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지 말라 -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송길영 지음 / 북스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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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윌리엄 깁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실제 어느 한 사업가가 '화성탐사'를 위해 23층 건물 높이의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이 시기에도 동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는 기아에 목숨을 잃는 이들이 속출한다. 실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예전, 한 학생이 물었던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하게 될 텐데, '의사'라는 직업은 없어질 직업 아닌가요?"

나는 답했다.

"아니, 의사라는 직업이 더 쉽게 일하게 되겠지."

기술은 혼자서 발전하지 않는다. 제도를 만나고 문화를 만나 적당한 제동에 걸리고 알맞은 옷을 입게 된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사실 가솔린 차보다 전기차가 더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전기차는 '미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술 중 하나 아닌가, 그러나 최초의 전기차는 19세기 초에 이미 개발되었다. 로버트 앤더슨은 1832년 경 최초의 전기 마차를 만들었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전기차는 꽤 인기 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가솔린 차보다 전기차가 더 인기가 있기도 했다. 다만, 주유에 편리한 '사회 인프라', '사회적 제도', '석유산업의 발전', '전쟁과 에너지 기업의 로비' 등 다양한 원인으로 '가솔린차'가 시장을 점령했다.

이미 일부 변호사들은 법적 문서 초안을 Chat GPT에게 맡긴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게 맡길 수는 없지만 간단한 초안 정도를 인공지능에게 맡기기만 해도 업무 효율은 급격히 높아진다. 높은 업무 효율이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변호사나 의사라는 직업은 인공지능에 의해 사라질 직업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 생산성이 높아질 직업은 그밖에도 많다. 교사, 강사, 심리상담가, 인플루언서, 작가 등이 그렇다. 이들의 특징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Chat GPT는 '학업 도구'가 될 수는 있으나 '스승'이 될 수 없다. 친분을 쌓는 일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할 수 밖에 없고, 누군가의 '히스토리'를 듣는 것을 기계가 대신 할 수는 없다.

망치를 들면 세상이 온통 못으로 보이다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함께 따라온다. 심지어 모든 두려움이 '인공지능'과 결부되기도 한다.

'페스트'로 인해, 유럽이 인구가 급격하게 줄었을 때, 유럽의 사회 구조는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제일 먼저 노동자 감소로 임금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농노와 농민은 더 나은 대우와 임금을 요구할 수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농노제가 약화됐다. 그 결과 자유 농민이 증가했다. 다수의 농장은 버려졌거나 생산성이 감소했고 일부 지주는 농업에서 목축업으로 전환하여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사람들은 기회를 찾아 도시로 이동했고 상업과 무역이 발전했다. 기존 귀족 계급은 엄청난 인구 손실로 인해 그 세력이 약해졌고 그로인해 사회적 이동성이 증가하여 하층민이 중상층으로 상승할 기회가 높아지기도 했다. 조금 비약해 보자면, 자본가가 만들어졌고, 자본가는 비싼 임금을 대신한 기계를 도입했다. 또한 노동자들은 이 기계를 때려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러다이트은 기계 파괴라는 단기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이용했으나,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생계를 보호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사회적 책임을 만들도록 했다.

급격한 인구가 줄어들면 발생하는 일은 이처럼 단순히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인구는 급격하게 줄 때보다, 급격하게 늘었을 때 엄청난 문제를 발생하곤 했는데 아일랜드 대기근이나 로마 제국의 붕괴 등도 급격한 인구 증가가 문제였다.

노동인구가 넘쳐난다면 '인공지능'은 필요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장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 않은가. 최근 '동해'에 유전이 발견되면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리곤 했다. 아무리 기름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많으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업은 비용 대비 수익률이 높아야 한다. 아무리 굴착기가 존재해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삽을 들고 땅을 파는 것이 경제적인 곳이 있다. 그런 곳이 많다면 굴착기 사업은 더 대단한 기술혁신을 갖고 있음에도 살아갈 수 없다.

선진국의 인구 감소, 인공지능의 발전은 어쩌면 또다른 패러다임의 변화일 수도 있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당시에도, 사람들은 유럽의 존망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패스트 이후 유럽은 사회 구조가 혁명적으로 바뀌면서 세계의 패권을 가져갔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지 않으면, 어쩌면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먼저 활용한 이들에게 다음 시대를 내어 주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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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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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학이 그렇겠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는 1909년 아오모리 현에서 태어났다. 대체로 고뇌에 차 있고 어두운 분위기다. 그런 탓에 그의 글을 읽으면 기분이 나빠져서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아무튼 그의 글은 당시 사회적 혼란을 반영한다. 무엇보다도 자전적 요소를 보인다. '인간실격'과 '사양'이 있다. 이 두 편의 소설을 나는 간격을 두고 읽었다. 다만 만약에 다시 읽어야 한다면, 반드시 함께 읽겠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은 붙여 읽기를 권장한다. 두 편을 함께 읽으면 작가를 더 입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1인칭으로 그리고 3인칭.

무슨 말일까.

인간실격은 다사이 오사무를 1인칭으로 본 글이다. 반대로 사양은 그를 3인칭으로 본 글이다. 두 글의 도입을 보면 둘은 완전히 다른 소설인듯 하지만 결국 같은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그 둘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 배경은 다자이 오사무의 배경을 닮았다. 고로 다자이 오사무를 먼저 알아야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집안의 부는 '대부업'을 통해 얻었다.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던 그로써, '대부업'과 '부유함'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을 혐오하는 한편 모순적이게도 그 부에 대한 이득도 함께 얻었다. 그는 도쿄 제국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또한 학교를 중퇴하고 1930년 중반 부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스스로를 혐오하던 그는 실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다. 약물 중독과 같은 문제로 고통 또한 받는다. 이 경험은 '인간실격'과 '사양', 두 편의 소설에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그는 생은 꾸준한 자살시도의 도전이다. 마지막 1948년 39세의 나이로 시도한 자살에서 성공하며 짧은 생을 마감한다. 소설에는 그 과정에서 갖게 되는 다양한 고뇌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자이 오다무' 스스로는 소설 속 인물이자 주변인이다.

'인간실격'과 '사양' 두 편의 소설은 얼핏 다른 이야기를 하는가 싶다. 주인공의 이름도 다르고 당연히 주인공도 다르다.

기본적으로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를 주인공을 통해 담은 이야기다. 주인공 요조의 내면을 통해 작가 자신의 고통과 좌절, 인간에 대한 절망을 고백한다. 실제 소설에서는 자살 시도와 약물중독, 인간관계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면 '사양'은 전반적인 이야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설명한다. '사양'의 주인공은 그 주변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몰락한 귀족 가문과 전쟁 후의 일본 사회를 간접적으로 묘사하며 그를 고뇌하는 한 남자를 지켜보는 주변인의 시선으로 남자를 들여다 본다.

다시말해서 '인간실격'이 다자이 오사무의 자서전이라면, '사양'은 그를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이다.

작품은 단순히 개인의 비극을 넘어, 당시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족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과 전통적인 가치관, 사회적 구조의 변화를 보여주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모습도 보여준다.

우리 현대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마르크스', '사회주의'에 관한 지식인들의 관점과 고뇌가 들어가 있다.

개인적으로 인간실격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읽어서 그런지 후반부에 드러나는 '인간실격'과 중복되는 내용은 반전처럼 다가왔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쁘고 어둡고 찜찜한 이야기 일 수는 있으나 나름 감명 깊게 읽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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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les of the House (Hardcover)
맥 버넷 / Disney Pr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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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책나무숲'이라는 독서기록장을 보내준다. 주1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아이의 '책나무숲'을 살펴봤다. 쓰여진 독후감이 400권이 넘는다. 단순히 권수를 채우는 것이 성인이건 아동이건 분명히 좋은 건 아니다. 다만 독서습관을 형성하는데는 '권수'를 채우는 것이 좋다.

어떤 면에서 보건데, 권수를 목표로 채우는 독서는 위험하다. 빠르게 권수를 채우기 위해, 쉽고 얇은 책을 보게 될 것이며 대충 읽거나 속독을 하는 습관이 길러진다. 또한 진정한 독서의 재미가 아니라 '허영심'을 채우게 된다는 우려가 있다. 과연 그럴까. 일부 이 말에 동의하고 일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쉽고 얇은 책을 보게 되는 것은 나쁜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초보에게는 어려운 책이 아니라 쉽고 얇은 책이 권해져야 한다. 만약 세발 자전가는 진정한 자전거가 아님으로 세발자전가를 타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주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에 동의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이미 독서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은 얇고 쉬운책만 골라 권수를 높이는 행위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지 않겠지만 이제막 문해력을 길러가는 과정에서는 쉽고 얇은 책으로 문해력을 길러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는 더 그렇다.

'속독'은 나쁜가.'

그렇지 않다. '속독'은 나쁘지 않다. 글의 종류는 쓰임에 따라, '편지글', '일기문', '주장문', '설명문', '알림글, 정보글', '소설' 등 다양하다. 모든 글을 똑같은 방식으로 읽는 것은 꽤 멍청한 방법이다.

편지글은 빠르게 말하고자 하는 목적을 판단하는 것이 좋고, 일기문은 분위기와 심경을 이해하는데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 주장문은 글의 구성에서 주장이 있는 부분과 근거에 해당하는 부분에 따라 그 강도를 다르게 읽어야 하며, 설명문의 경우에는 '사실'에 근거한 내용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알림글과 정보글은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설은 그 흐름을 이해하고 주인공의 관계와 주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 다 똑같은 글 읽기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로 지금 말했던 글의 종류는 수능 영어영역에서 학생의 글읽기 능력을 파악하는데 사용된다. 즉,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어보는 것은 '교육부'에서도 권장하는 내용이다.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는데는 다양한 글읽기 방식이 당연히 필요하다.

'허영심을 채우면 안되는가.'

왜 안되는가. 누군가는 사이버 머니를 수집하고, 누군가는 우표를 수집하며, 누군가는 돌도 수집한다. 수집하는 목적과 이유에 따라 각각 다른 심리적 원인이 있겠지만, '허영심'은 꽤 중요한 성장동력이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비싼 자동차를 타기 위해 열심히 일을하고, 누군가는 남들보다 멋진 몸을 갖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 원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남들과의 관계 형성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법이다. '허영심'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진 않지만 그것이 '동기부여'의 뗄감으로 아주 적절히 이용된다.

'많이만 읽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주식용어 중에 자석효과라고 있다.

아무렴 어떤 주식이 호재로 인해 24%정도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 주식은 반드시 30%까지 상승한다. 상한가의 끝점이 강하게 잡아당기듯 가격상승을 부축이는 것이다. 마치 주식처럼 말이다.

사람은12월 1일에 97권의 책을 읽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12월 한달간 3권을 더 읽어서 100권을 채우고 싶지 않겠는가. 사람의 심리가 그러한데, 권수를 채우는 행위가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가볍게 읽은 얇은 잡지에서 인생을 바꿀 한마디를 얻을 수도 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도 좋다.

감상문을 그림으로 그려도 좋다.

책을 읽다가 포기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지, 외부적인 규칙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된다.

간혹 나는 '인문학 강의'를 유튜브로 볼 때가 있다. 아마 거기 '의무'와 '책임', '규칙'이 들어가 있다면 나는 결코 그 채널을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채널을 보는 이유는 그냥 궁금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그만 볼 수 있고 그것을 보거나, 보지 않거나 외부의 간섭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데 자세가 그게 뭐냐.

그 책은 저번에 읽었던 책이니, 다른 책을 읽어야지.

그러게 괴발개발 글씨체로 쓸꺼면 쓰지마라

독후감은 책의 내용을 기록해야지, 그렇게 아무 그림이나 그리면 안된다.

이런 잔소리는 '제발 책 좀 읽지 마라'라는 말보다 더 아이의 책읽기를 방해한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제발 책 좀 읽지 마라'라고 말하는 편이 더 책읽기를 권장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나는 아이가 여러번 읽는 책이 있다면 슬며시 '영어 원서'를 사둔다. 그럼 아이는 한참을 그림만 관찰한다. 그러다가 얼핏 아는 단어를 발견하고 한참 이야기 한다.

아이는 다시 그 책을 꺼내고 한참을 보다가 그 단어의 의미를 유추한다. 다시 한참을 보다가 문맥을 이해하고 어떤 경우에는 그 단어를 암기하기도 한다.

가만보면 세상은 모두 '태도'에 달려 있다. 원통도 위에서 보기에는 원이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네모라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참고로 Rules of the house는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 원서로도 구매했다. 성인이 보기에도 꽤 재밌는 책이라 초등 저학년 부모들은 '국문'으로, 기회가 된다면 '원서'로 읽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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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언어가 온다 - AI가 인간의 말을 지배하는 특이점의 세상
조지은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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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은 표준어를 정하고 관리한다. 다만 영어는 다르다. '표준어'를 공식적으로 정하는 기관이 없다. 그런 이유로 각 나라마다 사용하는 스펠링과 발음, 어휘 가 다르다.

예전 뉴질랜드에서 살 때 자주 보이던 단어가 'centre'다. 얼핏 '센트레'로 읽힐 것 같지만 '쎈타'에 가깝다. 영어는 표준을 특정 기관이 아니라 권위 있는 사전의 출판사가 결정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나 메리엄 웹마스터 사전이 영어의 표준기준으로 사용된다. 그런 이유로 영어는 유연하게 변화하고 발전한다. 이것이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큰 영토를 지배하기 위해 '봉건제도'가 유리했던 것처럼 많은 민족과 사람을 관리하기 위해 영어는 자율성을 인정했다. 당연히 '중앙집권'은 많은 민족과 사람을 관리하기에 불리하다. 고로 영어는 지역에 맞게 변형되고 섞이며 수용한다.

얼마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Daebak'이라는 영어 단어가 등재됐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이는 감탄사다. 이 단어의 출처는 한국이다. 이미 예상할 수 있듯, 이 단어의 어원은 한국어 '대박'에서 시작한다. 한류가 세계적 유행이 되며 단순히 컨텐츠 뿐만 아니라, 언어도 수출됐다.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에 따르면 언어는 단순 '정보'를 담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 인문학적 사실도 함께 담고 있다. 다시말해 언어가 수출되는 것은 우리로써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자만해서도 안된다. 우리 언어의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반면 '영국'의 태도를 보고 느끼는 바도 있어야 한다. 영어가 다양한 민족과 국가, 문화를 수용하는 유연함광 ㅕ유가 그렇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프로그램은 centre, colour, humour와 같은 영국식 철자에 빨간 밑줄을 긋는다. 일부 영국인들은 그러나 이를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이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때로 우리말은 극성 맞을 정도로 '표준어'를 강조한다. 신조어나 외래어 등에 배타적이다. 다만 우리 국어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여러 말들이 영어 사전에 먼저 등재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얼마전 로보트 춤을 추는 한 사람의 영상을 본 적 있다. 그 춤사위는 벌써 잊혀졌지만 그 아래 달렸던 댓글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기계는 꾸준히 인간을 모방하고, 인간은 꾸준히 기계를 모방한다.'

그러고보니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인공지능 시리를 위해, '기계식 명령어'를 사용하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다.

'시리야, 내일의 날씨 알려줘'

사실, 실제 비서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각자의 말투와 억양, 사투리가 존재하겠지만, 우리는 기계 앞에서 더 기계처럼 말하곤 한다.

사실 인간이 기계화되고, 기계가 인간화 된다는 것은 거기서 한정되진 않는다. 인간은 점차 덜 학습하고, 기계는 더 학습한다는데 있다.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면서 사람들은 덜 스마트해지고 있다. 어떤 이는 '디지털리터리시'를 언급하며 글을 읽는 문해력은 과거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고, 앞으로는 디지털 기기를 잘 사용하는 사람들의 디지털기기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들 중 일부는 아이에게 디지털기기를 노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마트 기기는 원숭이도 쉽게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다. 이를 위해 이른 시기부터 학습과 훈련을 할 필요는 없다.

계산을 이용해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체력이 길러진다는데, 어린시절부터 운동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작동법을 가르치는 격이다.

흔히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우리가 과거의 언어를 보고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유추하는 것처럼, 언어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면 우리의 미래를 유추할 수 있다. 크게는 사회와 문화를 알 수 있지만, 작게는 개인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으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또한 알 수 있다. '조지은' 작가의 '미래 언어가 온다'는 언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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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채워진다 -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에 대한 큰스님의 조언
후지와라 도엔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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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욕의 화신'과 같은 인물이었지만 그의 욕심은 '천하를 상대'로 하지 않았다. 그는 하급 무사일 때는 하급 무사로서 최선을 다했고, 사무라이 대장이 됐을 때는 사무라이 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한 지역의 영주가 됐을 때는 영주로서 최선을 다했다.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부터 세계적인 그룹의 창업주가 되겠다는 욕심을 갖지 않았다. 쌀가게에서 그에게 주어진 정리와 경리일에 최선을 다했다. 최근 '퇴사'가 젊은 층에서 인기다. 지금 당장 회사를 뛰쳐나가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창업은 취업보다 어려운 일이다. 더 많은 경험과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대책없이 남의 지시를 받지 않지 않는 해방감을 위해 퇴사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 또한 많은 이력서를 돌리며 취업을 고대하는 취업준비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달콤한 결과만 얻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진짜 나쁜 욕심은 그런 것이다.욕심이란 완성에 대한 바람이 아니다. 방향에 대한 바람이다. 즉 이미 완성된 최고 점을 원하기만 하는 것은 욕심이고, 그 방향을 향하고 나아가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고로 욕심은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삶에서 치명적인 나쁜 습관 중 하나는 '꿈'이라는 거대한 환상을 가지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기대에 대한 충족에 있다. 고로 엄청나게 많은 기대를 하고 그것을 충족하는 것도 행복이고,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완전하게 충족해 내는 것도 행복이다. 고로 행복의 상대성으로 보건데 누구나 그것은 충족해 낼 수 있다. 그렇다. 달성 가능한 목표와 기대감만 있으면 누구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 그러나 목표한 바를 다 이뤄내면 반드시 좋을까. 그렇지 않다.

법연사계의 네가지 규율은 이렇다.

첫째, 세력을 다 사용해서는 안된다.

둘째, 복을 전부 다 받아서는 안된다.

셋째, 규율을 다 행해서는 안된다.

넷째, 좋은 말이라도 다 해서는 안된다.

최선을 다해서는 안된다. 이말은 과정에서의 최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에서의 최선을 말하는 것이다. 즉 과정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서는 최선을 원해서는 안된다.

이렇다. 만약 심험에서 80점의 성적을 얻었다고 해보자. 보통 자신이 받은 점수에서 최선의 진학을 희망한다. 그러나 그러면 안된다는 의미다. 이는 내 기대치를 최대로 끌어 올린 숫자다. 즉 다시 말해서 자신의 최선에 가까워 질수록 기대치는 높아지고 그것이 달성될 가능성은 반비례로 낮아진다.

인생에는 목표가 없다.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것은 '행복'을 위한 일이지, 목표글 달성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은 아니다. 삶의 목표를 찾다보면 결과적으로 죽음 밖에는 없다. 고로 인생의 목표가 목표가 되기보다는 재미와 의미, 행복에 목표를 두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난과 부유함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누가 뭐래도 부유함이다. 고로 우리가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부'는 꽤 필수요소 중 하나에 속한다.

영화 '라임라이트'에서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늙은 코미디언은 실의에 빠진 무용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어. 그러려면 세가지가 필요해. 용기, 상상력, 그리고 약간의 돈 말이야."

인생에서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라는 듣기 좋은 말이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많다. 그러나 그것이 돈이 중요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흑백으로 구분할 수 없고 흑이 아니면 백이거나, 백이 아니면 흑인 건 아니다. 돈 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돈은 역시 중요하다.

독립운동가 '오광심'은 조선혁명단에서 비밀 연락활동을 전개하고 조선민족혁명당 부녀부 차장으로 활동했으며 광복군으로 활동을 했다. 그가 '안중근 의사'보다 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는 훌륭한 인물이다.

영화 올드보이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래알이던, 바위던 물에 가라앉긴 마찬가지다'

과유불급,

뭐든 극단적으로 나아가서는 좋지 않다. 항상 어느정도의 중도가 중요하며 때로는 그것은 좋은면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학식과 경험은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배웠던 경력과 경험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분명있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굉장히 좋은 스승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있어도 1학년은 2학년이 되고, 스무살은 스물 한살이 된다. 이처럼 가만히 있어도 채우기가 저절로 이뤄지는 세상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채우고 살아가는가. 몇년 째 열어보지 않은 서랍 속에는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가 있고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부정의 찌꺼기들이 있는가. 그러고보면 채우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만 '비우는 것'은 일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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