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 공부, 책읽기가 전부다 - 개정증보판
송재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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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아이들을 두고 잠시 외출을 했다. 그 짧은 시간에 아이들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친구와 집에서 놀아도 되는지 물었다. 어른 없는 집에 아이들끼리 두기 걱정되서 '어른' 연락처를 받았다. 상대방에게 상황을 말씀 드리는 사이에 친구가 돌아간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아이에게는 '저녁'에 다시 오라고 일러두었다.

저녁 6시 30분이 되자, 아이의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무얼 먹고 싶냐고 물었다.

"마라탕이요!"

아이의 친구가 말했다. 우리 아이는 '마라탕'은 커녕 빨간색 음식은 입에도 못댄다. "마라탕? 마라탕 먹을 수 있어?"

물었더니, 아이가 요즘 유행이란다. 아이의 목에는 휴대폰이 걸려 있었다. 아이와 마라탕집으로 갔다. 마라탕집은 난생 처음이었다. 아이는 능숙하게 '보울'에 이것 저것을 담았다.

'분모자, 뉴진면, 넓적당면, 숙주...'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마음껏 담았다. 처음에는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이내 친해졌는지, 아이는 '삼촌'이라고 불렀다.

"삼촌, 뉴진면이 왜 뉴진면인 줄 아세요?"

"왜 뉴진면인데?"

"뉴진스가 좋아해서 뉴진면이에요."

"뉴진스? 그게 뭔데?"

인기 아이돌 그룹 '뉴진스'를 여덟살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뉴진스'가 무엇인지 물었다.

"삼촌은 뉴진스 몰라요? 하입보이 뉴진스?"

거의 확실하건데 우리 아이들은 '뉴진스'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그래서 8살 입에서 나온 '하입보이'라던지, '뉴진스'라는 말이 어색했다. 아이는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 속 짧은 영상을 봤다. 우리 아이에게 철저하게 금지된 행위다. 쌍둥이가 쪼르르 와서 물었다.

"아빠, 나도 친구 핸드폰 영상 봐도 돼요?"

된다고 했더니 아이는 어깨 넘어 아이의 영상을 봤다. 그날 아이의 친구는 쌍둥이와 대화를 하다가 '대화'가 막히는 순간에 나의 눈을 봤다.

'이런 걸 왜 모르지?'하는 눈빛이었다. 1학년이기에 아직 '발달'의 차이가 있을까.

식사를 마치고 아이는 '빙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어디를 갈까, '설빙'으로 정했다. 아이는 가자마자 말했다.

"삼촌, 망고 빙수랑 미니붕어빵이요!"

아이의 말에 그대로 주문했다. 쟁반을 내려 놓는 나를 보고 아이가 물었다.

"삼촌 '속' 뭘로 했어요?"

"응?"

"혹시 슈크림 맞죠?"

"응"

아마 우리 아이였다면, '노랗고 달콤한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슈크림'과 '속'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 아이였다. 아이의 빙수를 시키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함께 시켰다. 찬 커피의 유리잔에 '물기'가 맺혔다. 그것을 숫가락 뒷면으로 슥슥 긁어서 냅킨에 글을 썼다. 한자 '나무 목'을 썼다.

아이의 친구가 말했다.

"'나무 목'이네요?"

"어? 한자도 알아?"

우리 아이에게도 한자를 가르켰다. 가르켰다기 보다 몇 번을 함께 봤다. 아이들은 몇 개의 글자는 알아도 획이 3획만 넘어가면 몰랐다. 친구는 꽤 많은 글자를 알고 있었다. 시험하고자 꽤 어려운 한자를 써서 보여줬다. 아이는 그것 또한 맞췄다.

"대단하네." 라고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아이는 갑자기 영어를 물었다. 아이가 묻는 질문에 답하니 아이가 말했다.

"오, 삼촌 대단한데요?"

"고.. 고맙네.."

아이는 '성인'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어휘력'을 갖고 있었다. '한자'와 '영어', '수학' 등 많은 과외, 학원을 다녔다. 부모의 조급함이 사교육을 부축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교육철학'이 흔들렸다. 저녁 8시 20분, 아이가 놀기 좋은 곳이 있다며 알려 준다고 했다. 아이에게 '쌍둥이'들은 8시에 잠을 잔다고 일러주었다. 아이는 놀랐다. 자신은 아홉시나 열시에 잠을자고 8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우리는 핸드폰 없어요? 친구는 있던데?"

아이의 목에 걸린 스마트폰으로 아이는 '뉴진스'와 '마라탕'이 '핫'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들이 아이의 '어휘력'을 늘려 주지는 않았을까.

그날,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를 재우고 생각에 잠겼다. 하루종일 떠올린 생각을 정리해 봤다. '비교'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얄팍한 교육철학이었던지, 쉽게 흔들렸다. 내가 고집하는 교육철학은 이랬다.

-책읽기는 '문해력'을 길러주고 '어휘력'을 높여준다.

국어, 영어, 사회, 역사, 과학 등의 과목은 '문해력'의 차이가 '성적'과 연결되어 있다. 아이는 언젠가 '선생'으로부터 독립돼, 스스로 '혼자' 공부해야 한다. 꾸준히 '선생'을 공급하던지, '책'을 공급하던지, 그것은 문해력이 결정한다.

나는 선생이 아니라, 책을 공급하기로 했다.

-책읽기는 '수학 능력'도 길러준다.

왜? '15+13= ?' 이라는 문제는 단순 훈련으로 길러질 수 있으나 다음과 같은 문제는 그렇지 않다.

문제: 철수와 영희가 길을 가다가 사탕을 사먹기로 한다. 철수가 열 다섯 개의 사탕을 구매하고 영희는 그보다 두 개를 덜 골랐을 때, 이 둘이 산 사탕의 총 갯수는 몇 개인가.

단순 계산만 연습한다면 어쨌건 고득점에 실패 할 수 밖에 없다. 산수은 언젠가 저절로 익혀지지만 '수학'은 문해력과 논리력을 확인하는 일이다. 긴 글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점차 떨어져 나갈 것이 분명하다.

-책읽기는 '한자'와 '영어' 능력도 길러준다.

책읽기는 '어휘'를 높여준다. '무능력', '무대응', '무가치' 등 여러 어휘를 접하다 공통으로 들어가는 '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을 의식치 못하게 인지할 것이다. 그때 '없을 무'의 존재를 안다면 반드시 단순 암기하는 것 보다 이해가 빠를 것이다.

영어는 어느 순간 '문법'을 묻지 않는다. 수능 영어에서 '문법'은 한 두 문제 정도 나올 뿐이다. 영어는 '편지글', '일기문', '주장문', '설명문' 등. 다양한 글을 읽고 그 의도와 주제, 주장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것은 단어 암기와 별개로 글읽기가 필수적이다.

그날 잠들기 전, '초등 1학년, 책읽기가 전부다'라는 책을 읽었다. 다시 다짐한다. 흔들리지 말자. 초등시절은 그릇을 채울 것이 아니라, 그릇을 키우는 시기다. 아이의 학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학교에서 쌓이는 '열등감'을 없애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기본 학습'은 필요하다. 즉, 공부는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 기본이기는 하다. 조급해 하지 말고 본질로 다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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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이 보는 안데르센 동화 1~2학년이 보는 시리즈
김주연 지음, 해바리기 엮음 / 토피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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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는 종종 비극적 결말이 포함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이유는 그가 가진 사랑이 대체로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스웨덴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와의 인연이 대표적이다.

제니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그녀는 '오페라 가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청중을 매료했다. 그의 목소리에 반한 안데르센은 '제니'가 공연을 마치자, 무대 뒤에서 겨우 대회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이를 계기로 안데르센은 '제니'를 흠모하게 된다. 그러나 제니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안데르센은 분명 좋은 친구이자 멘토지만 연인으로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친절하게 그의 고백을 거절했다. 그 뒤로도 '안데르센'은 꾸준히 '제니'에게 자신의 감정을 보였다. 그럼에도 제니는 그의 고백을 일관적으로 거절한다.

이 사건으로 안데르센은 큰 상처를 남긴다. 그가 가진 슬픔과 절망은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서 긔지 않았다. 자신의 비극적 사랑의 경험은 '안데르센 동화'에서 역시 반영됐다. 안데르센 동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특히 '사랑'에 있어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나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 한다. 결국 제니는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하며 그의 '사랑'은 완전한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결코 작가 본인의 삶에서 독립적일 수 없는 '글'의 태생적 한계가 우리가 읽는 '안데르센 동화'에 녹아 있는 것이다. 다만 200년이 넘어 그의 글을 읽는 우리는 꽤 다양한 감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의 동화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그럼에도 결국 이뤄지지 못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런 그의 경험은 '인어공주'라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이 동화의 결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다. 이는 비극으로 끝난 동화를 어른들이 끝까지 읽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어공주 동화에서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님을 잃고 목소리도 잃는다. 사랑하는 왕자님은 결국 다른 이와 혼인한다. 모든 것을 잃은 인어공주는 결국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비극이다. 당시 어른들이 기어코 '슬픈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으려 했던 '정성'은 분명 갸륵하다. 다만 슬픔과 좌절, 실패 또한 삶의 일부분이다. 언제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고 끝나는 비현실적인 동화 보다는 다양한 감정을 떠올려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 더 훌륭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스께 소리로 아이와 '전래동화'를 읽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 먹으려고 하는 동화다. 이 동화에서 호랑이는 토끼의 꾀에 혼줄이 난다. 가만 생각해보면 전래동화에서 '호랑이'는 참 불쌍한 동물이다. 호랑이는 '밥'을 먹는다는 것 말고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이야기라면 우리는 살면서 매 3번씩 이상과 현실의 모순을 맞이한다.

동화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가만 생각해보면 여러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세상에 분명한 선과 악은 없다. 토끼를 이기는 부지런한 거북이 이야기도 그렇다. 거북이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지만 근성과 부지런함으로 그 한계를 극복한다. 반면 토끼는 어떤가. 태생적으로 우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고로 약간 게으름을 부리거나 꾀를 쓴다. 이 동화는 부지런함을 가르칠 수 있지만 반대로 으 불공평한 경주에 응한 '거북이'의 무능과 비현실성도 비웃을 수 있다. 토끼가 게으르지 않으면 결코 이길 수 없는 경주의 출발선에 그가 선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을 때로 현실을 직시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물러 설 것은 물러서야 한다. 언제나 '이기고', 언제나 '성공하고',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교훈은 가만 돌이켜보면 우리를 '실패'에 면역력 없는 사람으로 기른다.

살다보면, 질수도 있다. 실패 할 수도 있고, 어리석거나 실수할수도 있다. 그런 감정을 배우지 않고 완전히 '생활'에서 날 것으로 맞딱드리면 그때서 사람은 와르르 무너진다. 나는 아이에게 '비극' 또한 가르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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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
정성갑 지음,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 기획 / 디자인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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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단순히 짓는 행위가 아니다. 종합 예술이다. 깊이 있는 인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사람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단순히 머물고 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어떻게 이동하며 어떻게 잠을 자는지 모든 동선과 생활 방식을 알아야 한다. 건축은 '사람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자연도 알아야 한다.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연결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로 건축은 '예술'이라고 말했고 '철학'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다.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없는 자에게 '건축을 맡기면 건축물은 '영혼'이 사라진다.

가만 들여다보자. 중동의 모스크는 대부분 둥근 '돔(Dome) 형태를 가지고 있다. 돔은 구조적으로 안정적이고 내부 공간을 넓게 만들어 준다. 공기 순환에 도움을 주고 건물 내부의 온도를 시원하게 유지 해준다. 돔의 둥근 형태는 실내의 공기가 중앙으로 모이게 한다. 그렇지 않은가. 따뜻한 공기는 '위'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모이는 대류 현상 중 '돔'의 가장 중앙 부분에 더운 공기가 모여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높은 부분에서 냉각된 공기는 다시 아래로 내려오며 공기는 빠르게 순환한다. 이 곳의 건물은 '하얀색'이다. 태양 빛을 반사시켜 받는 열을 최소화한다. 안과 밖을 모두 살피는 '철학'이 필요하다.

일본도 그렇다. 일본은 한반도에 비해 따뜻한 지역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집안 내부가 싸늘할 정도로 춥다. 일본은 아직도 바람에 '덜덜' 떨리는 창문을 사용하는 집이 많다. 우리처럼 단단한 '샤시'로 창을 내지 않는다. 이유는 '지진'과 연관되어 있다. 건물 자체가 지진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연해야 한다. 창문 틀의 유연성은 진동에도 파손되지 않고 충격을 분산시킨다. 한반도와 같이 '온돌'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지진'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온돌은 고정된 돌과 흙을 바닥에 사용하는 구조다. 지진은 바닥의 고정된 돌과 흙을 파손하여 자칫 더 큰 피해를 야기한다.

북유럽은 뾰족하고 높은 지붕을 설계한다. 뾰족한 지붕은 열손실을 줄인다. 앞서말한 '모스크'와 반대다. 공기층을 분리하기 위해서 '상하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 북유럽은 지붕이 높고 뾰족하다. 뾰족한 지붕은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천장으로 쉽게 갈 수 있도록 한다. 따뜻한 공기는 건물 지붕에 쌓인 눈을 녹인다. 쌓인 눈으로 집이 무너져 사고가 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지붕에서 눈이 적절히 녹아내리도록 '안전'에 우선순위를 둔다. 지붕에 눈이 쌓이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리기에 뾰족한 건물은 분명 중요하다.

건물을 하나 짓는 행위는 단순히 자재를 올리는 행위가 아니다. 같은 사람이 살아도 집은 환경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져야 한다. 내부와 외부에 의해 정체성이 독보적으로 생기는 것이, 사람을 닮았다. 이런 고민은 '건축가'의 몫이다. 건축가의 '철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축가는 '사람'과 '자연'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프로젝트의 예산을 관리 해야하고 자재를 선택해야 하며, 투자 대비 효과도 분석해야 한다. 경제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상적인 집을 짓는 목적으로 예산을 초과하는 기획을 해서는 안된다. 현실과 이상의 적절한 조화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건축주'와 '소통'이다. 이 또한 조화이다. '건축주'의 만족과 '건축가'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건축을 해야 한다. 그 균형을 찾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의사소통의 기술'도 필요한 셈이다.

하나를 더 해보자. '물리학'이다. 건축가는 물리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안전하고 견고한 구조를 설계한다. 물질의 성질과 화학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목재의 특성과 콘크리트의 특성을 이해하고 무게 중심과 대류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심미적인 감각도 필수적이다. 결국 건축가는 모든 것을 감안하고 하나의 건축물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아름다움이라는 매력 요소를 첨가해야 한다. 건축은 깊이 있는 예술적 행위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방면에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건축에 관심을 가졌다. 건축이 복합적 지식과 호기심의 균형이 필요해서다. 예술과 과학의 조화가 필요해서다. 이는 종합 예술이다. 공간, 비례, 광학 등 다양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건축은 의미를 상실한다.

'건축가 최욱'은 집을 지으며 아내에게 '명상의 방'을 지어 선물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렇게 볼 때, 이 선물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처럼 '지식'과 '지헤', '이해'라는 다양한 능력이 균형을 맞춰야 좋은 건축가라 할 수 있다. 이런 건축가들의 특징으로 무엇이 있을까.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집을 지을 때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서재'를 몹시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의 집에 '책'은 필수요소다. 어째서 '건축가'들이 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건축'이 가진 본질이 책을 닮아서 그럴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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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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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왕의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던컨 왕은 이 반란을 제압한 '맥베스'라는 인물을 신임한다. 맥베스가 황야를 지날 쯤, 어디선가 마녀 셋이 나타나 예언을 한다. 예언에 따르면 맥베스는 코더라는 지역의 영주를 거쳐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충직한 신하가 '마녀'의 꿰임에 빠져 갈등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던컨 왕은 '맥베스에서 작위를 주는데, 그 작위가 바로 코더 영주의 작위였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짐을 마주한다. 이 내용을 또한 자신의 아내와 공유한다. 맥베스의 부인은 역시 '야망'으로 가득찬 여인이었다. 그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길 기대한다.

마침내 던컨 왕은 '맥베스'의 성을 방문한다. 이날 아내는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길 부추긴다. 던컨 왕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성에서 기분 좋은 연회를 즐긴다. 이후 왕이 술에 취해 잠에 든다. 맥베스 '결정' 후 '행동'의 기로에서 갈등한다. 양심과 탐욕의 부딪침에서 '부인'은 맥베스를 자극한다. 결국 맥베스는 단검으로 왕을 살해한다. 또한 왕의 두 시종을 죽이고 그들의 옷에 피를 묻혀, 그들로 하여금 '반역자'라는 누명을 씌운다.

사망한 '던컨 왕'에게는 '왕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상도 위험하다고 판단된다. 그들은 왕위를 잊지 않고 도피를 선택한다. 왕자들이 도피하자, 자연스레 맥베스는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른 '맥베스'의 비극은 이미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가속화된다. 맥베스는 '뱅쿠오'를 의식한다. 그의 자손들이 자신위 왕위를 탐하고 빼앗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맥베스는 자객을 통해 '뱅쿠오'를 살해한다. 다만 그의 아들을 놓치고 만다. 그날부터 뱅쿠오의 유령은 맥베스를 괴롭힌다. 헛것을 보고 망상적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불안감이 만들어난 이상 증세가 나날이 심해지며 그는 잠도 잃고 기쁨도 잃는다. '던컨의 신하'로써 신임을 받으며 성의 성주가 되던 기쁨에 만족하지 못한 댓가가 치뤄진다. 더 많은 것을 얻고도 불안과 고통이 그들 따라다닌다.

마녀들은 다시 '맥베스'에게 예언한다.

"여자의 몸에서 나온 사람은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이 순차적으로 이뤄짐을 지켜봐왔다. 이번 예언에 대한 신망은 더 두꺼워졌다. 게다가 그들은 '파이프의 영주 맥더프를 조심하라'고 이른다. 맥더스는 예언을 듣고 '맥더프'를 살해하길 지시한다. 다만 맥더프는 '왕자'가 있는 곳으로 이미 도피한 뒤였다.

실제로 맥더프는 맥베스에 대항할 세력을 모은다. 그러나 맥베스는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맥더프의 처자식을 살해한다. 죽음은 죽음을 부르고, 불안은 또다른 불안을 낳기 시작한다.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벌인 다른 하나는 또다른 하나를 만들어내며 점점 사건을 키워나간다.

고통과 불신의 나날을 보내든 맥베스는 점점 미쳐간다.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이 와중에 '왕자'와 '맥더프'의 손을 잡는다. 이후 그들은 불안증세가 악화된 '맥베스'를 공격하기 위해 버남숲 근처에 집결한다. 병사들은 나뭇가지를 머리에 꽂고 행군한다. 다만 맥베스의 예민함은 극도로 치솟아 있었다. 숲이 움직여 오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결국 맥베스는 자신도 전쟁에 참여한다. 마녀들의 예언을 다시 생각한다.

"여자의 몸에서 나온 사람은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

거의 모든 적이 없을 것이라 믿던 맥베스에게 맥더프는 말한다. 자신이 어머니의 배를 갈라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자이니, 충분히 맥베스를 죽일 수 잇다는 의미다. 맥베스는 좌절한다. 결국 맥베스는 멕더스에게 패한다. 그리고 왕자는 다시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올라선다.

희곡에서는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지나친 과욕은 화를 부른다. 충분히 맥베스는 왕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간단한 꾀임과 유혹에 빠져, 그 신임을 저버렸지만 어쩌면 유혹과 꾀임은 그 내면에 잠재적으로 있던 '욕망'을 건드렸던 자극제에 불과할 것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라면 전개되지 않을 사건과 고민에 쉽게 넘어가는 일을 볼 때, 우리는 외부를 탓하고 '유혹'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만 결국 자신 내면에 있는 욕망은 언제든 화염으로 번질 수 있는 작은 불씨가 되어 있다. 과유불급. 결국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 우리는 어디까지가 우리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 알지 못하고 가끔 그 선을 넘어설 때가 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담고나면 우리는 '신경쇠약증'에 걸릴 만큼 집착적으로 '자리'에 집착한다.

둘째, 여성에 대한 지위다. 맥베스의 아내와 마녀는 '맥베스'를 꼬득여 그에게 '신의'를 저버리는 일을 저지르도록 부추긴다. 당시 사회에서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마녀는 '여자의 몸에서 나온 사람은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라는 예언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연약함'을 이야기 한다고 보여진다.

결국 비극은 '유혹'이라는 지푸라기에 붙은 작은 불씨인 '욕망'에서 시작한다. 결국 누구나 욕망은 있다. 다만 그 욕망이라는 불씨가 지푸라기에 넘겨 붙지 않도록 주의한다. 결국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그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 몇의 평균이 자신이라는 말처럼, 어떤 사람을 주변에 두고, 어떤 사람을 주변에 두면 안되는지, 어떤 사람의 말을 신임하고, 어떤 사람의 말을 신임하면 안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보자면 그 모든 비극이 벌어졌을 때, 탓해야하는 것은 '지푸라기'가 아니라 마음속 깊이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욕망'이라는 불씨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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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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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손에 안 잡힐만큼 몰입해서 본 책이 얼마만이던가...

몇 번을 서점에서 스쳤으나 선뜻 집지 못한 이유는 분량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일상이 바빠 더욱 그랬다. 몇 번을 스치며 드라마로 제작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중에 드라마로 봐야지'

정말이지 큰 일 날뻔했다.

이 소설을 근래 들어 가장 재밌게 읽은 책 중 하나다. 드라마는 보지 못했으나 완독후 드라마도 볼 예정이다.

얼마 전,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윌라 오디오북'을 통해 '파친코 오디오북'을 공개했다. 덕분에 분량에 부담이 있던 이들도 쉽게 '파친코'를 읽을 수 있게 됐다.

오늘 아침, '파친코 1권'을 드디어 읽었다. 종이책과 오디오북을 번갈아가며 읽었다. 오디오북은 역시나 성우들의 연기가 훌륭했다. 종이책으로 읽는 것 또한 매우 좋았다. 오죽하면 종이책과 오디오북을 병행하며 봤다. 아마 이 소설은 몇 번을 재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경은 일제강점기다. '재일교포'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들었다. 다만 첫 배경은 '부산 영도'다. 부산 영도에서 시작한 소설은 한참이 지나도록 그 배경이 옮겨가지 못했다. 무언가 뜨뜻미지근하려나 싶은 소설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영화적'이라기 보다 '드라마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끝날 즈음 다음 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내용상 스포일러를 줄이기 위해 '도서의 내용'은 적지 않겠다. 다만 아름다운 그 시절 일상을 담은 소설이겠다하고 기대하고 읽다가 난데없는 속도감과 긴장감을 만난다. 한참을 몰입해서 소설을 읽다보면 다시 소설은 점차 속도감을 줄이고 일상을 만나게 한다. 긴장감을 살짝 줄이기 시작하면 다시금 속도를 높이고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 짧은 소설에 이렇게 많은 배경과 반전, 인물을 모두 담았다는 것이 놀랍기까지하다. 도대체 한 권의 책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글이 표현이 부족하거나 서투르지도 않다.

걸어가며 오디오북으로 듣게 되면 괜스레 가던 길을 우회하여 한 바퀴 더 돌고 가게 된다. 책을 펼치면 끊어 읽은 부분에 대한 아쉬움으로 다시 한 챕터를 뒤로 가서 읽게 된다.

현재 1권까지만 읽었으나 1권이 끝나도록 왜 소설의 제목이 '파친코'인지, 알지 못하겠다. 책이 너무 술술 읽힌다. 사실 '왜 제목을 파친코라고 지었을까'하는 호기심도 이 소설을 읽게 하는 또다른 재미중 하나다.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미국 국적의 '이민진 작가'의 글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10살이 되기도 전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는 '이민진 작가'의 배경을 보고 사실 갸우뚱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대한 정서, 심지어 '일제강점기'에 대한 정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있어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이 참 어리석었다고 느꼈다. 1968년생이면 소설의 배경을 전혀 겪지 않은 나이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를 그 배경에 완전히 함께 하도록 완전한 배경을 묘사해 낸다.

겪어보지 않고 어쩜 이렇게 섬세한 묘사를 해냈을지, 과연 그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등장인물들은 나이를 먹는다. 이들은 일상에서 역사의 배경에 하나 둘 놓여진다. 전혀 이질감 없이 일상으로 맞딱드리는 '역사'는 그저 '삶'과 '생존'에 지나가는 배경 중 하나다.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고, 읽으면서 그속에 있는 '일반인들의 삶'과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들이 겪게 되는 현실적인 고민과 생각. 또한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는 '이데올로기'와 '여러 정치적, 경제적' 상황들이 단순한 '정보'처럼 나눠 인식할 수 없다는 깨달음도 듣게 됐다.

본 글은 '협찬'에 의해 작성 됐으나 진심 가득!! 과연 정말 최고의 소설이다.

빨리 2권을 읽어야겠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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