤에는 성격에도 영향을 주어, 결혼, 취업, 육아 등의 사회 생활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그것은 마음챙김 즉, 명상으로 해결 가능하다.

나쁜 호흡은 부족한 산소를 채우기 위해, 더 나쁜 자세를 만든다. 나쁜자세는 나쁜 산소 공급을 만든다. 나쁜 산소 공급은 나쁜 자세를 만든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생존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100kg의 덤벨을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호흡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호흡을 정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한다. 허리와 어깨, 가슴을 펴서 코로 들여 마신 숨이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시 들어온 숨이 나갈 때는 제대로 나가는지 또한 관찰해야 한다. 대게 사람들은 들숨과 날숨을 고르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세하게 과호흡 상태다. 들여마시는 것보다 덜 내뱉는 과호흡 상태는 신경기능과 근육 생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과호흡은 자율 신경계 혈관을 수축하여 혈액순환을 감소시킨다. 또한 공포심과 불안감을 증가시킨다. 이런 과호흡의 원인은 역시나 틀어진 균형 때문이다. 인간은 대체로 균형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다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원래 균형적이지 않다. 심장은 왼쪽 가슴에 있고 간은 오른쪽에 있다. 폐의 크기도 양쪽이 서로 다르다. 고로 원래 인간은 불균형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런 불균형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오른쪽과 왼쪽에는 서로 다른 힘을 미세하게나 사용해야한다. 그것도 100년, 평생동안. 고로 자연적으로 두면 인간의 근육은 그 균형이 틀어진다. 척추는 더 불균형해진다. 척추는 골반에 이어져 있다. 골반은 다리에 연결된다. 뼈와 뼈 사이에는 연골이 들어 있는데 이 연골은 한번 파열되면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다. 즉, 일회성이고 소비성이다.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안 좋은 자세와 호흡은 기본적으로 신체의 균형을 망가트리고 기억력과 판단력에도 영향을 주며 스트레스와 독소를 쌓게 만든다. 이는 성격과 인생이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저 물리적인 연대가 오래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때로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노화의 속도는 각자 다르게 진행된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호흡이 잘못되면 더 많은 병원균에 노출되고 가속노화를 경험한다. 학창시절에는 학업을 위해 잠을 줄이고 성인이 되서는 '돈'을 위해 잠을 줄인다. 그 와중에 사람은 빠르게 가속노화가 진행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젊음이라지만, 현대인의 대부분은 젊음을 팔고 돈을 얻는다. 실제로 그렇게 돈을 얻으려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잃어버린 판단력과 기억력, 예민한 성격은 돈을 버는데 좋은 영향이 된다고 보기 힘들다.

쉽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현대인들은 제대로 된 '쉼'이 아닌 다른 보상을 원한다. 보상은 '음식'과 '스마트폰' 등 다양한 중독을 일으킨다. 대게 술과 담배, 마약에 빠지는 이들의 경우, 심신이 미약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어떤 것에 대한 의존도를 높힌다. 중독은 단순히 '술'과 '마약', '담배'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독은 '도파민'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도파민은 자극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이미 도파민 자극에 길들여진 뇌는 더 큰 자극에서만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파민 분비는 일시적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지만 장기적으로 우울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는 '스마트폰'이다. 대게 사람들은 일과를 마치면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들이키고 누워서 짧게 끊어진 스마트폰 영상을 시청한다. 이 보상은 원래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보상들이다. 인간은 원래 동물중 가장 지구력이 강한 동물이다. 인간이 지구력이 강한 덕분에 온갖 기후 변화에서도 살아 남았다. 인간이 오랫동안 걸 수 있는 이유는 휴식 때문이다.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지구력이 강한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행위다.

다만 현대인에게 이런 휴식의 시간은 몹시 길다. 지구력을 높이기 위해 인간은 '당분'을 섭취하곤 했다. 포도당 섭취는 지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다만 문제가 있다. 장기간 움직인 후 얻게 되는 휴식과 당분 섭취가 아니라,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당분을 섭취하는 것이다. 인간이 산업 구조를 바꾸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후 우리는 굉장히 자연스럽지 않은 환경에 놓였다. 자연에서 '당분'을 얻는 것은 그닥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인간에게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도 그닥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짐승과 날씨의 위협에 놓여 있었기에 항상 움직여야 했고 당분은 정해진 계절이 아니라면 얻기 힘든 에너지원이었다. 이것과 상관없이 이제는 설탕은 너무나 흔하고 저렴한 식재료가 됐다. 또한 인간의 생산성은 움직일 때보다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때 더 발생한다.

대한민국의 인구 구조상 앞으로 노인들은 스스로 부양할 책임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인들이란 지금 MZ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을 말한다. 현재 베이비붐 세대의 노인의 경우 그들을 부양하는 젊은 인구의 생산성이 그들의 노년시기를 받치고 있지만, 이후 MZ세대가 노인이 될 시기에는 젊은 층이 노인들을 부양할 수 없는 시기에 이른다. 나를 포함한 현대 젊은 이들이 지금부터 좋은 자세와 호흡을 유지하고 좋은 음식과 충분한 수면을 지키지 않으면 지난 베이비붐 시대와는 다른 노년을 맞이할 것이다. 도서는 윌라 오디오북을 통해서 일독했다. 들으면서는 건강에 관한 도서가 아니라 공포 스릴러를 읽는 것처럼 소름끼쳤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봐야 한다는 경각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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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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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진실?"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한쪽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진실이란 게 뭐지? 그걸 누가 판정하는 건데? 결국 기록된 것만이 진실이야. 기록되어서 사람들이 인식해주었을 때, 그게 바로 진실이야."

소설의 일부분이다. 진실에 대한 두 인물의 가치관이 대립한다. 기록되어 영원히 다수에게 진실이 되는 것. 혹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 자체만으로 진실로 인정되는 것. 두 가치관은 대립한다.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역사'의 정의를 배웠었다. 역사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과거 사실 그 자체. 둘째는 문자로 기록한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는 기록되지 않은 것을 역사로 배우지 않는다. 심지어 인류 존재의 99%에 해당되는 기간을 '선사시대' 즉, '역사 이전의 시대'로 정의해 버린다. 소설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야마카스 사이세이'의 대사 중 '진실'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역사와 닮았다.

역사와 진실은 비슷하다. 변하지 않는 하나의 사건이 있지만 다른 모양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람 중 90%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다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나와 같이 제주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부산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조차 틀렸다. 북쪽이 위라고 생각하는 개념은 북반구에 사는 유럽과 동아시아가 만든 임의의 기준이다. 북상(北上), 남하(南下)라는 단어가 있지만 북하(北下), 남상(南上)이라는 말은 없는 이유다. 그러나 원래 우주에는 동서남북, 위와 아래가 없다.

따지고 보건데 불은 상승하는 성질이다. 물은 하향하는 성질이다. 불을 피우면 불은 위로 향하고 물은 아래로 떨어진다. 우연히도 북반구에는 '육지'가 많고 '남반구'에는 '바다'가 많다. 또한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밑으로 내려간다. 동양 사람들에게 따뜻한 공기는 '양', 차가운 공기는 '음'이다. 남쪽에서 만들어진 '양'은 북을 따라 움직이고, 북쪽에서 만들어진 '음'은 남을 따라 움직인다. 관념에 의해 만들어진 방향일 뿐이다. 고로 여기에는 '객관적인 진실' 따위는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에게는 침략가의 대명사처럼 비춰지지만, 일본에서는 입지적인 인물로 꽤 존경 받는 영웅 중 하나다. 여기에 진실과 역사가 있을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태양계 순서를 외우는 방법으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읊었는데 언제부턴가 '명'이 빠졌다. 정의하기에 따라 과학이나 역사, 진실은 언제든 바뀐다. 다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는 다르게 말한다. 기술된 진실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 그 자체를 진실로 보는 것이다. 이런 관념의 차이로 인물들은 가치관의 차이가 생겨난다.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말이 있다. 이는 수학적 결정론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은 모두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과 닮았다. 가령 시속 6km로 1시간을 달리고 있다면 나는 어디에 있겠는가. 바로 6km 떨어진 곳에 있을 것이다. 물론 과정 중 물을 마시거나, 잠시 쉬거나, 살짝 돌아가는 정도의 변수가 없다면 말이다. 현대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변수'들이다. 고로 '진공'이라는 설정이 자주 사용된다. 진공 상태에서의 파동, 진공 상태에서의 빛과 소리, 모든 매질의 성향과 변수를 모두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험은 '진공'이라는 초기값을 언제나 설정한다. 다만 아주 엄청난 지적 생명체가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수를 계산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아가던 빛이 어느 조건에 굴절되고 어느 조건에 느려지고 빨라진다면 어떨까.

이처럼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을 조건을 모두 알고 나면 실질적으로 우주는 빅뱅 이후로 진행될 것들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것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파플라스'는 말했다. 점차 복리로 커져가는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 할 수 없다면 아주 근접한 미래 정도는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라플라스'의 사고실험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것은 그렇게 되어 있는 미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수식이 얽히고 섥힌 함수값을 통과한 아웃풋이다.

어린시절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다. 우연히 듣게 된 성경의 내용 중,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나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적잖히 당황했다. 아무리 성스럽다손쳐도, 그것이 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쳐도,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일은 우주의 인과법칙을 벗어나는 일이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그게 신의 업적이라고 하더라도, 우주를 창조하던 '신'치고는 너무 작디 작은 기적이다. 고작 포도주 몇 잔을 만들어내는 사소한 '기적'이 당황스러웠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엄청난 능력을 혼인잔치에 참석한 이들에게 포도주 몇 잔을 배푸는 정도로만 사용했을까. 거기에는 분명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요한복음 20장 31절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저자가 본서를 기록한 의도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에는 '저자'의 집필의도가 들어가 있다. 사실을 적시하여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함'이 집필의도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여름철 내리던 장맛비가 자연순환 시스템을 돌고 돌아, 짚이나 풀에 스며들고 그것이 소나 돼지에게 스쳐 지나갔다가 다시 오물로 배출되고 비로 내려 쌀밥에 들어갔다면 내가 먹는 쌀밥에도 온 자연이 담겨진 기적과 같을 것이다. 이 한 방울의 물방울을 추적하는 것은 기술적,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반드시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또한 이런 이야기를 담는 사람은 '쌀 한톨'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식의 표현으로 함축하거나 비유하지 모른다.

역사나 사실은 때로 문학이 된다. 그것은 어느부분을 보면 거짓이고 어느 부분을 보면 진실이다.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는 사고로 우연히 아주 짧은 미래를 보게 된 사람과 그로 인해 생기는 재밌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책은 두껍지만 읽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의 특성상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읽으면 안되기에, 책의 내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독후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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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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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다짜고짜 소설은 핵심 주인공의 부고를 알린다. 노동절 새벽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죽는다. 소설은 장례식을 무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례는 3일간 치뤄진다. 그 기간동안 방문하는 인물과 사건을 만난다. 그것이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유물론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딸이 점차 아버지를 이해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다소 이념적이고 철학적인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1838년 스무살이 된 법학도 청년이 아버지의 사망을 맞이한다. 그 뒤로 그는 철학을 공부에 매진한다. '헤겔 철학'이다. 다만 그는 이후 헤겔 철학의 관념론과 비과학성을 비판한다. 이 비판 끝에 주장한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한 그의 이름은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다. 관념론은 무엇이고 유물론은 무엇일까. 그 전에 변증법에 대해서 부터 알아보자.

변증법은 'dialectic'이라고 부른다. 'dial-'은 대화, 'lect-'은 모으다 의 합성어다. '대화 모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마치 대화하듯 발전해 가는 논리 과정이다. 쉽게 말해, 한 이론이 등장하면, 반대 이론이 다시 등장하고 둘을 절충하는 합이론이 나오며 발전한다는 것이다. 과정이 반복하며 대화가 질적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변증법이다. 헤겔은 '관념론적 변증법'을 주장했다. 관념론이란 '실재'나 '물질'보다 '관념'과 '이론'이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헤겔은 사람들이 자유 의지를 가졌다고 봤다. 사회와 역사는 사람들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갈 것이라고 봤다. 정론, 반론, 합론 다시 정론, 반론, 합론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사회는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다르다. 마르크스는 '역사'와 '사회'를 움직이는 것이 '관념'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봤다. 경제력과 생산력이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봤다. 고로 마르크스에게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사회, 경제적 환경'이 훨씬 중요했다. 결국 환경과 시스템이 '개개인의 의지나 관념'보다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유물론이다. 사회주의는 그렇게 개인의 자유와 신념보다 '배경'과 '환경'이 훨씬 중요하다는 배경에서 탄생했다. 고로 사회주의는 '유물론'에 배경을 두고 있다. 고로 '사회주의'는 '무신론'으로 이어진다. 신념, 믿음, 관념보다 '환경', '배경', '시스템'이 역사의 동력이라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영혼없는 상태의 영혼', '인민의 아편'이라고 봤다. 고로 자유주의는 개인의 신앙과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무신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회주의는 고로 '인간'에게 '종교'는 중요치 않는다. 그들에게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다. 젓가락이나 밥상과 같은 원자 집합 덩어리일 뿐이며, '영, 혼, 얼, 넋' 따위는 '관념'적인 것일 뿐이다.

흔히 '빨갱이', 혹은 '빨치산'이라고 부르는 용어는 파르티잔에서 시작했다. 파르티잔은 프랑스어의 파르티(parti)가 어원이다. Parti-는 영어에서도 '부분' 혹은 '일부'을 말하는 말로 '당원, 동지, 당파'등을 부르는 말이다.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는 부품이다. 고로 거기에는 '위'나 '아래'도 없고 '우'와 '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을 원자 단위로 쪼개면 각각의 원자들이 집합일 뿐인 것 처럼, 사회주의는 구성원을 하나의 구성원으로 본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아버지의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가 바라보는 '사회주의자'의 시선을 벗어나 '관념적'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사회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물론적' 이었지만, 딸은 그런 아버지를 하나의 객체로 또는 그 개성을 더 깊게 바라보며 '관론적'인 시선을 갖는다. 소설의 대화체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다. 읽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없고 되려 글을 재미나게 하는 요소로 작동했다. 어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이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닮은 유물론적 시각'이 관념론적 시각으로 바뀌는 과정이 담겼다. 어쩌면 우리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 동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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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이준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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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물류산업 신사업 도약을 위한 3대 전략 마련'을 발표했다. 26년까지 로봇 배송, 27년까지 드론 배송 조기 상용화, AI 기반 전국 당일 배송 체계를 구축하는 등 여러 추진 전략이 소개됐다. '물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미래'는 들이닥친다. 국토부에서도 변화에 맞는 준비가 한창이다. AI, 미래자동차, 드론 등 곧 다가 올 기술을 위해 사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 기간시설에 대해 국가는 재빨리 흐름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 산업이 신속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터를 닦고 준비해야 한다. 그것을 '인프라'라고 한다. 인프라는 민간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사업이 확대되기 전, 시설 확충은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장기간이 소요된다. 시간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도 발생한다. 장래를 바라보는 행정력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사회를 진보적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시대에 맞는 빠른 행정력은 어떻게 사회를 바꾸는가.

얼마 전 애플페이가 한국에 상륙했다. 삼성페이와 다르게 애플페이는 모든 곳에서 결제할 수 없다. 애플페이가 일부에서만 결제가 되는 이유는 결제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삼성페이는 NFC와 MST 두 방식으로 결제된다. 다만 애플페이는 NFC 방식으로만 결제된다.

삼성페이가 지원하는 MST 방식은 구형 마그네틱 카드 단말기가 마그네틱 선에 내장된 정보를 읽는 방식이다. 애플은 NFC 방식을 이용한다. 지금껏 우리라에 애플페이의 도입이 늦어졌던 이유는 NFC 카드 단말기의 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대세는 NFC 방식이다. NFC 방식은 근거리 통신을 지원하기 때문에 전송 속도가 빠르고 암호화 기술로 보안성이 뛰어나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대한민국은 애플페이 도입이 늦어진 것일까. 1987년 신용카드업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사용이 본격적으로 늘었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금융은 신용카드 발급을 늘렸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기존 현금 사용시 잦던 '탈세'를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이로 국가 또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다. 그렇게 1990년에는 1000만장이던 카드 발급수가 2002년에는 1억장을 초과했다. 이렇게 신용카드 사용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결제 수단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됐고 '이스라엘, 홍콩, 프랑스, 터키' 다음으로 세계 다섯 번째로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국가라 됐다. 이처럼 카드 사용 빈도가 높다는 것은 소비를 진작하고 탈세를 막는 좋은 효과도 있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에게는 구형 마그네틱 카드 단말기가 보급됐다. 중국의 경우, 10년 간 현금을 중시해왔다. 우리와 같은 기존 산업국이 과도기의 기술을 도입하던 와중, 중국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중국인들의 '신용카드'보다 '직불카드'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그리고 중간과정 없이 '스마트폰'을 활용한 결제를 받아 드린다. 우리는 세계적인 추세인 NFC 결제 방식의 도입이 늦어지는 반면 중국은 더 빠르게 '캐시리스' 사회가 됐다. 여기에는 '민간기업'의 '기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 한몫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경쟁력은 세계 2위에서 34위로 떨어져 있다. 다만 중국은 현재 세계 6위다. 소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1위에 올라 있는 것이다. 미래를 먼저 준비한 행정력의 차이가 기술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여기에 아직도 현금을 사용하는 '일본'의 예를 함께 들어보면 더욱 적절할 듯하다.

배달 로봇이 상용화되는 일은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중 하나다. 다만 이런 기술의 도입에 앞서 행정은 무엇을 해야 할까. 드론을 통해 배송을 받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게 우리의 거주 형태는 수평적이지 않고 수직적인 경우가 많다. 고로 드론을 이용한 배송보다 바퀴달린 이동수단이 더 우리 사회에 적합할 것이라고 이준석 작가는 말한다. 바퀴달린 이동 수단이 우리 사회 곳곳을 움직이기 위해 사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기계적이라기 보다 조금더 인도적이다. 바퀴 달린 운송수단을 배송 로봇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까. 바로 장애인에 대한 복지다. 무인 운송수단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인간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만나는 장애물과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보도블록과 도로의 턱, 계단 등이다. 로봇이 편하게 다니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인간이 편하게 다녀야 한다. 행정은 단 하나만을 위해 움직일 것이 아니라, 그 효과가 극대화되어야 한다. 고로 행정가들은 다방면으로 여러가지를 고려해 봐야한다. 그밖에 우리 사회가 맞이 할 거부할 수 없는 미래는 무엇이 있을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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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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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여진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을 공격해 온다. 명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오랑캐와 화친한다는 광해를 폐위시켜, 반정을 일으킨 '인조'에게 일어난 일이다. 지금에 와서야, '광해'의 중립외교를 '실리외교'라고 평가하지만 당시에는 아니다. 임진년에 파병까지 보내 준 '명'을 져버리고 오랑캐를 상대로 '중립외교'를 한다는 것은 당시 납득하기 힘든 의견이었다. 청과의 화친은 인조에게 반정의 명분이었다. 단순히 고리타분한 '사대부'들의 고집이 아니라, 정권 잡은 이들의 정치적 명분이었다. 병자호란은 어렇듯 단순히 여진에게 집밟힌 치옥의 역사가 아니다. 굉장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다.

1623년, 인조 반정이 일어난 시기, 그때는 누르하치가 명나라 푸순성을 함락시킨지 5년 뒤다. 본격적으로 청이 성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며 청 조차 명을 대체할 것이라 여기기 힘들 시기었다. 결과를 알고 보면 '명청교체기'의 조선 상황은 답답해 보인다. 소설과 영화에서 관객과 독자에게만 공개된 위기감을 주인공들이 모를 때, 독자와 관객은 불안과 긴박함을 느낀다. 그것을 서스펜스라고 부른다. 모든 걸 다 알고 볼 때는 조선의 상황이 무능하고 답답해 보이겠지만, 그것은 '미래'라는 결과를 알고 봤기 때문이다.

인조가 반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청의 영토는 조선보다 작고 척박했다. 여진이 조선을 공격해 오던 시기까지 명은 여전히 대륙 대부분을 지휘하는 폐권국이었다. 여진은 만주 일부에서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시점이다. 여진은 종종 반도로 내려와 해적질을 하거나 노략질을 하곤 했다. 조선인들에게 여진은 중원을 대체할 국가는 결코 아니었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는 조선에서는 '명청교체'를 생각해 볼 수 조차 없었다. 명이 청과 대등한 영토를 가진 시기는 병자호란이 10년도 지나서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각각 척화파와 주화파다. 청군과 화친을 맺어서는 안된다는 쪽과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쪽이다. 이 둘은 병자호란 뒤에 심양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혔다. 주화파 최명길은 당시 청군과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 그 또한 전란이 수습된 뒤에 심양으로 압송된 것은 아이러니 하다. 실제로 그가 심양으로 압송된 이유는 명과 내통했다는 명분에서다. 남한산성 안에서 최며길과 김상헌은 각자 다른 주장을 했지만 시대적으로, 둘 다 청이 명을 집어 삼킬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치 못한 것이다. 서울시 강남구는 원래 여기저기 배밭이 있던 조용한 농촌이었다. 이 지역은 비만 오면 침수되기 일수였다. 이 지역은 1970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평당 300원하던 땅값은 1억으로 올랐다. 그것은 결과를 알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지, 실제로 그것을 모르던 시기에서는 나아가는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최명길은 화친을 말하고 김상헌은 그것을 반대한다. 척화 주장을 했던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의 대립은 갈등 속에 두 의견을 던지는 자아를 닮았다. 최명길이 청에 답서를 쓰며 홍타이지를 황제자고 칭하자 김상헌은 그 자리에서 국서를 북북 찢어버렸다. 이에 최명길은 말한다.

"대감은 국서를찢으시오. 나는 다시 쓰겠습니다. 찢는 사람도 필요하고 찢어진 국서를 다시 줍는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서 그 어느 쪽도 선과 악이 아니고, 어느 쪽도 정의나 불의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가장 정치적인 말이다. 상대의 역할도, 자신의 역할도 모두 제 역할 일 뿐이다.

역사는 비극이고 치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역사가 남긴 것은 가치있다. 소설 '남한산성'은 '최명길'과 '김상헌'이 등장한다. 이 둘은 '인조'라는 임금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양쪽의 의견이 팽팽하다. 이쪽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이쪽이 맞고 저쪽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저쪽이 맞다. 살다보면 그런 상황은 종종 접한다. 어떤 쪽을 분명하게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일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 맞고, 저렇게 보면 저것이 맞는 상황에서 자아가 힘겹게 갈등하는 일은 남한산성의 '인조'와 닮았다. 수학문제를 풀 때는 답지를 보아선 안 된다고 한다. 수학은 논리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논리란 사고와 추리 과정을 법칙적인 연관을 따라 끌어가는 일이다. 즉 답을 얻기 위해서는 법칙적 연관으로만 근거해야 한다. 다만 답을 알고 난 뒤 부터는 반대로 결과를 근거로 연관을 짜맞춘다. 고로 가장 비논리적인 과정을 학습한다.

조선시대 최악의 임금을 꼽으라면 대부분 '인조'와 '선조'를 꼽는다. 역사적으로 이들의 평가는 역시 좋지 못하다. 선조는 우유부단하고 겁 많고 질투심 많은 왕이라고 부른다. 인조 또한 우유부단하고 명분만 중요시 하는 인물로 여긴다. 다만 선조는 합리적인 성격이었고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인조 또한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임금이었다. 그는 백성과 사대부 모두가 비판하던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단하고 정권을 안정화 하는 유능한 왕이었다. 그런 성격은 역시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선조와 인조의 평가는 박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결과론적이다. 선조와 인조가 우유부단하고 빠르지 못한 판단력을 보인 이유는 실제 그들이 그랬기 때문이아니라, 그들이 시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답을 골라도 오답인 경우가 있다. 이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비슷한 문제가 나온다. '트롤리 딜레마(전차의 딜레마)'다. 선로에 5명의 사람이 묶여 있다. 전차가 직진을 하면 이 다섯은 죽는다. 다른 선로에는 1명의 사람이 묶여 있다. 전차의 방향을 바꾸면 한 명이 죽는다. 만약 선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레버가 있다면 이 레버를 당겨야 하는가?

어떤 선택도 '최악'과 '차악'만 있을 뿐, '최선'의 선택은 없다. 우리에게 놓인 옵션은 그런 성격인 경우도 있다. 그것은 역사적인 혹은 경제적인 큰 흐름에 의해 달라진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던 수 만의 사람들은 모두 '비극'을 맞이 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와 별개다. 가치판단에 따라 평가는 다양해 질 수 있다. 다만, 시험에 놓인 이들은 시험에 놓여 보지 않은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박한 평가를 받는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인조'와 '선조'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 않다. '인간 이종'이라는 사람이 놓인 고뇌에 공감하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해도 '최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보면, 고립된 '남한산성' 속에서 주화파와 척화파 사이에 오락 가락 갈등하는 인간의 갈등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인조 1636년 그것은 '역사'의 순간을 이야기 했지만, 어쩐지 나는 그로인해 인간사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이 떠오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조1636리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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