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3학년부터 시작하는 똑똑한 독서 수업 - 문해력, 창의력, 문제 해결력을 높이는 독서 활동 125
류창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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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學習)'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배울 학(學)’과 ‘익힐 습(習)'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우고 익힌다는 의미다. '배운다'는 것은 일회성 지식 습득 행위다. 새로운 개념이나 기술을 접하는 과정이다. 반면 '익힌다'는 것은 반복을 통한 체득을 의미한다. 배운 것을 실제로 활용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 둘의 차이는 명확한데, 우리의 '새해다짐'을 보면 알 수 있다.

'운동을 하겠다.' 혹은 '영어 공부를 하겠다', '금연을 하겠다'

우리는 그 것들을 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고로 일을 시작하는데 '배움'은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런 다짐이 실패하는 이유는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습(學習)'에서 가장 큰 실패의 요인은 '학(學)'이 아니라 '습(習)'에 있다.

과거에는 '학(學)'자체에도 장벽이 있었다. 가령 어떤 배움을 가지느냐가 성과의 핵심이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습(習)'이 훨씬 중요한 시대다. 유튜브만 켜도 대한민국 혹은 세계 최고라는 강의를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컨텐츠 질이 상향평준되면서 이제 중요한 것은 학(學)이 아니라 습(習)이 됐다. 이제는 누가 더 좋은 교육을 받느냐가 아니라 더 잘 익힐 수 있는지의 문제다.

'익히다'의 어원은 어디에 있을까.

'익히다'는 의미는 '익다'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익다'의 기본 의미는 열매나 곡식이 자라서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벼가 익는다거나 사과가 익는 것. 더 나아가서 음식이 열을 받아 조리되는 것, 어떤 음식이 발효가 되며 숙성되는 것을 모두 '익는다'고 표현한다. 김치가 익는다거나 고기가 익는다처럼 말이다.

여기에 공통점은 '자연스럽게 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즉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통해서 완전해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우리는 '익다'라고 표현한다.

지식이나 기술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반복하고 단련되서 '완성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익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다른 과목은 '학(學)'의 영역이 아직까지 절대적이다. 뉴턴의 말대로 거인의 어깨에 앉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선인들이 미리 쌓아둔 광범위한 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과거의 지식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과학, 사회, 역사를 비롯해 다른 과목에 모두 적용된다. 물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배움'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다.

수학과 영어는 조금 다르다. 수학과 영어는 사고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수학은 논리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영어는 타문화 사람들의 어순 체계를 익혀야 한다. 다만 수학과 영어 역시 문제에 패턴이 존재하고, 이를 익히고 연습을 하면 일부 단기 상승도 가능하다.

국어는 다르다. 국어도 문법이나 고전부분은 단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비문학 독해력은 단기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비문학은 논리적 사고력과 어휘력이 필수적이다. 단순 암기가 아니라 해석하는 힘 즉, 사고 방법을 바꾸는데 있다. 이 부분은 절대적으로 '배우는 부분'이 아니라 '익히는 부분이다. 반복적으로 연습이 필요하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다.

배움은 '일회'지만 익힘은 '반복'이 필수다. 자고로 책은 학습자의 이해속도에 맞게 배움을 알려주고 반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시말해서 '독서'는 완전한 학습 훈련법이다.

류창진 작가는 현재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는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채널에서 '다시, 학교 공부'의 운영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의 기초 학습 실력을 높이기 위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초등 저학년 아이를 기르고 있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유튜브 채널'에 초등 교육에 관한 대부분의 영상을 봤다. 그러다보면 비슷한 출연자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류창진 작가'의 얼굴과 목소리는 나에게도 익숙하다. 여러 채널을 보고 책을 읽고 스스로도 생각하기에 '초등 독서'는 거의 완전한 학습법이다.

이 시기를 지나서도 분명 학습 능력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우리의 현실적인 중학, 고등 교육과정을 보면 이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회는 초등, 중등, 고등과정과 대학과정으로 가면서 점차 '교육'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초등에서는 '교육'이 우선이다. 거기에 모인 아이들 대부분은 거의 100%에 가까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사회는 꽤 현실적으로 사람을 나누기 시작한다.

스펀지처럼 모든 지식을 흡수하는 초등학생들에서 점차 그 흡수력이 떨어지는 중등 그리고 그 능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고등에 이른다. 이후부터는 '교육'보다는 '평가'하고 '분류'하는데 더 힘을 쓴다. 고로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는 점점 빈번해지고 디테일해진다. 즉 성장할 틈이라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다. 물리적인 시간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초등'이다. '초등'에 독서습관을 기르고 중등에 유지하는 정도면 고등에 충분하다고 본다.

초등 교사가 실제 교실 현장에서 가르치며 정립한 공부잘하는 아이들의 40가지 주제별 책읽는 법이 나와 있다. 단순히 책 읽어야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상세한 독서 활동법이 담겨져 있다.

물론 이 또한 '배움'보다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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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탄광촌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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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탄광촌 이발소'는 '오쿠다 히데오'작가의 연작 소설집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2004년 출간한 '공중그네'나 2005년 '남쪽으로 튀어'로 이미 유명한 작가다. 이 소설 또한 2017년 출판되었던 무코다 이발소의 개정판이다. 다만 이 작품은 전에는 읽은 적이 없어 재미있게 읽었다. 오쿠다 헤데오의 다른 작품은 전에 읽은 바가 있다. 꽤 반갑게 느껴졌다. 그는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작가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번 소설은 과거 탄광 사업으로 번영했다 쇠락해가는 '도마자와'를 배경으로 한다. 과거 번영을 누렸던 이 소도시는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어느 날, 도시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탄광촌 시골 이발소를 잇겠다고 돌아오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후 여섯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결코 '허구'스럽지 않다.

'일본' 작가의 글임에도 '국적'을 초월하는 공감을 주었다. 특히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입장에서 '시골'을 이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기까지하다.

소설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점차 활기를 잃어가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다. 극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내용과 그저 소소한 일상을 닮은 내용이 이어진다.

소설 중 '중국인 신부'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젊은 여성들이 '시골 생활'을 기피하면서 신부를 찾기 어려워진 남성 중 일부가 중국인 여성과 결혼을 하는 내용이다.

이 짧은 설정은 그저 표면적이다. 이 설정을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 사실적이다. 사실 어린시절부터 시골에 살던 내가 특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골에 마음이 편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흔히 말해 작은 마을에서 '사생활'은 거의 보장 받지 못한다.

어린시절 우리은 현관은 여닫이 문이었다. 당연히 잠금장치 같은 것은 있을리가 없고 대문도 없다. 그저 차타고 마당에서 내려서 '드르륵'하고 문을 열면 안방까지 시원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주변 과수원에서 일을 하시던 어른들은 대뜸 문을 '드르륵'하고 열어서 '아버지 계시니?'하고 묻고 '물 한잔만 주라'하셨다.

어른들은 종종 현관문을 열어 먹을 것을 놓고 가시기도 했고 때로는 제집처럼 뭔가를 집어 가시기도 했다. 그런 환경에서 살다보면 역시나 '사생활'같은 것은 없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묻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내가 알고 싶지 않던 친구며, 사촌이며 지이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너무 쉽게 들리는 것을 보면 나의 이야기도 그렇게 퍼지고 와전되고 있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이라는 것이 항상 좋은 이야기에는 침묵하고 좋지 않은 이야기는 확장하는 편이라 항상 어린 시절 그런 환경이 싫었다.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이름'과 '사는 곳'을 물으시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성함도 물으셨다. 그러고는 '혹시 할아버지 존함이 000 아니냐'하셨다. 당황스럽게도 맞았다. 항상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히 해야하는 시골에서의 삶이 문뜩 떠올랐다.

중국인 신부와 혼인을 했다는 청년은 과거의 활발함을 잃은 채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시골 인심'은 당사자가 원치 않은 방식으로 사회로 그를 이끌려고 하고 간섭하기 시작한다. 그 불편함이 소설이지만 뚫고 내 피부로 느껴졌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이지만 지금의 시골 어딘가이고, 과거의 내 기억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설에서는 이 활기를 잃어가는 동네를 묘사하고 또 이 마을을 살리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작은 마을이 소멸되어가는 현대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있음직한 이야기를 정말 가감없이 썼다. 그 와중에 유머러스하고 쉽고 간결한 그의 문체는 기술적으로 글을 읽어가는 재미도 한층 덧붙였다. 소설은 2022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다고 한다. 소설을 읽고 나닌 이 영화도 나중에 꼭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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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개냥이 수사대 1~5권 세트 [위즈덤하우스]
위즈덤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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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고를 때, 맞는 옷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듯, 책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옷은 입고 벗는데 1분정도 소요된다면,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책이 나에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에서 꽤 적잖은 시간이 들어간다.

사람에 따라 소설이 잘 읽히는 사람이 있고, 에세이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인문학이나 역사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경우는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편이다. 또한 소설 중에서 '추리소설'은 그나마 잘 읽히는 편이다.

이처럼 각자 선호도가 다르다.

보통 자신이 어떤 책에 맞는지는 여러 실패를 통해 알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당수는 아예 '독서'를 포기한다.

이유는 이렇다.

'재미'가 없다.

운좋게 첫번째로 고른 음식이나 옷이 취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확률도 있다. 책은 그 취향이 꽤 세분화 되어 있어서 자신의 취향을 알기까지 상당히 많은 실패를 겪어야 한다.

거기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하나가 있다.

바로

'완독'에 대한 '강박'

어렸을 때 참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급식'에 관한 규칙이었다. 학교 급식에서 '배급'은 무조건 받아야했고, 남김 없이 먹어야 했다.

선생님들은 남은 음식을 버리는데 학생은 못하게 했다. 당시 공포스러운 반찬은 '가지무침'이었다. 보라색은 보기만 해도 이상했다. 물컹한 식감은 남의 콧물을 집어 먹는 느낌이었다.

가지무침만 나오면 급식판에 토하는 애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어쩐지 학교에는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

'다 먹어야 한다.'

그 강요가 생기면서 '급식실'은 공포의 시간이 됐다.

일부는 아예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 당시에 그정도로 강요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가지무침'을 먹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가지무침을 먹지 않는다.

강제로 먹다보면 맛을 안다는 어른들의 말은 틀렸다. 강제로 먹는게 아니라 이것저것 먹어보다가 본인의 호기심으로 접한 몇 번의 시도 혹은 그것을 맛있게 여겨지는 어떤 계기가 그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네 빵집에 가면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는데...'밤도나스'로 불리는 빵이었다.

'밤 앙금'으로 가득찬 도너츠가 있다. 도너츠처럼 안에 구멍은 없고 앙금은 가득차 있는데 겉에 설탕이 잔뜩 뿌려진 빵이다.

그 빵을 그닥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아예 존재감조차 없었다. 그런데 20살 백일 휴가를 갔다 온 날, 동생이 말했다.

"오빠, 목마른빵 사왔어 먹어."

'목마른 빵?', 하고 크게 한번 웃었다. 실제로 그 빵을 먹으면 우유를 꼭 먹어야 했다. 그 빵에 그 이름이 붙고 웬지 그 빵을 다시 찾게 됐다.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이 됐다.

영화 '더로드'에 나오는 '코카콜라'도 그렇다. 지구가 종말한 뒤, 주인공이 아들과 나눠 먹는 콜라 한모금의 장면.

그 장면으로 나는 지금도 콜라를 거의 짝으로 먹는다. 그런 계기는 꽤 '정신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듯하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가 생일에 사주셨던 '김정빈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책이다. 지금은 절판된 그 책으로 책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박혔다.

그 뒤에 읽었던 책이 '삼국지'였다.

한 번의 충격.

그리고 이어지는 쐐기.

이 두번의 강력한 경험으로 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

그런 이유로 '책'의 주목적은 반드시 '재미'이어야 한다. 완독을 하지 않아도 좋다.

이거야?

아니

이거야?

아니

이거야?

아니

무수한 시도를 하며 꾸준하게 맞는 취향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도 만 1년째 매주 수요일은 아이와 도서관을 간다. 도서관에 가서는 아이가 다 읽지도 않는 책을 고른다.

책을 고르는 재미, 우연히 잡은 책에서 얻은 재미 간혹 나오는 책에 관한 주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요즘 '개냥이 수사대'다.

교육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책을 좋아하는게 우선이다. 책을 좋아하면 이후에는 스스로 취향을 찾기 위해 움직인다.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무조건 재밌는 책을 선물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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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리커버)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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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두고 살아간다.

얼핏 스릴러 소설인가 싶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명주는 시신이 최대한 부패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공기청정기, 에어컨은 기본이다. 그녀가 어머니의 사망 신고를 하지 못한 이유는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 때문이다. 큰 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애당초 몸이 불편하고 가진 게 없는 '명주'에게는 그것이 살아갈 방법이자, 이유가 됐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조심한다. 집을 철저히 관리한다. 다만 점차 한계가 다가 오고 있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냄새는 점점 짙어지고, 어머니를 찾는 불청객, 자신을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점차 위기를 느낀다.

애초에 돌봄은 생존 문제였다. 사랑이나 책임은 그들을 옭아매는 올가미 같은 것이다. 명주는 자신에게 오롯하게 떨어진 '돌봄'이라는 몫에 지쳐갔다. 치매 노인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겪을 다양한 고통이 소설속에 들어가 있다.

명주에게 '연금'은 해 준 것 없는 '국가'에게서 그나마 받을 수 있는 '보상' 같은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부정수급'이나 '도의적 책임', '윤리적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사치일 뿐이었다.

오래된 명주의 아파트 옆에는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는 20대 청년이 산다. 20대 청년 준성은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간다. 아버지와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형'에 대한 '미움'과 '부러움'의 감정을 가지고 어렵게 하루 하루 살아간다. 명준과 준성은 서로 날카로워질 만큼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서로를 경계한다.

소설의 배경은 대략 이렇다.

더 언급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뒤로 이어지는 '소설'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다. 더이상의 이야기는 분명 다음 소설을 보는 이들에게 '스포'가 될 것 같다. 이 소설은 첫 장을 읽고 '어라?' 하고, 후딱 절반을 읽고, '내일 읽어야지'했다가 궁금해서 나머지 반을 모두 읽어 버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소설이 영화화되면 아마 꼭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는 인기 있는 '가수'들의 실명과 노래가사가 나온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 노래할 것 없이 K문화가 대개인 와중에 혹자들은 다음 물결이 '문학'에도 올 것이라 말한다.

분명하건데 외국 소설을 보면, 툭툭 뱉어지는 어떤 사건이나, 배우, 가수, 노래 들에 '주석'이나 '각주'가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걸 읽을 때면 웬지 모를 소외감과 섭섭함이 든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다른 외국 소설보다 더 흥미로우며 그 '주석'이나 '각주'없이 감각으로 명사를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 소설이 더 흥하게 되면 외국 독자들이 그 주석과 각주들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은 '돌봄'을 개인의 몫으로만 떠넘기는 사회 속에서, 버틸 수 밖에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문미순 작가'는 명주의 선택을 보여줄 뿐, 옳고 그름을 단정하지 않는다.

우리 독자도 읽으며 그녀를 욕할 수는 없다. 상황이 만들어내는 설득력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절로 도덕이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경계선을 쉽게 넘어서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사회에서 보도되는 '50대 여성, 친모 연금 수령 목적 시체유기'와 같은 잔혹한 범죄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개인적' 이야기들이 숨어 있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현실을 비춘다. 그리고 그것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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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면 물어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1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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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통, 화, 불안감에 휩쌓였을 때, 그것이 그저 '상념'이라는 것을 깨우치면 그것으로 족하다. 악몽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단 하나다.

'아, 꿈이었구나' 하고 꿈에서 깨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눈은 빛깔을, 귀는 소리를, 코는 냄새를, 혀는 맛을, 몸은 감촉을, 뇌는 법을 인지한다.

이런 인식 대상을 육경 즉,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고 한다. 또한 인식 기관을 육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 한다.

다시 눈이 빛깔과 모양을 인식하는 것을 안식이라하고 귀가 소리를 인식하는 것을 이식이라 하며,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작용하는 것이 육식이다.

이렇게 감각 기관을 통해 인식 작용이 일어난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카메라와 녹음기라는 입력장치가 기록해 둔 바를 다시 돌려보는 일과 같다. 관제센터에서 녹화된 영상과 소리를 다시 재생하면 지나갔던 그 상황이 마치 다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수상행식(色受想行識)'은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五蘊)의 개념이다

'반야심경'은 설명한다. 인간 존재는 다섯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 모든 것은 공하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색(色): 물질적인 요소,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

수(受): 감각적 느낌, 감수작용

상(想): 인식, 개념화, 기억

행(行): 의지적 형성 작용, 정신적 활동

식(識): 분별 작용, 의식

.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인식과 저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재생하는 작용에 있어서 그렇다.

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결을 같이 한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이 '물자체'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자체'란 사물 그 자체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대상에 대해 감각과 인식능력에 의해 해석된 것만 알 수 있지, 대상 그 자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으로만 알 수 있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현상'일 뿐이며 우리 감각과 인식 구조에 의해서 재구성된 것일 뿐 사물 자체의 본질은 아닐 수 있다.

고로 그것이 객관적 진리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칸트 철학이 말하는 '인식론적 한계'는 불교의 공 사상과 공통된 철학적 입장을 갖는다.

말이 어려워졌지만, 다시 말해서 우리는 눈 앞에 놓여 있는 사과를 두고도 그 '물자체'에 대한 정확한 본질을 알지 못할 수 있다. 하물며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해석은 더 불분명하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지는 현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지나간 과거와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결국 그런 의미에서 현실의 모든 것도 사실상 '공'하고, 거짓을 인식하여 저장했던 과거의 기억조차, '공'하며, 그것으로 만들어낸 상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공'하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지각과 인식이 왜곡되는 신경사례들이 나온다.

자신의 몸이 비상적으로 크거나 작게 느껴지는 증상들이다. 어떤 환자는 자신의 손이 거대해졌다고 느꼈고, 어떤 사람은 반대로 손이 작아졌다고 느꼈으며, 어떤 사람은 내 손이 내 것이 아니라고 느끼기도 했다. 이런 이상 지각증세는 '뇌 손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다리를 보고 '자신의 다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 거울을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경우 등 체성감각 피질의 이상으로 신체상이 왜곡되어 느껴지는 경우들이 많다.

그들의 지능은 특별하게 우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인식기관과 해석 기관의 능력차이로 그렇게 느낄 뿐이다. 과연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구조적으로 조금씩 그들과 가깝거나 멀뿐인데, 우리가 느끼는 인식과 해석은 과연 정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감각과 인식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인정해야 한다. 신경학적 사례들을 보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절대적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우리의 손 조차 사실은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게 생겼을 수 있고 우리 바라보는 구름도 다른 사람이 보는 바와 다른 색일 수 있다. 고로 이런 허상 위에 생겨난 거의 대부분의 현실, 과거, 미래는 허상에 가깝다. 결국 연기로 만들어진 무언가처럼 잠시 그 형체를 이루다가 사라지는 듯 '공'하다.

고로 모든 것은 일장춘몽과 같다.

얼굴을 붉히는 것도, 어떤 고통, 화, 불안감에 휩쌓이는 것도, 모두 '공'하다는 것을 깨우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악몽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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