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섬세하고 독특하고 완벽주의자인 당신을 위한 문장들 - 심리학자의 아포리즘 큐레이션
황준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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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성공'이 아니라 '성취'에 초점을 맞두는 일이다. 성공과 성취는 둘 다 일을 마쳤을 때, '해냈다'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여기서 '해냈다'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결과를 보여냈다'와 '행동을 취해냈다'로 사용 가능하다. 세상에는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가령 42.195km를 완주하는 일은 '성취'에 가깝다. 이 일을 해냈을 때, '드디어 일을 해냈다'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반면 42.195km를 1등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성공'에 가깝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행동'과 무관한 '외부적 요인'으로 달성 여부가 결정된다.

외부적 요인이 '결과'를 결정하는 일은 자칫 '과정의 무의미함'을 전한다. '과정의 무의미함'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한다. 고로 이는 '성공'과 '성취' 두 '이룸'에 모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세속적 '달성'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삶'의 전반을 바라보는 태도를 말하고자 한다.

주말에는 입을 셔츠를 잘 다려 놓는 편이다. 잘 다려진 셔츠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매일 하나씩 꺼내 입는다. 평소 '패션'에 아주 무감각한 편이라 상하의는 모두 똑같은 옷 밖에 없다. 고로 개성 없는 옷들이 옷걸이에 항상 걸려 있는데 물론 '다림질'이 어떤 옷은 잘 되어 있고, 어떤 옷은 조금 구김이 가 있기도 한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남들과 다른 의미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와중, 가장 구김이 많은 옷을 꺼냈다. 물론 모두 반듯하게 다려져 있는 편이지만 가장 덜 다려진 옷을 꺼내 입었다. 일단 가장 구김이 강한 옷을 하나씩 꺼내 입다보면 나중에는 가장 잘 다려진 옷을 입게 되겠지,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를 깨달았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미래'를 위해 나는 항상 '최악'을 선택하고 있구나,하는 깨달음 말이다. 어쨌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 중에 가장 최악의 옷을 꺼내어 입는다. 아마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의 '최악'을 골라내는 행위가 '옷 선택'에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음식을 고를 때, 누군가에게 칭찬의 말을 건낼 때,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아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항상 '최악'을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얻은 깨달음이란 이렇다.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도 관점이 다를 수 있으며 이 관점의 차이는 '사소한 결정'부터 꽤 '큰 결정'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 뒤로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는 쪽으로 바꾸었다. 언제나 최선의 선택만 한다. 이런 선택의 방식은 객관적 상황에 주간적 판단을 이롭게 만든다. 구김의 정도는 다 다를 수 있으나,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언제나 최선의 결과물을 지니고 다닌다. 비록 시간의 흐름상으로 그것이 '최선'은 아닐 수 있으나 그래도 언제나 최선을 고른다는 원칙이다.

영어에서는 '밝은 면을 보라' 혹은 '반이 채워진 물컵'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의 뇌는 긍정과 부정을 구분하지 않는다. '백곰을 떠올리지 마시오'라는 명령어를 듣자마자 모두가 '백곰'을 떠올리듯, 언제나 '나쁜 면'을 보고자 하는 습관은 계속해서 그것을 부각시킨다.

'황준선 작가'의 '당신을 위한 문장들에서 4장으로 나눠진 '여러 문장'을 소개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모두 '결과'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과정'에 놓여 있다. 우리는 '과정'의 끝에 '결과'가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과정'이라는 전체에 '결과'는 잠깐 보여지는 흔적일 뿐이다. 예를들어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진다고 할 때, 떨어진 것을 결과지만 떨어졌다는 사실마저 더 큰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결과는 움직이는 영상 중 한 프레임, 한 컷에 불과하지만 과정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영상 전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마구 꿈틀대는 과정으 중간에서 짧게 스치는 '결과'를 보며 일희일비하고 살아간다. 삶을 더 크게 보기 위해서는 사실 '구성 전반'을 볼 수 있어야하고 스스로의 정답이 언제는 정답이 아니었지만 다시 정답이 되고, 그것이 다시 정답이 아니지만 다시 또 정답이 됨을 아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사진은 멈춰 있어 완전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역동적이다. 완전함이 되려고 하지 말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을 바라보는 좋은 태도가 아닐까 싶다. 고로 나를 좌절하는 어떤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있다고 해도 '좋은 문장' 하나 꺼내 읽으며 '그래, 그렇게 머물다가 곧 흘러가거라'하는 큰 마음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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