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을 키우는 책육아의 힘 - 리터러시 교육 전문가가 말하는 독서교육 첫걸음
권이은 지음 / 유아이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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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전문가의 자녀들은 책을 좋아할까'

'권이은 작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고, 정작 독서전문가들은 조언을 하듯 '자기 자식'에게는 못해주는 경우가 분명 있다. 솔직한 작가의 이야기는 꽤 현실적이다.

어떤 이들은 '책육아'라는 말부터가 잘못됐다고 꼬집기도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부모가 의도를 가지는 순간, 주도성은 부모가 갖고 있다는 의미다. 자식의 흥미를 유도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통제 의식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의 취미 역시 부모와 다르고 살면서 본인이 필요하다고 깨닫는 시기에 그것에 흥미가 생기는 법이다.

다만 그것이 꼭 맞는 말은 아니다. 아이에게 '책'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분명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는 있다. 또한 스마트기기와 TV처럼 영상노출이 많은 환경보다는 도서관 같은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랄 때 아이들이 더 책을 가까이 하기도 한다. 우리가 욕심을 갖고 아이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만 책이 또 '모든 것의 열쇠'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책을 좋아하면서 학업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고, 책을 잘 읽지 않지만 학업성적이 우수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육아'가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는 책이 단순한 지식의 도구가 아니라 '소통의 수단'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와 같이 알고리즘이 세대를 가로막는 필터버블 시대에 우리는 점차 세대 간의 소통이 힘들어진다. 아이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데이터와 부모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데이터 간의 상호작용이 철저하게 막혀 있기 때문에 아이의 유튜브에서는 '게임유튜버'가 부모의 채널에서는 '교육채널'이 추천 영상으로 뜬다.

'책'은 어떤가. 책은 꽤 직관적으로 제목을 확인할 수 있고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처럼 TV앞에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우 조차 사라진 요즘. 더욱이나 가정내의 책문화는 중요해졌다.

교육계에 이런 말이 있다.

'집을 팔아도 국어는 안된다'

다른 과목과 다르게 '국어'는 '생활환경'부터 개선이 필요하다. 책은 보통 5시간에서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일이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하나의 주제로 꾸준하게 돌아가며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몰입이 보통 사람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가령 생명과학에 관련된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은 영상을 다 보고 난 뒤,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관련된 '책'을 보는 사람들은 그 관련 주제에 대해 3일이고 일주일이고, 길게는 몇주동안 그러한 방식으로 삶을 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책'에 대한 관심은 실제로 골든 타임이 존재한다. 이 골든타임 안에 '책문화'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책에 크게 흥미를 갖기 힘들고, 학창시절에는 '국어 점수'가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슬프게도 학창시절은 8세부터 19세까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고, '읽기'라는 훈련은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과학, 사회, 역사' 등 당양한 과목에도 필요하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부모가 하루 10분이상 책을 읽어주는 가정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만 5세 기준 언어 이해력 점수가 2배 이상 높았다. 특히 이 효과는 아이가 유아기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단순히 지능을 높인다는 차원이 아니라, 타인의 말을 더 오래 듣고, 감정을 따라가고, 그 안에서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일찍부터 길러진다는 의미다. 이는 '학습'이 아니라, '관계'나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필요하다.

어릴 때의 작은 격차는 말그대로 작은 격차일 수 있다. 다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릴 때의 격차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성장은 '복리'와 닮았는데, 복리는 누적시간이 늘어날수록 초기 투입량에 대한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령 한달 1%의 성장이라는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투입값이 1일때와 9일 때의 차이는 단순히 8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이 기간이 10년만 되어도 그 격차는 무려 26배에 달한다.

이는 처음에는 조금 글을 많이 읽는 수준, 일기를 조금 더 재미있게 쓰는 수준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줄거리조차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이와 글이 가진 구조와 함의를 분석하는 이의 수준으로 벌어진다. 처음에는 사소한 차이였겠지만 그 차이는 매달 복리로 증가하고 결국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처럼 된다.

책은 그 자체로 기적은 아니다. 다만 남들과 다른 속도로 다른 각도로 문제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기르는 아주 원시적이고 정도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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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 개정판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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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단순하다. 쇼타라는 중학생 남자아이가 가족과 함께 시골 산중턱의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흔한 설정이다. 도심에서 아버지의 건강 때문에 조용한 곳으로 이주하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문제는 집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 처음부터 어딘가 이상하다. 그냥 '기분 탓'이 아니라 독자가 그 음습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기운이 어딘가 찜찜한 기분. 공기는 무겁고 문장은 의심 덩어리다.

책은 무슨 일이 벌어질 듯, 벌어질 듯하며 묘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장면이 바뀌어도 의심과 불안이 계속되고 정확하게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다. 마치 불꺼진 흉가의 방문 하나를 조심스럽게 열고 그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하다. 확실한 건 없다. 자면이 바뀌어도 의심은 남는다. 불안도 같이 따라다닌다. 뭔가 설명해 줄 것 만 같다가도 말 끝을 흐린다. 말하지 않는다. 보여줄 듯 하면서 숨긴다. 안에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은 자꾸 닫힌 문의 손잡이로 간다. 문을 열어야만 끝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실제로 문을 열면 아무것도 없다. 없는데, 무언가 있는 느낌.

그런 불길한 느낌이 지속된다.

이 소설은 사건으로 기억나질 않는다. 그저 장면과 분위기가 각인된다. 쇼타가 집 안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말 없는 불쾌함, 누군가 말했는지 알 수 없는 대사, 시선이 멈춰 있는 듯한 정적.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물건들이 이상하다. 소품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것들. 벽에 걸린 액자, 부엌 쪽에 난 작은 창문, 창문 너머 나무의 그림자,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하게 등장하고 분위기만 조성한다.

신조는 뭔가 중요한 게 있는 것 처럼 반복해서 보여준다.

읽다보면 시선이 비껴가고, 문장이 뒤틀려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건의 흐름이 잡히지 않는다. 누구의 시점인지도 아리송하다. 중니공이 보고 있는 건지, 내가 봤던 기억을 착각하는 것인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 뭐 그렇다.

귀신이나,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 만들어 내는 공포다.

주인공은 '우리집'이 아닌 '이집'이라고 집을 부른다. 단순한 어휘 선택이지만 감정에 공간이 생긴다는 점에서 분명 의도한 설정이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점은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느낌은 분명하고 그것이 무언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가족'이 존재하지면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공포'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 소설은 작가에 의하면 '집'에 관한 이야기다. '살아 있는 집'에 들어간 사람들의 감정이 점점 왜곡되는 기록이다.

소설은 영화 '식스센스'와 닮았다. 무섭다기 보다 끝난 뒤에 여운이 있다. 다시 보면 처음부터 모든 게 어긋나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 '식스센스'에서도 무서운건 귀신이 아니었다. 무서운 것은 죽은 자의 감정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흉가'도 마찬가지다. 너무 오래 그 집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 그 감정은 '쇼타'에게 혹은 독자들에게 전염된다.

그래서 '흉가'를 읽고 나면, 이상하게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불편하다는 감정이 더 오래 남는다. 그건 집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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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허락했는데, 어느새 게임 중독 - 게임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까지 3년의 사투
김평범 지음 / 길벗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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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를 키우다보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 어떤 질문을 받을 때 그렇다. 질문을 받는 일이 왜 고통스러운가. 상대가 쌍둥이라면 그럴 수 있다. 쌍둥이들의 질문 타이밍은 항상 동시에 발생한다.

1호: 아빠, 이게 뭐에요?

아빠: 아, 이거? 이게 뭐냐면..."

2호: 아빠, 이거 해도 돼요?

아빠: 어떤 거?

1호: 아빠,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아빠: 아!, 그래... 이게 뭐냐면~

2호: 나 그냥 이거 한다?"

아빠: 안돼! 기다려~ 아빠, 지금 1호랑 이야기 중이잖아.

2호: 왜 내 얘기는 안들어줘요!

1호는 자기 먼저 물어봤다며 2호에게 소리친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둘이 싸우고 있다. 그러다 결국 결론은 '아빠는 내 얘기만 안들어줘!'하는 식으로 끝이 난다.

오랫만에 '우동'을 먹을까, 하면 다른 한 명은 꼭! 짜장면을 먹어야 겠다는 결정을 한다. 마치 일부러 다른 선택을 하고 '아빠'의 선택을 지켜보겠다는 심리인지, 꼭 반대의 선택을 하다가 둘이 싸우면 결국 '그냥 아빠가 먹고 싶은 걸로 먹어!'로 끝난다.

'귀'에 이명이 들리기 시작하면 한참 싸우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다는 듯, 둘이서 신나게 놀고 있다. 그제서야 귀마개를 하고 넋을 놓고 멍을 잠시 때리고 있으면 아이가 와서 묻는다.

"아빠, 표정이 왜그래?"

대체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그러니 당연히 '아름답게 시작한 그 어떤 계획'도 지나치게 현실적인 방식으로 끝나게 되고 넋을 놓은 아이와 혼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진한 얼굴을 하는 아이 둘만 덩그라니 남는다.

대략 5살, 6살에는 아이의 입을 막기 위해 급하게 스마트폰을 들이 밀었다. 식당과 같은 공공 장소에서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다만 대략 2년전부터 '스마트 기기'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시작하면서 아이의 입을 다물게 할 수단을 잃고 지금은 넋을 잃은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의 스마트 기기는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에게 '지렁이 게임'을 알려 주었다. 한 번은 아이가 이 게임을 너무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났다. 아이가 학교에 갔고, 스마트 기기에 설치된 '지렁이 게임'을 들어갔다. 조금 하면서 꾸물꾸물거리는 지렁이가 구슬을 먹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아이의 순수성이 느껴지며 귀엽게 느껴졌다. 그 뒤로 몇번을 더 하도록 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에는 나름 친구들 사이에 '유행'을 이야기하며 '마인크래프트'를 배우고 왔다.

그렇게 마인크래프트는 30분씩 두 번, 한 시간을 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이 마인크래프트를 너무 재밌게 하기에, 관련된 줄밥이 제법 있는 책도 사주고 어제는 영화 '마인크래프트'도 봤다. 그러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어쩔 수 없이 시작했는데, 어느새 게임 중독'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제목부터 너무 끌리는 이 책을 집어들고 단숨에 읽었다. 너무 현실적인 작가의 이야기에 마치 아직 오지 않는 나의 미래를 후회하게 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혹시 우리 애들도 이 상황의 초입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우리집 아이들은 나름 '자기절제력'은 있는 편인 것 같다. 그래도 어느순간 그러한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이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알아서 잘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통제가 필요한 경우가 있단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에는 아직 위험한 단계는 아닌 것 같지만, 어쩐지 글에서 나타나는 묘사가 너무나 현실적이라 도무지 '방임'으로 가서는 안될 것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연구에 따르면 게임에 빠져드는 아이들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 게임 간의 심리적 거리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도전할 과제가 있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고 한다. 결국 아이를 게임에서 떼어놓으려면 단순히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게 말이라 쉽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부모는 항상 피곤하고 에너지가 별로 없다. 아이가 무언가를 같이 하자고 할 때, 적극적으로 하기 힘들다.

부모의 생각과는 다르게 '게임 중독'은 시작이 아니라 어떤 결핍의 끝자락 일지 모른다. 아이가 현실에서 연결되어 있고 뭔가 자신이 성취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아이는 저절로 현실의 '성취'에 만족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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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100일 필사 노트
김종원 지음 / 청림Life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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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완 작가의 '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100일 필사노트'에는 이러한 글이 적혀 있다.

"그 누구보다 위해야 할 사람"

나는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며,

어떤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나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찾는 사람이며,

내 안에 녹아있는 좋은 것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울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나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 인생은 점점 나아지고 있고,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위할 것이다.

- 김종완 작가

'왜 우리는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논어 '위정편'에 따르면 서른이 되면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립'을 말한다. '성인'이라는 말은 민법상 19세부터를 이르지만 법보다 민법보다 먼저 사회를 이루면서 우리는 인간으로써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자연발생적인 '성인'의 의미를 알고 있다. 대체로 그 의미라는 것은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자립'부터라고 본다.

'어르고 달래다'라는 말을 분해해 보자면 '어르다'와 '달래다'라는 두 동사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어르다'는 심리적으로 솟구쳐진 가정을 아래로 가라 앚히는 일을 말한다. '달래다'는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태를 만족시킨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서 '어르고 달래다'라는 표현은 감정을 가라 앉히고 만족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달다'라고 하는 미각도 '달래다'와 그 어원을 같이 한다. 그럼 '어르다'라는 어원은 무엇과 어원이 같을까. '어른'과 같다. '어른'은 감정적,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말한다. 즉 스스로도 차분해지고 상대도 어를 수 있는 상태를 '어른'이라고 부른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변의 잔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내 잔이 가득 넘쳐 흘러야 한다. 결국 어른이란 주변을 어르기 위해 스스로도 매우 완성된 상태를 의미한다. 스스로의 잔이 채워지지 않으면 누구의 잔도 채울 수 없다. 행동과 감정에 있어서 안정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최소한의 나이가 필요하다.

다만 이는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나이'와는 무관하다. '대체로 그렇다는 것'과 '무조건 그렇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고로 어른의 품격이라는 것은 안정감에서 발생한다. 아이가 아무리 울고 보채도 거기에 동화되지 않고 넓은 의미에서 그것을 아우르고 받아 줄 수 있는 마음상태가 되어야 한다. 고로 어른이란 시간을 채워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단련과 훈련을 통해 달성되는 상태를 말한다.

완성된 스냅샷을 찍기 위해 수천 번의 시도를 본 적 있을 것이다. 흔히 유튜브에서 많이 사용되는 촬영기법으로 엄청나게 많은 시도 중에 성공한 몇가지 영상만 짜모아서 너무나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편집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안 그렇겠는가.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는 수많은 NG장면을 걷어내고 수 십번의 촬영 끝에 얻어진 최종 결과물 하나만 밖으로 드러낸다. 녹음실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의 대부분도 그렇게 만들어진다.

고로 보여지는 것이 모든 것이라고 여기게 되면 남들은 너무 쉽게 '완벽'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어디 그러한가.

우리의 삶은 수많은 실패 위에 하나의 영광을 얻어내지만 대체로 실패가 많아질수록 그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른이란 수많은 실패와 좌절로 내부적를 겪고 잘 다듬어 표면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완전성이 풍겨지는 것이다. 그것이 품격이다. 각자 자신을 다듬는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독서'와 '필사'는 꽤 의미 있는 훈련 중 하나다.

실제로 글을 필사하는 행위는 뇌과학적으로 깊은 내면화를 돕는다. 하버드대의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손으로 글을 쓸 때, 우리의 뇌는 단순한 읽기보다 더 많은 ㅅ니경망을 활성화시킨다. 특히 감정과 기억을 다루는 전두엽과 해마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단어 하나하나가 감정적 기억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문장의 의미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결국 진짜 어른에서 풍겨져 나오는 품격은 마음이 확고하여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이립'에서 시작한다. 그 시작은 스스로 읽고 쓰고 다듬는 과정에서 더 정교해지지 않을까 싶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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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수익률을 높여라 - 성공적인 자녀교육과 자기계발을 위한 교육투자 가이드
박경인.권준모 지음 / 크리에이티브탱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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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투자와 같이 해야 한다.

'주식 투자'라는 말이 세속적으로 들릴 수 있지겠만 우리네 '교육'도 주식투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저평가 우량주를 선택하고 자신의 철학대로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문이나 기타 정보에 흔들리지 않으며 진득하니 시간과 자본, 정성을 투여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박영옥 대표'를 가장 좋아한다. 흔히 '주식농부'라고 불려지는 인물인데, 단순히 '주식' 분야가 아니라도 배울 부분이 충분히 있다. 그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키워드는 '농부'라는 키워드다. 농부는 단기 수확을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보면 가장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여유다. 마치 씨를 뿌리고 농산물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기다림이 필수적이다.

감정적으로, 분위상 휩쓸려서, 혹은 불안으로 따라가는 일은 주식이나 교육에서나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이 두 분야 모두에 감정이 아니라 '전략'이 필요하고 '희망'보다는 '분석'이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3,000명이 넘는 학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시간 대비 성과나 비용 대비 효과, 정서적인 안정감, 자기주도적 학습 가능성까지 포함하여 ROI, 즉 교육 투자 수익률 개념을 도입했다. 투자대비 적정한 교육 수익을 우리는 만들어 내고 있는가.

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첫째, 사교육비 대비 성과가 크지 않다.

둘째, 과목 선택과 시기, 방법에 따라 수익률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셋째, 자기주도 학습과 독서습관이 고비용 사교육보다 장기 수익률이 더 높다.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린치'는 '사명이 지루한 회사의 주식을 사모으라'고 말한 바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서 당췌 뭐하는 회사인지 알 수 없는 회사를 피하라는 의미다. 이 말은 '성명학'에 기초를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다. 본질과 정체성이 명확한 회사에 투자하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공부의 본질은 '자기주도'고 학습의 기본은 '문자'이다. 즉 책을 읽는 일을 피하면서 학습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기술, 휘향찬란한 학습법 따위는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마케팅 술수일 가능성이 높다.

업종의 기술과 상품이 아니라, 빈껍데기 주식이나 비싼 가격에 되팔려는 '마케팅'처럼 우리 교육에도 거품 가득한 마케팅 술수가 있다.

2021년 부터 2023년 서울과 분당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룹을 둘로 나눠 월 사교육비가 150만원 이상인 그룹과 30만원 이하의 그룹을 비교한 것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에는 매일 30분씩 독서를 하는 그룹이었다. 그 결과 1년 뒤에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에서의 차이는 전혀 없었고 되려 30만원의 사교육과 독서를 하는 그룹의 스트레스 지수와 자존감 지수가 고가의 사교육을 하는 그룹에 비해 긍정적이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교육의 별의미가 없냐,하면 그렇진 않다. 사교육 쪽의 성과는 없는 쪽에 비해 우세한 편이다. 다만 중요한 바는 '투자대비' '효용'이다. 오르긴 오르되, 투자대비 오른 값이 의미있는 차이가 아니라는 의미다. 또한 눈에 띄는 결과는 '독서'다. 나이가 어릴수록 국영수보다 독서와 신체활동의 영향이 더 컸다. 독서량 상위 10%와 하위 10%의 국어, 수학 점수는 중학교 1학년 기준으로 평균 180%나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이 차이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줄어들지 않았다. 되려 더 벌어지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학업 능력 격차는 초등 고학년부터 시작한다. 이는 학습 습관에 의해 좌우된다. 다시 말해서, 학습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투자한 시간이 주요하며, 이는 사교육으로 인한 시간이나 스스로 학습 시간을 가져 얻게 되는 시간이나 매한가지라는 의미다.

과목별로도 접근 전략이 다르다. 수학의 경우에는 '선행학습'이 성과에 영향을 주는 편이다. 영어는 '누적 노출 빈도'가 더 중요하다. 누적 빈도와 노출 시간은 짧은 시간에 집중될수록 성과가 있었다.

대개 이런 류의 책을 보면, 듣기 좋은 이야기가 많은 편인데, 이 책의 경우에는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여러 측면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윌라오디오북'을 통해 들어서 독서 간 메모를 하지 못하여 다양한 예시를 들지는 못하지만 분명 재독이 필요한 책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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