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론 2
제레미 오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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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옆에 다크홀이 생겼다.

블랙홀과는 다르게 다크홀은 질량도 중력도 없다. 단지 관측되는건 비어있는 어둠 뿐이다. 인류는 이 미지의 구멍을 탐험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임무를 밑은 사람이 바로 '루크'다. 주인공 루크는 지구 최고의 우주인이다. NASA 최고의 파일럿이다. 루크는 이 다크홀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다크홀을 통과한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과거 SF영화나 소설이 그리던 설정과 꽤 다르다. 비슷하면서 다르다. 루크가 도착한 곳은 '다중 지구'다. 80억개나 되는 지구가 각각 다른 역사를 만들며 우주 공간에 떠 있다. 그는 곧 알게 된다. 지구의 갯수가 80개인 이유를 말이다.

이 세계관에서 핵심은 '의식'이다. 각 지구에는 79억이 넘는 무의식과 단 하나의 의식이 존재한다. 각각 지구마다 '의식'이 하나씩 있으며 그 의식이 바로 '그 지구의 주인'이다.

항공우주공학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완전히 섞이며 만들어낸 이런 새로운 형태의 SF 소설은 '작가'의 이력에서 기인한다. '제레미 오'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현재는 정신과 전문의로 병원에 근무 중이다. 우주공학과 정신의학이라는 이질적인 두 분야를 아우르는 그의 독특한 이력은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고로 결국 '홀론'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제목이 아니다. 철저히 제레미 오 본인의 전공과 임상실험이 융합된 결과다. 항공우주공학과 정신의학이 다루는 두 소재를 아주 적절하게 섞었다. '다중우주'라고 하면 대개 우리는 '공간적 분기'를 떠올린다. 다만 제레미 오는 그것을 '의식'이라는 축으로 뒤틀었다. 차원이 아니라 마음. 공간이 아니라 '자아'로 '다중 우주'를 설명한다.

소설은 어떤 부분에서 '인터스텔라'를 닮았지만 사실상 아주 다른 이야기다. 또한 실제 꿈속을 헤매는 듯한 착각일 줄 정도로 그 묘사가 기이하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스토리라인이 아니라 개연성이 굉장히 어그러져 있는 구간이 있다. 다만 이 장치는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소재를 볼 때, 꽤 의도된 설정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대로 지구가 80억개인 이유는 자아가 80억개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각 지구가 하나의 무의식 덩어리고 그 위에 주인으로 있는 단 하나의 의식만 존재한다. 그 하나의 의식이 곧 그 지구의 진짜 사람이다. 나머지는 무의식이 빚어낸 허상, 데이터, 껍데기나 다름없다.

사실 이런 설정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의식-무의식 구조'를 정반대로 확장한 개념이다. 프로이드는 인간 한 명 안에는 '이드, 에고, 슈퍼에고'가 있다고 봤다. 다만 제레미 오는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개의 세계 안에 그것을 만들어 냈다. 지구라는 덩어리가 곧 하나의 인격이 되는 셈이다.

또한 이것을 단순히 사변적 개념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항공우주공학 전공자답게 다중 우주의 메커니즘을 물리적, 수학적 언어로 묘사한다. 질량이 없는 다크홀, 중력 없는 중첩 우주, 그리고 거기에 붙은 '의식 중심성 이론' 등.

실제로 현대 물리학에서도 양자중첩과 관측자의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다. 슈뢰뒹거의 고양이, 양자 얽힘, 다세계 해석,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다가 '관측'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단 하나의 현실로 수렴된다. 다만 만약에 이 '관측'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의식' 자체라면 어떠한가. 그런 의미에서 '홀론'의 세계관은 허무맹랑하면서도 꽤 합리적인 상상이다.

게다가 여기서 소설의 중심이 슬쩍 이동한다. 서사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루크가 딸을 찾아 다른 지구를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여러 사건과 배반, 반전이 있다. 사실 어떤 반전은 대략 알아채게 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볼 수 밖에 없다.

한 여름 길고 긴 낮잠 끝에 어렴풋하게 남은 꿈의 흔적처럼 이 소설은 굉장히 몽상적이고 묘하다. 완전히 깨어난 뒤에도 그 여운은 오래도록 머리속에 남을 듯 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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