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 오늘의 젊은 작가 54
박서영 지음 / 민음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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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도입을 몇 번이나 읽다가 말했다. 소설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시작해서 그렇다. 어떤 소설은 대략의 '줄거리'를 알기 때문에 도입의 이해가 쉬운 반면 어떤 소설은 '감'도 잡히지 않는 제목과 표지만 가지고 시작한다.



'다나'는 후자이다.



소설은 난데없이 '자신'의 어머니가 '짐승'이라고 고백하며 시작한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처럼 도발적인 도입이다. 어떤 은유적 표현이 담겨 있을까, 하고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짐승'이라는 표현이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표현 그대로 '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실제 '짐승'이다. 이 무논리적 도입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소설이 페이지가 거듭되고 좌측으로 넘어간 페이지가 도톰하게 잡히기 시작하면 '오호라'하고 작가가 전개하려고 하던 설정의 가닥이 잡힌다.


그 뒤로 소설은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소설은 '소나무 해충'을 옮겨 다니는 '다나'라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다. '다나'는 '해충'을 옮겨 다닌다. '소나무 에이즈'로 알려진 '소나무재선충병'을 옮겨 다니는 존재다. 다나의 흔적은 '살림'과 마을을 파괴한다.


'외지'에서 온 인종(?)에 대해 '짐승'이라는 비유를 하고 그들이 사회의 악을 옮기는 나쁜 것이라 표현한다. 그들은 곧 '재난'이고, '침입자'이며, '짐승',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심지어 그의 핏줄마저 그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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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의 '딸'은 스스로가 '다나'의 '딸'이라는 것을 숨긴다. 그것이 결국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며 그로인해 '보통의 사회구성원'이라는 이름표를 얻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회구성원들처럼 핏줄에 대한 '증오감'을 키워간다.



도서에서 '다나'는 끝까지, '짐승'으로 묘사되지만 생물학에서 교배를 통해 생식이 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으려면 '종' 혹은 '목'이 가까워야 한다. 현재 알려진 과학 기준으로 '인간'과 안정적으로 교배해서 자손을 낳을 수 있는 동물은 없다.



이는 확인된 사례도 없거니와 현대 생물학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소설' '다나'에서는 외국에서 포획한 '다나'라는 짐승을 대한민국 동물원에서 기르며 시작된다. 인간은 분명 아니라고 하지만 '다나'를 담당하는 '동물원 사육사'와 '다나'와의 사이에서 소설의 주인공이 나오게 된다.



과연 다나는 '짐승'이었을까.



여기에 대한 표현은 명확하다. 소설에서 '다나'에 대한 언급으로 '짐승'만이 유일하게 사용될 뿐이다. 이에 대해 인류, 인종에 대한 그 어떠한 표현방법도 없다. 단지 짐작만할 뿐이다. '다나'는 과연 '짐승'이었을까.



'다나'와 '사육사'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다나의 과보호 속에서 꽤 심적, 육체적 상처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다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나의 아이에게 했던 꽤 잔인한 폭력은 '외부'에서 '자식'을 보호하고자 했던 잘못된 모성애의 일부라고 굳이 이해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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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다나의 딸은 다나를 벗어나 '사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녀는 반인반수임에도 '반쪽'의 피를 부정하고 철저하게 '인간'이 되고자 노력한다. 스스로 자신이 인간과 어떻게 다른지를 매순간 느끼고 어떤 경우에는 질투한다.



사회에 악을 끼치는 '다나'에 대한 증오감도 함께 커진다. '다나'를 직접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점차 커진다. 스스로도 사회가 만들어낸 '증오감'에 철저하게 '세뇌'되며 그 절대악을 처단하기 위해 가장 앞서 나간다. 소설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다나'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미 커져버린 '증오감'은 이제 근거가 없어도 저절로 작동된다.



정치와 사회가 만들어낸 증오의 대상에 완전히 세뇌된 채, 자신의 어머니를 '짐승'으로 취급하며 직접 사냥하러 다니는 '딸'의 이야기에서 자칫 '허무맹랑한 소재'일 수 있는 글이 꽤 현재 우리의 어떤 모습을 닮고 있다는 동질감을 가지게 한다.



소설은 마지막까지 이어지며 읽고 있는 독자로 하여금 다시 묻는다.



'자, 이제 과연 누가 짐승이었는가'



해충을 옮긴다고 믿어졌던 '다나'였는가, 아니면 근거조차 없는 희미한 공포를 증오로 증폭시키고, 그 증오를 정의로 소비하던 우리 사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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