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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칭찬하지 마라 - 심리학이 밝혀낸 아이를 성장시키는 칭찬과 꾸중의 원칙
김영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칭찬이 과해지면 춤은 노동이 되고 칭찬은 강요가 된다. 자기방어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반응이다. 고래는 원래 춤을 추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춤을 보기 위한 누군가의 요구가 '칭찬'으로 다가오면 고래는 '춤'을 추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가진다.
진심 어린 최초는 자발적이다. 스스로 즐겁다. 다만 결과를 유도하기 위한 인위적 칭찬은 강요와 명령에 가깝다. 상대의 동기를 자극하기 위해 끊임없이 부여하는 칭찬은 '중독'적이다. 언제나 진심어린 칭찬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잘했다'라는 말이 반복되면, 기대가 붙는다. 다음에도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그때부터 춤은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거절하지 않는다. 거절하지 않고도 완수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바로 '덜 해내는 전략'이다. 스스로 무능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불구화 현상'이다.
'자기불구화 현상'은 단순한 무기력이 아니다. 그것은 꽤 능동적인 방어다. 성공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실패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실패했을 때, 진심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못하는 게 아니야, 안하는 거지'
이런 회피는 칭찬을 자주 듣는 아이로로부터 자주 발견된다.
실제로 연구에서도 이 패턴은 뚜력하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일 수록, 준비하지 않은 핑계를 만든다. 자기효능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노력 대신 회피를 선택한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누구나 결과를 알고 있다. 세상은 당연하게도 성공보대는 실패가 흔하다. 몇번의 실패 위에 성공이 올려지는 것처럼 실패를 감내하는 단계가 없다면 성공에 도달히지 못한다. 다만 최대한 실패가 나와 연결되지 않기 위해서 애초에 그 '싹'이 되는 '시도'를 지워 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어제 잠을 못자서', '요즘 컨디션이 안좋아서', '사실 이건 진심이 아니었어'와 같은 말들이 나온다. 이 말들은 모두 방어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세한 전략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심'을 다 한 뒤에 얻는 '실패'가 스스로의 존재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시키거나 실패하지 않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고로 어설프거나 진심이 없는 과도한 칭찬은 때로 아이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칭찬이 과한 시대다. 야단치거나 혼내는 일이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조던 피터슨 교수의 '12가지 인생의 법칙'라는 책에 꽤 단호한 어조로 아이를 훈육하라고 말한다. 여러 연구에서 실제로 무조건적인 칭찬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에게 야단을 치는 경우 아이가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칭찬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기준은 '진심'이다.
로체스터 대학교 심리학과에 재직 중이던 '에드워드 데시 교수'는 1999년 내적 동기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지금까지 1만 5000번 이상 인용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논문이다. 이 논문은 보상 효과에 관한 논문으로 '실체가 있는 보상은 어떤 형태든 내적 동기를 낮춘다'라는 결론을 갖고 있다.
즉 '동기부여'를 자극하는 어떤 종류의 보상이 아이의 내적 보상을 낮춘다. 보상이 없으면 동기가 사라진다는 기존 통념이 꽤 무기력하게 무너진다. 실제로 '책 읽으면 게임 시켜줄께'라는 식의 거래는 아이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없애는 거래다.
이런 저런 연구를 다 비교하며 아이에게 과학적 혹은 통계적 실험을 할 수는 없다. 아이를 대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많은 연구가 증명하듯, 그저 '진심'을 다하는 일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