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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불행사회
홍선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평점 :
2010년대 초반 '간 나오토' 일본 전 총리가 취임 직후 기자회견 등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장과 희망이 아니라 최소한의 불행이라도 막자'
이것이 '최소 불행 사회'의 의미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차선이 아니라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이치다. '최소불행'이란 이미 예견된 암울한 미래에서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하자는 의미로 사용된다.
시스템이 붕괴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승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겠는가.
흔히 '각자도생의 사회'라고 한다. '시스템'이 우리를 지키지 못하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를 말한다. 도서는 시작과 동시에 '200억 자산가 김 회장'과 '반지하 독거노인 박 씨'의 이야기를 하며 '시스템'이 붕괴될 때, 승자와 패자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을 던진다.
'노동 수익'으로 '서울 아파트'를 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대'가 되면서 대부분의 젊은 층들은 '내집마련'이라는 이상보다는 '비트코인'이라는 대안을 찾았다. 소수점 여덟번째 자리까지 나눠 0.000000001 BTC라도 구매하는 것이 오늘과 같은 시대의 상징이다.
거대한 자본이 아니라도 언제든 '자산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다른 자산에 비해 매매가 자유롭고 현금화 쉽다는 매력도 작용했을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계좌를 만들고 단 몇 만원으로도 진입할 수 있따.
부동산처럼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되고, 은행처럼 심사를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 입장권의 문턱이 한없이 낮아진 이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때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했다. 모든 자산이 동시에 상승하는 시장에서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을 부르는 말일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한국과 일본 사회가 놓인 '최소한 불행'이라도 피하자는 차악의 선택과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은 일본 버블 붕괴 전 후의 다양한 '사회 현상'과 이를 비추는 용어를 소개한다. '일본 사회'가 그래왔다는 이야기를 진행 할수록, '우리 사회'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책에서 가지고 왔다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단지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유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두바이 쫀득 쿠기'가 한창 유행이다. 본래 '경제'가 안 좋을 수록 '명품 향수'와 '립스틱'이 잘 팔린다고 한다. 이를 '립스틱 효과'라고 한다. 이는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명품 브랜드를 경험하고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참여'다. 소유는 불가능해도 '체험'은 가능하다. 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하는 계층 이동을, 소비를 통해 우회하려는 심리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장기 불황 속에서 잃어버린 30년을 보냈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락한 이후, 기업은 투자 대신 유보를 선택했다. 가계는 소비 대신 저축을 선택했다. 개인으로 보기에 꽤 적절한 선택들이다. 다만 이 선택이 '집단 내 시스템'에서 작동할 때는 아주 재앙적인 상황이 되기도 한다.
위험을 회피하는 선택이 반복되면서 도전과 혁신이 둔화되고 소비는 위축됐다. 임금은 동결되고 사회 전체의 활력이 사라졌다. 합리적 개인이 모여 비합리적 결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 지점에서 '최소 불행'은 생존 전략이 됐다. 손실을 막는 것이 목표가 되고 성장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즉 확장이 아니라 '방어'에만 치중을 하게 되는 '수동적인 시스템'으로 체제가 바뀌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승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산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은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시스템이 약해지면 그 승리는 점차 고립된다. 사회 전체의 기반이 약해지면서 자산의 가치 역시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힘들다. 결국 개인의 성공 역시 시스템 위에 있다는 의미다.
가치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만 상승하는 자산은 '적정가치'를 알기 힘들다. 고로 그런 자산은 '불확실성'이 높아 가격변동성이 커진다. 물론 현명한 일부가 초기 투자를 통해 부유하게 되는 신화는 자산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다원화 자본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할지 모른다. 다만 사회 구성원 다수가 이런 자산에 목을 매고 있는 일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시스템이 약해질수록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갖고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개인에게는 하나의 선택이겠지만 그것에 시스템 내에서 수천만, 수억의 선택이 되면 시스템의 체질이 변화하게 된다.
버블 역시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노동을 통해 축적하기 어려운 시대에, 자산 시장을 통해 도약하려는 시도다.
다만 생산보다는 거래가, 혁신보다는 시세가 더 큰 관심을 받게 되면 기업은 실적보다는 주가관리에 집중하고 개인은 역량 개발보다는 '시장 타이밍'을 찾기에 몰두한다. 이때 사회의 에너지는 미래를 만드는데 사용되지 안혹 현재의 가격을 예측하는데 소모될 뿐이다.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서, '최소불행사회'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지금의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책이다.
'위기의 시대'에서 국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인 '최소불행사회'라는 타이틀을 과연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인가, 경계해야 할 것인가.
책은 쉽고 빠르게 현상을 훑거 넘어가지만 그 이면에 깔린 구조적인 질문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생각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