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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 이경규 에세이
이경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3월
평점 :
40대가 가까워지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렇다.
'나는 누구지'
아직 10대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가 '밖'이라면 한집에 살고 있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안'이다. 도대체 '나'라는 것은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하던 중 'MBTI'라는 유형분석이 유행했다.
옆에서 한번 해보기를 권장하던 상대는 문항에 대한 나의 선택을 갸우뚱거렸다. 그 행동이 충분하게 이해될 만큼 나 스스로도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나왔다.
'INFJ'라고 한다. 전체의 1%정되되는 굉장히 희귀한 유형이란다. 주변에서는 이 유형을 처음봤단다. 내가 희귀한 유형이라는 사실은 그닥 놀랍지 않았다. 내가 놀란 사실은 나 같은 유형이 1%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전체에서 고립된 '유일한 하나'에서 그래도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 유형으로 살았다.
그러다 어떤 날은 주변에서 F가 아니라 T성향 같아 보인다 한다. 그자리에서 다시 검사를 했더니 INTJ가 나온다 T와 F과 49와 51의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그런 성향인 듯했다.
'이제 나는 뭔가 조금더 일반적인 유형으로 올라왔을까' 했더니 INTJ도 INFJ만큼이나 희귀한 유형이란다.
'보통'이 되고 싶은 그런 소망을 접어두고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찾아봤더니, 제일 먼저 나오는 인물이 '이경규'라는 인물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동질감이 든다. 스스로 INFJ라고 생각할 때, 비슷한 인물을 보면 묘한 돌질감을 갖곤 했다. 다시 INTJ가 되어서 보니 그들에게 알 수 없는 내적 친밀감이 들었다.
'저 사람도 참 힘들게 살고 있겠구나'
그 이후로 일부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그렇게 '이경규'라는 인물의 '에세이'를 읽게 됐다. 이사람은 단언컨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 확신은 스스로를 돌아 볼 때 알 수 있다.
그의 수필은 짧고 간결했지만 묵직했다. 그의 말 중 일부는 꽤 인상 깊다.
'열심히 벌고, 죽기 전에 더 써야 한다. 한 푼도 남기지 말고, 집도 팔고, 전세로 살다가, 여한 없이 쓰다 가야 한다.'
그는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해 본 적이 없단다. 그 철학이 때로는 미련할 수 있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삶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전체적인 모습을 보자면 50억짜리 건물이 100억이 됐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건물의 가치가 올라가는 동안 인생의 가치도 함께 올라가고 있는가를 살폈는가다.
어떤 가치는 외부적인 변수로 가치가 올라간다. 다만 내부적 가치는 내부적인 요인으로 올릴 수 있다. 변동폭도 작고 손실 위험도 없다. 그의 철학에 크게 공감했다. 나 또한 '파이어족'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인물들은 일약 스타가 된 뒤에 은퇴하다 시피 한다. 말 그대로 벌만큼 벌었으니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 각자의 가치관이 있겠지만 이는 내 가치관에 크게 어긋난다. 대충 통장에 20억, 30억만 있으면 누구나 은퇴 할 수 있다. 대략 3%이자만으로도 1억에 가까운 불노소득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성장은 30억 수준에서 멈춰져야 한다. 그 이후의 성장은 '욕심' 많은 이들의 몫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사회란 '은퇴' 목적에 두는 삶이 아니다. 의사는 사람을 고쳐서 사람을 이롭게 하고, 장사꾼은 좋은 물건을 들여와 저렴하게 팔아 사람들을 이롭게 하며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이롭게 해야 한다.
그 '홍익인간 정신'이 아마 일을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고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붇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한방으로 인생 역전하여 은퇴를 선언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스스로 돈을 버는 행위는 굉장히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행위다. '이경규'의 철학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는 남을 웃게 하며 직업적으로 돈을 번다. 이 얼마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인가. 가만히 50억짜리 건물을 사서 100억에 팔아 시세차익을 얻는 '부'가 아니라 사회에 큰 공헌을 하는 '부'를 진심으로 얻고 싶다.
같은 MBTI를 공유하는 인물의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것!'했던 순간이 있다. 나의 첫 책에는 이런 철학을 적었던 적이 있다. 바로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쌓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떠올릴 추억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이다.
예전 할머니는 무릎이 안 좋으셨다. 꽤 오랜기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시고 TV를 보거나 창밖을 바라보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어느 나이가 되면 돈이고 뭐고 중요한 게 아니다. 분명 사회 생활도 힘들고 눈도 침침해지고 다리도 아프기 시작하면 나 또한 가만히 침상에 누워 천장에 있는 벽지 무늬나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과연 무엇을 떠올리며 하루를 보내게 될까.
그것은 내가 가진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였다.
그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하게 됐다.
'그렇지... 뭐든 진지해 질수록 재미가 없어진다. 삶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