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
손진석.홍준기 지음 / 플랜비디자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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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석유'으로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석유는 세계 경제와 정치의 중심이 됐다. 이 시점에 미국은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석유 패권'을 장악하려는 전략을 세운다.

석유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곳은 어디인가. 중동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국제 원유 거래를 달러로 독점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시작이다. 1970년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합의로 원유는 달러로만 거래됐다. 이는 미국 경제에 막대한 이점을 제공했다. 달러는 국제 원유 거래의 표준이 되면서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시켰다.

미국은 이 시스템을 통해서 석유생산과 소비를 통제했다. 자국의 경제적 안정과 세계적 패권 유지를 위해 '원유 수송'을 위한 '해양 장악력'은 미국에게 큰 임무였다. 전 세계 원유의 상당 부분은 해양 경로로 수송된다.

수에즈 운하, 말라카 해협 등은 모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 정치적 불안이 발생하면 에너지 공급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로써 미국은 해상 경로를 보호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흐름을 보장하기 위해 해양 군사력을 확장했다. 항로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미국 안보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미국의 해군과 항공모함 전단은 이들 해협과 주요 항로 주변에 상시 배치되어 있어야 했다. 우방국 보호라는 '세계 경찰'이라는 목적을 넘어 자국 에너지 안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다.

다만 이후 셰일 혁명으로 미국은 자국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해진다. 미국은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기존 석유 패권은 더욱 강력해졌다. 미국은 석유를 운반하던 '해양수송로'가 더이상 불필요해졌다. 세계의 안보는 미국의 주요 사안이 아니게 됐다.

'환경보호'나 '에너지 절약' 등도 더이상 지켜야 할 본질적 이유가 사라졌다. 에너지 독립을 이룬 미국에게 '산유국'은 안보는 중요치 않았다. 전 세계에서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했고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유럽과 미국의 격차는 심하지 않았다. 미국이 에너지 독립을 하면서 세계 석유 공급망은 불안정해졌다. 중동의 석유 수출에도 문제가 생겼다. 중동 산유국들은 유럽과 아시아 등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우리나라에 빈살만이 들어와 기업가를 만난 배경도 맥을 함께 한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는 러시아로 더 기울게 된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원유의 주요 공급국으로서 역할을 확대한다. 특히 독일을 비록한 유럽 국가들에게 필수적인 에너지 지원국이 된다.

그 시기 러시아는 '흑해'를 통한 석유와 가스 수출을 확대하고자 한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저항으로 인해 흑해 운송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러시아는 '흑해'를 주요 항로로 하는 '해상 수송로'를 얻고 싶었다. 국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계산이다. 해상으로 석유를 공급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석유를 파이프가 아닌 해상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은 '인도', '동남아', '유럽'과 같은 시장을 더 개척할 수 있다는 말과 같고 이는 '에너지 패권'과 연결되어 있다. 고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인 '흑해 부근'까지 나아가기 전까지 전쟁을 종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유럽의 에너지 공급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나토가 쉽사리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을꺼라는 계산도 함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손해를 얻는 쪽은 당연히 '유럽'이다.

최근 '유럽'에서는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전원을 꺼버리면 음식이 상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캠페인은 전개할 정도다.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미국이 부강해지고 유럽이 빈곤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사실 '기술 혁신'이라는 말을 하며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메타'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들도 사실은 '석유'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회사들이다. 앞선 회사들은 데이터와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다. 이들의 성공과 운영은 '석유'같은 에너지 자원에 크게 의존한다. 표면적으로는 디지털 데이터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기반에는 막대한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며 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에서 비롯한다.

애초에 데이터 저장과 처리는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테슬라의 '교류전기'의 특성상, '잉여 에너지'는 필수불가결하다. 고로 이런 잉여 에너지는 대부분 데이터 센터에서 소비된다.

오늘 비트코인의 가격이 1억3천을 넘어섰는데 잉여 에너지 전력을 사용하는데 '데이터'만큼이나 '암호자산' 채굴이 그 몫을 한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에너지 패권을 이미 독점하고 있는 '미국'의 입지가 불보듯 뻔하다.

유럽이 '환경', '친환경'을 외치는 이유도 이에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 당장 몇년은 알 수 없으나 세계적인 흐름에서 한국의 입지는 꽤 중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정유 능력을 보유한 국가다. 또한 2023년 기준으로 전세계 조선소의 VLCC 수주잔량은 12척이며, 이중 한국이 33%를 담당한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중심에 있으며 원유 주요 생산국인 중동, 러시아, 미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를 통해 원유를 효율적으로 수입하고 정유 후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유럽, 미국, 인도 시장으로 분배할 수 있다.

또한 단순 가공을 넘어 데이터 산업과 같은 첨단 분야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한국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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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 - 가장 큰 두려움을 가장 큰 힘으로 바꾸는 법
아리 크루글란스키 지음, 정미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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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전거를 사러 간 날, 자전거에 달린 보조바퀴를 언제 떼야 할 지 물었다. 그러자 사장님은 답했다.

"아이가 알아서 떼달라고 할 거에요."

보조 바퀴는 아이가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자전거에 능숙해지면 비로소 방해물이 된다. 속도와 자유로운 주행을 위해 보조 바퀴는 방해 요소다.

최소한 안전을 위해 '보조바퀴'를 달고 시작하지만 언제까지 그것을 달고 있을 수는 없다.

보조 바퀴는 '안정성'을 뜻한다. 안정성은 말그대로 '안전'하게 지켜준다. 다만 그것은 자전거 본질의 역할을 못하도록 마는 방해물이다. 두발 자전거는 패달을 밟지 않으면 옆으로 넘어지지만 속도를 높이면 네발자전거보다 더 안전하게 우뚝 선다.

불확실성은 이처럼 두발자전거와 같다.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수하면 그때서야 자율성이 보장된다. 아이의 자전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불확실성은 예외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불확실성'은 '성장'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비로소 안전 지대를 벗어나야 성장이 시작된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하이테크 분야에서 성공한 CEO인 인스라엘의 작가 인발 아리엘리는 자신의 책, '후츠파'를 통해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자립성'이라고 했다.

자립성은 '자기 확신'에 큰 도움을 준다. 부모의 감독 없이 목표를 실행하도록 하는 '자립성 허용'은 아이를 성장시킨다. '자립성이 허용'되면 아이는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 우발성을 터득한다. 우발성은 난관을 뚫고 나갈 기술과 전략을 갖도록 한다. 이런 우발성은 예기치 않게 우연히 발생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나 '확실성', '안정성'이 걷혀야 한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이 머리를 가눌 수 있는 순간부터 두려움이나 속박없이 주변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도록 놔둔다. 제약을 최소화하고 체계를 없앤다. 이러한 무질서 상태를 히브리어로 '발라간'이라 한다. 이는 쉽게 말하면 아이에게 거의 모든 권한을 주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놀이터에 아이와 함께 가면 미끄럼틀을 타는 방법이나 그네, 시소 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지켜본다. 기구 타는 방법이 통상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바로 잡지 않는다. 이런 어른의 관용은 아이가 예측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 그러한 상황에 놓인 아이는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스스로 기르게 한다. 그렇게 길러진 기술이 스스로를 학습시키고 가르친다. 결국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자신을 믿고 하고자 하는 바를 자신있게 해 나간다.

체계는 예외성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테일러리즘이나 포디즘은 현대 산업사회의 대표적 관리법이다. 바퀴에 나사를 조이는 사람은 나사만 조이면 된다.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은 페인트만 칠하면 되고, 문을 다는 사람은 문만 달면 된다. 전체의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그저 컨베이어벨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하면 그만이다. 이런 작업 환경은 당연히 '창의성'이 필요없다.

흔히 말해서 '맥도날드'에서 빵과 고기를 잘 굽는 사람이 '맥도날드 CEO'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지위적으로 높아질수록 불확실성을 맞이 하게 된다. 인간의 기본 심리가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것이다보니, '회사를 운영한다는 불확실성'보다 주어진 부품을 매일 같이 조이며 월급 받는 확실성을 택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확실성은 기초체력을 약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확실성의 환경에 노출된 이들은 안정적인 삶을 살고, 확실성에 노출된 이들은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된다.

예외성이 최소화 된 일에 사람은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기계처럼 반복할 뿐이다. 이처럼 최소화 된 생각과 기계적 반복은 말그대로 '기계로 대체' 가능하다. 부품처럼 다른 사람으로 대체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한 일을 능숙하게 대처하는 이들은 '직관'을 갖고 살아간다. 이 직관은 '대체불가능함'이 된다.

대중의 심리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고로 우리는 슈퍼히어로에 열광하고 음모론을 확신한다. 이런 사람이 많은 탓에 사회는 기업가보다는 노동자가 많고 리더보다는 팔로워가 많다.

무엇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둘은 각각의 가치관에 따라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확실성에 노출된 이들이 되려 확실성을 갖게 되고, 확실성을 가진 이들이 불확실성을 갖게 된다는 아이러니다.

얼마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워렌버핏은 가진 자산을 현금화하고 있으며 금이나 비트코인의 가격이 상승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더 불확실성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과거 농사처럼 어느정도 분명한 주기와 확실성을 갖던 시기를 벗어나 이제는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야하는 시대가 왔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여러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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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 필독서 시리즈 24
여르미 지음 / 센시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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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추천해주세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쉽게 고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해지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니 '최고의 책' 혹은 '단권'을 꼽아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때도 굉장히 난감하다.

책이란 걸 읽다보면 '책과 책'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낀다. '책'이라는 단일 출판물이 아니라 활자로 얻은 것들이 유기적으로 합쳐지게 느낌이라 그렇다.

'어디서 이걸 봤나' 싶은 구절은 다른 책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인용마저 다른 어딘가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많이 읽으면 빨리 읽게 된다. 그것은 '이해능력'이 발달해서가 아니다. 역사, 철학, 인문학의 내용은 표면이 달라도 본질은 비슷하다. 결국 까맣게 칠한 도화지에 채워지지 않은 빈곳을 덧칠하는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창의성'이라는 것은 없다. 대체로 '창의성'이라는 것은 시기나 장소를 달리한 모방 간의 융합이다. 고로 거의 모든 것은 '모방'의 형태를 띄고 있다.

'거인의 어깨'라는 말이 있다. 아이작 뉴턴은 말했다.

'내가 멀리 보았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사람들은 '뉴턴의 말'이라고 알고 있다. 다만 이 비유는 1651년 조지 하버트라는 종교 시인이 사용한 표현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멀리본다.'

뉴턴은 이 말을 빌려썼다. 그러나 조지하버트의 그 말 또한 1621년 로버트 버튼의 이야기를 빌렸다. 로버트 버튼은 1159년 요아네스 사레스베리엔시스의 글을 읽고 그 말을 차용했고 이 표현 또한 1130년 베르나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한 글이다.

고로 모든 글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갑자기 누군가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없다.

이렇게 위대한 인물도 자신의 치적을 선인들에게 넘기곤 했다. 심지어 이때 사용한 표현마저 선인들의 표현을 빌려온다.

그들의 말을 나또한 인용하자면, 거인 어깨 위에 다른 거인이 서 있고, 그 거인 어깨 위에는 또 다른 거인이 서 있다. 결국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거인, 그 거인의 어깨 위에 다시 서 있는 형국이다.

어쨌건 글을 읽다보면 '책 한권의 제목'이 '목차' 수준으로 줄어 들어 버리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역사'라는 항목 아래, '사피엔스'나 '총균쇠'가 있고 '과학'이라는 항목 아래, '이기적 유전자'나 '코스모스'가 있다.

책 읽던 사람에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드는 목차 하나만 골라보세요'라는 주문을 했을 때처럼의 막연함이 아마 '책을 추천하는 다독가'의 마음일 것이다.

'여르미'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류지아 작가'님은 네이버 도서인플루언서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1년에 500권 가량 읽는 대단한 다독가다. 개인적으로 나또한 '다독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정말 감히 비할 바가 못된다. 사실 '도서인플루언서'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여'책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라고 글을 달면 괜히 서운해 질 때가 간혹 있다. '나의 노고'는 읽을 때가 아니라, 쓰는 것에 있다는 서운함이 들어서다. 읽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사후 그것을 글로 기록하는 독후 활동이 거의 책읽기의 8할은 차지하는 것 같다.

아무튼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책을 읽을까. 어떻게 읽을까'하는 개인적 호기심으로 책을 구매했다. 책의 제목은 '인문학 필독서 50'이라고 적혀 있겠지만, 아마 출판사 컨셉에 맞춰진 이름일 것이고 굉장한 고민을 하며 추천도서를 선정했을지 모른다.

예전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야기한 글을 본 적 있다. 글에 따르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본업'과 전혀 상관없는 매우 마이너 한 주제로 끝없이 파고들어간 '전공서적'이 하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다. 나의 서재에는 굉장히 쌩뚱맞은 주제의 책들이 있다. 가령 '신발'에 관한 역사라던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역사책들도 있다.

'도대체 이런 책은 왜 사는 거야?, 사는게 문제가 아니라 왜 읽는거야'

이런 책들이 쌓여 있게 되면, '아.. 나도 정상은 아니구나..'한다.

그러다가 다른 책에 진심인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보다는 정상이겠구나' 하기도 한다.

이렇듯 고구마줄기 캐듯 따라 들어간 책에서 '유레카'하고 싶은 인사이트를 얻는 경우도 많다. 고로 나중에는 한 권의 책이 엄청났다는 인상은 희미해진다. 잘 섞여 하나의 요리로 탄생한 '독서'의 즐거움이랄까.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가장 맛있는 원재료 하나만 꼽으세요.'와 같은 의미 없는 질문같다.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추천한 책'이나, 베스트셀러 책을 잘 찾아 읽지는 않는다. 책이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영향을 끼치고 바로 직전에 봤던 영화와 소설, 겪었던 이야기와 들은 이야기들이 모두 절묘히 섞여 주인과 궁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가 진중하게 물어본다면 곰곰히 생각해 볼 것 같다. 그리고 '이거 읽으세요'라기보다 '나는 이거 괜찮았아요'라는 식으로 추천을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선택이 몹시 궁금하다. 어쩌면 언급된 도서를 찾아 고구마 줄기캐기를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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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의 세계 - 인체의 지식을 향한 위대한 5000년 여정
콜린 솔터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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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버크와 헤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당시 에든버러는 해부학 연구의 중심지였다. 다만 법적문제로 시신 공급이 어려워며 해부학자들은 인체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때 버크와 헤어는 '자연사한 하숙인'을 매장하지 않고 한 해부학자에게 판매한다. 그후로도 도굴을 시작한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은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후 산 사람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공급하는 방식을 선택한 둘은 열 여섯의 희생자를 만든다. 이들 대부분은 빈곤하거나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살해 방법으로는 목을 졸라 질식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살해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러한 방식을 버크의 이름을 따서 버킹(Burking)이라 부른다.

1829년 이들의 악행은 발각된다. 헤어는 법정에서 면제를 조건으로 '버크'를 고발했다. 헤어는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버크'는 2만5천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의 몸은 결국 해부되었고 이 장면을 지켜본 에든버러 의과대학 교수 '몬로'는 펜을 꺼내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글은 교수형에 처해진 윌리엄 버크의 머리에서 나온 피로 쓴 것이다."

버크의 유골은 2022년 에든 버러에서 열린 해부학 박람회에 전시 되었다. 또한 버크의 살가죽은 기념 수첩으로 장정되어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사람들을 살해하고 해부용 시신으로 판매하던 버크의 스스로가 해부용으로 제공된 것이다. 그의 시신은 해부학 수업에 사용됐고 해골과 피부 조각은 박불관에 전시 됐다.

해부학에 대한 갈망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시신 거래는 윤리적 문제를 재고하게 만든다. 해부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윤리적 문제가 양립한다. 이에서 인류사는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진다.

'콜린 솔터'의 '해부학자의 세계'에는 적잖은 해부 도판이 수록되어 있다. 무려 1000년 가까이 된 그림부터 현대까지 시기별 해부의 역사와 자료가 전시된다.

'당시에 이것을 그렸단 말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주 오래된 자료들이 너무 말끔한 상태로 보여진다. 책장이 넘어가며 인류사는 현대로 흐른다.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경이로움은 더 커져간다.

꽤 아쉬운 것은 해당 시기에 우리나라는 어느 시기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는 것이다. 해부학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서양에서 공유되던 시기, 또한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이 되려 서양 의학 수준을 업치락 뒤치락하던 사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역사가 '유럽'에게 유리하게 흘럭갔던 이유가 대략 납득하게 된다.

과학자들의 지적호기심이 윤리적 딜레마에 걸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당파에서는 상복을 3년을 입어야 하느지, 1년을 입어야 하느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수백년이 넘은 시기에 유럽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단순 '의학적 지식'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그림은 꽤 정교하기도 했고 감각적이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유머러스하기도 했다.

해부된 시체가 자신의 살가죽을 들어 올리며 내부를 보여주는 모습이라던지 잘려나간 자신의 머리를 전시하는 그림 등. 다양한 자세의 그림들도 있었다.

해부된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방으로 들어와 그림을 들여다 본다. 아이도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는지, 아버지의 책을 빌려가 한참을 뒤적거렸다. 아이가 보기에도 호기심이 일어날 만큼 그림의 내용은 감각적이었다.

이어 아이는 다음날 서점으로 가서 '해부학'에 관한 만화책 두 권을 구매했다.

유학시절 함께 살던 플랫메이트는 오클랜드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당시 친구와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친구의 전공책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뼈이름', '근육이름'

그 온갖 이름이 '영어'가 아닌 상태로 적혀 있었다. 의과대학을 다니던 친구는 '동양인'이었다. 당췌 이름을 왜 그렇게 어렵게 지었고 그것을 어떻게 다 외운단 말인가. 요즘 '의대 열풍'이라고 하던데, 알파벳 'x'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이름들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막막하다. 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은 느끼며 당시 나는 다짐했다. 나에게 '의사'라는 직업은 시켜줘도 못할 일이구나...

참고로 책은 생각보다 쉽고 재밌으며 전공자와 비전공자 모두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공부한다'는 생각을 빼고 읽으면 뭐든 재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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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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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군가에게는 망상적인 이야기이겠지만 혹은 비현실적인, 허황되거나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만, 최근 이 물음이 내 삶의 순간을 함께 했다.

아이와 동네 서점에서 책구경을 하다 가장 얇은 책 하나를 골라 집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죽일 수 있는 가벼운 단편을 집어 든 것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가볍게 첫장을 넘기고, 두번 째 장을 넘겼다.

'톨스토이가 쓴..', '민음사 고전..', '죽어가는 한 남자의 기록..'

그 키워드가 가슴으로 다가왔다.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소설이 갑자기 묵직해졌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면 여기저기 많다. 전쟁이나 범죄 영화에서는 너무나 쉽게 죽음을 묘사하고 그 죽음에 '극'이라는 설정이 자각되면 아무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꽤 현실적이다. 멀쩡하던 한 남자가 병을 얻고 서서히 죽어가는 묘사, 죽음을 맞이하면서 겪는 다양한 생각의 변화, 주변, 그 주변을 바라보는 죽어가는 사람의 질투와 감사함, 반복되는 희망과 좌절.

단 하나의 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시선이 묘사된다.

아이와 정신없이 서점을 나오느라 '책'은 구매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훑었던 책의 이야기가 아른거렸다.

'아직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하다가도

'그러나 지금 읽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겠다.' 싶어 아침 일찍 서점 문앞을 기다리다가 첫 손님으로 지체없이 책한권 집고 나왔다.

그후 단숨에 읽었다.

안정된 미래와 세속적 성공에 대한 추구, 인정 받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것은 종국에 가서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반 일리치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삶의 터전이 그저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혹시 내가 부여 잡고 있는 것들 또한 무너지면 빈 껍데기일 뿐이지 않을까.

이반 일리치는 법조계에서 일하는 러시아 제국의 상류층 관료다. 비교적 평탄한 경로를 밟았고 사회적 성공을 이룬다. 그의 커리어가 전형적인 모범적 공무원의 그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법률 공부를 하고 법관이 된다. 경력을 쌓으며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와 존경을 받는다. 매순간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자신의 업무에 규칙과 절차를 지킨다.

도덕적으로 명백한 '오류'를 저지르지도 않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충실히 따르며 부정을 저지르거나 불의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되려 법관에 맞도록 규칙과 법, 절차를 중시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삶의 전반에는 깊은 차원의 도덕적 결핍이나 오류는 없다.

그런 그가 종국에 와서 자신의 삶을 톺아가며 느낀 오류라면 '타인의 기준에 맞춘 표면적 삶',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한 고찰의 부재' 정도일까.

소설의 중반부에 나약해가는 자신을 보며 그나마 놓치 못하고 한평생 모신 '품위'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모범적 법관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죽음을 맞이하는 그라데이션 된 과정을 지켜보면서 평범한 일상이 '비현실'로 넘어감을 경험한다.

육체보다는 정신이 나약해지고 지독해져 간다. 갖추고 있던 모든 허울이 '스르르' 녹으며 '삶'에서 갖추던 모든 것들이 '태생적'으로 돌아감을 관찰하게 된다.

가끔, 아니면 거의 매순간 우리는 '필멸자'의 숙명을 잊는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주가를 바라보고 비싼 자동차와 그럴싸한 직업을 소유하고자 치열하며, 괜찮은 취미를 가지고 다수의 존경을 갈망한다. 그 놓지 못하는 먼지 같은 것들이 자신을 지탱해 준다고 착각하며 고개를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다.

이반 일리치에게 있어서도 집, 직장, 사회적 성공은 견고한 삶의 축이었다. 다만 죽음이 그의 삶에 문을 두드리는 순간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하망하게 무너져 내린다. 모든 관계가, 모든 성공이, 그가 믿고 있었던 모든 가치가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린다.

'하인'에게 의지하고 싶고 아이처럼 위로 받고 싶어한다. 나약함 앞에 '지위'는 '인간'을 구분하는 선이 되지 못한다. 죽음 앞에 모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빈손이다.

'제일 가벼운 책'이라는 '가벼운 마음'이 선택했던 이 책이 묵직하게 다가와 가슴에 내려 앉는다. 결코 단번으로 끝내서는 안 될 책이다. 스스로가 '필멸자'라는 착오에 빠질 때, 스스로 오만해지고 세속적 좌절과 고민에 쌓여 있을 때.

그때마다 꺼내봐야 할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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