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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마음의 함정
커트 그레이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평점 :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분명 '포식자'의 특성을 가진 종이다. 다만 사자처럼 순수 육식포식자는 아니다. 현대 인류는 먹이사슬 최상위권에 올라 있어 만생명을 고루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신체 능력만 보면 생물종으로 우리가 처음부터 '포식자'에 위치 했었는지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날카롭지 않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 위협적인 발톱도 없고 느린 속도와 약한 근력도 가지고 있다. 고로 우리가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포식자와 피식자는 진화과정에서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포식자의 대부분은 진화 과정에서 눈이 앞으로 향하게 진화했다. 거리 감각과 입체 시야가 사냥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식자의 상당수는 눈이 양옆에 달려 있다. 넓은 시야로 주변의 위협을 빠르게 감지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눈은 분명 '포식자'의 그것을 닮았다. 다만 다른 대부분의 증거가 우리를 '피식자'라고 인도하면서 우리의 위치는 '피식자'와 '포식자' 그 중간 어디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이족보행을 하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순간부터 우리의 시야는 허리와 목을 이용하여 넓어졌다. 거기에 타인과 협력을 통해 사방을 훑어 볼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면서 우리는 사방을 경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식자'이면서 '포식자'인 종이지 않았을까.
'미국 도덕심리학자', '커트 그레이'는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라는 책에서,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불안과 분노은 '피식자'로 진화해 온 '인류종'이 가진 '방어기제'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집단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선과 악'이 개념이 아니라 '피식자'의 불안감을 '타인에 대한 위험'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녀'
'온라인 커뮤니티'
'종교'
'국가 간 갈등'
현대 우리 사회가 '분노'로 가득찬 사회라고 증명해내는 다양한 갈등들이 사실은 오랜 시절, '포식자'로부터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불안해 했던 조상들의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인간은 공격성이 짙은 포식자라기보다, 단순히 위협에 민감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위험 신호를 과도하게 담지하도록 진화했다. 내부집단와 외부집단을 나누고 비록 내부집단의 구성원이 반사회적이라 하더라도, 외부집단의 구성원이 조금더 친사회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내부집단의 행동을 모방하고 방어하도록 행동한다.
인간의 대부분은 항상 자신이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유는 '상대'를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고로 그들을 '악'이나 '위협'의 존재로 상정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실제로 진보 혹은 보수적 정치 특성을 가진 이들은 상대쪽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며 '지능이 낮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그 비율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크기 다르지 않은데, 통계적 결과를 살펴보면 그들의 지능과 학력 차이가 무의미한 차이라고 한다.
커트 그레이는 인간의 이런 성향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뇌과학' 관점에서,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관찰한다. 얼핏 '사피엔스'처럼 '역사와 진화'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현실로 돌아와 현상을 관찰하고 연구한다.
뉴스를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얼핏 뉴스를 보게 되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분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신의 불안을 표출하는 그 방식이 '피식자'가 갖던 불안을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선과 악',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간종의 작동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조금 더 우리가 갖는 '분노'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살펴 볼 수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