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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도착하지 않는다
유래혁 지음 / 포스터샵 / 2025년 6월
평점 :
'유래혁' 작가 님의 '장편소설 '바람은 도착하지 않는다'는 도입이 매우 매력적이다. 천사의 형상을 한 존재가 등장한다. 천사하면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와는 다르게 '천사'의 등장은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굉장히 기이하며 불쾌하다. '탯줄을 잘근잘근 씹는다'라는 묘사에서 이 소설이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만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첫 장면이 주는 냉정함으로 소설의 진행이 동화같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굉장히 인상적인 도입으로 소설은 시작과 동시에 몰입된다.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연차적으로 나오는 듯하다. 아이를 빼앗긴 소녀, 해변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 기계 심장 소리를 들은 청각 장애 소녀, 돈이 든 캐리어를 묻는 소년.
인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사건은 자세한 설명이 있지 않다. 책을 읽다가 몇번을 표지로 넘어간다.
'잠깐만, 이 소설이 단편이었던가?' 하고 앞으로 넘어갔다가, '아 장편소설이네'하고 뒤로 돌아온다. 일단 그렇게 파편적인 내용들을 읽어가다보면 이야기는 어느새 '스르르' 섞이며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사건들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닮아 있다.'바람'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감정과 관계, 상처 같은 것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것들은 도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결된다.
이 소설의 장점이라면 '모호함'이다. 뭐든 깔끔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 관련해서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극 막바지'가 되면 모든 일이 마법처럼 해결되어버리는 '해피엔딩'이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기적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마치 화성에 감자를 심어 생존해 내는 것보다 더 판타지적인 것이 '해피앤딩'이다. '유래혁' 작가의 특징이라면 억지로 감정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임 혹은 작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결말'이 없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여운이 남는 소설을 훨씬 더 좋아한다.
소설은 마치 고급 사진첩에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질감의 표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책과 다르게 '소설'의 경우에는 책을 만졌을 때, 겉표지와 속지의 질감도 매우 중요하다. 소설을 읽는 과정은 활자로 만들어낸 누군가의 '추억'을 이식받는 행위와 같다. 실제로 '유래혁'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한 장면 한 장면이 정지된 사전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한 파편을 이식 받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고로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감정만은 선명하게 남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실종된 존재'들이 있다. 사라진 아이, 사라진 관계, 들리지 않거나 심장이 없는 듯. 다들 무언가 잃어 버렸고 상실한 채 살아간다. 그 상실은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여타 문학의 판타지와는 다르게 실재하는 삶에서는 '해결'보다 '수용'이 더 중요한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어떤 상실을 경험했다. 이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해결책을 찾았던 적도 있다. 그 소모적인 시간 뒤에 내가 깨달은 바는, 세상 모든 문제에 '답'이 있다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회복'은 없다. 다만 '수용'만 있을 뿐이다. 이겨 내는 것보다 받아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이런 소설이 제대로 읽힌다.
'유래혁 작가'의 다른 소설 '수족관'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소설은 줄곧 즐겨 읽어왔던 '일본 소설'을 닮았다. 다만 일본 소설의 직관적임보다는 한국 소설의 감성적 서술방식이 더 돋보였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소설은 어디에나 있다. '유래혁 작가'의 '바람은 도착하지 않는다'는 대략 3~4시간 정도의 시간이 들어간다. 글의 문체가 워낙 시처럼 감성적이기에 훑어보기에 적절하지는 않다. 한문장 한문장 수채화를 그리듯 묘사하는 전개 방식은 내용과 무관하게 소설을 아름답게 하는 요소이지 않을까 싶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