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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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2월에 열린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1963년에 출판되어 큰 논쟁거리가 됐는데, 2000년까지 이스라엘에서는 출판조차 되지 못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위했던 악명 높은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 피고석에서 실제로 너무 평범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냥 공무원이었으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아렌트는 이를 두고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이끌어 냈다. 나이가 조금 있는 이라면 초등학교 때 반공 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교육중에는 공산당을 그리거나 묘사하는 일이 있는데, 당시 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머리에 뿔달린 괴물이었다. 한반도에서 이념 갈등이 한참이던 1950년 대, 적군을 맞이 했던 학도병들은 적군을 맞이한다. 적군의 머리에는 뿔이 달리지도 않았으며 괴물도 아니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은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그의 일생을 훑어보면 그녀가 주장하는 '사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퓰리츠상을 두번이나 받은 월터 립맨(Walter Lippman)은 전체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곳에는 아무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마르크스가 말했던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 '노동'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이며 이런 정치적 삶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조건이라고 했다.

그녀가 뉴욕행 기니호에 승선했을 때 나이가 서른 다섯 살 이었다. 서른 다섯인 그녀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역사는 그녀에게 두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하게 했고 망명자가 되게 했으며, 게슈타포에 체포되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는 강제수용소를 탈출하기도 했다. 그녀의 복접한 인생사 닯게 그녀의 국적도 다양하게 변화했다. 그녀는 독일제국에서 태어났으나 바이마르 공화국이 나치독일이 되는 과정을 지켜봤으며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무국적자로 한동안 존재해야 했다. 그 밖에 한 번의 이혼과 한 번의 사별을 경험했다. 그녀는 개인이 적극적인 사유를 함으로써 의식을 깨치는 사유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그녀의 철학의 필요성이 절실한 순간을 보게 된다. 몇 번의 군사독재를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 조차 전체주의로 흘러가곤 했다. 전 국민이 같은 시간이 되면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불러야 했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자신은 비록 고통과 불행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잘 되는 것을 '선'으로 두었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 두 종류의 '애국'이 부딪친다. 영화에서는 '박진우'와 그 친구들이 책을 돌려 보는 모임을 하다가 구속된다. 이에 '차동영 경감'은 이들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국보법' 수사를 진행한다. 반대쪽에서는 송우석 변호사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송우석 변호사'와 '차동영 경감'이 '애국'과 '국가'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차동영은 독재 군부 정권을 옹호하며 공안정치를 신봉한다. 그는 공무원이며 자신이 따르는 군부 정권을 국가로 규정하고 충성을 다해 애국한다. 학생이 모여 책 읽고 토론한 것이 국보법에 해당되는지 무엇을 보고 판단하며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자, 차동영은 '국가가 판단한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송우석은 '국가가 무엇이냐'고 묻고 여기서 이 둘이 국가를 바라보는 시점이 명확하게 다르다는 점이 나온다.

실제 '악은 평범하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전체주의가 만들어내는 무지성은 사유를 통해 경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자신의 조국이 몇 차례나 바뀌었으며 '유대인'이지만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에 특별하게 다른 관점을 갖지 않았다. 스스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도 아니었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전체의 일부로 분류하지 않았다. '애국'이라는 단어는 가장 정치적인 단어다. 군사독재 시기에 '애국'과 독립운동 시기의 '애국'이 전혀 다르며, 애국과 애국의 갈등도 적잖게 역사에서 발생한다. 얼마 전, 우리는 '일본 제품 불매'에 통참하지 않는 이들을 보며 '매국'으로 규정했다. 우리의 역사에서 '전체주의'는 빼놓을 수 없는 사상이다. 군사정권에는 '3S정책'을 통해 '스크린, 섹스, 스포츠'를 장려했다. 대부분의 독재국가들이 하는 정책인 '우민화 정책'이다. 국민이 우둔해야 소수 정권이 이를 이용하기 쉽다. 대표적으로 과거 '중앙 아시아의 북한'으로 불리던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나라가 이다. 현재는 사망했지만 한때는 절대권력자였던 '니야조프'가 그렇다. 그가 했던 우민화 정책은 국민들을 제대로 바보로 만들었다. 그는 남학생들을 징집함으로써 군대 인구를 늘리고 연령을 낮춰 고등학교 2학년에 징병했다. 또한 국민들의 교육년도를 줄이고 박사나 유학생들을 추방했으며 다수의 도서관과 학교를 폐교시켜버렸다. 전체를 통제하기 위해서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해야한다. 더 깊은 차원의 생각을 하는 사람을 추방시키거나 탄압해야 한다. 이렇게 다수가 비슷한 생각에 빠지고나면 전체가 평범한 '악'으로써 역사에 남겨지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곤 한다. 신문 기사나 뉴스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지, 권력 있는자, 혹은 절대 자수가 하는 말에는 오류가 없는지. 자신의 생각과 철학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보며 '우리'라는 것은 다양한 사고를 하는 '나'의 집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봐야겠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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