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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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가. 소설에 따옴표가 없다. 마음 속으로 한 말과 소리를 내어 한 말, 내가 하는 말과 상대가 하는 말이 전혀 구분되지 않고 모두 일렬 정렬되어 있다. 문장의 말미에나 가서 내가 읽은 문장이 누구의 생각이고, 누구의 말이 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작가의 서술 의도를 명확히 유추할 수는 없으나, 한 문장을 다시 곱씹고 상대의 말인지, 화자의 말인지 되찾는 일을 반복하면서 1인칭 시점의 전개 방식 임에도 상대의 시선으로 들어가 되새김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삶은 타인의 시선을 공감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 1인칭 시점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그들의 생각을 표면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으나 그들을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대중교통을 타면 마치 내 배경에 지나지 않는 타인들의 뒷모습이 무탈하고 무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내 배경에 지나지 않는 작은 인생들임에도 그들 하나 하나에는 우주만한 고통과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지금껏 우리가 누구가를 위로하는 말들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말들이다. 어쩌면 식사 시간에 "잘 먹겠습니다."라는 외침을 해야한다는 어린이식 훈련처럼 단순히 어떤 상황에 의식없이 뱉게 되는 영혼 없는 위로의 훈련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가. 누군가가 나의 고통에 공감해 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완전한 공감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인간으로부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이들은 종교를 빌어 신께 고통을 위탁하고 고통으로부터 완전한 해방감을 맞이한다. 상대의 말과 내 말이 구분되지 않고 마구자비로 서술되어 있는 친절하지 않는 기법은 사실 타인과 나를 동일 시하는 공감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갖게 만든다. 스쳐 지나가는 고양이나 노인에게까지 감정이 이입되어 진짜 화자가 누구인지 애매해한 소설의 전개에 결국 '화자'가 있어도 주인공이 없는 독특한 소설이 완성됐다. 절정의 고통이 죽음이라는 착각을 하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꼬집기라도 하듯, '절정의 고통'이 죽음에 있지 않고. '삶' 속에 있으며 되려, 고통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친구의 부탁을 도와준다는 것이 과연 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인지 생각하게 한다.

음악을 듣다보면 노래 가사에 표면적인 이야기 흐름이 있는 노래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했으며, 어떻게 됐다.'는 식의 전개가 흘러 나오는 가사. 하지만 다른 어떤 노래에서는 이야기는 없지만 생각과 감정이 열거 되는 노래도 있다. 더 따지고 들어가보면 가사가 없이 음의 높낮이만으로 사람의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표현해내는 음악들도 있다. 모두가 같은 소재를 이야기 한다고 하더라도 표현하는 방식은 분명하게 다르다. 다만 해석의 여지를 어디까지 주고 있는지에 따라 음악이 포용 범위가 넓어진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계절을 느끼는 것은 '바발디'의 의도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음악을 듣고 언젠가 떠났던 가족여행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거나, 아이들과 함께 놀던 추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 친절하게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풀어 설명해주는 책이 읽기 편하고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되려 읽기 어렵고 사색할 여지를 주는 책들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좋은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이 책은 아예 가사를 빼어버린 '클래식 음악'처럼 전혀 친절하지 않게 전개한다. 이런 전개 방식으로 각자 소설을 읽는 사람들마다 수천 수만 가지의 다른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가?'

'타인은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가?'

철학적인 질문을 소설 분위기로 꾸준하게 던지며 심오하지만 그래도 납득 가능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 함께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만 누구나 반드시 겪을 최후의 죽음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하다. 언제든 함께 해줄 것 같은 위로 뒤에도 결국은 모두와 떨어져 혼자 오롯하게 경험해야 하는 죽음이라는 시간. 과연 우리는 함께하고 있을까. 우연히 발견한 소설의 제목과 시간이 일치, 다시 화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과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백인의 언쟁. 우리의 삶은 일관적인 듯 하면서 모순적이고, 모순적인 듯 하면서, 일관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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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루이비통 - 제주를 다시 만나다
송일만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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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

'패랭이라도 썽 뎅기주 경 탕 안 아프쿠냐'

(밀짚모자라도 쓰고 다니지 그렇게 타면 안아프니?)

어린 시절 제사나 명절을 지낼 때면 롤케익과 환타,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이 문화가 조금 독특하다는 사실은 내가 군입대를 하고 난 뒤 였다. 내 어린 시절인 제주 제사상에는 환타와 롤케익, 카스테라를 포함해 달달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올라왔다. 이런 문화를 보고 '제주의 조상'들은 '입맛이 신식인가 보구나' 하고 농담하는 분들도 많았다. 왜 그런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현무암 제질의 토양인 제주는 옛부터 쌀농사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고로 '논'이 아닌 '밭'에서 재배되는 '보리'가 주식이었다. 제주에는 쌀이 귀하기 때문에 보리나 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80년 대까지 제주인들의 주식은 보리였으며 당시의 제주농가의 주 소득 작물 또한 보리였다. '제주맥주'는 유명하다. 밋밋한 맛에 '소맥'의 재료 정도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맥주와는 다르게 제주의 맥주는 그런 의미에서 유래와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음료이기도 하다. 쌀이 귀한 제주는 '떡' 보다 '빵'이 구하기 쉬웠다. 제주는 그런 이유로 빵을 만들어 제삿상에 올린 것이 었다. 제주인의 특징은 섬지역의 특성처럼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제주도민이 실용적인 이유는 아마 오랜 기간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 온 탓이 강할 것이다. 제주는 토양이 척박하다. 돌이 많고 물을 대기 쉽지 않다. 이런 제주는 예로부터 정치범들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내륙과 널리 떨어진 지리적 특성과 더불어 바람 많고 변화무쌍한 기후적 특성이 제주인들의 성격을 길들였다. 척박한 땅과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 제주인들은 투박하지만 외지인에 대해 막연한 동경도 있다. 광해군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대학자와 정치적 거물들이 제주로 유배를 왔다. 그들은 제주도민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견문을 넓혀주기도 했다. 유별나다는 서울 강남 못지 않은 교육열로 지금도 제주도는 전국 수학능력평가 시험의 평균점수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주 영어 마을에 위치한 국제학교의 인기가 높은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4.3사건 이후 다수의 제주인들이 일본으로 도피했던 역사도 있다. 제주의 역사에서 일본은 다른 대한민국의 도시와는 다르게 조금 더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다. 다수의 재일교포는 그 출신이 제주인 경우가 많다. 또한 제주인들은 국제 결혼을 통해 일본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이런 독특한 문화와 감정은 산업이 먼저 발달한 일본의 문화를 쉽게 흡수하게 했다. 제주인들은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일본의 문물과 문화를 쉽게 흡수하고 받아 들였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보면 항상 먼저 드는 생각은 '실용적'이라는 단어다. 실용적이라는 말은 '본질'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의미와 같다. 격식과 절차보다 실용적인 것을 따지는 문화는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가령 전국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 제주라는 점과 1인당 자산수준이 전국 최상위라는 것을 보자면 어쩌면 제주인들의 실용적인 문화가 현대의 제주를 만들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학교 선생님 중에 과수원을 하고 있지 않은 선생님은 없으셨다. 은행을 가면 일반 은행원 중에도 과수원이 없는 사람들이 없었다. 농협이나 새마을금고에 예금하시던 부모님을 따라갔던 나는 항상 직원분과 '농약'과 '비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는 부모님을 보곤 했다. 모두가 그렇다고 분명히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제주인들은 주말에는 과수를 돌보고 주중에는 급여 생활을 하며 토지를 소유하는 자본가이자 노동을 하는 노동가의 두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제주의 정낭 문화는 제주 뿐만 아니라 제주를 위로 하는 여러 남태평양 및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다. 돌 기둥에 3개의 나무 기둥을 어떤 모양으로 끼웠는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했다.

그들은 3개의 기둥 한쪽을 모두 내려 놓는 방식으로 손님에게 들어 와도 좋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두개만 끼워 놓음으로써, 잠시 외출한다는 표현을 했으며 모두 끼워 놓음으로 오래 집을 비워 두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현대의 돌과, 바람, 여자가 많은 제주 삼다와 더불어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삼무는 제주인들의 신뢰문화가 얼마나 잘 형성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화산섬인 이유로 돌이 많고 바람이 많은 특성은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여자가 많다는 것도 제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찌 됐는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항상 남자보다 여자아이의 숫자가 많아 학교에서 정한 '남녀 짝궁' 문화에서 짝을 갖지 못한 여자 아이들끼리 짝도 꽤 많았다. 제주의 여자가 많은 이유는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렇다는 이유도 있다. 제주의 여자는 남편이 배를타고 나가면 집안 살림부터 밭농사까지 책임지곤 했다. 그런 문화적 이유는 여성들의 생활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제주에는 '요망지다'라는 말이 있다. 정확히 표준어로 바꿔 부를 말은 없으나, 굳이 바꿔보자면 '똑부러진다' 정도로 바꿀 수 있다. 여성이 생활력이 강한 문화 탓에 제주의 여성들은 '요망지다'라는 표현이 적합해보인다. 다만 남성의 경우는 남자가 귀한 탓에 조금 유순하게 자라는 탓이 있는 듯하다.

책은 내 고향의 바로 옆에 거주하는 '송일만 작가'님의 글이다. 나와 나이차이는 분명하게 있지만,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비슷한 지역에서 추억을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쉽게 들리는 제주도 사투리는 글로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책에서 문자로 접하는 제주도 사투리는 몇 번을 머뭇하고 돌이켜 봐야 겨우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속독도 불가능하다. 책은 제주의 언어가 다수있고 그 번역을 함께 사용해 적혀 있다. 제주도의 말에 호기심이 있고 문화에 호기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제주의 여성, 어머니, 문화를 함께 볼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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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바운드 - 게임의 룰을 바꾸는 사람들의 성장 법칙
조용민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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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300만이 채 안되는 몽골이 세계를 지배한 역사. 몽골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었다. 그들이 갑자기 성장하고 세계를 지배한 것은'본질을 파악하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 내던 민족이다. 11세기 이전까지 몽골은 별볼일 없는 변방의 유목민족에 불과했다. 여진이나 거란에 치이고 부족간의 분열이 워낙 심해 세력을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농사를 짓기 어려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넓은 초원을 유랑할 수 밖에 없었다. 거처가 없어 언제든 외부의 적으로부터 침입을 당하면 도망가야 하기도 했다. 이처럼 언제든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하는 상황은 몽골의 '본질 파악 능력'을 향상 시켰다. 갑작스러운 이동에 그들은 가볍게 가장 중요한 물건 정도만 챙기고 떠나야 했다. 불필요한 것과 필요한 것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빠르게 도망이나 유랑을 해야 했다. 가진 것이 많은 농경민족에 비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은 그들의 문화와 본능 속에 들어갔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동 수단인 '말'과 언제든 장거리를 이동하며 먹고 잘 수 있는 생필품들이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 중 지구에 이상 기온이 일어났다.

11세기가 되어가며 지구의 평균기온이 내려간 것이다. 이로인해 몽골인들이 유랑하던 초원이 더 넓어지는 효과가 났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이 기르던 '말'이 어딜가도 뜯어먹을 풀이 많아지는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말이 뜯어먹을 풀이 더 넓게 자라고 있다는 것은 몰골인들이 말을 끌고 더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음을 뜻했다. 그들의 말은 우유를 제공하고 기동력을 제공하고, 노쇠하고 병든 말은 식사 거리가 되었으며 전쟁에서 유용한 병력이 되기도 했다. 전쟁의 역사에서 '몇 만 대군'이라는 말이 흔히 나온다. 이 출정군사의 숫자는 통상 '보급병'과 '취사병'을 포함한 모든 군인의 숫자를 말한다. 가령 보급을 책임지던 보급로를 끊는 일만으로도 고대 전쟁은 생각보다 쉽게 전세가 역전되곤 했다. 쉽게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보급로를 차단했던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고대 전쟁에서는 전투병의 능력과 수보다 '보급'이 훨씬 승패를 갈른다. 심지어 제대로 전투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특수병들은 스스로의 목숨도 책임지지 못하는 상태로 전쟁에 물자 공급을 위해 내던져 지기도 했다.

몽골의 군대는 달랐다. 몽골의 군대는 출정하는 모든 군인이 전투병이자 보급병이고 취사병이기도 했다. 그들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다양한 작전 수행을 할 수 있었다. 전투병은 전투에 특화되고 보급병은 보급능력에 특화되고 취사병은 취사 능력에 특화된 분업화는 오랫동안 농경민족의 능력 평가 기준이기도 했다. 글을 쓰고 읽는 사람은 글을 쓰고 읽는 일만 할 뿐, 요리도 전쟁도 취약해도 됐고,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요리만 잘하면 됐지, 전쟁의 능력은 하등 필요가 없었다. 이런 분업은 기동성을 약화시킨다. 빠르게 빈틈을 찾아 이동하고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선 다재다능한 기마병이 특수했다. 오랜기간 분업이 잘된 국가가 문명국가로서 번영을 누리던 시기, 몽골의 탄생은 혁신적이었다. 1206년 테무친이 44세의 나이로 대칸에 올라섰다. 적지 않은 나이에 몽골초원을 통일하였고 여기서부터 대몽골국의 역사적 확장이 시작된다. 몽골 초원을 통일한 징기스칸은 기마군단을 이끌고 외부로 진격해나간다. 노예나 귀족도 없고 농토도 없는 기마민족은 다재다능한 능력을 펼치며 농경민족을 지배해 갔다.

그들은 쉽게 말하면 약탈자였다. 본국에서 보급받고 전투를 하던 기존 전쟁양상의 흐름을 깨고 그들은 재빠르게 다른 지역을 점령하고 약탈하여 전쟁물자를 확보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고구려' 또한 약탈에 능한 민족으로 중국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우리 현대 사회에서 약탈이란 좋은 이미지일 수 없다. 하지만 야생에서 약탈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현명한 방법이다. 타인의 노력과 시간을 훔쳐 재빠르게 성장하는 굉장히 현명한 자세이기도 하다. 이런 야만적인 행동이 지금은 지탄받아야 할 비도덕적 행동으로 규범되어 있지만 실제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시간과 노력을 자본가가 약탈해가는 과정과 다름없다. 자본가는 가만히 앉아서 노동자들이 생산해 내는 결과물에 일정 보상을 주고 나머지를 착취해간다. 자본가는 다수의 노동가들의 시간을 착취하는 샘이다. 보급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은 기동성을 확장시키고 효율을 늘리게 해준다. 에어비엠비가 숙박을 하지 않음에도 최고의 숙박업체가 되고 우버가 자체 없이 최고의 운송업체가 된 것이 비슷한 이유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구글 또한 제대로 된 제조공장 없이 최고의 수익을 얻는 일종의 디지털 유목기업들이다.

농경민족에게는 '효율', '실리'보다는 '명분'과 '명예'가 우선시 된다. 전쟁에 승리한 장수는 명예와 신분 상승의 기회가 있었다. 가문에 대한 대우와 처분도 달라졌다. 고여있는 사회문화는 유럽의 방어구를 화려하고 위엄있게 만들었지만 전쟁에서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저 말 한 필에 칼과 활 한 자루씩 가볍게 갖고 있던 몽골민족에게 명예와 후속 조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신분을 나타내는 위엄도 필요없었다. '나의 명함에 어떤 이름이 박혀 있는가'와 그보다 중요한 '어떻게 효율적인 생산방식으로 성장해 가는가'는 현대 시대에 더 중요해졌다. 1000년 가까이 흘러간 이 역사의 배경이 다시금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가 싶다. 당시 사회에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룰이 한 순간에 무너진데는 징기스칸 한 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20세가 초 마차가 자동차로 변화가는데 처음 반까지는 십 수년이 걸렸지만 나머지 반이 모두 자동차로 바뀌는데는 수 년도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변화하는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일까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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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의 비밀 - 왜 나는 운이 없을까?
민광욱 지음 / 베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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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침팬지를 바나나와 과자를 이용하여 천재 침팬지로 훈련한 실험이 있었다. 1973년 뉴욕 코롬비아 대학의 심리학과 허버트 테라스 교수의 실험이다. 그는 평범한 침팬지를 수학문제를 풀고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천재 침팬지로 길러냈다. 이 실험은 '프로젝트 님'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평범한 침팬지를 천재 침팬치로 길러내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나나와 과자가 이용됐다. 밀폐된 공간에 굶주린 침팬지를 가둬 놓고 바닥에 선을 그려넣는다. 침팬지가 바닥에 그려진 선을 넘어갈 때마다 조그만 구멍을 통해 과자와 바나나가 지급돼었다. 침팬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을 넘을 때, 먹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이 훈련이 익숙해 질 쯤, 과학자들은 실험장을 바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밀폐된 공간이었고 선 대신에 커다란 버튼이 설치 되었다. 굶주린 침팬치는 변화된 환경에 당황하였으나 얼마지 나지 않아 우연하게 누른 버튼이 먹이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침팬지는 배가 고플 때마다 버튼을 눌러 바나나와 과자를 공급받았다. 이런 비슷한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며 과학자들은 학습 난이도를 올렸다. 이 침팬지는 간단한 미국식 수화를 통해 인간과 소통하고 간단한 수학문제를 풀 수 있는 천재 침팬지가 돼었다.

이 침팬지는 천재로 태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학습되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은 우리를 학습시킨다. 우리는 모든 순간 환경과 상황에서 선택을 하고 학습된다. 상황과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이상 과거보다 특별한 존재로 길러지지 않는다. 이처럼 과거와 달라지는 상황과 환경이 변화를 '운'이라고 부른다. 운이란 행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운이란 우리리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와 환경, 상황이 변하는 흐름을 이야기한다. 한자에서 운(運)에는 수레가 들어가 있다. 이 뜻은 움직인다는 것을 말한다. 운이랑 변화와 움직임을 이야기한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운의 영어표현은 Fortune이다. 이 말의 어원은 Fort에 있다. Fort는 Force(힘)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을 '운(Fortune)'이라고 부른다. 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겨울과 여름의 기온 차이는 분명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로 인한 현상은 분명 다르게 일어난다. 물이 얼거나 펄펄 끊는 온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여름에서 겨울로의 이동 또한 가시적인 부분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한다.

예전 중국의 한 국경 지방에 노인이 살았다. 이 노인은 말 한 필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르던 말 한 필이 도망을 가버린 것이다. 이를 보고 낙담하고 있는 노인을 보며 '운이 좋으시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일을 사람들은 불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날 도망간 말 한 필이 암말을 끌고 함께 돌아온 것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말이 도망을 간 것은 불운일까 행운일까. 행운과 불운은 주관적인 영역에 있다. 이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알려주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만사 새옹지마'의 어원을 살펴보자면 우리 인생은 불운과 행운이 번갈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불운도 행운도 아니다. 새옹지마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보자면 이 말을 타고 놀던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불운을 겪고 이 부러진 다리 때문에 군대 징집을 당하지 않아 목숨을 건사할 수 있었다. 부러진 다리와 군대 징집을 피한 이야기는 과연 행운일까. 불운일까.

운이랑 좋고 나쁨이 있다기보다,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좋은 운을 바라지만 실제로 좋은 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상황에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어떤 대처를 했는지가 그 '운'의 성격을 '좋고', '나쁨'으로 규정하게 한다. 만약 나에게 승진운이 들어왔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것은 나에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이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승진을 바라는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좋은 운에 속해져 있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와 하등 상관없는 운이다. 우리가 운이라는 동양철학의 모호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비과학의 영역'이라 치부하고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과학의 영역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인정하고 있다. 거시물리학에서 보자면 세상은 암흑에너지 73%로 구성되어 있고 암흑 물질은 23%다. 우리가 관측 가능한 물질은 4%에 불과하다. 과연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눈에 보이는 진실'은 얼마나 진리에 속하는가. 반대로 미시물리학에서 보자면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핵과 전자는 서로 엄청나게 떨어져 있다. 만약 원자를 축구 운동장이라고 가정하면 원자핵의 크기는 모래알 정도의 크기가 되고 전자는 그보다 훨씬 작은 먼지와 같은 크기로 운동장을 돌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의 상식처럼 우리가 보고 만지는 물질 또한 실제로는 빈공간 투성이다.

운이란 무엇인가. 운은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흐름이고 기회이다. 이 것은 나의 환경과 나의 상관관계에 의해 정의되며 어떤 상황에 따라 행운이 되고 어떤 경우에 따라 불운이 되기도 한다. 오늘 찾아온 당신의 운은 행운인가? 불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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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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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에는 860억개의 세포가 존재한다. 또한 각 세포마다 100조개 씩의 원자가 들어 있다고 한다. 원자는 물자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를 말함으로, 결국 우리의 뇌에는 860억 X 100조 개의 기본 입자가 존재한다. 우리의 뇌 속에 있는 이 기본 단위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부여 받은 본능들을 처리한다. 이 수 많은 기본 입자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협업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차원적인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 생물은 작업을 합리적이고 효율으로 처리하기 위해 진화되어 왔다. 특히 가장 고차원적인 작업을 요하는 기관인 '뇌'에서는 다른 하드웨어 기관과는 다른 차원의 업무량을 필요로 한다.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고 해석하고 출력하는 과정에서는 '삭제'와 '왜곡'이 필수적이다. 4k 고화질 영상은 시력 0.5인 사람에게 불필요하다. 모든 영상이 필요에 따라 화질을 줄여 저장할 필요가 있다. 뇌는 이런 효율화, 최적화를 위해 기억과 사고를 삭제하고 왜곡한다. 이런 와중에 일어나는 현상은 '일반화 본능'이다. 인간은 규칙과 불규칙이 산재되어 있는 현상과 물질에 대해 끊임없는 범주화와 일반화를 진행한다.

자연스럽게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풀을 뜯고 아무렇게 놓여 있는 돌들을 주워다 오와 열을 맞춰 정리해 놓는다. 이런 정리본능은 우리의 뇌의 작용에 기인한 것으로 비슷한 것들은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도 같은 범주로 묶어 정리한다. 여러 사람이 있을 때, 가장 본능적으로 나눌 수 있는 건 '성별'이다. 나와 비슷한 성과 다른 성은 명확하게 구분이 가능하다. 또한 다양한 국적의 사람을 만났을 때는 인종에 의해 나눈다. 중국인인지, 프랑스인인지. 또한 같은 인종이라면 언어로 나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지, 사용하지 못하는지. 일반화는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일반화는 분명 효율적일 처리를 돕고 외부의 적으로 보호받는데 탁월한 본능이다. 인간은 수 만년 동안, 외부의 총, 균, 쇠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입고 살았다. 내부 결속의 중요성과 외부인에 대한 철저한 경계심은 우리의 DNA 속에 각인되어 있다. 여러가지 사회 문화, 생물학적인 특성들은 우리에게 '혐오'의 감정을 만들어 냈다. 16세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은 스페인군이 갖고온 천연두 등의 새로운 병균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방문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노예를 착출하여 거래하였다. 산업화 시기에는 외부에서 현지의 자원과 자본을 노리는 이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난민혐오', '무슬림혐오', '남성혐오', '여성혐오'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혐오는 외부에 대한 철저한 경계를 통해 내부결속을 다지는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지탄받는 이런 비문명적인 감정은 실제로 근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일지도 모르는 감정이기도 했다. 이런 혐오의 감정은 그렇다면 언제 극도에 치닫는가. 인간은 불안해지면 그를 해결하기 위한 생존본능이 극도로 발휘된다. 혐오의 감정은 생존 본능과 같이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에서 치솟는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시즈오카, 야마나시 지방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이 사고는 40만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을 발생시켰다.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졌고, 45만의 가구는 불에 탔다. 이 사건은 사회를 공포로 몰아세웠다. 인간이 갖는 공포와 불안의 감정은 집단이 되었을 때, 비이성적인 역사를 만들어 내곤 했다. 언젠가 나와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다수의 일본인들은 공포와 불안의 감정이 극도로 치솟았다. 이런 시기에는 외부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치솟기 마련이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에 쉽게 선동되었다.

일본은 '절대악', 조선전 '절대선'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벗어나, 자신의 가족과 사회를 지키기 위한 인간들의 혐오 본능이 비성적으로 작동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무지한 일본인들은 이 감정에 휩싸였다.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이성일 잃은 일본인들은 조선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노골적으로 키워나갔다. 그들은 자경단을 조지하고 관헌들과 같이 조선인들을 무조건 체포하거나 구타, 학살 하였다. 한반도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몇몇 일본어를 발음하도록 하고 이에 어눌한 발음을 할 경우 가차없이 학살, 구타, 체포하였다. 이 사건에 2~6천명에 가까운 조선인이 학살되었다. 사회가 불안하고 공포의 분위기가 있을 때 혐오의 감정은 극도에 치민다. 1948년에는 일본이 나가고 난데없이 미군이 들어왔다. 미군은 치안을 목적으로 군정경찰을 배치했다. 민생은 피폐해졌고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다.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이념 갈등까지 더해지며 사회는 더욱 불안과 공포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사건은 제주4.3사건으로 불려지며 사망자 숫자로는 한국전쟁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단일 사건에서 가장 많이 희생자가 나온 사건이 됐다. 수 만의 제주도민이 학살당한 이 사건은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자 수의 수 배의 가까운 사상자가 났다.

우리는 일본의 극악무도한 만행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4.3사건'에 대한 인지는 부족하다.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치솟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이 극에 달했고 또 언젠가는 미군에 대한 혹은 조선족에 대한, 난민에 대한 혐오 의식이 커져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용덕 작가 님의 들어가는 말과 같이 이 책은 '일본인과 혐오'를 연결 짓고자 한 책이라고 볼 수 없다. 불안한 사회에 혐오라는 감정이 만들어낸 비이성적이고 괴기한 사건과 현상에 대한 책이다. 국가에 따른 DNA와 악의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인의 DNA에 있는 침략의 본능이 숨어져 있다거나 극악무도한 '악의 축'이라는 생각이 사회에 만연해가고 있지만, 실제 이런 감정마져 '혐오'의 감정이다. 수 백 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독일민족이지만 현재 독일은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 중 하나다. 민족과 국가에 따른 DNA가 그 국민성을 나태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불안간 시선과 공포에 쌓인 무지하고 나약한 인간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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