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배웠다
신정일 지음 / 파람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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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말했다.

"나 이외는 모두가 다 나의 스승이다."

원효대사는 썩은 해골물에서도 배웠고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배웠다. 다산 정약용도 흔들리는 대나무 잎을 보며 사람의 마음에 대한 성찰을 했다. 그러고보면 반드시 '스승'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아도 주변 모든 것이 '스승'이 되는 듯 싶다.

가르치고자, 자세를 고쳐앉고 '내리가르침'을 주지 않는다고 스승이 아닌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니라 작은 미물이나 일상의 현상도 모두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이 되기에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능동적인 자세'가 있다면 세상은 '배움' 투성이고 주변은 스승으로 넘쳐난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대표, '신정일 대표'는 배움에 대한 자신의 사색을 보기 좋게 정리하여 도서로 담아 냈다. 책을 읽다보면 그런 스승을 만날 일이 더 흔해진다. 사람의 일상이란 쳇바퀴 돌듯 같은 궤도를 돌아가는 와중에 조금의 전진을 하는 나선형 구조를 띄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삶은 비슷한 형태을 띄고 변형된 다른 형태의 다른 문제를 마주하는 바와 같다.

나의 궤도가 볼 수 있는 시야각이 있고 다른 궤도가 볼 수 있는 시야각이 따로 있으며 이 둘에는 서로 사각지대가 존재하여 어떤 이는 문제를 해결할 완전히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지 못한다. 다른 이의 문제 해결 방식과 시선을 조금만이라도 경험해 본다면 이는 내가 그리는 궤적을 더 크게 넓힐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내가 그리는 궤적을 더 크게 그려내는 행위지 않을까 싶다. 공자의 말씀을 담은 '논어'에는 '인무원려 필유근우'라는 말이 있다.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에 근심이 생긴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 사건을 '역사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참,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여지는 경우가 있다. 2000년 전의 스승이 알려준 방법을 2000년 후에 적용한다는 것 또한 문제 해결 방식을 꽤 인류 전방향으로 살피는 것과 같다.

며칠전 운동을 마치고 사워를 하는데 꺼끌꺼끌한 수염을 면도기로 잘라냈다. 무의식적으로 같은 결 방향으로 잘라내는데 사실 면도를 아무리해도 잘 잘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원래 그렇구나'하고 벌써 20년 가까이를 살았던 듯 하다. 그러다 불현듯 아무개의 말이 떠올라 반대 방향으로 면도를 했더니, 말끔하게 수염이 잘라졌다.

참 별것 아닌 일이지만 어쨌건 40세의 나이에 발견하지 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수십년이나 같은 방식으로 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디서 보건데, '원래 그렇다'라는 사고방식이 참 위험하다 한다. 본디 '원래'라는 것은 없으며 그 말은 스스로가 변하지 않기 위해 방어기제로 사용하는 말이라 했다. '이 방어 기제'는 변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갇힌다는 부정적인 영향도 준다.


다시말해 나이가 들면 사람은 귀는 닫고 입을 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점차 자신의 삶에서 확증편향적으로 '자신만의 '옳다'에 갇혀 타인의 '옮음'에 귀를 닫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의 세계에 완전히 갇혀진 사람을 '꼰대'라 부르는지 모른다. 고로 스스로 '나이든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잘못될 수도 있다.', '나이와 지위', 그것의 '생물과 무생물'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스승이라 여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출간과 상관없이 매일 6천자 가량 글을 쓰고 있는데, 언젠가 지인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매일 할말이 생기나요'

왜 그런고 생각해봤더니, 일상을 산다면 크게 사색거리가 없을 것 같다. 다만 나의 취미가 독서이다 보니, 책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꽤 많은 것은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괜찮은 취미인 것 같다



협찬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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