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료함 - 1% 리더들만의 사람을 이끄는 기술
탁민 오 지음 / 탁희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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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거실에는 커다란 가훈이 걸려 있었는데 흘림체 한자로 쓰여 있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어린 시절 아버지께, 그 한자 의미를 여쭤 봤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의미는 분명하게 좋았지만 가끔씩 우리집 가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 역시 '가훈'에 대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셨는지, '가화만사성'에 대한 이후의 언급도 없으셨다.

호기심에 적혀 있던 '한자의 의미'를 여쭤봤던 그 한번의 기억이 거의 유일한 기억이다.

물론 좋은 말이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그러나 좋은 말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철학으로 뿌리 깊게 박혀 생각과 행동이 모두 하나의 방향성을 갖는 것은 다르다. 우리집은 실제로 화목한 집이었으나 그 뿌리가 명확하게 '가훈'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느낌은 받은 바 없다.

'오탁민' 작가의 '명료함'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치열한 사고의 과정 없이 아웃소싱 한 기준은 리더 스스로도 지킬 수 없다."

스스로 창업한 회사의 미션과 핵심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회사 직원들이 '사훈'에 대한 이해도가 크지 않았다는 자각을 한다. 이미 퇴사를 한, 자신이 해고한 직원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돌이켜보며 잘못된 점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해도에 대해서는 '직원' 뿐만 아니라 '리더'인 스스로 조차 명료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대충', '유도리 있게', '척하면 척'이 통하던, 서구를 따라가던 과거 산업화 시대에 상당한 무기로 사용되던 '직관'과 '직감'이 이제는 '모호함', '무질서함', 기준없음'이라는 결과가 됐다.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조직은 그 규모가 커질수록 반드시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무질서하게 된다. 어떤 조직이던 규모가 커지면 무질서도는 증가하게 되어 있다. 기준은 규모에 맞게 반드시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들면서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리더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스스로 한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기준을 제시해주던 아무개'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정에서는 '부모님', 학교에서는 '선생님', 회사에서는 '직장 상사'의 지시을 받아 나름 보이지 않는 기준에 맞게 생활해 나간다. 그러다 어디서부터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지점을 지나고나면 '기준을 제시해주던 아무개'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시점에 일시적인 방황을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면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나에게는 기준을 제시해 줄 만한 사람이 없구나'

방향을 제시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쉬운 방황'을 의미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기준을 제시해야 할 위치에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영국 국왕'에게는 '여권'이 없다. 운전면허증도 없다. 그러나 어느 국가를 갈 수 있고 아무때나 운전을 해도 된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운전면허가 없었지만 평생 운전을 즐겼고 90대가 넘어서도 직접 차를 몰고 사유지를 돌아다니곤 했다.


왜 그런가.

이유는 단순하다.

여권이나 운전면허의 발급 주체 자체가 영국 국왕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미국대통령도, 일본 천황도, 대한민국 대통령도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나 영국 군주는 근현대의 그 법과 제도의 근원이 되는 존재다. 자신이 발급하는 문서를 자신에게 발급할 수는 없다.

이는 다른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준의 최종 책임자는 스스로가 즉 기준이 된다. 즉 기준 없는 리더는 조직으로 하여금 기준없는 조직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라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가.

바로 리더의 철학이다. 리더의 역할은 모호한 잣대로 '일잘하는 직원'과 '못하는 직원', '조직의 방향'을 대략의 감으로 때려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명확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 언어화하기 힘든 일인지 모른다.

동네 편의점을 찾아 갈 때, 네비게이션이나 지도, 나침반은 필요 없다. 기준도 필요없다. 오히려 감으로 발품 팔고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고 현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가야 할 목적지가 '뉴욕 맨해튼의 5번가 350번지의 작은 서점', 이런 식이라면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특히 내가 인도자로써 여럿을 함께 그곳에 다다르도록 해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역사에는 기준이 명확한 리더와 그렇지 못한 리더가 이끈 집단의 차이를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남극을 탐험한 아문센과 스콧의 이야기다.

두사람 모두 남극점을 목표로 출발을 했지만 아문센의 기준은 '생존'이었고, '스콧'의 목표는 '과학적 성과'였다. 실제로 아문센은 장비도 식량도, 이동수단도 모두 생존과 귀환에 목적을 두고 선택했다. 반면 스콧은 극한 상황에서도 과학 표본을 수집하고 운반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과는 극명하게 달라졌다. 아문센은 대원 전원을 무사히 데리고 남극점에 도달한 뒤 귀환했다. 스콧 역시 남극점에 도달은 했지만 귀환에 실패했고 대원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열정과 노력이라도 어떤 기준 아래 놓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리더의 역할은 정답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명료함이란 단순 개인과 회사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국가를 비롯한 모든 개인과 조직에게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혹시 이 질문에 대해 깊고 치열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 본 적은 있는가.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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