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이정훈 지음 / 책과강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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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와 서점에서 수필이 있는 곳을 서성이는데 꽤 괜찮은 문체를 발견했다. 

'작가'의 글에 의하면 '시간'이라는 것은 사람의 형태를 빚어내는 조각칼 같다고 한다. 무슨말인고 하니, 매일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깎여나간단다.


 '캬... 표현 좋다'


 맛있는 음식을 한점 먹은 것처럼 소리를 내어 감탄을 한뒤에 표지를 손가락으로 '툭툭'하고 두드렸다.

 수필은 크게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의 느낌은 아니다. 수필이라는 것은 독서 중에 굉장히 소비적인 역할을 한다. 읽고나서 남는게 있다거나,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의 생각이 작은 주제별로 두서없이 쓰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필을 적지 않게 사게 된다. 부담없이 읽히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독서'가 남겨야 하는 '생산적인 활동'이라면 나는 애초에 이 '취미'를 '취미'로 두지 않았을 것이다. 꼭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자기계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독서는 충분히 다른 가치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서점에서 수필을 훑어보다가 아이의 부름에 따라갔다. 아이는 디퓨저를 사달라고 도른다. '디퓨저'만 한병 사고 돌아왔다. 아이가 고른 향을 집의 가장 가운데 즈음 비치해놨다. 그러고보니 서점에서 뒤적거리며 보던 '이정훈 작가'의 산문집을 구매하지 못했다.

 아뿔사, 책의 이름이 아른 거렸으나 운좋게도 얼마 뒤에 '출판사'에서 '협찬요청'이 들어왔다. 도서협찬이라면 많이 받는 편이다. 예전처럼 들어오는 모든 것을 응하진 않는다. 워낙 요청이 많다보니 개중 괜찮은 것만 선별해서 받기로 했다.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원하는 도서 제안이 들어 온 것은 오랫만이다.


 '안 할 이유가 있을까'


 기쁜마음으로 이에 응했다. 며칠 뒤, 도서가 도착했다.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는 직관적인 제목은 이정훈 작가가 첫번째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그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무언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을 알려주는 '계발서'와 다르다. 서툴지만 진정성을 알아 줬으면 하는 굉장히 인간적인 '바람'이 들어간 제목과 글들이다.

 

 "깊은 위로는 시간이 만들어 준다. 당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세월이 흘러 그의 삶이 안정되고나면 비로소 건넬 수 있는 말이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에 작가는 스스로의 감상을 다시 적었다. 위로를 해주는 입장에서 스스로의 위로가 맞는가 복기하는 과정이다. 어느때인가, 적기를 놓친 말들이 머리속을 맴돌때가 있다. 친구를 향해야 할 작은 위로가 아마 작가에게는 그런 류의 것이었을 것이다.


 위로는 상대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주는 일이다. 어떤 상황으로 괴로움이나 슬픔이 닥쳤을 때, 말한마디로 모든 것이 것이 해결된다면 언제든 값싼 위로를 던져 낼 수 있다. 다만 그것의 효용을 의심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서다.


 어떤 위로는 사회적 학습에 따라 상투적으로 보내진다. 그것은 어찌보면 위로받는 이에게 '상투적 대답'을 강요하는 폭력과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괜찮아, 잘될꺼야', 하고 위로를 건내면 '그래, 신경써줘서 고마워'하는 대답을 기계처럼 받게 될 것이다. 그보다 묵묵히 옆에 서 있는 편이 훨씬더 많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사람의 감정은 휩쓸렸을 때, 일종의 미친 상태에 미친다. 즉 어떤 경우에는 말을 곡해하고, 어떤 경우에는 귀담아듣지 않게 되며, 어떤 경우에는 본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니 잘 포장된 '위로의 말'보다 그저 그를 지나치고 있는 시간이라는 조각칼이 그럴싸하게 그를 조각하는 동안 지켜봐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다른 글에서 '살아보니 사람에게 다치는 일이 물건에 부딪혀 다치는 일보다 훨씬 많았다' 한다.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많이 낮아진다. 이성뿐만 아니라 '동료', '친구', '가족'할 것없이 각자 대상에 맞는 '이상형'을 마음속에 두고 있던 때가 있다.

 무언가 사회와 내가 만들어낸 스테레오타입와 이상의 결합이랄까. 그것이 마치 '해태'나 '기린'처럼 상상의 동물같은 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나의 시간라는 조각칼은 나를 그렇게 빚어냈다.


이정훈 작가의 문장은 투박하게 툭툭 던지는데 그 무심함 속에 적잖은 위로가 담겨져 있다. 날이 쌀쌀해지고 추룩추룩하고 한기가 서린 비가 내리는 날 따뜻한 전기 담요를 덮고 한장씩 넘기다보니 '위로'한마디 없이 '위로' 받은 느낌이 절로든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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