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너무 많은 것을 걸었기에 그들의 믿음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다. 단순한 믿음에 '시간, 돈, 관계, 자존심'이 얽히면서 '믿음'이 곧 '자신'과 일치화된다. 이 과정에서 그 믿음을 바꾼다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바와 같다. 고로 그들은 '믿음'을 바꾸기보다 '새로운 해석' 즉, 망상으로 스스로를 유지한다.
'내가 믿어온 것'과 눈앞에 현실'이 충돌할 때 생기는 정신적 긴장상태, 페스팅거는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불렀다.
중요한 점은 이렇다. 인지부조화는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이 강할 수록 생긴다. 투자할 것이 많을수록 더 강하게 작동한다. 고로 사람은 틀렸다는 증거 앞에서 생각을 고치지 않고 설명을 붙이고 음모를 만들고 적을 상정한다.
지구평평론이나, 외계인 은폐론, 극단적 종교 신념도 모두 이런 구조에 놓여 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정치 이념 갈등'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갈등에 극하게 몰입하는 경우, 그들은 웬만해서는 그 신념을 바꾸지 못한다. 다만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아주 작은 의심과 생각에서 시작을 했고 그런 이들이 더 쉽게 모이도록 하는 알고리즘도 한 몫 한다.
최근 이런 사회 문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추세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극한 대립으로 양극화 되어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쉽게 '집단 망상'에 대해 체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보면 늘 안도한다. '저 사람들은 극단적이다' 혹은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다'
다만 '집단망상'의 저자 '조 피에르'는 '집단망상'을 특정 집단의 병리로 다루지 않는다. 그저 '정말 스스로 믿는 다고 생각하는가'하고 묻는다.
생각은 개인 내부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언제든 환경에 의해 유도되고, 집단에 의해 강화되며, 알고리즘에 의해 반복된다. 또한 그 생각에 시간고 ㅏ감정, 관계와 자존심이 얽히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의견이 아니라 '자아'가 된다.
그뒤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기보다는 확증편향에 의해 더 견고해 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