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시한부의 찬란한 인생 계절
서달 지음 / 온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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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추운 겨울이 돼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더운 여름이 돼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단다. 어디에 보느냐에 따라, 겨울은 따뜻하거나 추워지고, 여름은 시원하거나 더워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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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보건데,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이고 여름은 '열'이 많아져서 여름이란다. Wind가 많아 Winter가 되고, Sun이 가까워 Summer가 되듯, 조금더 '감정'을 빼고 직관적으로 이름을 지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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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어떤 것'은 '이름'이라는 그릇에 담겨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를 명명한다는 것을 꽤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대체로 '삶을 살아간다'라고 보면 우리의 삶은 '영속적인 오늘'을 부여 받는 착각을 받게 된다. 다만 너무나 많은 우리가 '영속적인 오늘'을 소모하며 결국 '한시적인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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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하던가. 과연 우리는 흘러가 버리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다시 그 자리에 발을 담그며 같은 강물에 몇번의 발을 적시고 있다고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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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달' 시인의 '자발적 시한부의 찬란한 인생 계절'에는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는 걸까요'라는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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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얼 향해 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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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는걸까요,

죽어가는 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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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시한부의 삶은

죽어가는 것에 더 알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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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닳고 닳아서

이제는 무뎌짐을 넘어서

이제는 초원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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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자신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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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보건데, 나의 삶은 확실히 소모적이고 죽어간다. 나는 어제에 비해 하루만큼 더 죽어가고 있으며 하늘이 정해준 '생'의 일부를 매순간 갉아 먹어간다.

모든 사람은 '시간'을 '치사량'만큼 투여 받고 죽음으로 나아간다. 그 '약'이 때로는 고통을 잊게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하지만 부여된 투여량을 다 맞고 나면 모두가 사라지고 만다.

약효는 피부를 늘어지게 하고 망각을 자유롭게 하며, 내장지방을 쌓고 자산을 늘린다.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관절을 갉아 먹으며, 조금은 지혜롭게 하고 조금은 나약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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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투약의 과정을 마흔 정도 받다보니, 약효가 꽤 적절하다. 가끔 나는 스스로 닳아가고 있는지, 무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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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머리 손질 없이 외출을 하지 않던 것이, 지금은 늘어진 트레이닝복과 목늘어나고 구멍난 티셔츠를 입고 아이 학교길을 마중한다. 씻지 않은 얼굴에 새집을 지은 머리는 더이상 부끄러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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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여된 시간이 얼굴을 두껍게 하여 스스로를 둔감하게 만들었으나, 가끔은 그런 스스로를 보고 거울 앞에서 세월의 무상함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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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시한부'라는 말은 '시인'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 명사다. '스스로 삶'에 끝을 정하고 삶을 살아간단다. 모두가 망각했을 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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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취미 생활을 위해 '자전거'를 알아보다가, 누군가의 후기 영상을 보았다. 그는 실제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 였는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기껏해봐야 한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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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채널을 보건데, 꽤 많은 영상이 찍혀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공포나 아쉬움은 없었다.

한달도 채 살지 못할 그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고 기뻐했고, 그러게 자전거를 구매했다. 영상이 촬영된 날짜를 봤더니 이미 2년이나 지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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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은 2년 전 언제부터 올라오지 않았다. 꽤 건강한 남성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는 한달이라는 시한부를 선고 받았으나, 스스로의 취미를 위해 새자전거를 구매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리뷰를 남기고 남은 삶을 즐기기 위해 여러가지 도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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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간 그는 어떤 즐거운 삶을 살았을까. 그는 방학을 마치는 아이처럼 덤덤했다. 치료를 통해 삶을 연장시킬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그냥저냥 여행하는 나라에서 비자 연장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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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생각이 깊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준비도 없이 삶을 마감하곤 하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삶의 마감일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의 즐거움을 가지고 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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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꼭 나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죽음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죽음'을 떼어 놓고는 결고 현명해 질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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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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