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의대생은 초등 6년을 이렇게 보냅니다 - 전교 1등 의대생이 알려 주는 최고의 공부법과 최상의 자기관리법
임민찬 지음 / 카시오페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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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자극적이다. '어머님, 의대생은 초등 6년을 이렇게 보냅니다'. 책의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딸을 의대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본인이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떠나 부모로써 '직업'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직업은 부모가 죽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중요해는데, 무책임하게 내 사후의 일을 간섭하여 아이의 삶을 망치고 싶지 않다.

아이에게 학업을 강제하고 싶지도 않다. 최근 아이에게 논어의 첫 구절을 가르쳐 줬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움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서 희열을 느껴야 한다. 언제나 결과은 찰라이고 과정은 영겁이지 않는가. 과정이랑 끝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며, 있다고 해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은 달성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공부가 필요하다. 결국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물에 의한 기쁨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기쁨을 알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의무교육을 마치면, 그 언제라도 자퇴를 해도 괜찮다. 단, 아이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딱, 4개가 있다.

'자립', '독서', '한자', '영어'

이 네가지를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익힌 후에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 무엇을 하고 살아도 상관없다.

넷은 모두 중요하지만 굳이 순위를 따지고 보자면, 자립, 독서, 한자, 영어 순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 자립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부모는 넘어진 자식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할 수 없다. 걸음마를 떼고 나면 아무리 세게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초등이 지나면 학습은 스스로 해야하며, 성인이 되면 진로는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부모는 스스로 심은 '씨앗'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만 돕는 것이지, 뿌리가 내린 뒤에는 지켜보는 일이 전부다. 고로 단단히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좋은 습관을 기르고 좋은 정서를 쌓아주고, 좋은 유년시절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 전부다. 토양을 만들어주면 좋은 씨앗은 알아서 성장한다.

둘째, 독서

초등 1학년이면 부모가 가르칠 수 있다. 아무리 못배운 부모도 걸음마는 가르칠수 있다. 아이가 배워가는 단계는 점차 수준을 높여가다가 어느 순간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뻗어나간다.

혹시, '기체의 수와 온도가 일정할 때,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라는 말을 듣거나 사용한지는 얼마나 됐나, 또한 이를 말하는 '법칙'의 이름은 알고 있나.

이는 '보일의 법칙'이다. '보일의 법칙'은 중학교 2학년 과학 교과서에 나온다. 대부분의 성인 부모는 만13세 아이의 교육을 지도할 수 없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거든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결국, 한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서 각각 다른 전공을 한 '성인 어른'이 필요하다.

중학교만 올라가도, '수학 선생님', '과학 선생님', '영어 선생님' 등 전공을 달리한 전문가 집단이 각각의 과목을 가르친다. 결국 아이는 '성인'의 수준을 넘는 교육을 받는다. 이처럼 아이의 학습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가장 좋은 스승은 '부모'가 아니라 '책'이다.

셋째, 한자

현재 우리 아이가 하고 있는 유일한 공부는 '한자'다. 한자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영어'보다 중요하다. '수학'보다 중요하다. 이유는 이렇다. 모든 과목은 '언어'로 정리된다. 고로 '언어'가 중요하다. 우리 언어를 구성하는 70%는 한자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원주율'이라는 개념을 배운다. 대부분 대부분의 학생은 원주율이 무엇이냐 물으면, '파이'라고 답한다. '파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3.14.라고 답한다. 3.14라고 말하면 '원주율'이라고 답한다. 원주율(圓周率)은 원의 지름이 길어질수록 둘레가 함께 길어지는데,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설명한 단어다. 다시말해서 한자를 알고 있다면, '원주율'이라는 단어 자체가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한자를 모른다면, 단어를 외우고도 그 개념이 따로 놀게 된다.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역사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정보는 '글'로 쓰여 있으며 그 글의 70%가 한자다.

넷째, 영어

최근 AI가 간단한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혹자는 이런 이유로 영어가 더 불필요하게 됐다고 말한다. AI가 영어를 모두 번역해 주기 때문이라단다. 그러나 AI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니, 제작자는 명령어를 '영어'로 기입했다.

즉, AI기술이 얼마나 발전이 됐던지, 대충 그린 그림과 간단한 영어 한 줄 설명이면 완전히 고품질 애니메이션이 제작됐다. 즉 다시말하면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컨텐츠'가 있고 그것을 표현해 낼 '글쓰기 실력', '외국어 실력' 정도가 있다면, 그림을 전혀 못그리는 사람도 애니메이션 작가가 될 수 있고, 화가가 될 수 있으며, 노래를 전혀 모르는 이가 작곡가, 가수가 될 수도 있다.

AI는 빅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한다. 그렇다면 AI가 학습하는 빅데이터는 어떤 언어로 이루어졌는가. 바로 영어다. 2023년 기준, 전체 인터넷 컨텐츠의 59%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조사가 있다. 이는 단연코 전체 언어 중 1위다. 더 놀라운 사실은 두번째로 많은 언어인 스페인어가 고작 5%라는 사실이다. 3위인 러시아어는 4.9%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어는 1.4%에 불과하다.

자, 공부는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책읽기를 생활화하며, 영어와 한자를 익히고 있다면 단연코 아무 선택이나 해도 좋다.

나의 책임과 역할은 아이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놓아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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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이 따로 있나, 내 삶이 꽃인 것을 - 인생 후반을 따스하게 감싸줄 햇볕 같은 문장들 65
오평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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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평선 작가의 수필, '꽃길이 따로 있나, 내 삶이 꽃인 것을'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봄꽃 뷔페를 차려 놓은 것 같다.'

어디 봄꽃 뿐이던가, 삶이 차려 놓은 식단은 너무 많다. 그 뷔페 식탁에 앉아, 김밥 정도만 먹어도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아깝지 않은가. 공짜로 차려놓은 그 식탁에 앉아 익숙한 것만 골라 먹는 삶은 말이다. 적어도 이것도, 저것도 한 번씩은 찍어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다양하게 집어 먹다보면, '신맛', '단맛', '짠맛', '매운맛'이 골고루 느껴진다. 많은 음식을 찍어봐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같은 메뉴 앞에서, 다음에는 어떤 걸 더 많이 퍼담아야 할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영원히 배가 불지 않는 뷔페에 앉아, 고작 한가지 음식만 골라 먹기에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살고 있는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걸 알아야,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도 해 줄 수 있다. 맛 없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아야, 다른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스스로를 알고 조심할 수 있다. 상대적 가치도 알 수 있다.

어둠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빛'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맛없는 것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바빠 보지 못한 사람은 여유로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상대적인 크기라는 것은 기준점을 세운 곳부터 몇 걸음을 걸어 나갔는지로 키워진다. 마이너스 100에서 마이너스 30으로 나아가는 것은 100만 1에서 100만 2로 나아간 것 보다 더 큰 행복을 갖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그 기준점이 가장 바닥과 가까울수록, 그 비교대상이 확실하게 대비될수록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우리 삶에 차려진 다양한 뷔페식 중 어떤 것을 먹어도 고로 그것은 '행복'을 위해 도움이 된다. 맛없는 것을 먹어도, 맛 있는 것을 먹어도...

일본 경영의신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이렇게 말했다.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과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불평하느냐, 감사하느냐 일뿐이다. 감옥이라도 감사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다."

해골물을 퍼마셔도 그것이 달고 맛있는 이유는 실제 그 물이 달기 때문이 아니라, 간밤에 너무 목이 말라 정신없이 들이켰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항상 컵에 물이 반이나 차 있는 삶을 살고 싶고,

그럼에도 죽지 않는 삶을 살고 싶고,

차라리 잘 된 삶을 살고 싶다.

오히려 좋은 삶을 살고 싶고,

그나마 다행인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의 말에

'그거 좋은 생각이야!'라고 말하고 싶고

'해볼만 한데?'라고 말하고 싶고

'그만한게 어디야'라고 말하고 싶다.

살아보니,

딱 말하는대로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대로 말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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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바뀌면 좋은 운이 온다
김승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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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도착 첫날, 굉장히 독특한 광경을 봤다. 흐릿한 날씨에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를 피하거나, 가리지 않고 그저 맞고 걸어가는 것이다. 누구도 뛰거나 우산을 쓰지 않았다. 우산을 쓰고 가는 경우는 외국인이 다수였다.

과연 왜 그랬을까.

당시 유학생 시선에서 그 행위가 '선진국'의 여유로움이라 여겼다. 얼마 뒤, 그러나 나 또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해양성 기후인 뉴질랜드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날씨가 바뀐다. 몇초 비가 내리다가 화창한 날씨가 된다. 고로 비를 피하거나 우산을 쓰기보다 그냥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인생에서 '불행'은 '소나기'와 같다. 갑작스러움과 막연함이 나를 젖게 만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리는 소나기는 그냥 맞아야 한다. 맞아도 금방 맑은 날이 왔다. 인생이 날씨는 해양성 국가의 날씨 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영원히 내릴 것 같은 비는 사실 잠시 머물다 흘러가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빨리 깨닫게 되면 감정의 출렁거림은 점차 사그라든다.

인생 전체와 비교했을 때, 불행은 터무니 없이 짧게 스치고 간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는 보행자의 잘못이 아니다. 일기예보를 살피거나 준비성을 운운하기에는 '그저 일어나는 일'이 불과하다. 고로 담담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불행을 소나기와 비교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모든 인생은 모두 뉴질랜드의 날씨와 같지 않다고 말이다. 어떤 인생은 비가 많이 내리고도 하고 어떤 인생은 비가 덜 내리기도 한다. 그것을 보고 일부는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원래 인생은 불공평하다. 그것은 빨리 인정해야 한다. 인생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자연은 불공평하다. 자연에는 빛이 있고 어둠이 있다. 음과 양이 있고, 위와 아래가 있으며, 좌와 우가 있다. 이런 차이로 지구에는 '지역별'로 '기후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면 다시 물을 수 있다. 만약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당연하다.

평소에 '우산들고 다니기'를 생활화하면 된다. 그도 아니면, 내리는 비가 내리는 일을 이용하면 된다. 얼마 전, '두바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두바이에서는 도시 곳곳에 미관상 심어놓은 잔디 때문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한단다. 두바이 전체 예산 중 40% 가까이가 인프라 관련 예산이고 이중 34억 달러 정도가 물과 전기 수요에 사용됐다. 이는 전체 예산의 18%다. 즉, 일부 국가에서는 공짜로 물을 내려주는데, 어떤 국가에서는 '비'가 해결해주는 문제에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삶은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삶은 '대응'에 있다. 두바이에 살면 그에 맞는 삶을 살고, 뉴질랜드에 살면 그에 맞는 삶을 살면 된다. 더 쉽게 말해서 소나기가 자주 온다면, '소나기'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스탠스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베트남과 같은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 살면서 우산도 준비하지 않는다거나, 두바이와 같은 가문 지역에 살면서 스프링클러를 준비하지 않는 삶을 살면, 그만큼 '불운'이 찾아 올 빈도가 높다.

고로 불운이 온다는 것은

첫째로, 충분히 그럴 수 있으며, 그것이 짧게 지나갈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불운이 한번, 두번, 그리고 세번과 같이 잦게 찾아온다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모든 것은 '환경'과 '사용'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한다. 환경은 그에 맞는 모습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은 적합하게 사용된다. 즉, 북극곰은 추운 기후 때문에 두꺼운 지방층과 털을 갖게 됐고, 두꺼운 지방층과 털은 추위를 막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우리는 동물종 마다 각각 진화적 이유를 '환경'에 설명하며 '자연선택설'을 믿으며, '인종'과 '국가', '개개인'에게는 그 이유를 적용하기 망설인다. 이런 시도는 근대에 '골상학'이나 '우생학'에서 사용됐다가 인권문제로 현재는 거의 금기시 된다. 그러나 '우생학'의 아버지인, 프랜시스 골턴의 사촌이 '찰스 다윈'이라는 것은 그 둘의 관계만큼이나 연관성이 있다.

생물의 다양성만큼이나 인간의 종류는 다양한다. 그들중 어떤 이는 어떤 환경에 더 번창하고, 어떤 환경에 쇠퇴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눈이 큰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고, 어떤 상황에서는 청각이 발달한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피부가 더 고운 이들이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이다.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각각 생김새에 따라 그에 맞는 자리가 있는 시대가 됐다.

마이클 조던이 12세기에 태어나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빌게이츠가 기원전에 태어났다면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을 수가 있다. 또한 이들 모두가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그 능력발휘는 10분의 1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말은 우리는 현재 꽤 적합한 시대에, 적합한 장소에 있어 우리에게 맞은 능력발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로 우리는 두가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환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다. 환경과 자신을 알고 그 둘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혹, 두꺼운 피부층을 가진 북극곰이 아프리카에 있진 않은지, 아프리카에 있는 기린이 북극에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제 3의 눈으로 볼 때, 북극에 있는 기린과, 아프리카에 있는 북극곰은 서로 맞지 않음이 명확하게 보이고, 이 둘이 서로 불행한 이유는 환경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맞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쁜 상황이란 없다. 다만 맞지 않는 상황만 있을 뿐이다. 자신을 알고 환경을 알면 고로 우리는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수학에는 '큰수의 법칙'이 있다.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높이면 수학적 확률에 수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동전을 던지면 앞이 나올 확률과 뒤가 나올 확률이 50%다. 10번을 던지면 어떤 경우에는 앞이 8번, 뒤가 2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올리면 결국 앞이 나올 확률은 수학적 확률인 50%에 수렴한다. 즉, 인생이라는 전체의 게임판에서 '행복'으로 수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행복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찾고, 간혹 나오는 '불행'을 덤덤하게 맞이하며 그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관상'에서도, '수학'에서도, '자연'에서도,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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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의 대전환 - 세계 경제 질서를 뒤바꾼
해롤드 제임스 지음, 정윤미 옮김, 류덕현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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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제임스, 그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역사학과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경제사와 국제 경제 관계에 깊은 통찰을 갖고 있고 현재 우리의 위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그가 이번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곱 번의 경제 위기가 단순 경제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언급한 역사적 사건은 과연 무엇들일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곱번의 경제 위기는 이렇다.

1840년대, 대기근

1870년대, 한계혁명

1920년대, 1차 세계대전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대인플레이션

2000년대, 대침체

2020년대, 대봉쇄

경제 위기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애초에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을 사회철학으로 여겼다. 인간의 행동 양상에 대한 탐구다. 돈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경제학'의 본질이 아니다. 경제에는 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짐 로저스'는 자신의 저서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기다."

해롤드 제임스 또한 일곱 번의 경제 위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는다. 그는 각 위기를 '좋은 위기'와 '나쁜 위기'로 구분한다. 공급 부족은 시장을 확대하고 혁신을 촉진시킨다. 수요 부족은 시장이 축소되서 긴축정책을 초래한다. 각 상황이 가진 다양한 측면을 골고루 볼 수 있도록 한다.

경제를 말할 때, 항상 언급되는 키워드는 '수요', '공급'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요 키워드가 또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 팽창하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자산과 물가는 상승한다. 단순한 논리 구조로 볼 때, 가격 향상은 기업의 마진을 높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항상 기업의 마진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1955년부터 1965년까지 제조업 매출은 연평균 8.6% 증가 했다. 반면 물가 상승률은 1975년까지 8%로 낮아진다. 워렌버핏 또한 1977년 '포춘지'에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인플레이션이 기업 마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다. 중앙은행이 통화를 발행하고 금리를 조정하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반면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로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인간의 행동 양상. 그것이 경제학이다. 애덤 스미스가 연구하고자 했던 그 철학 분야다.

180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러 위기를 가졌다. 대기근과 대공황, 오일쇼크, 금융위기, 팬데믹. 단순 수요 공급만으로 설명 할 수 없는 이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경제는 이 사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경제 위기는 각 위기마다 방향을 크게 돌며 세계화의 흐름을 결정짓는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1840년대 초기 초기 글로벌 경제는 혼란의 시기였다. 시장은 확장됐다. 1930년에는 글로벌 경제가 수축하고 보호주의가 부활했다. 대량생산이 벌어지면서 소품종 대량생산이 시대적 흐림이 된다. 우리가 말하는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대공황이 일어난다. 1970년에는 오일 쇼크로 인한 공급 충격과 새로운 경제 질서가 탄생한다. 2007년 금융 위기에는 수요부족과 긴축 정책의 부작용이 일어난다. 마지막 가장 최근이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현대 경제의 취약성이 노출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는 회복하는 과정이다. 현대에는 봉쇄, 인플레이션 등의 주요한 이벤트가 된다.

결과적으로 해롤드 제임스는 각 경제 위기가 단순 경제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요인들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런 위기들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함께 숨어 있으며, 시장 구조와 경제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근현대사적 사례를 통해 현재와 미래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그 문제 해결에 대한 통찰을 얻길 요하고 앞으로 미국 대선 이후, 가장 유력 후보인 트럼프의 보호주의가 우리 시대의 경제를 다시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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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지 말라 -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송길영 지음 / 북스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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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윌리엄 깁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실제 어느 한 사업가가 '화성탐사'를 위해 23층 건물 높이의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이 시기에도 동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는 기아에 목숨을 잃는 이들이 속출한다. 실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예전, 한 학생이 물었던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하게 될 텐데, '의사'라는 직업은 없어질 직업 아닌가요?"

나는 답했다.

"아니, 의사라는 직업이 더 쉽게 일하게 되겠지."

기술은 혼자서 발전하지 않는다. 제도를 만나고 문화를 만나 적당한 제동에 걸리고 알맞은 옷을 입게 된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사실 가솔린 차보다 전기차가 더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전기차는 '미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술 중 하나 아닌가, 그러나 최초의 전기차는 19세기 초에 이미 개발되었다. 로버트 앤더슨은 1832년 경 최초의 전기 마차를 만들었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전기차는 꽤 인기 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가솔린 차보다 전기차가 더 인기가 있기도 했다. 다만, 주유에 편리한 '사회 인프라', '사회적 제도', '석유산업의 발전', '전쟁과 에너지 기업의 로비' 등 다양한 원인으로 '가솔린차'가 시장을 점령했다.

이미 일부 변호사들은 법적 문서 초안을 Chat GPT에게 맡긴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게 맡길 수는 없지만 간단한 초안 정도를 인공지능에게 맡기기만 해도 업무 효율은 급격히 높아진다. 높은 업무 효율이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변호사나 의사라는 직업은 인공지능에 의해 사라질 직업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 생산성이 높아질 직업은 그밖에도 많다. 교사, 강사, 심리상담가, 인플루언서, 작가 등이 그렇다. 이들의 특징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Chat GPT는 '학업 도구'가 될 수는 있으나 '스승'이 될 수 없다. 친분을 쌓는 일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할 수 밖에 없고, 누군가의 '히스토리'를 듣는 것을 기계가 대신 할 수는 없다.

망치를 들면 세상이 온통 못으로 보이다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함께 따라온다. 심지어 모든 두려움이 '인공지능'과 결부되기도 한다.

'페스트'로 인해, 유럽이 인구가 급격하게 줄었을 때, 유럽의 사회 구조는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제일 먼저 노동자 감소로 임금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농노와 농민은 더 나은 대우와 임금을 요구할 수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농노제가 약화됐다. 그 결과 자유 농민이 증가했다. 다수의 농장은 버려졌거나 생산성이 감소했고 일부 지주는 농업에서 목축업으로 전환하여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사람들은 기회를 찾아 도시로 이동했고 상업과 무역이 발전했다. 기존 귀족 계급은 엄청난 인구 손실로 인해 그 세력이 약해졌고 그로인해 사회적 이동성이 증가하여 하층민이 중상층으로 상승할 기회가 높아지기도 했다. 조금 비약해 보자면, 자본가가 만들어졌고, 자본가는 비싼 임금을 대신한 기계를 도입했다. 또한 노동자들은 이 기계를 때려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러다이트은 기계 파괴라는 단기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이용했으나,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생계를 보호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사회적 책임을 만들도록 했다.

급격한 인구가 줄어들면 발생하는 일은 이처럼 단순히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인구는 급격하게 줄 때보다, 급격하게 늘었을 때 엄청난 문제를 발생하곤 했는데 아일랜드 대기근이나 로마 제국의 붕괴 등도 급격한 인구 증가가 문제였다.

노동인구가 넘쳐난다면 '인공지능'은 필요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장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 않은가. 최근 '동해'에 유전이 발견되면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리곤 했다. 아무리 기름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많으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업은 비용 대비 수익률이 높아야 한다. 아무리 굴착기가 존재해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삽을 들고 땅을 파는 것이 경제적인 곳이 있다. 그런 곳이 많다면 굴착기 사업은 더 대단한 기술혁신을 갖고 있음에도 살아갈 수 없다.

선진국의 인구 감소, 인공지능의 발전은 어쩌면 또다른 패러다임의 변화일 수도 있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당시에도, 사람들은 유럽의 존망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패스트 이후 유럽은 사회 구조가 혁명적으로 바뀌면서 세계의 패권을 가져갔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지 않으면, 어쩌면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먼저 활용한 이들에게 다음 시대를 내어 주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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