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돈을 말하다 - 당신의 부에 영향을 미치는 돈의 심리학
저우신위에 지음, 박진희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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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돈은 좋은 것이다. 동양국가에서 터부시 되는 '돈이 좋다'는 말은 이제 자신있게 말하고 다녀도 괜찮은듯 하다. 돈은 좋은 것이다. 이상하게도 동양에서는 '돈 받지 않고 하는 일'을 선행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댓가없는 선행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돈은 제공받은 재화나 서비스의 감사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결코, 그에 대한 댓가가 쌓여 있지 않다는게 좋은지 모르겠다. '공짜'를 강요하던 '열정페이'는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누구에게도 손해보기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호주머니를 열어 상대에게 '돈'을 내어 놓는다는 것은 자신이 손해보다 이득이 많다고 판단 됐을 때만 이루어진다. 부는 곧 악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는 어쩌면 오래된 유교적 관습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그렇게 돈 없는 선행으로 돌아간다면 이상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경찰이나 소방관분들께 도움을 받고도 '다 본인들도 월급 받고 하는 일이니 고마워 할 거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탄 받아야할 발언이다. 경제 거래는 필요한 도움에 대해 정당한 거래 댓가를 지불하면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쉽고 빠르게 제공한다는 것은 '선'에 속한다.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부정한 것'이라는 '돈'의 인식에 대해 이 책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는 의미로 부자들은 '댓가를 지불받은 선행'을 제공한 샘이다. 곧 아무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은 '무가치의 삶'보다는 무엇이라도 제공받고 무언가를 했던 행위가 고귀하다.

즉,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댓가를 받고 더 많은 선행을 할 수 있도록 '부자되기'를 권장해야 한다. 우리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삼성전자의 핸드폰으로 많은 일들을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고마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다 지들이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은 올바르지 못하다. 예전에 참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식당에서 음식은 내어 주시는 식당 직원분께 '감사합니다.'라고 습관적으로 말을 하자, 앞에 앉아 있던 일행이 '우리가 돈을 내고 음식을 먹은 건데 감사할 건 뭐야?'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사실 돈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적다. 모두가 돈을 좋아하지만 사실 우리는 진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을 내어 놓는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 주고, 집을 사기 위해 통장에 쌓아 둔 돈을 내어 놓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머리를 자르는 서비스이고 살아갈 '집'인 샘이다. 돈의 가치는 우리가 얻으려는 것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가 있지 않다. 그런 내가 필요한 것보다 가치가 없는 종이조가리를 받아가고 서비스를 내어놓는 이들의 선행에 분명 감사함이 있어야 한다.

책에는 꽤 삶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있다. 특히 판매자로써 마케팅적으로 사용하기 좋은 내용도 담고 있다. 그리고 돈의 긍정적이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고르 적어 균형있게 돈이 담은 심리학을 이야기 한다. 스티브 잡스는 '쉼 없이 돈을 쫒는 것은 그 사람을 탐욕스럽고 재미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매일같이 늘어나는 카드값과 비어있는 계좌를 확인하는 인색함은 부자보다 반대쪽에서 많이 일어난다. 2010년 스페인 UPI 대학교 쿠아드박 교수의 연구진이 '돈이 사람을 재미없는 사람으로 만드는가'의 주제를 연구했고 실제로 돈과 유쾌함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또한 영국의 유명 심리학자 폴 웨블리는 돈이 마약과도 같지만 동시에 치료약과도 같다모 말하며 돈을 세는 것만으로도 진통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실 돈이 좋은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이란 일종의 사회가 만들어 낸 일종의 상상물이다. 이런 관념적인 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풍요'다.

동양철학의 대표로 음양오행이 있다. 모든 것에는 음과 양이 있다는 것이고 풍요의 반대 쪽에는 빈곤이 있다. 그 누구도 이 두가지에서 빈곤이 '양'을 뜻한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긍정과 부정, 풍요와 빈곤, 겉과 속, 위와 아래. 우리는 보이지 않는 '풍요'를 '돈'이라는 가시적인 매체로 변경했을 뿐이다. 물질적 풍요로움은 자유를 준다. 책에서 언급한 대로 행복한 일 중 80%는 돈과 별다른 관계가 없지만, 비극의 80%는 돈 때문에 일어난다. 그만큼 돈이란 지나치게 많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빈곤할 이유가 없음을 시사한다. 돈은 사회를 움직이는 혈액과 같아서 사회 이곳과 저곳을 돌아다니며 활력을 준다. 예전에 읽었던 사이토 히토리 저자의 '부자의 행동습관'을 보면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사실 그런 철학이 돈을 벌기 위해 쓰인다기 보다 그런 것들이 있는 사람들에게 돈이 옮겨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사이토 히토리는 지갑 속에 돈이 깔끔하게 정리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데, 이 책에서도 깨끗한 지폐와 더러운 지폐 모두 사람의 탐욕과 이기심에 다른 영향을 준다 말했다. 좋은 지갑을 사용하거나 지갑 속 돈을 같은 방향으로 잘 정리하는 행위 모두 사실은 삶을 대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예전에 한참 차고 남을 돈이 통장에 있을 때는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지출을 할 때 빚이 있을 때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참 신통방통하게도 나는 한달 평균 비슷한 돈을 사용했지만,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통장 혹은 신용상의 수치가 나의 자존심과 성격, 성향을 결정시켰다. 어차피 월 100만원을 쓴다고 할 때, 통장 잔고가 100억이 있을 때와 빚이 1억 쯤 있을 때는 분명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돈은 심리를 담고 있는듯 하다. 내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흔히 잠재의식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분명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준다. 스스로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의 자산이 크게 늘어나면 자신감이 차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가 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세속적인 개발을 떠나 스스로 내적 계발을 하는 셈일거라는 생각이다.

지금도 농장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물론 겨울철에만 판매 중이기는 하지만, 이는 수 권의 독서를 하는 것보다 더 큰 자신이 된다. 돈에 얽혀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미묘한 신경 전을 포함하여 다양한 심리학을 활용해 볼 수도 있고 여러 경제활동을 통해 물질적 풍요도 생겨난다. 사회가 돌아가는 기본적인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뉴질랜드에서 매장 물품을 판매할 때가 기억이 난다. 20개가 들어 있는 나무 집게를 주문실수로 많이 구매했던 적이 있는데 재고가 많아 쳐리가 불가능 할 정도였다. 이때 나무 집게는 1불에 팔았을 다. 사람들은 그때 비싸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 20개를 모두 뜯어 개당 10센트에 팔았더니 재고를 모두 처리하고도 물량이 모자랐던 기억이다. 그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는 10불과 9.99불이 같은 금액이다. 그런 이유로 10불짜리를 10불로 팔때와 9.99불로 팔 때 판매률이 낮았다.

이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이용해 보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곧 많은 사람들이 니즈를 찾기 위해 이타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밖에도 반지나 귀걸이 등도 2불에 팔때 보다 20불에 팔 때 더 많이 팔리는 희안한 경험들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라는 활용서는 아니다. 다만 돈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인 요소들과 또한 여러 실험들에 대해서 기술해 놓았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 돈이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풍족한 생활도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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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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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슈빌 엘리트 사립고등학교에서 일어난 SNS 스캔들'이라는 소재... 그저 무난한 청춘소설이거나 번역자 문세원 님의 말처럼 흔한 칙릿(여성의 사랑과 일을 주제로 한 소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이 없으니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던 책은 쉽게 읽히는 가독성과 빠르게 진행되는 진행, 금방 소설 속 세상으로 빠져가는 몰입도까지, 그간 일주일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서 딸을 키워 온 싱글대디 '톰'이 목수로 일하면서 보냈던 엘리트 사립고등학교가 배경인 소설. 책은 주인공이 따로 있지 않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측면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소설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런 유형의 소설은 내가 몹시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무조건 한쪽 측면에서 쓰인 소설은 '악'과 '선'이 분명하게 나눠진다. 이 소설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일상에서 생길 수 있을 법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시각으로 기술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적지 못하는 반전과 또 다른 반전들... 이 책의 묘미다. 펼쳐진 책의 오른쪽 페이지가 얇아질수록, 과연 이 소설의 끝은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될지 궁금했다.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엘리트 사립고등학교에서 존재하는 '부'와  '특권'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을 마다하고 어디나 존재했다. 책은 여성의 문제도, 인종차별의 문제도, 계층 간의 문제도 모두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일이다. 책은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가해자 어머니가 겪었던 과거의 피해에 대한 공감, 그 때문에 겪게 되는 일련의 내적 갈등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에서 가해자의 어머니는 피해 경험이 있고, 피해자의 아버지는 얼핏 가해의 경험이 있다. 서로 자신과 닮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고 상황과 상황은 그 두 계층이 교묘하게 섞이면서 이어져간다.

 이것은 과연 소설 같은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에 관해, 일종에 '오락'정도 혹은 '일탈'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실제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저 장난이었다거나 가벼운 농담이라거나 하는 일 따위로 취급하는 가해자들의 시선. 그리고 평생의 트라우마로 기억하며 매 순간 잊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시선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공감하기 힘든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나온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이에 대한 무게는 분명 묵직하게 다가온다. 또한 나 스스로도 특정 인종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도 무조건 존재했기에 소설을 읽으며 가벼운 농담처럼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하며 위선을 떨 수는 없었다. 이 소설은 SNS에서 발생된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다. 때문에 다른 고전적 소설들에 비해 훨씬 더 공감을 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다.

 가끔 들려오는 연예인들의 자살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연예인들의 자살 기사에는 '누가 00을 죽였는가?', '악플러들을 저주한다.', '천국에서 편히 쉬기를...', '얼마나 악플에 시달렸을까?, 악플러 너희들도 똑같이 되돌려 받을 것이다.' 등의 댓글이 달린다. 하지만 사람 참 이중적이다. 어떤 네티즌이 해당 댓글에 아이디를 추적해 본 결과, 그런 댓글을 단 사람들 또한, 지나가는 말로도 슬쩍하고 던졌던 악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토나와', '쟤는 왜 자꾸 나오지?' 등등.. 그들이 연예인 자살 기사에 달았던 명복을 빈다는 댓글은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다. 다만 자신이 아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던 짧은 순간이 얼마나 큰 파장이 될지 감도 잡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악'이라기보다 '망각'이라고 생각한다. SNS는 이슈화되기를 바라고 자극적이길 바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바란다. 실제 대중 앞에서 할 수 없는 도덕적이지 못할 법한 말과 행동이 여과 없이 나온다.

 책에서 시점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넘어갈 때마다, 어색함이 없다. 한 사람의 시점에서는 오롯하게 그 사람으로서 상황이 공감되고, 다른 시점으로 넘어가도 그 시점으로 공감된다. 마치 내가 현실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관점과 시점을 훈련하는 것처럼 시선이 이곳과 저곳으로 자유롭게 넘어들며 모두 어색하지 않게 공감된다. 읽다 보면 어딘가 나랑도 비슷한 상황과 사람들이 나온다. 가해자에서도 볼 수 있는 '나'와 피해자에서도 볼 수 있는 '나' 나는 이 사회의 정의에 가해자 일 수도 있고, 피해자 일 수도 있다. 어떤 명확한 노선을 타고 있지 않고 분명히 양쪽의 측면에 서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특권층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다. 교정시설을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울한 사연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사기로 들어왔거나 성범죄로 들어왔거나 혹은 폭력으로 들어왔거나 스스로 억울하게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만약 내가 비슷한 사건에 가해자로 법적인 연류가 되어 있을 때, 나는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고 사법기관이 내려주는 결정을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변호라는 가면에 숨지 않고 정직하게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도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해결과 수습에 최선을 다하진 않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책에서는 피해자 아버지 '목수'와 가해자 아버지 '성공한 사업가'가 나온다. 성공한 사업가의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벌어진 상황에 대해 신속하고 깔끔하게 대처해 나가는 법을 배운다.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돈을 주고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시도는 바로 아들이 타인들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 벗어나게 하는 것과 닮아 있다. 일단,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수습하고 해결하는 것이, 용서를 받고 사과를 하는 것보다 우선인 사회. 또한 되려 가해자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피해자의 자세. 어딘가 모순이 많이 된다.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런 구조가 아닌가.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들으면 어딘가 마음 한 편이 후련하다. 나쁜 놈들은 결국 종국에서 처벌받고 처참하게 망가져야 속이 후련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적절한 대응과 깔끔한 수습은 사건을 무마시키고 수면 위로 올라가지 않게 한다.

 이 책의 마무리는 어딘가 씁쓸하기도 하다. 오랫 만에 푹~하고 몰입하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간 독후감을 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474쪽에 도톰하고 묵직한 책이다. 후딱후딱 넘어가는 속도감과 가독성에 책의 두께는 느껴지지 않는다. 되려 책이 더 두꺼웠어도 지루하지 않을 법했다. 책을 완독 하는 데는 대략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소설을 읽는 것은 간접 경험을 나의 머릿속에 이식하는 행위다. 이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사회 계층에 대한 간접 경험과 정의, 치유, 회복, 화해, 용서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계층에 대한 문화와 이해 또한 가능하다. 책은 감히 말하지만 정말 재밌다. 넷플릭스에서 짧은 시리즈 한 편을 정주행 한 느낌이다. 깊게 어딘가에 몰입하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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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꿈꾸는 너에게 - 열심이 답이 아닐 때 읽는 책
우쥔 지음, 이지수 옮김 / 오월구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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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1만 시간의 법칙은 자칫 우리의 삶의 소중한 시간을 앗아가게 한다. 책의 부재는 '열심이 답이 아닐 때 읽는 책이다.' 이 책은 구글 초창기 엔지니어 출신이자 현재 중국고 ㅏ미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베스트 셀러 작가인 우쥔이라는 사람의 글이다. 글의 글은 '무조건 열심'이 정답이 아닐 때, 훑어 볼 수 있는 여러 관점들을 제시 한다. 성공은 1만시간의 노력이 만든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여기서 1만 시간이란 충분한 물리적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무의미한 1만 시간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을 설명하는 사람이 전 구글의 초창기 엔지니어라는 사실은 이 주장에 강력한 근거가 된다. 우리가 1만시간을 강력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선행되야 하는 몇가지가 있다.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혼자만 열심히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도태되는 일이이다. 책에서 말하는 여러가지 계발 중에 인상 깊은 몇 가지가 있다. 저자가 말하는 자기계발 중 하나는 이제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혹은 기술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곤 했다. 물론 그 오래된 상식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스스로를 더 낫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도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혼자 책상 위에 틀어 박혀 혼자만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뤄내겠다는 야망은 이제 점점 어려워 질 것이다. 소통이라는 창구는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의사소통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소통의 창구가 넓어져 여러 플랫폼에서 영감과 자극을 받기 충분해졌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세상으로 넘어왔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빠른 속도로 온라인으로 넘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의 중요성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만이 모든 것에 해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온라인도 중요하지만, 반대의 경우에서 오프라인에서 시장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에 저자는 츠타야 서점을 예로들며 모두가 온라인으로 사업을 확장해 때, 오프라인으로 수익을 내고 성공한 것을 예로 들었다. 마치 온라인이 만병통치라도 된듯, 모든 것의 정답은 온라인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요즘, 그의 예시는 매우 적절했다. 그에 호모 옴니쿠스의 저자인 송승선 작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무경계 인간에 대해 이야기 했다. 우리는 온라인에서만 살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오프라인에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온라인으로의 시장 확대는 결코 온라인이 해결하지 못할 어떤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자면 무언가 신문물이라거나 신기술이라는 것도 아주 기초적인 것 그리고 원시적인 기반 위에 쌓여 있다. 우리 인간은 결과적으로 완벽해지고 싶지만 실제로 그 과정에서 완전해 질 수 없는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인공지능을 개발해내는 과학자도 연필과 종이를 물리적으로 '직~직~'긋어가며 인공지능을 개발할 것이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난 뒤에도 시골에 그 어떤 누구와 같은 방식으로 뒷 일을 처리한다. 자동차가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던 자율주행을 하던 말던, 길 위에 있는 못을 밟으면 터진 바퀴를 떼우기 위해선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야한다. 마치 이 책은 모든 것을 기록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오랜시간 직장생활을 하며 깨달은 바에 의하면 일 할 대, 효과적인 방법은 대게 단순한 것들이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최고의 것들이다. 내가 중학교 시절, 우리학교에 굉장한 우등생이 하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갑자기 선생님께 질문을 해대는 그 친구를 보면서 많은 친구들이 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친구의 결과는 항상 상위권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하지 못한 어떤 것을 이루는 사람에게 자신이 갖지 못한 어떤 것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불가항력의 어떤 존재가 있어야 그들보다 자신이 못하다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가령 공부를 외계인처럼 잘하는 친구를 보며 '머리가 좋다.', '타고 났다' 등의 말을 많이한다. 사업을 통해 성공한 사람의 뒤에서는 '시대를 잘 만났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부모가 능력이 있다' 등 나와 다른 어떤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앞서말한 그 우등생 친구의 노트를 보고 나는 그런 것들이 다 자신의 열등감을 가리기 위한 변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친구의 노트는 예쁘게 정리 되어 있지도 않았고 엄청난 비책이 적혀있지도 않았다. 그저 지저분하게 자신만이 알만한 괴상망측한 문구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그의 노트에는 라면국물도 묻어 있었고 밭에서나 만질법한 흙도 묻어 있었다. 이 친구는 과연 이 노트를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봤던 것일까 생각하게 됐다. 어느날은 그 친구가 화장실을 다녀오고 선생님께 질문이 있다고 그 노트를 들고 뛰어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친구의 손은 젖어 있었는데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젖은 손을 대충 옷에 닭고 눅눅하게 노트위에 글을 써내력 갔다.

연예인 토크쇼를 보면 화려한 뒷 배경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정작 연예인들이 바라봐야하는 장면은 뜨거운 조명과 셀 수 없이 많은 카메라들, 자신들을 동물원의 동물처럼 쳐다보고 있는 방송 관계자들일 뿐이다. 정작 그들은 화려함 속에 살지만 그 뒤를 돌아 화려함을 쳐다보지 못한다. 한 번의 공연을 위해 리어설을 몇차례를 하기도 하고 몇 분짜리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수 시간을 촬영하기도 한다. 화려함의 이면에는 언제나 반댓면이 있는 법이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최선의 것이다. 화려함만을 취하고 싶다고 내가 바라보는 모든 면과 후광이 다 화려해 질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가 화려해보인다는 것은 그 뒷면에 수많은 노력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운동에는 스티킹 포인트라는 것이 있다. 바벨을 가슴 위에서부터 머리 위로 밀어올리는 도중에 갑자기 힘이 약해지는 지점을 말한다.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경험해 봤을 이 포인트를 트레이너들은 놓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에 도달되어 더이상 마지막 하나를 들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서야 발전이 이루어진다.

무하마드 알리는 하루에 윗몸 일으키기를 몇 개씩 하느냐고 하는 질문에 '나는 윗몸일으키기 갯수를 세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프기 시작할 때에야 세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책의 어느 말처럼 '이미 아흔 아홉 걸음이나 와 놓고 왜 마지막 한 걸음을 포기하려고 해?'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끝내 포기하고 싶은 그 마지막 한 번의 순간 뒤에 기회가 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보석이 귀중한 이유는 많은 이들이 100번의 곡괭이 질을 채우지 못하고 99번 이젠에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참아낸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그 기회는 당연히 사회적으로 값어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주장한 인물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그의 주장은 종국에와서는 틀렸다고 밝혀졌지만 그가 주장했던 논리의 근거가 워낙 확실했기 때문에 그 예견의 지구 운행주기는 100년에 하루 정도의 오차가 생길 뿐이었다. 그런 정확성은 인류가 지동설을 받아들이는데 엄청난 시간을 가지게 만들었다. 인간은 기껏해봐야 한 세대 밖에 살지 못한다. 그는 인류 전체의 역사로 봤을 때, 실패한 사람으로 남아 있겠지만, 그가 죽고 나서 지동설이 생겨나기 전까지 그를 논파할 수 있는 논리는 쉽게 나오지 못했다. 그 뒤로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게 정의한 세상에 대한 정의를 하고 살았다. 내가 가고자하는 방향이 확실히 맞는지 틀렸는지는 결코 빠르게 알 수 없다. 또한 지금 맞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생각 또한 언제까지 정답일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믿는 진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하루와 하루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 최종의 목표와 성과를 바란다면 우리는 굉장한 허무주의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책은 꼭 꿈 같은 이야기만 할 것 같지만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계속해 내간다. 돈에 관련한 이야기가 그렇다. 동양에서는 돈에 대해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자신이 입을 옷 한 벌하지 못하지만 스스로의 직업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에 대해 굉장한 미화를 한다. 하지만 돈은 몹시 중요하다.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만 자유가 돈에 필려나갈 수는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충분히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의 일부를 내어 놓는다. 따지고 보자면 돈을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것을 넘겨주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한다. 매번 공부를 한 답시고 도서관에 틀어밖혀 있는다고 해서 돈이 벌리진 않는다. 우리의 두발은 현실에 두고 두눈을 이상에 두어야 한다. 우리를 움직여주는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결국 먹고 사는 정도의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반드시 어느정도 풍족한 삶을 영위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에 대한 욕심은 '탐욕'이 아니라 사람으로써 권장해야 할 사항인지도 모른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은 부분을 메모했다. 그 부분을 모두 적어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중국인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국어에서 한국으로의 번역체가 덜 익숙해서 그런 것 같다. 가령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도 기본어가 한자다보니 한자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인데, 이 책은 술술 읽힌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중국에서 나오는 계발서들도 많다. 계발서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자신의 지인드로부터 듣고 다양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들을 모았다. 결코 다른 책들에 보다 도움이 많이 되는 책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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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첫 미래 교육 - 디지털 금수저를 물려줘라
임지은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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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전 세계 7세(당시) 어린이의 65%는 지금 존재하지 않을 일자리에서 일하게 될 전망이다.' 이는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가 한 말이다. 당시 기준으로 앞으로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농업사회였던 조선시대 500년 간, 우리는 부모의 지혜의 혜택을 누렸다. 윗 세대와 아랫세대가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윗 세대 분명 아랫 세대에게 많은 조언이 가능했다. 부지런함은 최고의 덕목이었다. 조금 편한 방식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많이 움직여야 했다. 산업화가 되면서 그 다음 우리 세대는 경쟁사회로 넘어갔다. 남들보다 더 낫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상업'과 '공업'은 경쟁을 기반으로 했다. 옆에 있는 아무개보다 더 많이 생산해 내는 것이 중요했다. 여전히 성실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부지런함'보다는 '효율성'이 더 중요한 덕목이 됐다. 불필요한 단계를 생략하고 학연과 지연을 포함하여 사회 인프라에 최적화된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사교적 능력이 중요한 덕목이었고 남들보다 단순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이 우월한 위치에 오를 수도 있었다.

그 뒤로는 정보화 사회로 넘어왔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적 능력'이 최우선이었다. 공업과 정보화가 적당한 비율로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 우리 세대는 적당한 학연과 지연이 필요했고, 적당한 사교적 능력이 필요했으며 효율성과, 단순 지식을 많이 얻어야 했지만, 빠른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을 얻는 능력이 중요했다. 이것은 수학능력 평가를 통해 기준을 나눌 수 있었다. 그 나눈 기준을 통해 직업의 소득이 나눠졌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69.6%는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화사회를 넘어 4차 산업사회로 넘어갔다. 우리가 자부하던 '수학능력'은 이미 AI를 넘길 수 없다. 단순 암기는 더이상 경쟁력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회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수학능력이 극대화 된 시대'의 아이들은 과연 어떤 것을 경쟁력이 될까. 이 책을 소개한 것은 '야마구치 슈'의 '뉴타입의 시대'에서 이미 읽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내 아이의 첫 미래교육'이라는 책에서 다시 확인하고 있다. 이 시대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굉장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먼저 공부한다는 것은 부모인 나의 '부'와 '미래'를 결정한다. 먼저 선점하기 위해선 '이해'가 필수적이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이해의 창구는 바로 가정 안에서 말썽을 부리고 있다고 취급하는 우리 아이들인 셈이다. 이 얼마나 아이에게 감사한 일인가. 그들의 시대를 알려줄 미래의 스승이 집 안에 함께 동거하고 있으니, 미래의 이해에 대한 무료 과외를 받고 있는 셈이다. '뉴타입의 시대'에서는 '다가올 미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닌, 문제를 발견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지금 이 책과 상당이 일맥 상통한다. 우리는 우리가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를 맞이할 아이들에게 겁도 없이, 책임도 없이 함부로 조언을 하고 있다. '좋은대학을 가야한다.', '무조건 열심히 하라.'가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이 맞이할 시대에 우리가 훈련 시켰던 것들은 이미 과학자들에 의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 가능한 기술들이다. 최근 코로나 문제로 학교를 등교하는 일이 온라인으로 옮겨졌다. 물론 공교육의 완전한 온라인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미래로 다가가는 중에 커다란 시작이라고 생각이 든다. 꽤 영향력있는 대기업들이 재택근무를 단계적으로 늘린다는 것을 이야기하자면, 이 아이들은 결국 집에서 공교육을 받고 집에서 근무를 하는 사회를 맞이 할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자. 만약 온라인으로 어떤 교육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하버드 대학교 강의'를 들을 것인가? 아니면 언제든 없어질지도 모를 부실 대학교의 강의를 들을 것인가? 만약 온라인으로 어떤 요리 레시피를 배우게 된다면, 옆 집의 김아무개의 레시피를 배울 것인가? 혹은 백종원 대표의 레시피를 배울 것인가? 대답은 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세대에서는 그러한 고급 정보를 얻는 일이 굉장히 어려웠다. 실제 인맥을 갖고 있어야 하거나 좋은 대학을 입학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튜브 채널에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공짜로 접할 수가 있다.

아주 고급 정보들이 공짜로 온라인 상에 흩어져 있는 이런 세상 속에서는 굳이 좋은 대학을 갈 필요도, 중요한 인맥을 만들 이유도 없다. 예전에는 좋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좋은 진로였다. 하지만 시장조사기업 켄스텔레이션 리서치의 애널리스트 에이왕이 했던 말처럼 "기업수명이 1960년대에는 60년, 2020년에는 12년에 불과하다. 또한 디지털 혁명으로 포춘 500대 기업 중 52%가 사라질 것"이다. 이제 우리 아이에게는 두 가지 능력이 중요하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앞서 말한 정보들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에는 2가지를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째는 자립(독립)력이고 둘 째는 문해력이다. 동영상을 청하는 행위는 쉽게 문제를 해결 하도록 도와주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이 우리 아이의 직업을 뺏지 못하고 우리 아이의 업무를 더 편하게 해주는 보조적인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지능과 비슷한 자료 수집의 능력이 아니라, 어떤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책은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필기'에 관하여 굉장히 강조한다. 우리는 점점 긴 컨텐츠를 인내력을 갖고 읽는 능력을 상실했다. 글이 잔뜩 적혀 있던 편지에서 펜팔로, 그리고 다시 '채팅'으로 옮겨졌고 이제는 문자에서 카톡으로 바뀌었다. 영상플랫폼은 수 십 시간 짜리 드라마에서 두 시간 짜리 영화로, 그리고 수 십 분 짜리 유튜브에서, 수 분에서 짧으면 수초에 이르는 틱톡으로 바뀌었다. SNS의 형태도 페이스북에서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많이 옮겨져 오고 있다. 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귀찮은 시대에 강력한 사진 하나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는 것은 몹시 빠르고 효과적인 전달법이다. 다만, 우리 아이가 맞이 할 다음 세대 또한 논문은 수 십장에 이르는 분량일 것이고 국가규모의 시험은 문해력을 요구할 것이며, 흔히 말하는 유튜버나 배우들은 수 장의 대본을 숙지 해야 한다. 결국 생산자와 공급자의 문해력이 극명하게 나눠질 세대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큰 배를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들에게 나무와 연장을 주고 배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저 넓고 끊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 줘라. 그러면 배 만든느 법을 찾아 낼 것이다."

일론머스크가 자신의 아이들을 기존 학교가 아닌 자신의 커리큘럼을 한 '비밀학교'에 보낸다는 사실을 볼 때,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아이들에겐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고 했던 것을 볼 때, 빌게이츠가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컴퓨터보다 먼저 책을 사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을 볼 때, 그들은 선구적으로 미래에 대해 대비하고 있으며, 그런 현명한 부모는 '부'가 아니라 다른 무형의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중일 것이다.

책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를 위해 '부모력'을 점검해야한다고 말한다. 코로나19라는 큰 사회적 변화는 재앙이기도 하지만 일부 선구자들만이 선제조치를 할 수 있던 변화들이 일반인들도 대비할 수 있게 했던 큰 기회일 지도 모른다. 이제 코로나 19로 앞당겨진 디지털 시대에 우리 아이들을 디지털 수요자로 키울 것이 아니라 공급자가 되어 사회를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뉴노멀을 준비하는 자녀교육을 해야한다. 나는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절때, 요약정리하여 포스팅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과도 일맥한다. 누구나 배껴쓰기는 가능하다. 하지만 새로운 자극이 나의 머리를 훑고 지나가며 만들어낸 변화의 생채기에 나만의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융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만드러내는 능력이 미래에 더 중요하다. 부모인 내가 먼저, 실천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독서 능력과 독후감 작성능력을 알려주는 것은 비트코인이나 부동산처럼 당췌 이유를 모르고 갖게 된 출처 불분명한 '부'가 아니라 스스로 출처가 확실한 부와 행복을 가질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자산인 셈이다.

아이가 배워야 될 감정은 금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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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대로 하라 : 단 하나의 일의 원칙 1 단 하나의 일의 원칙 1
구스노키 켄 지음, 노경아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생각난다. 책의 구성은 이렇다. 대중으로부터 고민과 질문을 받고 구스노키 켄 교수가 대답을 하는 형식이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대답은 하나다. "좋을대로 하세요" 여기에는 지금 읽고 있는 질문의 대답 뿐만 아니라 다음 나올 질문의 대답도 유추가능하다. "좋을대로 하세요"겠지.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 자신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순간은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에나 존재한다. 이런 결정장애가 많아지는 까닭은 '불안'이 가장 많이 작용하는 듯하다. 일본과 한국처럼 무한 경쟁 사회에서는 여차하여 발생한 단 번의 선택으로도 낙오된다는 듯한 불안감이 흔하다. '대학을 갈까요? 창업을 할까요?', '유학을 갈까요? 국내에서 공부할까요?'와 같이 스스로의 진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타인에게 결정, 즉 선택의 기회'를 양도한다.

결정과 선택을 남에게 양도하는 행위는 자신이 내린 결정과 기회 뒤에 찾아 올 미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다. 타인의 권유로 뜻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쉽게 타인에게 숨어 책임을 면하고 싶어한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그때 그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라는 핑계는 생각보다 자신의 자존감을 쉽게 보호해 준다.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보다, 남에의해서 벌어진 책임을 지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국가 주도형 성장 전략을 취했던 동아시아 국민들의 특색이기도 하다. 주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그 책임을 고스란히 자신이 질 수 있는 당당함이 부족한 이유는 개인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분위기도 커다랗게 작용한다. 그 모든 것은 '노예'와 같은 사고 방식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선택을 남에게 양도하는 행위 말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고민들은 그 고민의 중량이 51대 49정도로 극미한 경우가 많다. 즉, 어떤 경우에는 49가 51이되기도 하고 또다시 어떤 경우에는 51이 49가 되기도 하는 바람과 같은 영향에도 쉽게 이쪽 저쪽으로 기우는 동등한 상태라는 의미다. 이런 경우는 사실 어느 쪽을 선택하건 상관이 없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한 외식자리에서 '돈을 지불하고 나올지', '돈을 지불하지 않고 도망나올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를 두고 한참을 고민한다. 이는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판결이 나야 할 결정 상황에서 그 무게가 비슷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차이다. 그런 경우에 이 책의 저자인 '구스노키 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좋을대로 하세요.' 그렇다. 말이 '좋을대로...'이지만 실제로 '아무거나' 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상황에서 무전취식을 할지 값을 지불할지는 전혀 고민 거리가 아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은 무조건 '값을 지불한다 쪽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 50대 50의 상황에서는 어느 것을 먹어도 좋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로가 아니다. 선택 이후의 나의 태도이다. 일단 선택을 했으면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 '만족'하면 된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좋았을껄...' 하는 후회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 현재를 괴롭히는 일일 뿐이다.

일단 선택을 했으면 무조건 만족하면 그만이다. 선택 후 만족이라는 간단한 원리만으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선택들은 탁월한 선택으로 바뀐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는 축구를 잘했다. 워낙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을 패스 할 수 있는 그 녀석의 능력이 부러웠던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원하는 곳에 패스를 잘해?" 그러자 친구는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곳에 패스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원하게 걷어 차고 공을 받은 친구에게 내가 패스를 잘했다고 거들먹거리기만 하면 돼!" 그랬다. 그 녀석은 정확하게 원하는 곳에 패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결과에 대한 해석의 방식이 달랐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의 축구실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결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탁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책은 일관적이게 반응하는 저자의 대답에 나의 질문을 끼워 넣어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저자는 당연히 이렇게 말하겠지?

"좋을 대로 하세요"

어린 시절에 봤던 '생각대로T' CF에 나오는 노래를 나는 지금도 인생 철학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하면 ~~~하면 되고"로 시작하는 노래인데, 어떤 고민이던 단순하게 해준다. 나는 지금도 내가 풀리지 않는 심란한 고민이 있으면 이 노래에 나의 내용을 넣어보곤 한다. 그러면 너무나 쉽게 해답이 풀리는 경우가 있다.

예전 유학을 망설이던 한 동생이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던 적이 있다. 동생은 유학을 가고는 싶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갈 수 없다고 했다. 그가 가지 못하는 이유를 쭉~하고 나열하고 나서 나는 다시 물었다.

"니가 유학을 가지 못하는 이유를 한 10개 정도 들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가야하는 이유 10개를 대봐."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큰 고민이 있을 때,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한 쪽에는 이 일로 우려되는 측면을 적어두고 반대 쪽에는 이 일로 발생될 좋은 측면을 적어 균형을 맞춘다는 내용을 들은바 있다. 사실 무엇을 할 수 없는 이유나 무엇을 해야만 하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정작 정말하고 싶은 일들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좋은 점과 안좋은 점이 50대 50으로 있는 모든 상황에 한 쪽 측면만 바라보곤 한다. 이 책은 특히나 진로에 대한 많은 고민과 대답이 들어있다. 진리는 하나라는 말처럼 모든 이야기에는 단순한 진리가 통한다.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리고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라'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요즘 이 책으로 많은 분들이 힐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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