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인 더 다크
사쿠라 히로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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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내가 지하실로 사라졌다. 사라진 이유는 얼굴에 남은 흉터 때문이다. 튀김 요리를 하다가 작은 화상을 입은 것이다. 남편은 내용을 쪽지로 전달 받는다. 금방 나을 것이라고 생각지만 하루가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아내는 올라오지 않는다. 그간 일중독이었던 남편은 일에 심취한다. 그러다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도무지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남편은 그때서야 아내를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지하실에서 올라오지 않는다. 남편이 내려가려고 해도 결코 불을 켜지 못하게 한다. 소설은 평범한 공무원 남편과 프로그래머 아내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평범한 부부다. 문과적 남자와 이과적 여자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함께 살아간다. 이 이야기를 작가 '사쿠라 히로'는 '피아졸라'에 빗대어 말한다.

피아졸라는 '탱고'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탱고보다는 재즈와 클래식을 열망했다. 그는 주로 바흐나 슈만의 음악을 듣고 재즈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그러다 그는 스승 블라제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는다. 자신이 쓴 작품에 '자신의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후로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탱고, 재즈, 클래식을 접목시켜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이렇게 여러가지가 섞여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이 만들어지자 세계는 그를 '탱고의 황제'라고 불렀다. 피아졸라의 '탱고'는 다시 말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섞여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문과적 남편과 이과적 아내, 이 둘은 각자 플룻과 기타 연주한다. 이 두 악기는 쉽게 섞여지기 어려워 보일 수 있으나 이 둘은 적당히 섞여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낸다. 소설속 가상 부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계는 그렇게 형성된다. 수소는 수소와 섞이면 그저 수소일 뿐이지만, 산소와 섞일 때는 물이 된다. 하나는 불을 잘 타도록 하고, 다른 하나는 불을 만나면 폭발력을 키우지만 이 둘이 결합하면 '물'이라는 새로운 성질로 재탄생된다. 전혀 닮지 않은 것끼리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면 혼자일 때, 감히 할 수 없는 새로운 시너지가 생긴다.

우리는 때로 '자율 의지'를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칸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타율'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타율이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결정에 다라 행동한다는 의미다. 예를들어 당구공을 손에서 놓으면 공은 아래로 떨어진다. 그것은 공의 자율 의지가 아니라, 중력이라는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선택을 할 때,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다만 식사를 선택하거나 옷을 선택할 때도 거기에는 자율 의지가 없을 수 있다. 기호라는 것은 애초에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기호는 오래된 외부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자율적 선택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전혀 자율적이 않을 수 있다. 때로 자율선택이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복종의 실천'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따지고 보면 때로 '운명론'을 믿는 쪽이 공감되기도 한다. 칸트는 이런 타율적 행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적에 반응하는 행동을 경계하길 바랬다. 행위에 집중하다보면 그것을 왜 하고 있는지 물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부자가 되기 위해, 좋은 집을 사기 위해,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등. 다만 이런 것들은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에 반응해 행동하는 타율적인 삶이다. 칸트의 말대로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기 휘새서는 그 존재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움직이는 것 이들의 대부분은 생각보다 외부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간혹 유럽이나 미국만 보더라도 인기 가수의 대부분이 '솔로'이다. 다만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에는 '아이돌'이라고 통칭하는 그룹이 '인기'있는 편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강수량이 풍부하여 '벼농사'를 짓던 '아시아'인들이 집단을 인식하는 방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밀농사를 짓는 이들은 다수의 집단을 한번이 인식하는 일을 어려워 한다. 다만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에는 단체로 구성된 집단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는 인식의 방식이 생겨난다. 고로 취향이라는 것 또한, 아주 오래 지난 조상들의 선택 방식의 영향이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취향이 아닐 수 있다.

사람의 '뇌'라는 것이 이처럼 불완전하다. 우리는 행복한 한때를 떠올리는데 1초면 충분하다. 다만 그 행복한 한때의 하루는 대략 10시간 혹은 수년의 시간이다. 고로 인간의 기억은 엄청난 시간을 압축하고 변형해야 기억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때로 기억되어 있는 기억장치에서 불러오는 과정에서 인간의 뇌는 컴퓨터처럼 '불러오기'를 통해 과거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도록 기억을 재구축한다. 이것을 '재구성 이론'이라고 하는데, 고로 인간은 어떤 무언가를 기억하고 떠올릴 때마다, 뇌에 보관된 것이 아닌 새로이 만들어지는 변형된 것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고로 진실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고 그때 그상황에 따라, 그 감정에 따라, 그 시기에 따라 언제든 재구성된다.

내가 바라본 과거와 상대가 바라본 과거가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둘이 서로 갖고 있던 시간이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재구성 작품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먹고, 같은 시간을 보내는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때로는 아주 다른 기억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알고 봤더니 자신과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진 상대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안해 하기도 한다. 관념에서만 존재하는 없다는 것과 있다는 것은 고로 우리의 뇌가 각각 만들어낸 환영일지 모른다. 우주 물리학에서 '다중우주 이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데, 아마 객관적인 우주가 몇개 인지를 차치 하더라도 과연 지구상에는 최소 80억개의 우주는 존재 하는 것 같다. 이제 막 태어나는 우주, 방금 막 사라져 가는 우주 등. 고로 가족이라는 것은 새로운 우주를 하나 가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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