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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서양 철학사 - 더 크고 온전한 지혜를 향한 철학의 모든 길
탁석산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 중에 이와같은 호기심을 가진 '종'이 '인간'말고 또 있었을까.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종'들의 특징이라면 '생존'에 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할 것이고 어쩌면 '안전'과 '먹이'에 관한 고민이 그들 '생'에 가진 거의 모든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동물종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해 산다. 먹고 자고 도망치고 짝짓기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안전하게 후대에 넘길 수 있을지가 그들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실제로 생물학적으로 그들은 자연선택에 따라 '생존'에 가장 적합한 이들만 살아 남으며 신체적 특징이 환경에 최적화 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인간도 초기에는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다 불, 도구, 농사와 같은 각종 기술과 문명이 발전하면서 '생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을지 모른다
남는 시간 즉, 잉여 시간을 가진 사피엔스 종은 '객체의 생존'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왜 존재하는가', '왜 사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는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와도 연결된다. 생리적, 안전 욕구가 채워지면 그 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인간은 문명을 만들어내면서 '철학'과, '예술', '종교' 등의 것들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노예제' 덕분에 거늬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탄생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빗대어 생각해 보자면, 잊어야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잡생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적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극도로 고된 운동을 하고 신체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나면 꽤 깊은 잠을 잘 수 있기도 하고 어지러웠던 머릿속 잡생각들이 말끔히 사라지기도 했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의 '뇌'에 공급될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무언가를 고민할 물리적 시간을 갖고 있으며 신체 에너지와 나눠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다면 분명 인간은 그 잉여 에너지를 '생산성'과 무관한 것에 사용할 것이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1년 간 생존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치를 '팔목'에 착용하는 장신구에 쓰거나 때로는 벽에 걸어두는 그림 정도에 쓰는 것처럼 말이다.
본래 풍요에 가까워지면 '생산성'이라는 것의 가치는 더이상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 어떤 지점에 한없이 가까워지며 그 초과하는 것에는 '명목적 가치'를 만들어내어 자신의 잉여생산력을 과시하곤 한다.
그렇게 고대 철학의 시작은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중세 유럽으로 넘어가면 그 철학적 고민이 '종교'에 맞닿는다. 집단이 만들어낸 여러 상상의 매개는 '신용', '종교', '국가' 등을 만들어내며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쉽게 말해 '애당초 가치가 없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여 그것을 가치 있다고 공동으로 믿는 것'이다. 단순히 축구공을 복숭아를 담는 바구니에 넣는 게임으로 시작한 공놀이가 '농구'라는 이름이 붙고 거기서 엄청난 산업과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인간은 고대에는 스스로를 고민에 빠뜨렸던 '존재'를 창조해 낼 수 있는 발명품으로 여겼다. 그렇게 스스로 문화와 국가를 만들어내고 군대를 만들어내고 세금을 만들어 내면서 그들은 조금더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만물은 누가 만들었는가'
중세 유럽이 되면서 교회는 세속적 질서를 보호하고 사회는 일정 수준의 안정성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조금더 본질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됐으며 자신들이 만들어낸 무언가들에 경이감을 가지며 이 모든 것을 창조해 낸 '창조주'로부터 더 큰 경이감과 두려움을 갖는다. '신학'의 탄생이다. 중세가 되면서 인간은 신과 존재의 성찰을 시작하고 철학은 신학의 하위로 기능하게 된다.
그런 고민들은 시간이 지나며 어떤 경우에 '신'의 영역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된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의식주'와 '질병'을 통제하게 되고 '존재란 무엇인가'에서 '창조주란 누구인가'로 그리고 결국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윤리와 정치, 자아와 자유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인간의 철학은 근대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도 산업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 우리 사회에서 철학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철학은 실존과 해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AI나 로봇이 모방한 '인간다움'에 인권이 존재하는가. 그들과 우리는 어떻게 다른가.
이처럼 현대에서도 철학은 '자연선택'에 맞게 진화해 나가며 우리의 사회와 개인의 사고방식을 바꿔낸다.
서양철학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수행했던 '탁석산 박사'는 이처럼 철학이 인간 문명의 발전과 어떻게 맞물려 진화되어 왔는지, 시간순서로 나열해가며 꽤 현실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철학은 과거에도 그 사회화 문화, 환경에 맞게 진화해 왔다. 그 사회를 살던 이들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성찰과 고민들을 보여준다. 고로 그저 과거 어느 시점에만 존재했던 어떤 생각들의 흔적이 아니라 중세와 근대를 거쳐 AI와 로봇이 만들어지는 지금 현재까지 꾸준히 멈춰있지 않고 생물처럼 움직이며 진화해 나가는 중이다.
과거에 묻혀 있던 유물을 캐어내듯, 그의 서양 철학사의 첫장부터의 시작은 점차 시간과 역사를 따라 이동해오다가 현재까지 이른다. 즉, 철학은 사실상 유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하나의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물과 같아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