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최석규 지음 / 좋은땅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정말 강력 추천하는 단편소설책이 나왔다. 이런 책이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오랫만에 재밌게 읽은 단편 소설이다. 기본적으로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단편소설은 대게 미완성인 경우가 많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다가 뒷심이 약해지면서 마무리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강한 소재를 이용하여 충분한 흥미를 주었다.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던 나또한 다음 문단이 궁금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이 책은 얇은 두께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으면서는 감탄했다. 한 명의 작가가 글을 작성했다고 보기에 놀라울 만큼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다. 나 또한 어디에도 투고하지 않은 몇 편이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이 있다. 때문에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재능있는 사람의 글은 세상으로 크게 발현되야 한다.

책의 제목은 이 단편 모음집에서 소개되는 첫 번 째 소설의 제목이다.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는 알듯 말듯한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책에서는 '살인'이라는 흔한 소재를 디테일하게 소개했다. '이런 부분은 어떻게 아는거지?'하는 생각에 예전에 봤던 '우리동네'라는 스릴러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짧지만 강한 디테일함'.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었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살인'이다. 추리 소설에서는 흔할 수 밖에 없는 소재이지만 그러다보니 너무 쉽게 디테일함이 사라지기도 한다. '살인 현장은 구름 위'에서도 실망했던 이유는 너무 흔한 살인과 죽음 때문이다. '죽음'과 '살인'은 이야기를 끌어가야 하는 소재에 불과하기 때문에 디테일이 생략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추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어쩌면 집중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힘을 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처럼 길지 않은 몇 문장만으로 충분히 그 디테일을 살릴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서는 '툭, 툭'하고 뱉는 몇 몇의 문장만으로 깊이 있는 감정이입이 가능하다. '칼을 이용하여 살인을 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디테일' 그 과정을 지리하게 끌지도 아주 가볍지도 않게 '툭' 던진다. 모든 소재의 주인공의 직업이나 성격은 일반적이지 않고 확실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가령 '지하철 안전문을 고치는 직업'이라는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직업들이 나오기도 하고 '편의점 도시락을 리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 밖에 등장인물 모두가 확실한 특색을 가지고 있고 개성이 있다. 이렇게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디에도 중복되지 않는다. 짧은 단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듯이 표현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소설가들의 소설 또한 많이 읽었다. 물론 그렇게 이름 난 소설가들의 작품 또한 훌륭하다. 하지만 이 소설 또한 몹시 훌륭하다. 어떤 '유명인'의 초기 '무명시절'을 알게 됐다는 확신이 든다. 소설가 최석규 님은 언젠가 그 빛을 발할 것이다.

책에서 아쉬운 부분은 몇 가지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분량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 책은 단편소설이다. 좋은 소재와 훌륭한 표현력 그리고 생동감있는 인물들로 충분히 장편 소설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소설이 어김없이 단편소설이라는 점은 맛있는 음식을 못내 다 먹지 못한 듯 입맛을 다시게 했다. 그 부분이 아니라면 흠잡을 만한 부분은 없다. 나의 리뷰는 항상 책의 내용을 담지 않으려 노력한다. 독후감이란 '줄거리 요악'과 다르게 읽고 난 뒤의 나의 소감을 적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될 수 있으면 이 책의 줄거리를 적는 일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책의 소개를 모두 하지 못하는 것은 못내 아쉽다. 다만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들의 리뷰에서 쉽게 간단한 요약을 확인 할 수 있으니, 그 몫은 그 쪽으로 넘긴다.

책에서 인상 깊은 점은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군가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작가 님의 의도가 있는지 혹은 그의 무의식의 반영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글쓰기', '그림그리기', 그도 아니면 '리폼하기' 등을 한다. '책'과 '글'이 어김없이 소재에 이용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아무리 그냥 지어난 허구적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사상과 생각이 글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의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성권리'에 의식을 갖고 있는 작가의 글은 분명 그 사상을 담게 되고 정치적으로 특정 방향을 갖고 있는 작가의 글은 분명 어느 부분에서나 투영된다. 이 책에서 자꾸만 '작가'가 등장하는 것은 그의 무의식 혹은 의식이 '글쓰기'에 상당히 애정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소설은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를 담을지 모르더라도 분명 작가의 배경상식과 사색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책이 어느 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천재 물리학자 마이어가 증명한 열역학 제1법칙과 두참사상의 바이블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려다 아깝게 탈락한 '천지량해법'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열역학 제 1법칙'은 에너지는 창조되지 않고 파괴되지도 않으며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뀔 뿐이다. '천지량해법'에는 세상의 모든 기의 총량이 태초부터 정해져 있다는 말이 있다. 동서양의 이론을 보자면 누군가의 생명은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취함으로써 유지되게 되어 있다. 나의 생명의 연장은 다른 동,식물의 생명을 취함으로써 연장된다. '소설'이란 허구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매우 중요한 삶의 어떤 부분이 깨친다. 예전에 만화영화에서 악당은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취해 자신의 생명을 연장했다. 만화적 허구라고 생각하는 생명을 취한다는 내용은 실제 우리가 매일 같이 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의 생명을 꾸준하게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먹었던 어떤 동물과 식물의 생명을 취해 나의 생명을 연장 시킨다. 우리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것을 취한 것이다. 그것을 빌려왔던 빼앗아왔던 그것은 태초에 나의 것이 아니었다. 열역학 제 1법칙과 총량의 법칙처럼 우리가 누군가의 기회를 매순간 앗아가고 있다면 항상 소중히하고 감사해야 하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남을 해치거나 피해를 주는데 그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베풀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데 활용되게 해야 할 것이다.

책은 200쪽도 되지 않는 책이지만 가볍게 킬링타임으로 읽을만큼 허접하지 않다. 되려 나는 설 연휴 기간 아이들과 그 전쟁을 치루면서 헛되게 지나간 문장을 다시 돌이켜 읽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여 읽었다. 그러다보니 이 짧은 소설을 읽는데 자그마치 4~5일이 걸린 샘이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작가 님의 대성도 기대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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