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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느슨함 - 돈, 일,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품위 있는 삶의 태도
와다 히데키 지음, 박여원 옮김 / 윌마 / 2025년 5월
평점 :
'Win'이라는 단어를 보면 동양인은 반의어 'Lose'를 떠올린다. 무슨 말인고 하면 동양 사회에 깊이 박혀 있는 경쟁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작동한다는 의미다.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져야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전제는 일본, 중국, 한국 등 현대 동양인들이 갖고 있다.
홍미롭게도, 이런 사고방식은 본래 서양 철학에서 출발했다. 데카르트가 그랬고 플라톤도 그랬다. 선과 악,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정 등. 서양 사유는 오래전부터 세계를 이분법으로 나누어 생각했다.
현대에 와서는 정반대다. 이분법적 사고는 동양 사회가 더 심하다. 특히 일본과 한국이 그렇다. 서양은 이분법을 철학적인 도구로 써왔지만 한일 국민들은 이를 실생활의 생존 원리로 갖고 있다. 학교나 직장, 입시, 관계에서 언제나 이겨야 했던 과거 산업화의 역사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경쟁 사회에서 'Win'의 반의어는 분명하게 'Lose'다. '이기다'의 반의어는 '지다'가 저절로 되는 것이다.
다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이기다의 반대어는 이기지 않다,에 가깝다. 즉 이기지 않았다고 지는 것은 아니다. Win은 본래 고대 영어인 Winnan에서 출발했다. Win은 본래, 이기거나 정복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노력을 해서 얻어 내다'에 조금더 가깝다. 누군가를 밟고 서는 게 아니라 자기 몫을 차지하는 것이다.
영어까지 갈 것도 없이, 본래 우리말 '이기다'는 '익다'에서 출발했다. 영어 속 혹은 한국어 속 어원을 살피자면 실패에서도 얻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길 수 있다.
사실 그렇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얻는 것이다. '어른의 느슨함'에서 '와다 히데키' 작가는 '당위적 사고'와 '이분법 사고'를 주의하라고 말한다. 그는 정신과 의서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나고 성실한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속이 비어있는 채로 삶을 산다고 말한다. 그들을 망가뜨린 건 실패가 아니라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좋거나 나쁘거나의 '이분법적 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다. 다만 이런 당위성이 '이분법적 사고'와 만나면 크게 위험하다. 세상이 양극단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목표치가 지나치게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갖는 당위성은 결국 비현실적인 목표로 그들을 몰아간다. 전투력이 충만한 젊은 시절에는 그나마 이런 사고가 성장의 동력으로 발동한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쇠퇴하기 시작하면 이는 스스로를 옥죄는 독이 된다.
앞서말한 당위성과 이분법 사고는 노인의 치매를 가속화한다. 노화로 인한 치매는 막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다만 환경과 사고방식, 생활의 변화는 충분히 이를 조절할 수 있다. 60대 이후가 되면 우울증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이 배경에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있다. 세로토난은 뇌의 안정감과 행복감을 조절하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나이가 들수록 그 분비량이 저절로 줄어든다.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세로토닌'의 자연스러운 감소를 우리는 어떻게 관리 받아들여야 할까.
와다 히데키 작가가 제시하는 방법은 이렇다.
고기를 먹고, 햇볕을 쬐고, 걷는 것. 이 단순한 세 가지는 뇌의 생화학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별거 아니다. 어쩌면 우리도 쉽게 지어낼 수 있는 말인지 모른다.
다만 그가 말한 바를 살피면 여유있게 살라는 것이다. 결국 어떤 방식의 win이건 가장 확실한 win은 생존이다. 가장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공룡은 인간보다 훨씬 강했지만 벌써 멸종했다. 어떤 경우에는 느슨한 것, 게으른 것,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 나무늘보가 그렇다. 본래 나무늘보는 강한 동물이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빠른 반응속도를 가졌던 포식자였다. 다만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화면서 점점 느려지고 결국 '게으른 생존자'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나무늘보보다 강한 포식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그들의 상당수는 모두 멸종했다. 그래서 누가 이겼는가. 나무늘보는 느리지만 아주 확실하게 현재 남아 있다.
'어른의 느슨함'은 이래도 되나, 싶은 빠른 현대 사회의 불안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느린게 때로는 가장 좋습니다.'
가끔은 스스로를 위한 채찍이 아니라 쉼이 이기는 길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