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혼자 던져졌다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강명순 옮김 / 바다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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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는 착각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다만 인생이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지향점이 삶의 목표일 필요는 없다. 각자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일종의 놀이와 닮았다. 스스로 목적의 본질을 지우면 모든 것은 행위만 남는다. 행위만 남은 행위는 본질이 없기에 그저 행위일 뿐이다. 쉽게 말하면 1891년 YMCA 훈련학교에서 한 교수가 복숭아 바구니에 축구공을 던져 넣는 게임을 발견하지 않았다더라면 '마이클 조던'의 재능은 그저 빨래통에 빨래를 기가 막히게 집어 넣는 사람의 능력과 하등 다르지 않게 된다. 삶이란 그렇다. 그것에 이렇다 할 철학과 명분을 집어 넣어야 그것은 본질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본질의 유무는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그것에 이름을 부르기 전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춘수'의 꽃이 떠오른다. 그것에 '그것'이라는 이름을 정의하기에 '그것'은 '그것'으로 정의된다. 흘러가는 강물을 가르키며 강물에 이름을 짓는다면 그것은 정말 그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한강' 혹은 '소양강'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그 찰라의 순간, 그것에는 다른 것들이 채워져 있을 것이고 어느 한 순간도 같은 모양과 위치였던 적이 없다. 모든 것은 빠르게 흘러가 버리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대상은 사라지고 대상을 닮은 흔적에 관념만 남아, 그것은 우리의 '인식' 상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문제는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들어가는 순간부터만 '문제'다.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걷어내면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중국 고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데,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앉고 살아가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실제 문제인지를 화두를 던져보면 '문제 해결'의 수준을 넘어 '문제 소멸'이 된다. 가장 완벽한 문제 해결 방법은 때로 문제 소멸이다. 그것을 누군가는 '정신승리'라 부를지도 모른다. 가령 해결할 능력이 없기에 그것을 외면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도피성' 혹은 '외면', '무능', '무책임'이라 불려질지도 모른다. 다만 다시 돌이켜봐라. 누가 가장 완벽하게 문제를 없앴나.

인생은 다양한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능력을 키우고 다음 문제 해결을 하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다만 생각해보면 이렇다. 문제를 해결하는 이보다 때로 문제를 소멸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천붕지괴를 걱정하던 '기우'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에 어떤 일을 해야 하고, 땅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스스로는 어떤 대비책을 가져야 하나.

그렇다. 모든 문제는 정답이 필요하지 않다. 때로 문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과거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적 있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그는 스스로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의 크기는 그 무엇보다 강렬했다. 스스로 가장 커다란 부자가 될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에는 확신이 있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던지, '잠재의식'이라던지, 하는 이론들을 보면 이런 조현병 환자가 꿈꾸는 세상이 세상에 펼쳐질 확률도 적잖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되려 세상과 단절되어 고립을 선택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삼은 문제가 합리적인지 판단하고 그것에 해답이 필요한 경우. 그것의 해답이 가능과 불가능의 구분점을 갖고 있는지, 혹은 '난이도'의 구분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때로 그것은 해결 가능한 영역에 있기도 하지만 해결 불가능한 영역에 있기도 하다. 가장 이상적인 연애 상대를 나의 반려자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도 그렇다. 그들을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은 때로 '로맨스'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범죄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 쌓여 살기도 한다. 무언가에 정답이 있다는 착각에 빠져, 정답 없는 것에 정답을 짓고 그것에 삶을 맞추기도 한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사랑에 빠져, 그 문제를 해결해 내고자 하는 열망이나 사형수가 죄를 짓고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그 문제를 해결해 내고자 하는 욕망, 너무나 보고 싶은 자녀를 잃은 부모가 딱 한 번만 자녀를 보고 싶다고 여기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내고자 하는 욕심.

그것에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문제 소멸의 방법'이 필요하다. 모든 것에는 정답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경우가 그것을 소멸하는 것이 그 첫번째 단계이다. 세상에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해결법이 아니라, 소멸법을 찾는 것이 문제를 더 빠르게 잊어버리게 한다. 잊혀진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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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노화 - 젊게 오래 사는 시대가 온다
세르게이 영 지음, 이진구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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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는 110억까지 늘 예정이다. 단, 2020년 '란셋'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 인구 성장은 앞으로 40년이면 멈춘다. 심지어 2064년에는 97억, 2100년에는 88억으로 감소한다. 세계 23개국의 인구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예정이며, 같은 시기 대한민국의 추정 인구가 2400만이니, '대한민국 소멸'이라는 저출산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캐나다 사회학자 '대럴 브리커'와 언론인 '존 이빗슨'은 '텅빈 지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인구 폭발이 아니라 인구 소멸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장수하지 않으면 소멸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산률' 만큼이나 '의료', '보건', '기술'이다. 심지어 베트남이나 중국과 같은 고성장 중진국들 또한 이미 저출산 문제를 마주하고있다. 다시 말하면 출산률 저하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 원인은 '집값상승', '과도한 교육비'가 아니라 지구적 이유다.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대상어, 고래상어, 팬더독, 왕도마뱀, 펭귄 등은 적은 번식률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다시 말해서 적은 번식률로 개체수가 줄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은 '사피엔스종'이 유일하진 않다. 그렇다면 앞에 언급한 동물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해야 일이 무엇일까. 앞서 말한 동물들의 출산률이 낮은 이유는 종마다 다르지만, 주로 서식지 파괴, 생태계 변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언급한 멸종위기 종들은 대체로 수명이 길고 번식 주기가 느리다. 서식지가 불안정하거나 먹이 부족, 동물 사회 구조와 계급에 따른 번식 제한도 한 몫 한다. 다시말해, 높은 집값이 문제가 아니라, 불안정한 집값이 문제다. 서울 아파트은 10년 간 140%나 상승했다. 쉽게 말해, 돈이 없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격의 불안정성이다. 인간은 어제 100원하던 사탕을 오늘 140원에 주고 사먹을 만큼 우매하지 않다. 가격이 안정되기까지 구매를 보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거지 불안과 빈부의 격차는 벌어진다. 동물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과 사회 구조 또한 개체수를 줄이는데 한 몫 한다.

사회 구조란 무엇일가. 일부 지역에서 수컷 사자는 여러 암컷을 동시에 거느린다. 드물지만 능력있는 수컷의 독식은 사자 군집 크기를 축소 시킨다. 또한 이로인해 발생하는 유전 다양성이 감소하게 되고 환경 변화에 취약하게 된다. 자연선택설을 주장한 다윈에 따르면 종은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 남는다. 다시 말하면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이, 공을 차서 목표한 곳에 잘 집어 넣는 이 등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들 중 일부가 살아 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면 언제고 그 능력이 인정되는 시기에 살아 남게 된다. 과거 우월한 유전자만 남기고 열등한 유전자를 골라 강제 불임 수술하게 하던 '우생학'이 힘을 잃은 이유도 비슷하다. 현재의 우월인자가 차세대의 열등인자가 될 수 있고, 현재의 열등인자가 차세대 우월인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혁명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일어난다. 19세기가 되면 공립학교가 창설되고 교육을 의무화하는 국가가 늘어난다. 20세기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교육의 기회가 확대된다. 이후 보편적 교육이 서구를 중심으로 확산된다. 이는 유엔의 교육 받을 권리도 한 몫했다. 모두가 일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노래를 잘하는 이, 축구를 잘하는 이, 미술을 잘하는 이, 구별할 것 없이 모두 같은 기준으로 교육하고 평가 받는 시대가 왔다. 이로인해 우월인자와 열등인자가 나눠지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과거 우월인자들의 도태가 개체수 축소에 한몫한다. 대체로 동물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출산률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체 사회가 출산률을 낮추면 사회는 다양한 유전적 정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것인 '동물 사회'에 존재하는 이론이지만 인간 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된다. 개체수가 줄어가는 시대는 '사피엔스종'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단위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굳이 따져 보자면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 볼 수 있다. 만약 당장 오늘부터 수명이 1000살이 되는 알약이 나왔다고 해보자. 국민 전체가 그 알약을 복용했다고 해보자. 이제, 국가는 어떤 정책을 실시해야 할까. 죽지 않는 사회가 오면 국가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생산인구를 예로 들어보자. 인구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인구는 16세에서 64세로 알려져 있다. 다시말하면, 국가 단위에서 필요한 것은 1세에서 15세가 아니라 그 이후 인구다. 덜 낳고 덜 죽는 사회가 더 많은 부를 축적 할 수 있다. 수명이 늘면 생산인구는 더 늘어난다. 물론 '대한민국 인구소멸'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하루를 멀다하고 나오는 와중에, 아이를 덜 낳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효용없는 수 조원에 해당되는 국가 세금을 어느 곳에 분배하여 사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가파른 인구 절벽이 문제가 되기에 그 속도를 낮추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죽지 않는 시대에 대한 준비다. 인구가 꾸준하게 늘어나는 인구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자본주의는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인구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꾸준한 '인플레이션'은 일어나기 쉽지 않다. 가치는 '희귀' 할수록 오른다. 사람이 줄어 사람보다 돈이 많아진 시기에는 돈의 가치, 생상품의 가치, 부동산의 가치는 당연히 줄어든다. 고로 소비해도 소비되지 않는 생산품을 국가 경쟁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문화 산업이나 예술 산업과 같는 무형 산업 말이다. 100명이 100개의 연필을 만들어 100명에게 전달하는 또한 판매되지 않는 재고품을 쌓아두고 가격하락을 맞이하는 사회가 아니라, 한 명의 가수, 작가, 배우가 1편의 작품을 만들어 100명에게 전달하고 재고를 남기지 않는 산업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재수없으면 120세 200세까지 살게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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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자본주의 - 개정판
윤루카스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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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소비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資本主義)는 개인의 재화 소유권과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제도다.

'경제'라는 단어 또한 다른 방향으로 소비되고 있다. 경제는 '개인의 부'에 초점이 맞춘 것이 아니다. 경제는 재화,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이다.

최근 '경제'라는 키워드의 소비가 늘었다. 그래서 경제학에 여럿 오해가 있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철학의 분류다. 경제를 '돈'과 떼어 낼 수는 없지만 부의 증식이 오롯한 목적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는 기본적으로 '도덕철학과 교수'였다. 스스로도 자신을 철학가라고 여겼다. 인간의 행동을 양식 연구하는 학문에 애덤 스미스는 '경제'를 매개체로 두었다. 그것이 국부론이다. 그게 경제학의 시초다. 고로 경제학은 경제를 매개로 한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지, 개인의 부를 증식 시키기 위한 이론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은 순수학문에서 원리와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이것으로 문제 해결과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고로 순수학문을 기반으로한 응용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학문으로써 경제학을 좋아한다. '수요 공급'이라는 명쾌한 논리적 원리를 이용하여 다양한 현상을 설명한다. 마치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의 네 가지 기본 힘으로 자연세계의 물리학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물리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은 '보존 법칙'이다. 보존법칙은 에너지, 운동량, 전하 등의 물리량이 변하지 않고 보존되는 원리를 말한다. 고전물리학 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에서도 이런 '보존의 법칙'은 피할 길이 없다. 즉 다시말하면 등호를 두고 한쪽 변에 어떤 임의의 수를 곱하던 더하던 나누던 빼던, 다른 한변에서도 정확하게 같은 수를 연산하여 등호가 파괴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과 같다. 이런 보존의 법칙은 더 쉽게 말하면 '균형'을 닮았는데, 그것이 인간 활동에도 정확히 적용된다. 고로 경제학도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

가령 물이 담긴 컵에 빨대를 꽂고 음료를 마신다고 해보자. 음료를 마실 때 음료는 빨때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다만 임의적인 힘을 빼주면 빨대 속에 있는 음료는 재빨리 컵에 음료 수위만큼 내려간다. 정확하게 균형을 맞춘다. 즉, 상황에 따라 어느정도의 시차는 발생할 수 있으나 경제는 반드시 물과 같이 자신이 갖고 있는 기본 속성을 따르고자 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거나 균형을 찾아 안정적인 상태가 되는 것 처럼 말이다. 다시말하면 이렇다. 미국의 금리가 올라가면 대한민국에 있는 돈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빨려 간다. 고로 대한민국의 금리가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태평양에 생수를 넣는 것과 같다. 태평양에 생수를 넣으면 민물이 짜게 되는 일과 태평양이 담수화 되는 중 어떤 것의 차이가 클까. 양과 크기의 차이가 절대적일 때, 일방적으로 동화되는 일은 자연계에서도 흔한 일이다. 해외에서 '경제학'을 배울 때, 거대한 인간 사회 활동이 자연계 법칙처럼 맞아 흘러가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질텐데, 경제학이 만들어 놓은 논리에 집단이 무서울 정도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사회는 역시 '자연'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이것이 우리가 '사회'가 비정하다고 말하는 것과 닮았다. 사회가 비정하다고 말하면 어쩐지 사람들은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해 꼬집는 듯 하여 자기 반성을 독촉한다. 그러나 비인간적인 것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인간을 너무 '이상적'으로 그렸기에 '인간적' 혹은 '인간성', '도덕'이라는 이상향을 만들었지만 자연계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여 태우지 않고 비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여 내리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은 호르몬, 뇌의 신경회로망 등의 환경, 경험 등 다양한 요인과 상호작용으로 '감정'이라는 모호한 내적 반응을 갖는다. 그것은 오롯이 인간 내부에만 존재한다. 항성, 행성, 암흑에너지, 전자기력 이런 것에는 감정이 없다. 대체로 인간의 감정은 '죄책감'이나 '두려움' 등과 크게 연관이 있으며 이런 것들은 '자연 현상'과 크게 이질적이다. 고로 인간이 자연이나 '시스템'에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연을 닮았으니, '피'도 '눈물'도 없다. 자연은 연약한 영양이 사자에게 잡혀 먹히도록 그대로 두고, 아이를 않은 어미를 폼페이의 화산재 속에 묻어 버린다. 인간 또한 어미소를 도륙하여 가죽을 벗겨내 의복을 만들고 그 살갓은 불에 구어 그슬린 뒤 삼켜 버리며, 피를 응고하여 탕을 끓어먹고 빼를 우려 그 속에 칼슘과 인을 흡취한다. 고로 인간의 비인간성은 지극히 자연을 닮았으며 자연은 차갑고 인간이 뜨겁다. 고로 자본주의는 인간의 표면 일부를 추출 가공하여 '시스템화'한다. 나치의 공무원들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근시안적인 업무를 통해 유대인들을 선별하고 기차에 실고 학살했으며 미국과 유럽이 만든 아프리카 노예 삼각무역 또한 '피도 눈물도 없는 시스템'의 업적이다. 고로 개인이라면 하지 않을 일을 '법인' 혹은 '집단', '국가'가 되면 서스럼 없이 하게 되며 약육강식이 반드시 법칙이라 할 수 없어도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인간에게 고유하게 있는 '감정'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 법치는 이처럼 무섭게 자연을 닮아가는, 혹은 차가워져 가는 사회의 냉각속도를 조절한다. 국가는 '법'에 '윤리'를 섞어 상호 보완하고 중복과 충돌을 찾아 수정해가며 합의점을 찾는 중재자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는 차갑지만 500년도 되지 않은 '자본주의'는 다양한 합의점을 찾으며 최초의 경제학의 탄생처럼 '인본주의'를 닮아 갈 것이다. 다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세계 최고 부자들을 보라. 그들은 왜 돈이 아닌, 철학과 순수학문을 즐겨 했나.

스티브 잡스 철학

조지소로스 철학

빌게이츠 수학, 법학

마크주커버그 심리학, 컴퓨터 공학

일론 머스크 물리학, 경제학

마윈 경제학

이재용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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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잘 풀리는 인생
김새해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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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날 제주의 바다는 심하게 일렁였다. 제주를 떠나는 그날, 비행기에서 내려 본 제주의 바다는 이상하리 만큼 고요하다. 인터넷을 보면 우주에서 내려다 본 '태풍'을 볼 때가 있다. 비바람이 몰아오고 엄청난 소음과 혼돈이 우주 밖에서는 잠잠하고 때로는 평화스럽기도 하다.

전쟁, 기아, 차별, 폭력 등 이렇게 시끄러운 지구별을 떠나 태양 공전면 32도 쯤을 지나가던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돌려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별을 찍었다.

'창백한 푸른 점'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창백한 푸른점.

그 푸른점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할 정도다. 같은 해, 지구별에서는 독일이 통일을 했고 소련의 위성국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전향하기도 했다. 또한 걸프 전쟁과,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시작되기도 했다.

한걸음 멀어 질수록 삶은 침묵을 닮았다. 다시 한걸음을 다가서면 삶은 수다쟁이가 된다. 오늘의 하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시선을 정수리 위로 수 십 킬로쯤 들어올려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스스로 치열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은 사실 출렁임을 표현하기에도 미약하다. 삶을 이렇게 전체적인 맥락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은 별 것 아니며 때로는 더 원대한 방법으로 지금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운전을 하다보면 속도를 높일수록 시야가 좁아진다. '사이버 포뮬러'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이 만화는 자동차 레이싱 스포츠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에는 '제로의 영역'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제로의 영역'은 레이스 도중 운전자가 도달하는 영역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극도의 예민한 감각이 생기는 구간. 레이서는 차의 컨디션과, 노면의 느낌, 바람의 상태까지 가늠할 수 있어진다. 인간의 감각이 모두 열린다. 그렇게 초월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만화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운전을 오래하다보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또한 시야는 좁아진다.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적잖다. 시야가 좁을수록 더 예민해진다.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우리의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출렁거리고 넘실거리는 높은 파도 혹은 쓰나미도 아주 먼 거리에서 보기에는 잔잔한 파고일 뿐이다.

언젠가 나쁜 일이 있을 때, 친구는 말했다.

"새옹지마라고 있어."

크게 별 위로가 되지 않는 그 말에 친구는 덧붙였다. 자신은 좋은 일이 있으면 이제 곧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마음먹고, 나쁜 일이 있으면 이제 곧 좋은 일이 있겠다고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기고, 나쁜 일이 있을 때는 더 나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 이치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그러나 친구의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게 박혀 들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나쁜 일이 있을 때, 더 나쁜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은 거의 확실한 감정이다. 고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면 결국 이래도 저래도 부정적인 감정으로 심신이 약해진다. 반면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앞으로 이만큼의 굴곡만큼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거나, 나쁜 일이 있을 때, 앞으로 이만큼의 굴곡만큼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자보다 조금 더 단단한 심리적 토양을 갖게 한다.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새옹지마는 가까이에서 보기에 집채만한 파고의 높이라 하더라도 멀리서 보기에는 아주 조그만 출렁임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위와 아래가 번가르며 움직이는 이치에도 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야'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속도를 높이고 매몰되어 있으면 시야가 좁아진다. 참선하는 스님이나 기도를 하는 목사 혹은 신부 님의 시야는 전지적으로 넓어진다. 그들은 불안과 스트레스에 비교적 자유롭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게 된다. 인터넷 밈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오히려 좋아'라는 밈이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오히려 좋아'라는 혼잣말을 내뱉는 것이다. 이렇게 내뱉고 나면 상황에 대한 변명을 찾기 위해 '뇌'는 풀가동하여 좋은 면을 찾게 된다. 모든 것은 어떻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로 삶이란 아름다운가? 끔찍한가, 무엇이라 말하던 당신의 말은 곧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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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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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딸바보 아빠의 이야기.

불의에 사고를 당한 딸을 위해 복수를 준비하는 아버지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은 7월 9일에서 9월 1일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 글을 읽는데 집중이 되지 않는다. 과부화 상태라 글이 안 들어오는 듯하다. 글이 읽어지지 않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육아'도 있다. 쌍둥이 아이들의 입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멈추는 법이 없다. 그 짧은 순간에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고가 다이나믹하게 흘러가면 옆에서 중재하고 달래고 혼내다가, 나중에는 멍하고 멈춰진다.

예전 예능에서 아이들은 '자는 모습'이 가장 예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아이가 없을 때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으나, 이제는 무슨 말인지 공감은 된다.

아이의 감정변화는 워낙 드라마틱하고 변화무쌍해서 성인인 내가 쫒아가기 힘들 때가 있다. 싸운 아이를 앉혀 놓고 화해를 시키려고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으면 벌써 화해하고 있다.

어쨌건 이런 급변하는 감정 변화와 정보의 과다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는지, 글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좀처럼 글 자체를 읽지 않게 된다. 멍하게 초점을 비우고 가만히 시간을 두는 일이 많아진다. 귀와 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시간을 죽이는 시간이 많아지던 어느날, 아이들과 제주 북앤북스를 들렸다.

최대한 가볍고 쉽고 얇은 책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점에가면 읽고 싶은 책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읽어 낼 수 있을지, 몇 차례 시뮬레이션하고 나면 도로 제자리에 넣고 나오게 된다.

그날도 아이들과 서점을 방문한 날이다. 아이들과 서점을 방문하는 이유는 훗날 '아버지와 다녔던 서점의 기억'이라는 것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서점에 들어오면 당연히 책보다는 문구, 장난감에 더 관심을 가지지만 말이다.

만화책보다 재밌다는 '플라이, 대디, 플라이'라는 소설을 골랐다. 자기 전에 가볍게 읽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과가 끝나고 어떤 이야기에 몰입하고 싶었다.

소설은 재일교포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다. 비슷한 류의 소설을 자주 출간하는 작가로 팬층이 있는 듯하다. 소설의 시작은 매우 몰입도 있게 시작한다. 아주 평범한 아버지의 일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소설은 물론 재밌다. 다만 나에게는 맞는 것 같진 않다. 말 그대로 가벼운 소설이라 만화책처럼 쉽게 읽힌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책을 좋아하진 않았다. 딸의 복수를 위해 고등학생에게 싸움을 배우는 소재다. 주인공을 자신과 몰입하고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소설의 경우는 나와의 간극이 큰 편이라 몰입이 되지 않았다. 조금 유치한 느낌이랄까... 비현실적인 소재에 문화적인 거부감도 약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평을 보니, 재밌다는 평이 꽤 많다. 아마 책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시기에 어떤 책을 읽는지에 따라서 그 책의 평이 달라지니, 이건 나의 문제같다.

이 책을 서른 후반인 지금 읽었다는 게 오류가 아닐가 싶다. 조금 어린 나이의 내가 읽었다면 재밌게 읽지 않았을까. 모쪼록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문자를 접할 수 있게 된 구분에 있어서 '킬링 타임용'으로 나쁘지 않았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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